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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7)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7)

독일에서 만나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시사타임즈 = 이지아 기자] 드레스덴에서 알텐베르크까지는 계속 오르막길 45km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이 다른 곳보다 이른 아침 6시 반이라 식사를 마친 후 바로 출발하였다. 70kg이 넘는 손수레를 밀며, 산길에 큰 바위를 밀며 오르는 시시포스처럼 온종일 올랐다.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고픈 욕망을 쫓아 나는 세상을 만나러 길을 나섰으므로 무거운 수레를 밀며 산을 오르는 정도의 육체적 고행(苦行)은 각오가 되어있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계곡은 내설악을 오르는 것처럼 깊고 높았다. 그보다 더 깊고 높았다고 해야 정확하다. 전나무 숲 사이로 내리는 가을 햇살은 아름다웠다. 햇살은 흐르는 계곡에 내려앉았고, 계곡의 물소리가 음악처럼 흐르고, 계곡은 에로틱하게 아름다웠다. 놀라운 판타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대자연의 전나무 숲은 북유럽의 신비로움으로 가득 찼다. 어느 시대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평생 일만 하며 범부(凡夫)로 살아가는 남자들은 이런 아름다운 계곡을 보면서 천사와의 로맨스를 한 번쯤 꿈꾸어왔으리라.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백조의 무리가 산 깊고 물 맑은 계곡에서 깃털 옷을 벗고 미역을 감는다. 백조는 깃털 옷을 벗으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된다. 그 정경을 나무 뒤에서 넋을 잃고 훔쳐보던 나무꾼이 살그머니 다가가 깃털 옷 하나를 감춘다. 그중 한 여인은 하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자식을 낳고 한동안 행복하게 산다. 그러나 어느 날 선녀는 우연이 남자가 감추어둔 날개옷을 발견하고 다시 백조가 되어 아이들만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고 남자는 그녀를 찾아서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하늘로 올라가지만 다시 헤어지게 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와 비슷하다.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와 같다. 이 설화는 원래 몽골 등의 북방 민족 사이에서 이루어진 ‘조녀설화’(鳥女說話)가 점차 남하하여 중국으로 이동됨에 따라 중국 도교(道敎)의 영향으로 신선 세계와 관련을 맺으면서 조녀는 선녀로 변이되어 우리나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실크로드를 타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그 나라나 그 지역에 사정에 맞추어 조금씩 변형되었다.

 

이렇게 달리면서 이야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도 흥미진진할 것이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우리의 콩쥐팥쥐전과 같고, 그 이야기는 일본에도 있고 태국에도 있다고 한다. 마이다스 왕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임금님의 머리를 깎다가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발사는 누구에게도 말을 못 하고 가슴앓이를 하다가 들판에 구덩이를 파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하고는 묻어버렸다. 그 위에 갈대가 자라 바람이 불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하고 소리를 쳐 온 백성이 다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경문왕의 ‘여이설화(驢耳說話)’와 비슷하다. 경문왕은 임금 자리에 오른 뒤에 갑자기 귀가 커져 당나귀의 귀처럼 되었다.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으나 오직 왕의 복두장이 만이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 그 사실을 발설하지 못하다가 죽음에 이르러서 도림사라는 절의 대밭 속으로 들어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하고 소리쳤다. 그 뒤에 바람이 불면 대밭에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천년이 넘는 먼 옛날, 발 없는 이야기가 매스컴이 발달하기 훨씬 이전에 동서양을 넘나들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알텐베르크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5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식당이 보였으므로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를 찾으면 오늘 일과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이다. 그런데 저녁을 먹으면서 주소를 입력하니 아직도 5.5km를 더 가야 하는 곳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하루 종일 무거운 짐을 밀며 산에 올라왔으므로 이제 기력을 다했는데 5.5km를 더 가라니! 그것도 이 산골 마을에서 그 거리면 숲속이 분명했다. 인터넷을 보고 예약을 했으므로 거기에 가끔 꼼수가 있다. 시내 중심에서 500m라 쓰여 있어서 찾아보면 다른 도시인 경우가 많았다.

 

모험가로 자라지 않고 모험가로 훈련되지 않은 내가 중년이 넘은 나이에 좌충우돌 모험의 길에 나섰더니 이런 난처한 상황들이 가끔 벌어진다. 에너지는 완전 방전이 되었고 깊은 산중이라 해가 일찍 떨어지는데 해지기 전에 숙소를 찾으려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기온은 점점 떨어진다. 그러나 나의 한혈마 잔등에 야영 장비가 있으므로 해 떨어지면 숲속에 야영을 할 각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덧 붉은 해는 저 너머 산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어둑어둑할 때 숲속의 산장을 찾았다. 주인은 이 호텔이 얼마 전 한국 스켈레톤 대표 팀이 머물던 곳이라고 자랑을 한다. 그들과 찍은 기념사진이 산장 로비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한다. 다음에 다시 오면 내 사진이 이 로비에 걸려있을까?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독일과 체코 국경은 산악지역으로 전나무 원시림이 무성하다. 산을 오르는 길은 가팔랐고 거의 45여km를 손수레를 밀며 가파른 고갯길을 힘겹게 넘었고 거의 15km를 다시 뛰었다. 손과 발에 경련이 났다. 드디어 정상에 이르렀을 때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푸른 하늘 아래 매가 한 마리 원을 그리며 비행을 하고 있었다. 내려다보이는 구불구불한 길이 장엄하겨 펼쳐있었다. 숲속에 통나무 오두막집이 보이는데 저것이 체코에 속하는지 독일에 속하는지 엄청 궁금하다. 차가 가끔 지나갈 뿐 인적은 드물다. 국경을 넘으면서 우리의 국경선 아닌 국경선의 군사적 긴장이 내 머리를 지배하면서 긴장감이 너무 없는 것이 오히려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이렇게 우리의 휴전선도 하나의 행정구역을 가르는 선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세상이 오기를 꿈꾸어 본다.

 

유럽은 세계 2차대전으로 거의 모든 지역이 전쟁의 피해를 입어 어려운 상황에서 힘을 합쳐 경제를 재건해보자고 1957년부터 여러 가지 연합이 이루어진다. 그러다 1986년 12개국이 처음으로 단일 유럽 조례에 서명하고 EU의 깃발을 달기 시작했다. 그러다 체코와 폴란드 헝가리 등 구 동구권 국가들까지 가입해 지금은 28개국의 대단위 연합으로 발전했다. 아직 국가간 경제 사회적인 격차가 많아 문제점도 많지만 국경이 없는 이 길을 통해 노동도 자본과 기술이 자유로운 교류를 통해 공동의 번영을 모색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국경은 산정상이어서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 같다. 산허리를 감은 구름 아래로 까마득한 세상이 아련하게 보인다. 다만 행정선에 다름 아닌 국경을 넘었을 뿐인데 사람들의 표정이 다르다. 독일에서 나는 교포들의 관심 이외에는 현지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나를 보는 눈동자가 다르다. 동공이 크게 확장(擴張)되면서 손도 흔들어주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지만 응원의 말도 건네준다. 사람들도 독일 사람들처럼 위압적으로 체격이 크지도 않았다. 영어도 독일 사람들보다 훨씬 잘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제 배도 고팠으므로 산 중턱에 있는 통나무 오두막집 식당으로 들어갔다. 옆자리에 두 젊은 부부가 십대 딸과 셋이서 담배를 피워대는데 참기가 어려워 슬그머니 저 멀리 떨어진 자리로 옮겼다. 나는 그들이 뿜어내는 담배 연기 속에서 자유분방함보다는 오히려 오래된 집처럼 무너져 내리는 가정의 분해를 본다. 체코의 대표적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처럼 기묘한 충격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체코의 숲속에서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 알레그로가 들려오는 듯하다. 체르베니 우예지트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마을 축제가 벌어졌다. 체코의 전통적인 복장을 한 주민들의 모습에 갑자기 내 동공이 커졌다. 구경거리가 생겨 지나치던 발걸음을 되돌려 행사장으로 쭈삣쭈삣 들어섰다. 그 사람들에게는 내가 더 구경거리였는지 사람들이 내 행색을 보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의 한혈마 앞에 쓴 배너를 보고는 나에게 몰려와 어디서 언제 출발했는지 어디까지 가는지, 무엇 때문에 달리는지 물어보고는 이 사람 저 사람 몰려들어 사진 촬영을 요청한다. 나는 여기서 평화마라톤 한류 스타가 되었다.

 

축제에는 술과 음식이 빠질 수 없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었고 여기를 지나치면 또 굶을 수도 있어서 줄을 서서 통돼지 구이 한 조각과 빵을 주문했는데 조금 전에 사진을 같이 찍은 아주머니가 내 점심값은 자기가 쏜다고 한다. 맥주에 체코식 감자전 브람보락까지 아주머니가 통 크게 쏘셨다. 공짜는 뭐든지 더 맛있다. 아주머니는 혹시 내 날개옷이 어디에 있으면 감추어버릴 듯 내게 애정 공세를 취한다. 언제나 이런 정도 이성의 관심이나 유혹은 인생의 활력소 역할을 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저쪽에서 이미 술을 한잔해서 코가 불그스름한, 마치 ‘착한 병사 슈베이크의 모험’의 캐릭터를 닮은 중년 신사가 중세 병사의 복장을 하고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우리나라에 뽀로로가 있다면 그 한참 전에 체코에는 ‘착한 병사 슈베이크’가 있다. 야로슬라프 하세크의 미완의 코믹 모험 서사 소설은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드라마로 캐릭터 인형으로 만들어지며 체코인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작가는 6권을 계획하고 시작했는데 4권만을 완성하고 알콜 중독 합병증으로 죽었다. 그 후 유머 작가 카렐 바넥이 끝부분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체코는 동서 유럽의 중심에 위치에 중세시대에 이미 번영(繁榮)을 누렸던 나라이다. 중세의 화려한 첨탑들과 아름다운 고성들이 붉게 물든 담쟁이덩굴에 덮여서 동화처럼 꿈결처럼 펼쳐져 있어 한때의 영화(榮華)를 대변해준다. 찰스 4세는 중세 말 14세기에 신성로마 황제의 직위를 누리기도 하지만 내륙국가의 한계가 16세기 이후 식민지 경영과 산업화로 부를 이를 이룬 다른 유럽국가들에 뒤처지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전만 하더라도 보헤미아는 유럽에서 가장 발달된 지역 중의 하나였으나 공산당 치하에서 쇠락(衰落)하였다.

 

체코를 동서로 나누어 동부를 모라바라 부르고 서부를 체히라 부르는데 라틴어로 보헤미아라 한다. 켈트족들이 이곳의 정착민들을 보헤미아라 부른 것이 유래라고 한다.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는 유랑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았다. 보헤미안은 19세기 후반부터는 사회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는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나는 보헤미안보다 더 자유분방하게 이 지역을 달리고 있다. 사실 모든 사람의 깊은 곳에는 집시의 피가 흐르고 있지 않을까? 다른 말로 유목민의 피가 흐른다고 한다. 어디선가 퀸의 보헤미안 렙소디가 들리는 듯하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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