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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11)] 78. 미국(USA)-2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11)] 78. 미국(USA)-2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송규칠, Joseph, Hanna, 규영, 이태순, 송인엽, 아영, LA, 1989.10) . ⒞시사타임즈
▲(미국 전도). ⒞시사타임즈

 


1. 지구 한 바퀴 달리기 출정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아니 정녕 살아 있기는 한가

그래 한 번 찾아보자 

참 나를

내가 무엇인지를 

 

세계평화 외쳐보자

평화통일 깃발을 올리자

 

그래 지구는 둥글다 노래했으니 

앞으로 앞으로 달려가 보자 

지구를 한 바퀴 

돌아보자

 

나야, 너 도대체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알고 싶구나

 

2015년 2월 1일 

태평양 파도소리 들으며

천사의 도시 L.A를 출발하니

 

나를 막는 모하비여

그대는 누구인가

폭풍과 열사는 무엇이며

어찌 한혈마의 발을 잡는가

 

이를 앙다물고 밀며 달리자

내가 죽나 

네가 물러서나 

갈 때까지 가보자

 

표범을 물리치니

호랑이로구나, 너 록키산맥이여

 

오르락 내리락

오르기도 힘들지만

내리막은 더 힘든데

눈폭풍은 웬말이냐    

 

길을 잃고 쓰러지니

나바호 인디안 인정이 따스하고

 

징검다리 건너며

아메리카 방방곡곡 구석구석 

천천히 찬찬히 

내시경 여행

 

폭풍우를 뚫으니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두 개의 강이 휘돌아

미시시피강은 위대하구나

 

태극기 휘날리며

쉐난도 백악관 아미쉬를 지나며

평화통일 어서 오라 

제사의 춤사위 날개짓 하고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구나

대동강변 울 아빠 첫사랑 보고 싶어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뉴욕 하늘 아래 울려 퍼진다

멀리 멀리 머~얼~~리~~~

 

이제 대서양을 건너서 

너 유라시아를 달리자

지구 한 바퀴를 달려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 평양가서 울밀대를 거닐자

울 아빠 첫사랑 그 소녀도 만나자

 

단군왕릉 참배하고 할아버지 묘소 성묘하고 

박연폭포 구경하고

DMZ 훌쩍 넘어 평화통일 앞당기자~~~  

 

 

2. 미대륙 횡단기 - 빛두렁길

(By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처음 내딛는 발걸음에는 설레임이 담겨 있다)

 

처음 내딛는 발걸음에는 설레임이 담겨있다. 사람은 자기가 제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융단처럼 깔린 길을 걷게 마련이다. 남들은 가시밭길로 보고 발을 디딜 엄두도 못 낼 때 나는 그것을 곱게 깔린 융단으로 알고 첫 걸음을 시작할 마음이 생겼다. 잠시 뒤에 몰려들 피로감이나 불편과 고통은 생각지도 않았다. 여행의 로맨틱한 환상은 얼마 후면 여지없이 깨어지리라는 생각도 첫발을 내딛을 때는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들판에는 세찬 바람이 멈추지 않고 바다에는 언제나 파도가 일렁이고 내 가슴 한가운데에는 미지의 세계로 향한 열망이 끝없이 소용돌이친다. 우리가 어디서 온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어디로 갈지 알 수는 없다. 삶은 목적지가 없는 여행인지도 모른다. 이제 지구상에는 미지의 세계란 없다. 그러나 남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길은 있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길을 위험과 고통을 감수하며 뛰어들면 그것이 도전이고 탐험이다. 나는 이제 가슴 벅찬 도전가, 탐험가의 길을 나서고 있다. 

 

비행기가 케네디 공항에서 이륙하자 뉴욕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뉴욕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자기 본래의 모습을 확실히 보려면 지금 내가 딛고 서있는 현실보다 훨씬 높은 곳으로 솟아오르든가 오지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조금은 비현실적인 느낌까지 들게 하는 초현실 위에 올라서면 선연히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하려는 여행은 지금의 시점에서는 초현실적인 것이다.

 

 LA에서 페이스북에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이 강명구라는 사람이 대륙횡단을 한다는 소식을 나누었나보다. 최성권씨는 나와 함께 뉴욕에서 달리던 사람이다. 함께 달리고 몇 번 저녁자리를 같이 했지만 여기서는 그리 친분을 쌓지 못해서 LA로 갔다는 소식도 한참 후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었다. 그렇게 잊혀진 친구였는데 강명구라는 귀에 익은 이름을 들은 그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내게 연락을 해왔다. LA 일정은 공항에서 차로 마중을 나오는 일부터 일체의 모든 일정은 자기가 다 책임지고 돌봐주겠다는 것이다. 시작부터 좋은 징조이다. 기대하지도 않은 귀인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유모차 먼저 그의 집으로 부쳤다.

 

LA에 도착하자 더운 기운이 코를 막는다. 공항에서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최고의 반가움을 표시했다. 사실 반가움이라기보다는 나로서는 고마움을 표시해야 했다. 나처럼 무뚝뚝한 사람도 상황에 따라 필요 이상의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오늘은 필요한 만큼도 제대로 감정표시를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만큼  이번 여행이 내게 의미하는 것은 크다. LA에서의 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터이고 출발에 동력을 얻을 것이다.

 

출발 전날은 LA에서 식량과 연료 그리고 여벌의 운동화도 장만하면서 모자란 보급품을 채우고 최성권씨와 삼겹살과 맥주로 만찬을 하고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6시에 헌팅턴 비치에 도착하였다. 처음에 뉴욕에서 출발할 때는 이 헌팅턴 비치를 출발지점으로 예정하고 왔는데 현지 사람들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산타모니카 비치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산타모니카 비치는 66번 국도가 끝나는 곳이다. 66번 국도는 미국 최초의 동서를 잇는 고속도로이며 서부개척 시대의 중요한 길이었다. 1946년 밥 트루프가 만든 ‘66번 국도’란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서부로 드라이브를 하신다면 내가 권하는 하이웨이를 지나가 보세요. 그것은 시카고에서 로스엔젤레스로 곧장 뚫렸어요. 약 4,000km는 충분히 되지요!”

 

2월 1일 아침이 밝았다. 마침 헌팅턴비치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어서 출발하기 전 거기에 가서 먼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한인 마라톤 클럽회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나의 여행의 취지를 설명하고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고 다시 출발지점인 산타모니카에 도착했다. 헌팅턴은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하고 철도 부호 헨리 헌팅턴의 이름을 따서 지명으로 삼았다. 석유가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열대 지중해성 기후로 연중 건조하면서도 햇살이 풍요롭게 내리는 켈리포니아의 낭만적인 해변 산타모니카는 오늘 아침 구름은 잔뜩 끼고 날씨는 쌀쌀하다. 태평양의 바다냄새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옛사랑의 냄새처럼 아련하게 펴져온다. 저 바다의 끝에는 우리 조국이 70년 째 아직도 두 동강이 난 채 놓여 있다. 무슨 이유인지 전쟁의 포화가 멈춘 지 오래되었건만 평화협정조차 체결되지 않고 있다.  

 

드디어 첫 발자국을 뛰었다. 태평양의  끝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미대륙을 가로질러 대서양의 저쪽 끝까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내 몸의 근육 만에 의지하여 달려서 가는 것이다. 동쪽으로 동쪽으로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서서 끝없이 달려간다. 새로운 삶을 찾아 서부로 서부로 이동하던 그 옛날 서부개척자들처럼 그러나 나는 서부에서 동부로 59세에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러 달린다. 동부지역의 노동자들과 중부지역의 농민들이 꿈을 찾아 서부로 달리던 길 66 번 길을 거슬러 달린다. 

 

달리면서 이모작 인생의 새로운 설계를 하고, 달리면서 남북통일이 내가 가는 길보다 더 험하고 멀 지라도 남북한 모든 시민들 가슴 속에 작은 불씨로 잦아들어 있는 통일의 꿈을 되살리고 싶다. 불씨는 바람과 만나 커지고 불씨는 불씨와 서로 만나 들불처럼 번져갈 것이다. 나는 앞으로 닥칠 모진 고통과 외로움을 만나서 더욱 성숙해질 것이다.

 

길을 떠난다는 흥분이 태평양의 파도처럼 일렁인다. 가족과 친구들과 격리되어 익숙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공포스럽기까지 할 환경 속으로 뛰어든다는 슬픔도 함께 찾아왔다. 공항에서부터 LA 일정의 침식부터 모든 편의를 제공한 최성권씨, 그리고 KART 클럽 회장 피터 김, 오늘 헌팅턴 마라톤에 등록하고도 일정을 취소하고 동참해준 박상천씨. 헬렌 박, 또 시카고에서 내려오신 김평순님이 첫 출발을 같이하면서 59세에 떠나는 특별한 여행을 격려해주시며 서툴고 외롭고 힘든 첫 출발을 도와주려 같이 뛰어주었다. 최성권씨 말고는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이렇게 뜨거운 마음으로 첫 출발하는 어려운 발걸음을 도와주는데 우리 모든 한국인들의 가슴 속에 유전자처럼 가지고 있는 통일의 작은 불씨를 모아서 합치면 통일의 열망은 금방 다시 훨훨 타오를 것이다.

 

 캘리포니아란 이름은 스페인의 탐험가들의 소설에 등장하는 낙원 또는 환상의 섬이라는 의미이다. 캘리포니아는 실제로 따스하고 온화한 날씨와 풍부한 자원과 자연경관이 낙원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다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골든 스테이트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낙원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에게는 희망이 없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낙원에 살면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장미와 같은 것이라고 했던가. 낙원에서 추방되어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처참하게 지내는 그들은 이제 엄청나게 많은 희망이 있겠구나 생각했다. 지금 나도 큰 희망을 가슴에 품고 달린다. 언제나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눈앞에 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저 산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한 무리의 새들이 마치 태양의 둥지에서 자고 일어나 솟아오르듯이 태양의 방향에서 날아온다. 날개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새들은 내 머리 위를 날아갔지만 그 잔상은 눈으로 들어와 가슴에 깃들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잔상을 얼마나 오래 품고 살 수 있을까? 해가 떠오르기 시작할 때 아주 잠시 해를 마주 볼 수 가 있다. 매일 아침 해를 마주 보면서 뛰며 해와 정분을 나눈다. 눈을 열면 마음이 열린다. 열린 마음으로 불덩이 같은 태양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태양도 보통 태양이 아니라 이글거리는 사막의 태양이다. 태양은 늘 바라보아도 아름답고 신비하고 가슴이 설렌다. 나는 지금 새처럼 자유로이 이 대지 위를 달리고 있다. 

 

마라톤에는 리듬이 있다. 뛰는 발걸음에 리듬이 있고 숨쉬기에 일정한 리듬이 있다. 심장박동 소리에 환희의 리듬이 있다. 달리면서 상쾌해진 선율을 길 위에 오선지를 삼아 두 다리로 악장을 적어내며  뛰는 것도 멋진 일이다. 이제는 발길이 대지와 정분을 나눈다. 이렇게 탄력을 받으면 한동안 나의 달리기는 어떤 음악적 리듬을 타면서 춤사위에 가까워진다. 나는 사막을 달리면서 마치 구름 위를 뛰는 것 같은 가뿐함을 느낀다. 바람이 내 몸으로 들어와 공명하는 최고의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봄의 대지 위에 펼쳐지는 신명나는 춤은 대지를 즐겁게 한다. 봄 햇살을 받은 대지도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이 때 내 발길이 통통 통 두드려주면 대지도 움찔움찔하는 느낌이 온다. 태양과 나 그리고 대지가 하나가 되는 합일의 환희를 맛본다. 

 

봄 대지를 달리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저 앞에 야생마 네 마리가 무리를 이루고 길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들과 소통을 꿈꾸며 살금살금 다가가지만 내 기척 소리를 듣고 앞으로 달아난다. 어느 정도 거리가 유지되면 멈추어 선다. 그리고 또 내가 다가가면 또 달려서 앞으로 뛰어간다.  야생마들과 헤어져서 조금 더 달리고 있는데 젊은 인디언 부부가 지나가다가 차를 세우고 자기들 먹으려고 사가는 것이 분명한 햄버거 두 개와 차가운 음료수를 건네준다. 이 사막 한가운데서 햄버거를 사러 얼마나 먼 길을 다녀오는 걸까 생각하면서도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아직도 온기가 식지 않은 햄버거와 아이스박스에서 갓 나온 음료수를 받아들고 감동을 받는다. 생존의 본능이란 대단한 것이다. 나는 이제 길거리에서 음식을 받아먹는 일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다. 사막에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이렇게 가끔씩 만나는 온정의 비가 자칫 ‘빛두렁길’의 길고 험한 여정 길에 메마를 수 있는 나의 영혼을 축축하게 적셔주었다. 이 햄버거는 햄버거 이상이 되어서 내 몸 안에서 녹아져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에너지가 된다. 그리고 또 달린다.

 

 

거의 두 달을 한식을 먹지 못했다. 고통의 종류는 여러 가지의 형태로 내게 다가왔지만 그 중에서도 잘 먹지 못하는 고통도 크다. 이런 극한의 체력을 요하는 도전 중에 맘껏 영양을 채우지 못하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한식을 먹지 못하는 고통도 대단하다. 갈비와 삼겹살을 먹고 싶지만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에 하얀 밥을 비벼 먹고 싶어 미치겠다. 매일 몇 번씩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에 열무김치를 먹는 일을 상상한다. 상상은 점점 더 집요하고 치열해진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텍사스에 사는 함인철형이 김치찌개를 싸가지고 응원을 올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김치찌개를 먹기 위해 달리는 것 같다. 돼지고기가 듬성듬성 박히고 하얀 두부가 큼지막이 올라가 있는 새콤 구수한 김치찌개를 들고 올 선배와의 만남의 기대로 가득 찼다. 사람이 먼저인지 먹는 게 먼저인지 헷갈린다.

 

앞으로 내 그림자가 지평선에 닿고 뒤를 돌아보니 이제 석양의 노을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해가 질 무렵 다시 해를 마주 볼 수 있다. 지는 해를 마주 보니 몸도 마음도 붉게 물들어 가는 것 같다. 태양이 내 마음으로 가득 들어와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로 가득 채웠다. 내일 다시 떠오를 태양이다.

 

(마라톤은 간절한 염원이 담긴 제사의 춤사위였다)

 

나의 얼굴은 밤하늘이었고 눈동자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두 개의 별처럼 초롱초롱 빛났다. 얼굴이 뜨거운 사막이나 대평원의 비바람을 견뎌온 흔적이라면 눈동자는 두려움, 온갖 어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해낸 의지의 광채였다. 내 몸에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했다. 마른 사막의 고독과 이글거리는 태양의 정렬이 함께 녹아있었다. 극도의 고통과 쾌감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었다. 고통과 쾌감은 한 쌍의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처럼 때론 손을 잡고, 부둥켜안고 한 바퀴 빙그르 돌기도 하고 때론 멀리 떨어져 서로 각자의 멋진 연기를 하곤 했었다.

 

 

델라웨어강을 건너 뉴저지의 뉴 홉으로 들어와서 언덕을 하나 넘어서면서 바라다 보이는 맨해튼 하늘 위에는 떠오르는 아침 햇살의 붉은 빛으로 가득 찼다. 맨해튼이 가까워지자 심장의 파장이 커지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진다. 먼 바다에서 어머니 강으로 돌아온 연어의 기분이었다. 뱃속에 새 생명을 잉태하고 친정으로 해산하러 가는 새색시의 설레는 발걸음이다. 결코 더 좋은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뭔가 익숙한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냄새도 뭔가 익숙하다. 그것은 연어들이 힘들고 치열하게 모천을 찾는 힘이리라. 내가 26년간 살았던 뉴욕에 나를 반겨줄 사람들의 미묘한 파장과 격렬히 반응하고 있다. 지금 이 길은 몸의 묵고 낡은 기운은 모두 하늘과 땅에 방전시키고 새롭고 활기찬 기운을 재충전해서 오는 금의환향의 길이다. 

 

우리의 조상은 분명 만주벌판을 달리던 광개토대왕이었다. 그 조상의 숨결이 시시때때로 나를 덮어버려서 숨이 막히는 상황을 탈출하고픈 열망이 생겨났다. 그 제어할 수 없는 열망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어서 나는 떠나야한다고 말했다. 이제 나는 변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에서 아시안 최초로 나홀로 대륙횡단 마라톤을 성공한 사람으로, 벌레가 노랑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변신에 성공한 것이다.

 

비를 맞으며 허드슨 강 하구에 위치하고 맨해튼과 마주 바라보이는 유니온 시티를 향해 달리는 기분은 연어가 이제 자기가 떠났던 강의 지류를 찾아서 올라가다 폭포를 만나 힘차게 뛰어 올라가는 기분이다. 떨어지는 물을 박차고 마지막 힘을 다해 올라가는 처절하고 치열함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간절함이 없고서야 어디서 나오겠는가. 내 안에 생긴 알, 새로운 생명의 씨를 세상에 뿜어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지 않고서야 말이다.

 

이제 저 멀리 아름드리 나무 숲 대신 맨해튼의 빌딩 숲이 보인다. 그렇다, 온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약육강식의 논리만이 존재하는 시멘트 숲이다. 어떤 아이들은 프롬파티를 위해서 몇 만 달러를 사용하는데 햄버거 살 돈이 없어서 배가 고픈 아이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제 뉴웍을 지나서 레드포드를 지나면 금방 한인들이 많이 사는 뉴저지의 펠리세이드팍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은 조지워싱턴 브리지가 코앞이다. 그 다리를 건너기 위해 수많은 크고 작은 다리들을 건너왔다. 

 

 

 

6월 초의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싱싱하고 푸르렀다. 나는 대지에 흐르는 기가 다른 5,200km의 길을 달려오며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졌고, 사색하고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도 충분히 가졌다. 사실 나는 육체적인 관심에 의하여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런데 달리면서 온몸의 기운이 소진될수록 정신이 맑아지는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마라톤이 가져다주는 신비한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피부의 모든 모공이 열리면서 느껴지는 자기 실존의 축복을 만끽하게 되었다. 

 

달리면서 나는 누구인가 묻고 그 길 위에서 해답을 구했다.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 무엇을 못 하였는지 해답을 구했다. 나는 길을 달리면서 용서와 치유의 힘을 얻었다.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하며 한계에 부딪쳤을 때도 그것이 진정 나의 한계가 아님을 스스로에게 각인시켰다. 내부 깊숙한 곳에 감추어져서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능력을 캐어내는 광부처럼 최선을 다했다. 대단한 일을 멋지게 해냈어도 항상 더 대단하고 멋진 일은 남아 있게 마련이다.

 

125일 동안 나는 삶의 질량을 벗어던지고 마치 우주유영을 즐기는 우주인처럼 자유를 누렸다.   한겨울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마른 육신이 나의 뜀박질을 소리가 되게 하였다. 내가 달려온 길에 뿌려진 땀이 통일의 노래를 움트게 하였고, 소리가 되어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고, 소리가 되어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위로하였다. 달리기는 가장 원시적인 몸동작이다. 그 단순한 몸짓으로 대서사시를 썼다. 그 처절한 몸짓으로 지상 최대 규모의 무대를 만들어 열연을 했다. 그 몸짓은 나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제사의 춤사위였다.

 

 

59세의 나이는 아직도 꿈을 품기에 넉넉한 시간을 가졌다. 달리면서 튼튼해진 심장은 이상의 날개를 펼치기에 알맞다. 달리면서 생겨난 은근과 끈기와 담력으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거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사라졌지만 조금만 부어도 넘치는 넉넉한 마음이 생겼다. 중년이 건강하고 활기차면 세상은 새로운 부흥을 이룩할 것이다. 이제 세상은 오십 대 육십 대에 의해서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이다. 

 

나는 이제 또 다른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나는 이제 26년간 정들어 살던 뉴욕을 떠나 조국으로 돌아가야겠다. 익숙하던 모든 것들을 떠나는 것은 내가 사막으로 뛰어들었던 것보다 어찌 보면 더 무모할 수도 있다.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더 큰 도전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국에 가면 먼저 내 조국을 종단도 해보고 해안가를 따라 한반도를 삥 달릴 것이다. 그리고 이준 열사의 한이 서린 네덜란드 헤이그로 날아가 그곳에서 이준 열사의 자주독립의 꿈을 안고 유라시아 사만리를 달려 신의주 평양을 그리고  휴전선을 넘어 서울과 부산까지 내달려 우리의 평화통일을 외칠 계획이다.   

 

 

 

유엔본부 앞 함마슐트 광장으로 달려드는 나의 발길은 먼 길을 달려와서 모래톱으로 잦아드는 파도처럼 잦아들 것이다. 나는 결국 해냈다. 광활한 미대륙을 제 몸의 근육만으로 횡단하는 일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 대단한 일을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다는 발견은 더 대단한 발견이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서 강물을 이루며 흐르듯 아주 작은, 하찮은 몸짓 하나하나가 모여서 대모험을 완성했던 일은 통쾌하다. 가장 치열하게 보낸 이 봄을 나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이 일은 대자연의 정령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도대체 가능이나 했겠는가 생각해본다. 가족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도대체 가능이나 했겠는가?  달리면서 내 안에 생긴 연어 알 같은 새 희망의 씨는 다시 수많은 다른 희망으로 부화되어 더 먼 바다로 퍼져나갈 것이다. 

 

▲(2016.12 출간) (2020.9 출간). ⒞시사타임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의 “빛두렁길” 영문판 “Lightpath”, 2021.5. 출간예정). ⒞시사타임즈

 


(78번 째 나라 미국 3번째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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