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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48)] 112. 필리핀(Philippines)-1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48)] 112. 필리핀(Philippines)-1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마닐라 근교인 타가이타이의 이중 화산 타알 호수, 2012.9 (c)시사타임즈
▲필리핀 지도와 위치 (c)시사타임즈
▲< 국기 > 백색의 정삼각형은 평등과 동포애를, 청색 띠는 평화, 붉은 띠는 애국심과 용맹을 상징. < 국장 > 국기와 같은 내용으로, 독수리와 사자는 식민 지배 국가를, 독수리는 미국, 사자는 스페인의 레옹제국을 의미함. (c)시사타임즈

 

 

< 국가 개황 >

 

필리핀은 서태평양상의 필리핀해와 남중국해 사이에 위치하며 7,107개의 크고 작은 아름다운 섬나라이다. 스페인(1571-1898), 미국(1898-1942, 1945-1946), 일본(1942-1945)의 지배를 받아 필리핀 문화에는 아직도 스페인과 미국 문화가 많이 남았으며 국민의 대다수가 영어를 구사한다. 중국과 스카보로숄과 스프라트리섬(남사군도)을 두고 영유권 분쟁 중에 있다. 6.25 때에는 7,420명의 군대를 우리나라에 파견한 우리의 맹방이다. 한국 관광객이 2012년도에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며 한국국제협력단과 수출입은행이 이사벨라주 파사댐 건설 등 여러 협력 사업을 펼치고 있다.

 

The Republic of the Philippines is situated in Southeast Asia in the western Pacific Ocean. Its location on the Pacific Ring of Fire and its tropical climate make the nation prone to earthquakes and typhoons but have also endowed it with natural resources and made it one of the richest areas of biodiversity. The arrival of Ferdinand Magellan in 1521 marked an era of Spanish interest and eventual colonization for 327 years. USA emerged as the dominant power since 1898; aside from Japanese occupation. In 1947, it gained independence.

 

1. 국명(Country) : 필리핀 (the Republic of Philippines)

2. 수도(Capital) : 마닐라 (Manila)

3. 면적(Territory) : 299,764km2

4. 인구(Population) : 1악9백만명

5. 국민소득(GNI) : US$4,200

6. 언어(Language) : 영어(English), 필리핀어(Filipino)

7. 독립일(Independence) : 1946.7.4

* 현재 독립기념일(1898년 6월12일)은 이귀날도가 필리핀 독립선언 및 정부 구성한 날

 

▲Palawan Underground River (c)시사타임즈

섬과 푸른 파도의 나라, 필리핀이여!

 

푸른 파도 밀려온다

세부, 보라카이에 민도로 민다나오 팔라완에

그리고 카라아얀섬과 스카보로숄에도

 

가만히 세어 보니 7100 하고도 일곱 섬

하나같이 절경일세

동양의 진주일세

 

신들도 놀란다 팔라완 지하강 생태의 보고

바나우에 다랭이 논 3천년 삶의 의지

보홀의 타르시에 초코렛 힐 지켜왔네

 

너의 생각 강요 말라, 마젤란아

라푸라푸 일갈 무섭다

동양의 기개로세

 

스페인 미국 일본 물렀거라

우리 어버이 터전 아닌가

호세 리잘 옥중에서 호령 한다

 

복되도다, 2012년 10월 15일

민다나오 40년 총성 완전 멈췄다

무슬림 기독인 우리는 다 같은 필리피노다

이제는 손잡고 건설하자 우리의 터전

 

신이여 사람들이여 땅이여

우리조국

진리 평등 박애로

세계로 나아가세

 

하늘에 저 태양 저 별들

영원히 비친다

페르라스 낭 실랑앙낭에

 

참조 영상

1. (아름다운 세계) : https://youtu.be/76dMor10LL0

2. (KOICA와 평화마라토너) : https://youtu.be/t0BR3hnENfw

 

Oh, Philippines, the Country of Islands and Blue Waves

 

Blue waves are continuously rushing

To Cebu, Boracay, Mindanao Mindoro n Palawan

And to Spratly Islands and Scaborough Shaol, too

 

When I am carefully counting, oh, it is 7,100 plus 7

Being all beautiful, no exception

They all deserves as the Pearls of Orient Sea

 

Even Gods amaze at Palawan Underground River, the ecological treasury

Banaue Rice Terraces, Filipino’s living will for 3000 years

Bohol Tarciers have been keeping 1776 Chocolate Hills for millions years

 

Not insist your thought, Magellan

How dreadful the LapuLapu’s voice is!

Surely is it the Orient’s high spirit

 

Spain, America, Japan, go back, please!

This our fatherland, not yours

So thunders Jose Rizal at the jail

 

How blessed, the Date of October 15, 2012

Completely n Forever stopped the forty-years’ Gunfires at Mindanao!

Muslims and Christians, we're all Filipinos, alike!

Now, let's build our land, hands in hands, together!

 

May God, Men and Lands bless the Philippines

That we may lead the world

In the spirit of truth, equality and love.

 

The sun and stars in the high sky will light forever

the Philippines,

You are “The Pearl of Orient” or “the Perlas ng Silanganan”

 

1. 필리핀 약사

 

67,000년 전의 칼라오 원인의 중족골은 이 제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유물이다. 약 24,000년 전의 팔라완 타본 원인도 발견되었다. 그들은 필리핀에 기원전 4000년 전부터 네 개의 사회 집단으로 발전했으며, 사냥-채집을 하는 종족, 전사 사회, 고원 금권정치, 그리고 해양 항구 집단으로 나눠졌다.

 

1521년에 포르투갈의 마젤란이 세계 일주 항해 도중 막탄섬에 상륙하면서 유럽세계에 알려지게 되고 이후 에스파냐의 필리핀 식민통치가 시작되었으며, 1898년까지 300년 이상 계속된 에스파냐의 통치는 필리핀을 동남아시아 유일의 로마 가톨릭교회 국가로 만들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은 파리 강화 조약에 따라 미국에게 2,000만 달러를 받고 필리핀, 괌 등의 지배권을 양도했다. 필리핀 혁명과 미국-스페인 전쟁의 결과 필리핀인의 최초의 공화국인 필리핀 제1공화국이 건립되었으나 곧바로 미국의 불인정과 함께 식민화가 시작되어 이에 저항하는 필리핀인과 미국-필리핀 전쟁이 일어났다. 초대 대통령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지휘아래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력에 많은 희생자를 낳고 굴복하여 필리핀 제 1공화국은 붕괴하였다. 미국의 식민통치때 공중보건 개선과 무료 보건소 혜택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었고 이로인해 인구도 큰폭으로 증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필리핀은 일본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일본은 1943년에 괴로 정부를 승인했고 대통령에는 호세 파키아노 라우렐이 선출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6년에 미국은 필리핀의 완전 독립을 승인, 공화제를 채택한 필리핀은 마누엘 로하스를 초대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 뒤 필리핀은 아시아권에서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하였지만, 국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정치적/경제적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필리핀은 미국에게 경제적 원조를 받는 대신, 공군/해군기지를 빌려주기로 한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이 되어 집권 초기에는 효율적 세제운영과 대외차관 유치 등으로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독재와 장기집권, 본인과 일가의 부정부패로 인해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외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1983년 베니그노 아키노 2세의 암살을 계기로 마르코스의 인기는 끝없이 추락했고, 1986년 선거부정으로 겨우 재선됐다. 이로 인해 반정부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게 되었고, 결국 마르코스는 하야했다.

 

1986년 코라손 아키노가 필리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1992년에는 아키노의 지명을 받은 피델 라모스(한국전 참전 용사)가 대통령이 되었고, 1998년에는 영화배우 출신의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대통령이 되지만, 부패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 2001년 중도사임했다.

 

에스트라다의 사임으로 디오스다도 마카파갈(Diosdado Macapagal)의 딸인 글로리아 마카파갈아로요가 대통령이 되었다. 2004년 재선에 성공하지만, 부패에 연루되어 결국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현재는 하원의원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코라손 대통령의 아들인 노이노이 베니그노 아키노가 대통령이 되었다. 로드리고 로아 두테르테(Rodrigo Roa Duterte, 1945년 3월 28일생)는 2016년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하였으며, 필리핀의 제1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초법적 살인을 통해 범죄를 일소한다고 공약했다. 또한 그는 거침없는 막말 행각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필리핀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린다.

 

2. 섬과 푸른 파도의 나라 필리핀으로

 

(KOICA에서의 정년퇴직과 전문가로 새 출발)

 

세월은 빠르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입사한 지가 어제처럼 기억이 생생한데 정년이란다. 회사를 그만 나오란다. 나이가 너무 많단다. 협력단이 태동되기 전인 그 전신에서 근무한지 만 30년이 훨씬 더 지났다. 하긴 아들 규영이가 협력단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근무한 지가 꽤 되니 그만 둘 때도 되긴 된 모양이다. 부자가 협력단 직원이 된 것은 아직까지는 우리 부자가 유일무이하다. 그래도 10-20년은 더 잘 할 수 있는데, 건강한데……. 그러나 어쩔 것인가? 정년이 너무 빨라 내 후배부터는 2년이 늘어났지만, 악법도 법이니……. 그렇게 정든 KOICA를 2011년 12월31일, 일단 정ㄴㄴ퇴직했다.

 

사실 정년퇴직은 예정된 것이니, 나는 2012년 4월1일부터 할 일을 나름대로 계획하고 있었다. 이 책 이라크 편에서 밝혔듯이 이라크 커디스탄 정부에 가서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경제 고문을 하기로 니체르반 국무총리와 2007년 4월에 약속하였었다. 그러나 나는 그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아이티에서 2011년 9월15일에 나는 결심했다.

 

▲바르자니 이라크 KRG 정부 국무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2008.2.15 (c)시사타임즈

왜냐하면 석유공사가 지난 3년간 5곳에서 시추한 아르빌 지역 원유탐사가 전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는 서울발 신문기사를 그 날 아이티에서 인터넷으로 봤기 때문이다. 석유공사의 손해만도 5억 달러가 된다고 했다. MB 정권의 최초의 자원외교 성과라고 얼마나 국민에게 홍보했던가? 나는 경악했고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분명히 니체르반 총리와 천연자원부 장관은 KOICA와 자이툰부대의 활동으로 굳어진 양국 우호 관계를 고려하여 한국에 제일 먼저 매장량 가능성이 가장 높은 5곳의 시추권을 주었다고 했는데……. 원유 시추는 10곳을 뚫어 1곳만 나와도 성공이라지만 나에게는 메가톤급 충격이었다.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우연히 원유가 안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KRG 정부가 의도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곳을 주었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나는 그래서 그 판단이 좋은 쪽으로 확인되기 전에는 이라크 아르빌 정부 경제고문으로 봉사하는 것을 유보하기로 했다.

 

(2012년 4월1일, 서울발 이라크행 비행기가 마닐라에 불시착하다)

 

▲2012.3, 필리핀 출국 직전 송아영 KF 직원, 송규영 KOICA 직원과 함께 (c)시사타임즈

그러면 정년퇴직 후에 무얼 해야 하나?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KOICA의 예산규모가 늘어감에 따라 단위 사업 규모도 커져, 대규모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협력단 직원 파견이 필요하나 정원 규제를 정부로부터 엄격히 받고 있는 협력단은 궁여지책으로 퇴직한 경험이 풍부한 KOICA 직원을 전문가로 파견하고 있었다. 왜내하면, 사업지가 수도가 아닌 열악한 오지일 경우에는 협력단 정규직원들은 파견되기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유엔 참전국인 필리핀에 협력단으로서는 최대규모인 관개댐과 수로를 건설하는 사업이 선정되었다. 그 현장에 나를 파견하겠다는 제의를 협력단이 해와 나는 쾌히 수락하였다.

 

이것도 운명 아닌가? 이렇게 해서 5년 전부터 계획된 나의 2012년 4월1일에 이라크행 항공기가 갑자기 ‘아르빌지역 원유개발 헛방’이라는 유탄을 맞고 필리핀으로 급선회하여 아키노 공항에 불시착하였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고 나의 필리핀 근무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8번째 해외근무다. 신분은 KOICA 1급 전문가이고, 직책은 필리핀 관개댐 사업단장이다.

 

▲한국전 참전 용사인 라모스대통령 (c)시사타임즈

필리핀은 6.25때, 우리나라에 7,420명의 지상군을 파견하여 도와준 나라이다. 나는 6.25 참전 용사들에게 관심이 많으므로 필리핀의 6.25 참전 노옹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더욱이 필리핀 참전용사 중에는 라모스 대통령, 아바트 국방장관, 기다야 주한대사를 배출시켰고, 고 니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은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아키노 상원의원은 마르코스 대통령 시절 민주화운동 벌이다 1983년 공항에서 현역군인에 의해 피살되었고, 부인 코라손 아키노 여사가 피플파워를 이끌며 마르코스 정권을 타도하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으로 1986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아들이 당시 베니노 아키노 대통령(미혼)이며 한국계 여성과 교제로 언론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필리핀 국제공항 NAIA는 아키노를 기려 이름이 작명되었다.

 

나의 신분은 이전 에콰도르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캐나다, 피지, 우즈베키스탄, 이라크, 에티오피아, 아이티에서 근무하던 시절과는 다르게 협력단 소장이 아니고 협력단과 2년 근무계약을 한 전문가였다. 여권도 외교관 여권을 반납하고 일반 여권을 발급 받았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똑같이 협력단 일을 하고 협력단으로부터 급여를 받으니 무슨 상관이랴? 전과 똑같은 자세로 일해야지. 아니 마지막 직책이니 더 열심히 사명감을 갖고 해야지. 한국의 우정과 사랑을 전해야지.’하고 나는 다짐했다.

 

(필리핀 첫인상과 개황)

 

2012년 4월2일 밤 11시 30분, 아키노 공항에 도착하니 입국 수속 대에 길게 늘어선 승객이 다 한국 사람이다. 필리핀을 찾는 최대 외국인이 한국인이란다. 대부분 관광객이다. 국력에 비해 관광으로 외화 유출이 심각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어느 누가 돈을 헛되이 쓰려고 필리핀 관광에 나서겠는가? 다 그만한 사유와 여유가 있기 때문에 오지 않겠는가? 나는 마닐라 공항에서 다시금 한국의 위대함을 실감했다. 입국장에 나서니 밤 11시가 넘었는데도 황재상 부소장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퇴직한 선배를 위해서 휴일 자정까지 수고해 주는 후배가 고맙다. 다음 날 협력단 필리핀사무소에서 김진오 소장과 반가운 재회를 하기 무섭게 파사댐 건축 대책회의를 설계사인 도화(주), 시공사인 한라개발(주), PMC인 농업공사와의 연석회의를 연이틀 가졌다.

 

▲Intramuros의 독립 영웅 Jose Rizal 흉상 (c)시사타임즈

그 다음날 마닐라 역사를 알 수 있는 인트라므로스를 갔다. 필리핀은 30만 평방km로 한반도의 1.3배로, 7,10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푸른 파도를 자랑하는 관광의 나라이다. 이 나라도 중국과 영토분쟁 중으로 내가 도착한 때에도 모래톱 스카보러 숄(중국명: 황암도)을 두고 필리핀 함정과 중국 함정이 2주일째 대치중이었다.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또한 우리가 남사군도라 부르는 스프라트리섬은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만, 브루나이가 필리핀과 더불어 서로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두 곳 모두 지리적으로 필리핀에 가장 가깝지만 중국이 저렇게 함정까지 동원하며 으르렁 거리고 있으니 사태가 심각하다. 필리핀 정부는 이에 맞서 미군과 방어 합동훈련을 하겠다는 뉴스가 신문의 헤드라인이었다.

 

▲1521년 마젤란을 물리친 라푸라푸 추장 앞에서, 막탄섬, 2012.7 (c)시사타임즈

인구는 1억 명으로, 세계 12위에 해당되는 인구 대국이다. 스페인 식민 통치를 327년 받아 83%가 가톨릭이어서 낙태가 없기 때문이란다. 1인당 국민 소득은 2,300불이어서 그런지, 전에 내가 거주하던 이라크, 에티오피아, 아이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옷차림과 시내가 깨끗하고 거지가 없다. 인트라므로스는 초기 스페인들이 1570년대에 건설한 요새였다. 마젤란이 필리핀 세부섬에 1521년, 4월에 착륙한 이후 1571년부터 1898년까지 스페인 지배를 받았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은 1898년 6월12일, 2,000만 불을 미국으로부터 받고 필리핀 관할권을 미국에 넘겼다. 필리핀을 식민지배 하던 미국은 일본군에 밀려 1942년에 필리핀에서 물러나고 1945년에 다시 탈환하여 통치하다 1946년 7월4일에 필리핀이 독립하였다. 필리핀에서도 맥아더 장군은 우리나라 에서처럼 유명하다. 1942년 미군이 패퇴할 때 사령관이던 맥아더 장군이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하며 철수했는데, 4년 후에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란다. 정말 명장이라면 철수를 안 하고 일본군을 처음부터 패퇴시켰어야지……. 재미있는 것은 필리핀의 독립일이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1946년 7월4일이 아니고, 스페인이 물러간 후 미국의 식민지가 된 1898년 6월12일이란다. 필리핀 사람들은 미국의 통치를 식민통치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페인군과 일본군을 물리쳐준 해방군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미국의 통치가 일제의 통치보다 유화적이었다고는 하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필리핀은 지금도 대표적인 친미 국가이며 친한 국가이다. 현재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반미 친중으로 돌아섰지만, 중국과 영토분쟁이 일어나자 다시 친미국가로 선회했다.

 

▲최초 세계 일주자 마젤란이 1521.4월 전사한 마젤란 기념비 앞에서, 막탄섬, 2012.7 (c)시사타임즈

필리핀 파라완섬의 지하강은 우리의 제주도와 함께 세계 7대 경관에 선정되었으며 신비롭고 아름다움은 물론 생태의 보고이다. 마닐라 근교인 타가이타이의 이중 화산인 타알호수와 루손섬 북부 중앙에 자리한 바나웨 다랭이논은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페루의 마추피추에 비교된다. 보홀섬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담배갑 원숭이(타르시에)와 초콜릿힐은 필리핀의 자랑거리다. 이외에도 마욘산, 팍상한 폭포, 보라카이와 세부의 하얀 모래, 푸른 파도 등 자연경관이 뛰어난 관광 국가이다. 우리 교민이 12만 명을 넘어섰고 한국인 관광객이 2011년도에 93만 명을 넘어섰고 2012년도에는 연 100만 명에 이른단다.

 

필리핀에 도착 후 부활절 연휴 때 민다나오에서 한국의 차관으로 공항을 건설하고 있는 최규철 감리단장을 만났다. 최규철 단장은 공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서울대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공군에서 시설감을 끝으로 예편한 후 유신(주)에 부사장으로 영입된 후 그의 공항 건설 경험이 참작되어 필리핀으로 1년 전에 파견된 나의 막역지우이다. 민다나오 공항은 한국 차관 1억불을 투자한 공사로 막바지 공사 중이었다.

 

▲필리핀 보홀섬의 초코렛 힐, 최규철 감리단장, 2012.4 (c)시사타임즈

우리는 공항 건설을 둘러 본 후 보홀섬의 타르시에와 초콜릿 힐을 구경했다. 타르시에는 주먹만 한 원숭이로 구상에서 가장 작은 원숭이다. 눈은 동그랗고 커서 몸의 1/4일을 차지했다. 환경에 민감하여 보홀섬 그 한 곳에만 서식하며 다른 곳에 가면 죽는단다. 그곳에도 몇 백 마리에 불과하여 필리핀 정부는 그 보호에 정성을 쏟고 있다. 초콜릿 힐스는 2-3백 미터 높이의 봉우리가 1776개 있으며 건기에 풀이 말랐을 때 석양빛을 받으면 모습과 색깔이 꼭 초콜릿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계 8대 경관이라고 필리핀 사람들이 자랑하며 많은 관광객아 찾아오는 곳이다.

▲주먹만한 크기에 눈만 유난히 타르시에 원숭이 (c)시사타임즈

 

(사업현장 이사벨라로!)

 

나의 근무지는 사무소장으로 근무하던 예전과 달리 수도 마닐라가 아니고 사업현장인 Isabela주였다. 마닐라에서 북북동 방향으로 400km 떨어진 벼와 옥수수를 주로 재배하는 필리핀의 곡창지대다. 마닐라에서 자동차로 11시간 거리이며, 비행기는 주 3회 운행된다. 필리핀 80개 주에서 두 번째로 크며 우리나라의 경기도만 하다. 이사벨라주는 주위 지형이 독특하여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해안은 승용차로 6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야만 당도한다. 왜냐하면 높은 산맥이 U자형으로 둘러싸인 밑 부분에 이사벨라주가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오른 쪽 산맥만 넘으면 태평양이나 길이 전혀 없기 때문에 비행기로 가야만 한단다. 그래서 나는 이사벨라주를 ‘필리핀의 몽고’라 부른다. 주도는 일라간이고 제1도시는 카우아얀이다. 협력단은 필리핀 농업부, 관개청, 이사벨라 주정부와 협조하여 Pasa에 관개댐과 수로를 건설하고 있다. 관개청 주사무소는 카우아얀에 있어 나의 사무실이 그곳에 준비되어 있다. 이사벨라라는 주 명칭은 1858년 주가 생길 때의 스페인 여왕 이름이란다. 아무튼 아름다운 이름이다. 필리핀이라는 국명도 1571년 스페인이 필리핀을 점령할 때 스페인 왕 이름 Felipe에서 유래된 이름이니 스페인과의 관계가 긴밀함을 알 수 있다. 이 나라 토속어인 타가로그어는 스페인어가 많이 혼합되어 있다.

 

카우아얀과 일라간은 40km이다. 사업현장은 일라간에서 20km인 산골 마을 Pasa에 있다. 조용하고 공기 맑고 아름다고 한가로운 산골 농촌이다. 나는 숙소를 JAPI 호텔로 정했다.

 

▲한-필 우호사업인 이사벨라주 PASA댐 사업 현장 (c)시사타임즈
▲이사벨라주 농민지도자대회에서 새마을 강연, 2012.7 (c)시사타임즈

 

(필리핀 2번째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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