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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엄무환 칼럼] 믿음과 하나님의 길

[엄무환 칼럼] 믿음과 하나님의 길
 


▲엄무환 국장. ⒞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엄무환 국장] 성경은 두 부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육신적 그리스도인과 영적 그리스도인입니다. 육신적 그리스도인의 대표적 모델은 구약성경에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신약성경에선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사복음서라고 하는데 이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업을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뺑뺑이 돌다가 그곳에서 무덤을 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3년 여 동안 예수님과 함께 동거 동락하면서 숱한 이적과 천국의 놀라운 말씀을 직접 듣고 눈으로 목격했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모두 도망갔습니다.

 

육신적 그리스도인과 영적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내 삶의 주인이 누구냐와 관련됩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나이면 육신적 그리스도인이고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면 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내가 부지런히 수고하고 내가 기도하고 내가 봉사하고 내가 뭔가를 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다. 전형적인 육신적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적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 신앙생활을 합니다. 즉 자기의 목적, 자기의 야망을 이루는 것에 삶의 목표를 두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중, 하나님의 마음은 알지도 못하지만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자기의 뜻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기도도, 예배도, 헌금도 봉사도 자기에게 유익함이 되어야만 합니다. 자기가 손해보는 것 같다고 생각되면 안합니다. 하더라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합니다.

 

이런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긴 매우 어렵습니다. 오히려 마음에 부담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적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리 설교를 하고, 성경을 가리키고 기도훈련을 시키고 하여 은사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난다할지라도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가 어렵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으며,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시켰지만 영적 그리스도인이 되질 못해 결국 광야에서 무덤을 파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영적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져 요단강을 건넜고 마침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영적그리스도인만이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업을 소유합니다. 영적 그리스도인만이 예수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보화를 캐내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적 그리스도인만이 천국을 침노하는 삶,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삶을 삽니다. 영적 그리스도인만이 다윗처럼 승리의 삶을 살며 정복의 삶을 삽니다. 그래서 영적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바울 사도 등이 대표적인 모델입니다. 이들은 가는 곳마다 세상을 ‘upside down’, 뒤집어엎은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특징 중 하나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이 그것입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나 바다를 항해하는 배나 땅에서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길입니다. 비행기나 배나 자동차로 아무 곳이나 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도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두 가지입니다. my way, 즉 내 길과 God’ way, 하나님의 길이 그것입니다.

 

my way란 내가 원하는 야망을 추구하는 인생을 말합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뭔가를 해보겠다는, 나의 야망을 위해 수고하고 노력하는 인생 말입니다. 이게 my way입니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의 야망,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찾는 알라딘의 마술램프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my way를 걷는 사람이 바로 육신적 그리스도인입니다. 육신적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길을 알 수 있는 영적인 지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지각은 영적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신비한 영역입니다. 바울사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15)

 

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길을 아는 영적인 지각이 없는지 그 원인을 히브리서 3장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10)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육신적 그리스도인의 모델입니다. 이들의 마음이 어떤 상태냐. 항상 마음이 미혹된 상태라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적 그리스도인들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항상 마음이 미혹되었다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지각이 없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고 홍해가 갈라지는 등 그 어떤 민족도 경험하지 못한 무수한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항상 미혹되었다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육신적 그리스도인의 영적 현주소입니다. 항상 마음이 미혹되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여기서 미혹되어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플라논타이로 그 뜻은 방황하다’, ‘속다’, ‘잘못하다입니다. 영어성경에선 '플라논타이'를 ‘go astray’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That is why I was angry with that generation, and I said, 'Their hearts are always going astray, and they have not known my ways.' So I declared on oath in my anger, 'They shall never enter my rest.'”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의중을 알지 못한 것은 그들이 항상 자신들의 욕심, 욕망에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에 관심이 없어서였습니다. 이것이 마음이 미혹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미혹되었느냐 하면 그들의 시선이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필요한 것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지각이 없어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보게 됩니다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이 미혹된 사람은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유업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보면 어느 부자 집에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가 받을 유산을 미리 받아 도시로 나가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그만 받은 유산을 모두 낭비하고 결국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내용이 소개됩니다. 여기에 소개된 둘째 아들이 바로 마음이 미혹된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미혹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에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둘째 아들처럼 신세망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으며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육신적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항상 미혹된 상태입니다. 자신의 욕망, 자신의 야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육신적 그리스도인들의 주님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육신적 그리스도인들의 주님은 자신의 욕망과 야망입니다. 즉 , 명예, 권력 등 세상적인 부귀영화 말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미혹된 상태이기 때문에 육신적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지각이 없습니다. 영적인 지각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알겠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믿음이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길을 걷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않고 있음을 말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육신적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마음이 미혹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열심으로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게 아닙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육신적 그리스도인은 항상 마음이 미혹되었다는 이 말씀과 함께 히브리서 3장12절에 나오는 말씀 또한 주목해야할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 악심말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에게서 떨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유업을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바로 악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악심은 마음이 미혹된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열매와도 같습니다. 성경은 이 악심을 불신앙 또는 불순종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불순종과 불신은 같이 가는 단어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히브리서 113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라합은 가나안 땅의 관문인 여리고성의 사람입니다. 당시 여리고성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라합은 믿음으로 인해 자신 뿐 아니라 가족 모두가 멸망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라합은 예수님의 족보의 반열에까지 오릅니다. 믿음 하나로 인생 대박을 터뜨린 겁니다. 믿음과 불신의 결과를 여실히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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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성 사람들을 심판하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정복하도록 하는 것이 그 시대의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이 출애굽한 1세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은 쓰임받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려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주된 이유는 이들의 마음이 항상 미혹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지질 못했다는 것이지요. 즉 불신앙의 사람, 불순종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들은 자기 시대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에서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들이 구원을 잃어버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으며 자기 시대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의도, 계획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에서 버림받은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육신적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새로운 믿음의 세대를 세우셔서 당신의 계획과 뜻을 이루셔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출애굽한 1.5세대와 2세대들입니다. 이처럼 불신은 그 시대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끊어지게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도 이를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152절과 6절입니다.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어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아무리 종교적인 모양을 갖고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과 상관없이 살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지 않으면 겨우 부끄러운 구원만 받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 하나님의 계획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그 시대에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세대를 세우십니다. 이 믿음의 세대가 바로 영적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들은 마이웨이를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걷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그 시대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나 육신적 그리스도인, 즉 마음이 미혹된 사람들은 영적인 지각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믿음이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길(의중, 계획)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그 시대를 향하여 가지신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받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봉사와 헌신, 구제가 있을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비록 자신들 스스로는 믿음이 있다고 여길지 몰라도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경험해야만 생깁니다. 성경을 수백 번 통독한다고 할지라도 그 성경의 지식이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은 아는 데서 생깁니다. 믿음이 있어야 자기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되어 하나님께 쓰임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마음이 미혹된 육신적 그리스도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시편기자가 정곡을 찌른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10615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습니다’. 영혼을 쇠약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쉽게 말해서 가치없는 일에 인생을 허비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구하는 바를 다 들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에 포로가 된 나머지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그들을 죽이시지는 않으셨지만 인생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는 무서운 병을 주셔서 심판하셨습니다. 영혼을 쇠약하게 하신 병입니다. 육신도 쇠약하면 무슨 일을 할 수가 없듯이 영혼이 쇠약하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게 아무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지 못했으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유업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다가 죽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중 20세 이상의 장정만 603,550명이었는데 이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육신적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무서운 심판입니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호세아 66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를 담는 것이 예배, 성경공부, 기도, 찬양, 헌금, 봉사, 전도, 제자훈련 등의 의식(儀式)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들이 본질을 잃어버리고 종교적 의식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나 예레미야 선지자 등을 통해 선포된 말씀처럼 거짓신앙의 열매입니다. 본질이 없는 의식은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할 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러했으며,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는 이 삶에만 영적인 지각이 생깁니다. 영적인 지각이 있어야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됩니다.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길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며 따라가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삶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이 삶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이 삶에 하나님의 모든 자원이 공급됩니다. 이 삶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누리게 하는 삶이며,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주어지는 삶 입니다이 삶의 모델이 바로 영적그리스도인인 여호수아와 갈렙,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사도 등입니다.

 

 

삶의 소중한 시간들을 광야에서 보내다가 광야에서 무덤을 팠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삶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왜 성경이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기록하여 증언하고 있을까요. 그런 삶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메시지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마이 웨이를 고집했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닮은꼴의 인생을 고집한다면 본인의 선택에 따른 그 결과도 고스란히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닮은꼴이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만 할 것입니다. 언제나 선택은 자유이니까요.

 

 

나의 길이 아닌 하나님의 길을 알아 그 길을 따라 가는 삶, 즉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의 자리에 선 사람은 인생 대박을 터뜨린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의 기도는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렸던 기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는 기도 말입니다. 이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는 믿음의 분량으로 자라길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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