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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예/문화·일반연애

‘대구 동화사 삼장보살도’ 등 8건 보물 지정 예고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문화재청(청장 김 찬)은 ‘대구 동화사 삼장보살도’ 등 8건의 유물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대구 동화사 삼장보살도. ⒞시사타임즈

 

‘대구 동화사 삼장보살도(大邱 桐華寺 三藏菩薩圖)’는 가로로 긴 한 화면에 천장보살(天藏菩薩), 지지보살(持地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세 보살과 그 권속들을 표현한 의식용 불화이다.

 

화기를 통해 대시주가 18세기 초 대표적인 화승 중에 하나인 의균(義均)이며, 당시 동화사 불화 외에 경주나 창녕 등 타 지역의 불화가 함께 제작됐음을 알 수 있어 당시 동화사가 팔공산 인근에서 활동하던 화사들의 주 근거지, 혹은 작업 공간으로 활용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팔공산을 중심으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까지 크게 활약한 화승 의균의 화풍이 뚜렷하여 화파(畵派) 연구에도 중요한 작품이다.

 

16세기 이전 시기로 올라가는 삼장보살도들은 국내에 거의 전하지 않고 그나마 17·18세기 초에 제작된 석탑사 삼장보살도(1699년)나 대구 파계사 삼장보살도(1707년) 조차 그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 삼장보살도가 갖는 불교회화사적 의의가 크다.

 

‘대구 동화사 지장시왕도(大邱 桐華寺 地藏十王圖)’는 1728년(영조 4) 동화사 대웅전에 모실 삼단불화를 조성할 때 삼장보살도와 함께 중단불화로 조성됐다.

 

이 불화는 한 화면에 본존인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그리고 십대왕, 판관, 사자, 동자, 앙발옥졸(仰髮獄卒), 장군, 여섯 보살 등을 엄격한 좌우대칭에 입각해 그린 군도 형식의 지장시왕도이다.

 

화기를 통해 1728년(영조 4)에 의균(義均), 명찰(明察) 등이 불화를 조성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했다. 수화승 쾌민(快旻)을 비롯해 체환(體還) 등 모두 7명의 승려 화원들에 의해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당시 지장시왕도의 양상 및 경북 내륙 화사들의 화풍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불랑기자포(佛狼機子砲)’는 후장식 화포인 불랑기에 부속돼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子砲)로, 손잡이[거금(擧金)]가 달린 둥근 형태의 통 형식을 갖추고 있다.

 

자포 포신 표면 우측에 ‘가정계해 지통중칠십오근팔냥 장김석년(嘉靖癸亥 地筒重七十五斤八兩 匠金石年)’이라는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자포가 1563년에 제작됐다. 또 중량이 75근 8냥이고 장인 김석년에 의해서 제작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불랑기자포가 출토된 지역은 조선시대 무기를 관장하던 군기시(軍器寺) 터로서 조선 중기의 대표적 화기인 승자총통을 비롯해 대형 화포의 발사체, 철환, 철촉 등 다양한 무기류와 함께 출토됐다. 이를 통해 불랑기자포가 1563년 조선에서 제작됐음을 확인할 수 있어 더욱 가치를 더한다. 또 같은 형태의 보물 제861호 ‘불랑기자포’와 더불어 조선시대 화기 발달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자치통감 권131~135, 246~250(資治通鑑 卷131~135, 246~250)’은 세종이 경복궁(景福宮)의 사정전(思政殿)에서 명신·학자(名臣·學者)들의 훈의(訓義)와 교감(校勘)을 거쳐 ‘자치통감’의 편찬을 완료했다. 유의손(柳義孫)·윤회(尹淮)·권도(權蹈)·설순(偰循)·김말(金末) 등의 서문을 붙여 1436년(세종 18)에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간행해 배포(排布)했던 판본이다. 잔본이기는 전하는 예가 매우 드물다. 하지만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표지는 제작될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자치통감강목 권12, 27, 37, 42(資治通鑑綱目 卷12, 27, 37, 42)’는 1493년(성종 24)에 명판본 ‘자치통감강목’을 자본으로 주조된 계축자(癸丑字)를 사용하여 간행된 책이다. 계축자는 국내에 드문 귀중본이다.

 

‘자치통감강목’의 본문과 주석에는 끊어 읽을 수 있도록 표시(백권·白圈)가 돼 있어 독해하기에 편리하다. 또 책의 군데군데에 의정부 산하의 ‘사인사(舍人司)’라는 인문(印文)이 날인돼 있는 점이 특이하다. 권42의 본문(本文)의 중간 중간에는 교정지시(校正指示)가 필서(筆書)돼 있어 교정본(校正本)임을 알 수 있다. 표지는 제책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더욱 가치가 있다.

 

‘진실주집(眞實珠集)’은 1462년(세조 8)에 목판으로 새긴 간경도감판(刊經都監版)을 10년 뒤인 1472년(성종 3) 6월에 후쇄(後刷)한 것이다. 간경도감판 원문(刊經都監版 原文)에 김수온(金守溫)의 발문(跋文)을 덧붙인 판본으로, 발문은 갑인자소자(甲寅字小字)로 인출(印出)한 것이다.

 

발문에는 승하한 세조·예종의 명복과 정희대왕대비·성종·공혜왕후의 장수를 빌기 위해 인수대비(仁粹大妃, 1437~1504)의 주도로 인출된 불경(佛經)의 종류와 인출건수(印出件數) 등이 수록돼 있다. 당시에 ‘진실주집’은 200건을 인쇄한 것으로 기술돼 있는데 이번에 지정 예고한 ‘진실주집’은 그 때 인출된 200건 중의 하나로, 조선 초기 목판인쇄기술과 발문 등을 통해 왕실의 불교신앙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영가진각대사증도가(永嘉眞覺大師證道歌)’는 세조~성종 연간(1455~1494)에 을해자(乙亥字) 중자(中字)와 소자(小字)를 사용해 간행(刊行)한 것으로 추정되는 판본(版本)이다. 을해자로 간행된 불서 중에서 ‘영가진각대사증도가’의 간인사실(刊印事實)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판본(版本)은 고려조(高麗朝)와는 달리 언기(彦琪) 등의 여러 주석이 수록(註釋)된 점으로 보아 ‘증도가(證道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던 것으로 짐작된다.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해 처음 간행 당시의 표지 장황, 제첨 등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15세기 왕실을 중심으로 간행된 불경 표지 장황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이는 당시 왕실에서 이루어진 불서의 품질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그 가치가 높다.

 

‘장승법수(藏乘法數)’는 대장경(大藏經)에 수록된 명수(名數, 3계·3신 등과 같이 수를 가진 법문의 수량)를 차례로 배열해 찾기 편하고 이해가 쉽도록 편찬한 일종의 불교학사전(佛敎學事典)이다. 인쇄된 글자에 마멸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인출한 책으로 사료된다. 표지는 개장됐고 표제는 ‘현수법수(賢首法數)’, 판심제는 ‘법수(法數)’이다.

 

‘무학대사중간 공필구여발(無學大師重刊 功畢求余跋)’이라고 기록된 이색의 발문을 통해서 원조(元朝)의 서암 가수(西菴 可遂)가 1365년(지정至正 15) 경에 편집을 완료해 간행한 판본을 저본으로 여말선초의 고승인 무학대사(無學大師)가 1389년(공양왕 1)에 판각한 중간본(重刊本)임을 알 수 있다.

 

발문에 간행 경위가 수록돼 있으며 원나라 간본을 바탕으로 고려시대에 번각한 것으로 불교사와 서적 교류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8건의 유물에 대해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 중에 수렴된 이해 관계자와 각계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공식 지정할 예정이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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