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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49)] 112. 필리핀(Philippines)-2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49)] 112. 필리핀(Philippines)-2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양형란 선생이 선물한 한국발전사를 보고 기뻐하는 이사벨라 주지사 Dy III, 2012.7) . ⒞시사타임즈


산과 바다 평야가 어우러진 땅, 이사벨라여~~~
 

 

팔라난 앞 바다 솟은 태양

옥수수 벼 살찌우고

마가따산에 넘어간다                        

 

시푸 아부안 마가따강, 카가얀강 이루고

유유히 태평양에 흐른다

시에라마드레 푸른산

억만년 짙푸르다

 

해 뜨면 괭이 들고

달 뜨면 너와 나 오손도손

평화 속에 사랑이 익어 가는 곳

 

높구나 일라간 파사 코아카 관개댐,

우리의 친구 한국이여 고맙소

▲ (이사벨라 케존 평야). ⒞시사타임즈

필리핀의 여왕주인가? 이사벨라여

필리핀의 곡창 넘어

세계의 곡창이다

 

디비라칸, 디나피게 어부들이여

뚜마위니, 알리샤 농부들이여

로하스 케존 산골 주민들이여

 

오늘은 5월 1일

이름도 아름다워 이사벨라 날일세

풍요와 자유의 기치아래

1856년 우리가 태어났네

일라간, 산타아고, 카우아얀, 34개 군과 1,055 바랑가이여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이사벨라 백오십만 주민들아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이자

걱정 불안 증오 떨치자

희망과 사랑의 춤판 벌여 보자

 

근면 자조 협동이 우리의 갈 길이다.

대대로 살아 나갈

아름답고 풍요로운 이사벨라여!

 

Land of Ocean, Hills and Plain, Isabela

 

The sun rising over the Palanan Front Sea

Getting corn and rice fat

Sets down Mt Magata

 

River Siffu, Abuan and Magat join River Cagayan

Flowing abundantly and slowly to the great sea

Mts Sierra Madre, being always green,

Remains there for a billion years

 

Hoeing up the soil at the sun rising

The place where you and I chat friendly at the moon rising

And grow to love in peace

 

How high, Pasa KOICA Irrigation Dam

Thank you, Korea, our best friend! 

▲ (이사벨라 Divilacan 해변). ⒞시사타임즈

 

The queen Province of the Philippines, Isabela, 

You, rise to be a granary of the world

Jumping from a granary of the north and the Philippines

 

Fishermen of Divilacan and Dinapigue

Farmers of Tumauini and Alicia

Mountain villagers of Roxas and Quezon

 

It is May 1, today, Isabela Day

How beautiful, the name ‘Isabela’

It was born on May 1, 1856

Under the banner of Prosperity and Freedom

Ilagan, Santiago, Cauayan, 34 Municipalities and 1055 Barangays

How proud we are!

 

1,500.000 Isabelanos,

Let’s gather at one spot, all together

Throw away worries, anxiety and hatred

Let’s make a stage of dances of hope and love

 

We’re heading for tomorrow with diligence, self-reliance, cooperation

Beautiful and abundant Isabela

Where Isabelanos live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forever!

 

2. 나의 업무

 

나의 업무는 파사 관개댐과 그 수로를 잘 건설하도록 필리핀 측의 협조를 얻어내고 우리 한국 측 설계사, 시공사, PMC가 유기적인 협조 하에 협력단으로부터 부여 받은 업무를 잘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지도하는 일이다. 이 사업의 한국의 무상원조 규모는 2천 2백만 불이고 필리핀 측도 부지 제공, 전기, 수도 등 인프라 제공, 진입도로 및 교량 건설 등을 한다. 댐은 높이 45m 길이 400m 상단 넓이 30m 규모이며 수로는 23km를 계획하고 있다. 부대사업으로 조림지 건설, 도로 포장 등이 있다. 사업기간은 4년이다.

 

▲ (건설할 파사 댐 현장, 황인철 PM과 2012.4). ⒞시사타임즈


초기 설계사가 강수량 등 기본 정보를 사업 현장에서 먼 곳의 데이터를 적용했기 때문에 실용성과 경제성이 맞지 않았다. 이를 찾아내 정정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었다. 또한, 우기가 겹쳐 진입도로 건설에 차질이 생겨 임시 도로를 만드는 등, 초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본 사업이 필리핀의 한국 참전에 대한 보은 성격의 사업이고 필리핀에 제공하는 최초의 대규모 사업임을 한필 양국 모든 사업 주체들이 인식하고 성공적인 사업 수행을 위하여 최선을 다 했다.

 

사업이 완성되면 주변 1,030hr의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고 수시로 발생하는 홍수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여, 지역 농업 발전에 기여하고 주민들의 소득 향상에도 기여할 것이다. 물론 한-필 우정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3. 내가 만난 사람들

 

(Faustino Bojie Dy III 주지사)

  

▲(이사벨리 주지사 Faustino Bojie Dy III와 2012.9). ⒞시사타임즈


Dy주지사는 1961년 8월31일생으로 동장(2년), 카우아얀 시장 3선(9년), 국회
의원 3선(9년)을 거치고 내가 2012년 4월, 필리핀에 부임했을 때 이사벨라 주지사를 2년째 수행하고 있었고 나의 업무 파트너이다. 부친이 시장, 국회의원, 주지사(18년)를 지냈고, 형도 카우아얀 시장(9년), 주지사(9년)를 거치고 지금은 다시 카우아얀 시장이다. 그야말로, 이사벨라주의 최대 명문가이며 그만큼 이사벨라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도 대단하다. 그는 산토마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산토마스 대학은 동양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유서 깊은 대학이다. 1611년에 설립되었으니 가히 세계적이다. 

 

나는 그와 첫 면담에서 인사를 나눈 후 우리 사업지에 대한 전기 공급을 촉구했다. 전기 인프라는 주정부의 소관 사항이다. 사실 사업현장은 산골이어서 전기를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주도로에서 10km를 전신주를 설치해야하기 때문에 예산이 상당히 소요되는 작업이다. 나의 요청을 들은 디 주지사는 필리핀 전력공사에 전화를 걸어 20분쯤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더니 나에게 3주 만에 전기공사를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전기 공사에 박차를 가하여 5주 만에 현장에 전기가 공급되었다. 우리는 3개월이 지나도 안 될 것을 우려했는데……. 주지사의 협조는 위력이 있었다.

 

 

디 주지사는 이사벨라 창립 154주년 행사에 나와 한국 측 인사들을 초대하고, 나에게는 축사 제의도 했다. 거기에는 말레이시아 왕자 꾼푸도, 주지사도 초청 되었다. 나는 전통적인 한필 우호관계를 말하고 지역 농민들을 위한 대한민국 파사 관개댐 및 수로 건설 사업을 설명했다.

 

▲(뚜마우니 농민지도자대회에서 축사, 2012.7). ⒞시사타임즈

 


또한, 디 주지사는 2012년 7월18일, 뚜마위니 농민대회에 나를 초대하여 농민들을 격려해 주기를 부탁했다. 나는 참가한 3,000여명의 농촌 지도자들에게 근면 자조 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하는 새마을운동을 소개하고 이러한 농촌개발 운동이 이곳 이사벨라에서 시작되어 필리핀 농민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필리핀 전 산업의 발전의 첨병이 되라고 격려하여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디 주지사는 무척 고마워했다. 이 행사에는 안양에서 온 박민서 부부도 초대되어 필리핀 농민들의 뜨거운 열정을 보고 놀라워 했다. 
 

 

2012년 8월 31일인 디 주지사의 51회 생일에 초대를 받았다. 필리핀은 생일을 주요하게 생각하며 각 기관에서는 기관장의 생일에 전 직원이 모여 하루 종일 축제를 벌인다. 개인 예산인지 기관 예산인지는 확인 못했으나 전 직원이 하나가 되어 축제를 벌이는 모습은 보기가 좋았다. 나에게 축사를 부탁하여 나는 준비한 감사장을 전달하고 나의 필리핀 시를 낭송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나의 시는 필리핀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사벨라주는 디 주지사의 왕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디 주지사는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3선에 성공하여 이사벨라 발전에 선봉이 될 것으로 나는 믿는다. 그는 사심 없는 지도자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31세부터 시작된 그의 정치 생활에서 연속 7번의 선거에 당선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도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좋아하는 디 주지사님, 부디 이사벨라 농민들을 한국의 농민처럼 변화되게 하세요. 한국의 그 정신을 잊지 마세요.”

 

(Galvez, Fabros, Campos)

 

▲(Galvez 청장, Fabros 국장, Campos과장, 2012.5). ⒞시사타임즈


Vincente Galvez(1950년생)은 St. Mary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NIA에 입사하여 39년째 근속하고 있으며 Cagayan 지역 관개청장만 17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Cagayan지역은 이사벨라 주를 포함 5개주를 관장하는 곳이다. 그는 유머가 풍부하여 직원들로부터 인기가 있었다. 나는 그와 함께 우리 Pasa 관개댐 사업은 물론, 나무심기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Ramon Fabros(1952년생)은 Fiati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토목기사로 NIA 근속 37년, 이사벨라 국장은 3년째 근무 중이었다. 일처리가 매사 빈틈이 없다. 우리 사업의 실무 책임자였다.

 

Alejandre Campos(1957년생)는 T.I.P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토목기사로 건축회사를 다니다 1994년에 NIA에 입사한 이후 줄곧 Isabella 주사무소에서 근무한 실무 베테랑이다.

 

필리핀은 일반 공무원의 정년은 만 65세였다. 내가 58세에 정년퇴직했다니까 그럼 그 후는 뭘 하느냐고 의아해 했다.

 

(황인철 PMC)

 

 

▲(황인철 전문가와 Campos, 2012.10). ⒞시사타임즈


1967년 9월 28일 생으로 당시 한국농어촌공사 차장이다. 서울대에서 농토목을 전공한 토목기사로 우리나라 관개댐의 초일류 기술사다. 2011년 4월, 협력단의 동아시아 기후변화대응 사업의 일환인 필리핀 물 사업 사전조사에 초빙되어 본사업의 PMC를 맡고 있다. 그는 나보다 한 달 앞서 사업현장에 파견되었다. 나는 이곳 사업단장으로 사업수행에 관한 전문적 분야는 그의 의견을 듣고 필리핀 관개청과 협의하여 결정하고 수행했다. 그는 조용하고 성실하며 업무추진은 치밀하다. 나는 그를 전폭적으로 신임했다. 2012년 12월 1일부터 3개월 동안, 농어촌공사에 최영준 차장과 손찬구 과장이 이사벨라에 출장 와서 황인철 차장, Visaya 및 Salette 필리핀기사와 함께 수로설계를 마쳤다. 그들은 김치가 없으면 식사를 할 수가 없어서 바기오에 살고 있는 황인철 차장의 부인이 김치를 담아 보내주곤 했다.

 

황인철 차장은 대학을 마치고 농촌공사에 합격하고 몇 년 근무할 때까지는 단 한 번도 부모의 뜻을 거르지 않았단다. 그랬을 것이다. 그런 그가 부모에게 대형 사고를 쳤다. 부모의 마음에 들지 않는 처녀와 결혼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상대는 직장 동료였다. 직장 상사나 동료들도 웬만하면 그만 두라고 했단다. 처녀 집안에서도 웬만하면 그만두라고 권했단다. 처녀가 총각보다 4년 연상이므로……. 지금이야 연상 결혼이 많아졌지만 1990년도에는 뉴스 감이었다. 하기야 1-2살도 아니고 4살이라면 지금도 흔치 않은 일이다. 부모로서는 심하게 반대할 수밖에……. 부모의 갖은 반대와 부자 절연 등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일방적으로 결혼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부모에게 통보했다. 부모는 참석치 않겠다고 했단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부모는 결혼식장에 결국 나오셨다.

 

나는 그에게, 무엇이 그리 좋아 누나뻘인 사람과 결혼했느냐고 물으니 매사 뜻이 같다는 것이다. 이제 결혼 16년 차인데 한 번도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다투지 않았다고 한다. 첫애가 딸이고 둘째가 아들인데 그 아들을 안고는 결혼에 반대하던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고 행복해 하셨단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이듬해에 돌아가셔서 아들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단다.

 

그는 협력단 사업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몽골에도 가족과 같이 부임했으며 이곳 필리핀에도 가족을 동반해 왔지만 이곳 이사벨라에는 좋은 학교가 없어 교육도시인 바기오에 가족은 체류하며 딸과 아들은 그 곳에서 중 고교에 다니고 있다. 이사벨라와 바기오는 300km에 불과하나 자동차로 12시간 거리이다. 그는 가족을 만나러 2-3주일에 한 번씩 편도 12시간인 야간 버스에 몸을 싣는다. 가족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12시간을 밤새 왔으면서도 사무실에는 지각하는 법이 없는 성실한 사람이다.

 

(최재영 과장)

 

 

▲(Galvez 관개청장과 최재영 과장). ⒞시사타임즈

 

1973년생으로 통영 출신이며 동아대학교 전자공학과와 부경대학교 대학원 수산양식과를 졸업했다. 1994년 대학교 2학년 때 대학 1년 후배를 만나 서로 첫눈에 반하여 5년 동안의 열애 끝에 1999년 결혼한 첫사랑의 행운 커플이다. 내가 2012년 4월 필리핀에 도착 했을 때 그는 협력단의 파사 관개댐 건설의 시행사인 한라산업개발(주)의 과장으로 현장에 근무하고 있었다. 성격이 활달하고 매우 부지런하다. 영어와 타갈로그에 능하여 시행사의 필리핀 창구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서 전자 공학을 전공했으나 부친의 가업인 거제 가두리 양식장을 물려받기 위하여 석사학위를 수산업양식 분야에서 연구하고 받았단다. 그런데, 2002년도에 중국의 활어가 우리나라 시장에 무한 개방되어 가업인 양식장은 거제도의 모든 양식장과 함께 문을 닫았단다. 당시 거제도 양식장의 돔 1kg의 생산원가가 7,000원으로 9,000-10,000원에 도매상에 넘겼으나 중국산이 3,500원에 들어와 경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공을 살리고 경험을 쌓기 위하여 협력단 수산양식 봉사단 모집에 지원하고 선발되어 2002년에 처음으로 필리핀에 파견되었다. 모범적인 봉사 활동으로 3년을 마치고 귀국하였으나 가업인 가두리 양식장은 중국에 밀려 이미 2002년도에 문을 닫은 뒤였다. 그는 2003년도에 다시 협력단 팀제 봉사단에 선발되어 다시 3년을 필리핀에서 수산양식분야에서 활동했다. 그의 성실성과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여 컴퓨터에도 능숙한 점이 평가되어 협력단 봉사단원 관리요원으로 선정되어 협력단 필리핀 사무소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 100여 명에 이르는 단원지원 업무가 바빴으나 후배 단원들이 오지에서 수고하는 것을 생각하여 정성을 다했다. 협력단에서 2년 근무 후 귀국을 준비할 무렵 협력단의 필리핀 물 사업을 수주한 한라산업개발(주)에서 그의 성실성, 영어 및 타갈로그어 구사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스카웃하였다.

 

“운명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가업을 이으려 했으나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세계화의 물결에 밀려 가업이 정리되었어요. 필리핀 생활을 2년만 하려고 했으나 12년이 되어 갑니다. 이제 제2의 고향이 되었어요. 필리핀이 6.25 때 우리나라를 도왔으니 KOICA가 이 나라를 돕는 것은 당연하지요.”

 

(Joe and Lorna Vicuna Donahue 부부)

 

미국인 Joe(1955년생)와 필리핀인 Lorna(1953년생) 부부는 전 배우자들과 각각 2남 2녀의 자녀들을 두고 손자손녀들도 각각 7명씩 두고 있으나 각기 사연이 있어 첫 배우자들과 헤어진 뒤 두 번째로 맺어진 부부이며, 4년의 펜팔로 교제한 끝에 2004년도에 결혼하여 어느 부부 못지않게 사랑하며 행복에 젖어 있는 부부이다.

 

Joe는 Lindonville 고교를 졸업하고 전기기술자로서 미국 South Carolina의 소도시 Moncks Corner에 살고 있었고 Lorna는 필리핀 Cauayan에 살고 있는 평범한 이혼녀였다. 1999년에 그들은 인터넷 yahoo에서 만나 처음으로 글을 주고받았다. 4년 동안 인터넷으로 글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껴 Joe가 2003년도에 필리핀을 처음 방문했다. 마닐라 공항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고 바로 결혼 절차를 마친 후 Lorna가 2004년도에 미국으로 건너가, 둘은 2010년까지 Moncks Corner에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Joe의 자녀들도 Lorna를 친엄마처럼 따랐단다. Joe가 2010년도에 은퇴하고 둘은 필리핀으로 돌아와 현재 Cauayan에서 정착하고 있다. 물론 Lorna의 자녀들도 Joe를 친아빠처럼 따르고 있다.

 

▲(Donahue 부부와, 2013.3). ⒞시사타임즈


Lorna는 마닐라에 있는 필리핀행정대학교를 졸업하고 공직생활과 기업을 경영했으나 2004년에 Joe와 결혼하고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다 정리했다. 지금은 자기가 1992년도에 구입한 Cauayan 시내에 있는 대지 20 hr(60,000평)에 Lorna Farm Resort를 개발하고 있다.

 

Joe의 아버지 Joe가 미국 육군 일반 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임을 알게 된 후 그와 나는 형제처럼 지냈다. 1931년생인 그의 아버지는 아쉽게도 2009년도에 작고하셨다. Joe는 아버지가 참전한 한국에 관심이 많아 2012년 3월에는 Lorna와 같이 한국에도 3박 4일 다녀왔단다. 그는 아버지가 말한 한국과 자기가 본 한국이 너무 달라 한국방문이 실감이 나질 않았단다.

 

“Joe, 시간 내서 한국에 다시 한 번 오세요. 그대의 아버지가 6.25 때 우리를 위해 싸웠으니, 내가 1달 동안 그대의 아버지가 지켜 주신 이 한국을 구경시켜 드릴게요. 그때 꼭 Lorna와 같이 와야 되는 것 알고 있지요?”

 

▲(필리핀 이사벨라주 카가얀강에서, 2012.7). ⒞시사타임즈


(필리핀 3번째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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