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52)] 113. 일본(Japan)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52)] 113. 일본(Japan)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일본의 ‘다도해’ 혹은 ‘하롱베이’라고 불리는 대마도의 아소만이 보이는 에보시다케(烏帽子岳) 전망대에서, 2015.9)>. ⒞시사타임즈
▲(일본 지도) (일본 위치). ⒞시사타임즈
▲< 국기 >태양을 상징하는 적색 원이 가운데에 위치. < 국장 >일본제국과 왕실이 사용하는 문장으로 16개의 잎을 가진 국화를 두겹으로 표현. ⒞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일본은 동아시아에 있으며 국토는 태평양에 있는 네 개의 섬인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를 중심으로 6582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고 많은 섬들이 화산활동을 통해 생성되었다. 수도인 도쿄와 이를 둘러싼 현들을 포함하는 수도권은 세계에서 가장 큰 메트로폴리스 형태로 약 4천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의 일본은 1945년 포츠담 선언에 서명한 이후 1947년에 제정·시행된 일본국 헌법에 의해 성립된 국가이다. 일본은 한국과 독도, 중국과 댜오위다오, 러시아와 쿠릴열도 4개 섬을 두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2차 대전 전범국이나 독일과는 다르게 한국전쟁으로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하여 미국이 일본의 군비 증강을 용인하고 있다.

 

Japan is a nation of 6,852 islands in East Asia. In 1853 a United States fleet pressured Japan to open to the West. The Second Sino-Japanese War of 1937 expanded into World War II, which came to an end in 1945 following the atomic bombings. Since adopting its revised constitution in 1947, Japan has maintained a monarchy with a legislature. It has officially renounced its right to declare war, but maintains a modern military with the sixth largest budget.

 

1. 국명(Country) : 일본 (Japan)

2. 수도(Capital) : 동경 (Tokyo)

3. 면적(Territory) : 377,975㎢

4. 인구(Population) : 1억2,600만명

5. 국민소득(GNI) : US$43,300불

6. 언어(Language) : 일본어 (Japanese)

7. 독립일(Independence) : 1952.4.28

 

▲(Mt Fuji). ⒞시사타임즈


스모의 땅, 일본

 

유라시아 동쪽에 

태양이 솟아오르는 곳

태평양 바람 맞으며

활처럼 휘어져 있네

 

혼슈, 한반도 크기 

1억명이 모여 사네

세 동생과 다리 터널

모두가 연결됐네

 

춥구나 홋카이도 

시마무라 눈풍에 고마코 만난다

애닯다 눈나라 사랑 

 

사계절 따뜻하다 류큐왕국 오키나와

시도록 푸른 바다 끝없는 모래사장

미군기지 변하여 프로야구 전지훈련

 

시텐노지 절, 다자이후, 왕인박사 묘

그리고 광융사 코류지

일본열도인가 백제 옛 터전인가?

 

일본은 아는가

조어도는 중국 땅

북방 2섬 일본 땅

독도는 한국땅

동해는 청해도 괜찮지

 

8월이니 스모경기 없구나

마음을 가다듬고 후지산에 오르자

떠오르는 저 해를 바라보자

대륙 침략 잘못됐다

사죄 받아주고 부디 용서해 주오

 

괜찮소 친구여

새천년 새 세상 같이 가요 미래로

 

한중일로미 오손도손

세계경제 번창하고

세계평화 만만세!!!

 

Land of Sumo, Japan

 

Off the Korean Peninsular at east Eurasia 

Where the sun rises over the sea

Facing winds from the Pacific Ocean

There lies Japan bending like a bow. 

 

Honshu, exactly same size as Korea

Where 100 million people are living

Linking with all three big younger brothers

By a bridge and two tunnels under sea

 

How cold, Hotkkaido 

It's Simamura that meets Gomako in snowstorms

How pathetic, the love in the snow land

 

Always warm at Kingdom Ryucyu, Okinawa

Deep blue sea and endless sand beaches

US Military Base formerly, Pro Baseball Winter camps now

 

Temple Sitennozi, Dazaihu and Dr Wangin Tomb

And Temple Koryuzi

We are in Japan now or in old Korea? 

 

You, Japanese, know these simple four things? 

Pinnacle Islands are Chinese

Two of the Northern four Islands are Japanese

Islet Dokdo is Korean

East Sea could be called as Blue Sea if you want

 

It's August, no game of Sumo

Let's brace ourselves up and climb Mt Fuji 

Let's look at the rising sun

We're wrong at the invasion to the continent 

Please accept our apology and forgive us

 

Ok, we accept it, let's forget the past 

Let's forward to the new world of the New Millenium, all together

 

Korea, China, Japan, Russia and USA, hand in hand for everything, together

For all human prosperity and world peace, hurrah!!!

 

 

1. 일본 약사

 

일본의 역사의 시대 구분은 고고학과 역사학 구분으로 나뉜다. 고고학에서 시대 구분은 구석기 시대(선토기 시대), 조몬 시대, 야요이 시대, 고훈 시대, 그리고 역사 시대로 일반적으로 나누는 한편, 역사학 상에서 시대 구분은 일반적으로 고대(아스카 시대 및 그 이전 ~ 헤이안 시대), 중세(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 센고쿠 시대), 근세(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에도 시대), 근현대(메이지 시대·다이쇼 시대·쇼와 시대, 헤이세이 시대)이다. ‘일본’이라는 국호는 8세기 전반에 처음 나타났다 

 

약 3만 년 전에 시작된 고대인은 당시 아시아 대륙과 붙어있었기 때문에 시베리아나 화베이 일대의 몽골 인종과의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다.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인류의 왕래가 이루어진 일본 열도는 최후 간빙기를 거치면서 약 1만 2천 년 전에 대한해협(현해탄)과 쓰가루 해협의 생성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 

 

기원전 8세기 경 이후 대륙으로부터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문화 양식이 전해지면서 각지에 ‘무라’, ‘구니’와 같은 정치 조직이 천천히 형성되어 1세기 ~ 2세기 전후에는 각 구니의 연합체로서 왜국이라는 대규모 정치 조직이 출현했다. 이 연합 정치 조직은 3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야마토 정권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663년 백제 부흥 운동에서 백제를 도왔다가 신라와 당나라에 패배하고 백제의 지배 계층이 대량 유입되어 7세기 후반 한자 문화권에 본격적으로 흡수되어 백제식 법체계, 사회 제도를 급속도로 받아들여 8세기 초 고대 율령 국가 체제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무로마치 시대에서 센고쿠 시대까지 명나라에 조공을 행하였으며 쇼군 가문인 아시카가 씨가 명나라 천자로부터 일본 국왕으로서 책봉을 받기도 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으로 죽은 이후 정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시다 미쓰나리를 누르고 에도 막부를 건설하게 되었다. 평화의 지속은 교통·상공업의 발전과 시정인(市井人)의 대두, 화폐 경제의 성립, 다수의 도시가 출현하였다. 19세기 중엽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교류 과정을 거치면서 에도 막부는 붕괴, 근대로 이행하였다. 

 

에도 막부의 붕괴 이후 메이지 유신을 맞이한 일본은 근대 국가의 건설을 빠르게 추진하였고, 난세이 제도와 류큐국으 실효적인 지배력을 확보하여 지금의 일본 영토 범위가 거의 확정되었다. 한편으로는 자유 민권 운동이 이루어져 1885년 내각 제도가 성립하고, 1889년에는 일본 제국 헌법을 제정하여 이듬해인 1890년 중의원 총선거를 실시해 제국의회를 설치함으로써 명목상의 입헌 국가가 되었다. 이와 함께 20세기 초반까지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통해 조선(대한제국), 타이완, 미나미카라후토(사할린 섬 남부)를 강제 합병하고 상하이 등 중국의 주요 도시에 조차지를 설치하는 등 주변국 침략에 뛰어들었다. 1930년대 군부의 정치적 대두와 함께 무리한 주변국 침략을 감행하면서 주변국의 저항과 미국 등 기존 열강과의 충돌을 통해 일어난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의 패배로 인해 주권을 상실한 일본은 연합군의 지배 하에서 청일 전쟁 이후에 조약으로 획득하였거나 강제 병합, 불법으로 획득한 대부분의 영토에 대한 권한을 주변국에 돌려주었다. 또, 국가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져 현재의 평화 헌법 제정이 이루어졌으며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주권을 회복하고 1972년까지 아마미 제도, 오키나와현의 영토권을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았다. 한편, 1970년대에 이룬 경제의 고도성장은 1980년대에 이르러 ‘버블 경제’라고 부를 정도로 일본 경제를 크게 번성시켰다. 그러나 과도한 주가의 증가와 부동산 매입으로 인해 1990년부터 부동산과 주식 가격의 폭락이 진행되어 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하면서 10년 이상 0%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불황 상태에 빠졌다. 그로 인하여 지지를 상실한 자유민주당은 한 때 10개월 정도 정권을 상실하기도 하였다가 진보 정당과의 연정을 거쳐 계속 55년 체제의 집권 골격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2009년 8월 30일에 치러진 제45회 중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당이 자유민주당에 압승을 거둬 전후 최초로 완전한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 2009년 9월 16일에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성립하였다. 그러나 경제난과 2011년에 발생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등으로 신임을 잃은 민주당 정권은 2012년 중의원 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에게 다시 여당 자리를 빼앗겼고, 2012년 12월 26일부터 자유민주당의 아베 신조를 중심으로 한 내각이 출범했고, 현재는 스가 내각이 이끌고 있다.

 

 

2. 대마도에서

▲(인공적으로 나뉜 대마도 남북섬을 연결하는 만관교, 2015.9). ⒞시사타임즈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2015년 9월에 우리 내외는 박민서 내외와 함께 대마도를 갔다. 남대문 시장처럼 붐비는 부산항 신국제여객 터미널 출국장을 벗어나 300여명을 태운 쾌속여객선인 오션 플라워호가 물살을 가르고 출항하였다. 배는 짙은 안개로 사방이 하얗게만 보이는 현해탄을 달려 2시간 만에  대마도 이즈하라 항에 도착하였다. 처음 가는 일본이다. 이래서 일본은 멀고도 가까운 이웃이라고 했던가? 
 

 

먼저 우리는 조선 왕조 최후의 공주인 덕혜옹주의 유적지를 찾았다. 금석성 안에 있는 비운의 덕혜옹주 결혼봉축비 옆에는 무궁화 꽃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일본인들이 심어 놓았는지 우리 동포들이 심었는지는 모르나 묘한 감정일 일었다. 이어 들린 고려문터에서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 흐르는 애증의 세월을 느끼게 했다. 고려문은 2014년 다른 곳으로 이설돼 지금은 계단의 터만 남았는데 그 터 옆에는 조선통신사비가 서 있었다. 일본인들은 오래전 에 선진문화를 전해주던 조선통신사 행렬을 성대히 맞이하기 위해 그 문을 세웠다고 한다. 특히 그 고려문은 임진-정유재란의 기간에 세워진 친선교류의 문이어서 더욱 역사의 모순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다음에 세종대왕 원년(1419년) 대마도 정벌 당시 이종무 장군이 이끈 조선군이 도착한 항구를 답사하였다. 고려 말 이후 한반도를 자주 침입하던 왜구에게 시달리던 조선은 발본색원하기 위하여 원정군을 파견하고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를 정벌했다. 원정군은 대마도에서 2주 정도 왜인과 전투를 벌인 뒤 대마도 도주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귀환했다. 이에 상왕 태종과 세종이 출전한 장수들을 불러 잔치를 열고 대마도 정벌을 치하했다.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이후 한반도에 대규모로 왜구가 들끓는 일이 사라졌고, 이를 계기로 조선은 왜인에 대해 때로는 회유하고, 때로는 응징하는 ‘당근과 채찍’ 전략으로 선린 관계를 유지하였다. 대마도주는 조선을 신하의 예로 섬기고 조공을 바치며, 대마도를 경상도 일부로 복속하기를 청했다. 조선은 대마도가 섬의 특성상 식량과 물자가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해 공식적인 무역을 허용하였다. 세종은 즉위 8년인 1426년에 동래 부산포, 웅천(熊川, 창원) 내이포(乃而浦, 제포), 울산 염포(鹽浦)의 3포를 개항했다.

 

▲(조선 통신사 기념비). ⒞시사타임즈


수선사 경내 묘역에 있는 崔益鉉선생의 순국비는 망국의 한을 품은 선생의 설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일제침략에 저항하다 체포돼 유배됐던 대마도에서 병으로 돌아가신 선생의 시신은 사흘간 이 절에 안치됐었다고 한다. 이를 인연삼아 순국한지 80년이 지난 1986년에 한일 유지들이 세웠다는 얘기가 더욱 우리를 숙연하게 했다. 
 

 

대마도는 대부분이 산인데다 바다까지 바짝 붙어있다. 그 산들은 경사가 아주 심하고 삼나무나 편백나무가 울창하다. 모든 길은 좁은데다 그 험한 산들을 넘어가거나 뚫고 갔다. 또 꼬불꼬불 해안의 바다에 바짝 붙어 차 2대가 겨우 비껴 가는 좁은 도로의 연속이었다. 산들은 곧고 높게 자란 와 전나무와 삼나무편백나무들의 녹색 물결로 출렁였다. ‘대마도의 나무만 베어 팔아도 일본이 5년 먹고 산다’는 말이 실감났다. 전나무와 편백나무로 뒤덮인 도로를 달려 만제키바시(万關橋)로 갔다. 일본제국이 섬의 서쪽 아소만에 있는 군함을 동쪽바다로 빨리 옮기기 위해 1900년 섬의 가운데를 끊어 운하를 만들고 그 위에 놓은 다리이다. 원래 하나로 이어져 있었던 대마도는 일본제국의 전략 때문에 허리가 끊어져 남북 두 섬으로 분리됐다. 지금의 다리는 세 번째로 건설한 것이다. 그 다리위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경치는 아름다웠다. 万關橋를 떠나 우리는 일본의 다도해나 하롱베이로 불리는 아소만의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에보시다케(烏帽子岳) 정상의 전망대에 올랐다. 바다에 떠있는 수십 개의 섬들이 빚어내는 풍광은 우리나라 다도해처럼 절경이었다. 

 

▲<일본의 다도해라 불리는 대마도 아소만의 섬들, 에보시다케 전망대, 2015.9)>. ⒞시사타임즈


에보시다케 정상의 절경을 뒤로 하고 우리들은 다시 한 시간가량을 달려 최북단에 있는 한국전망대로 가는 도중에 들린 어느 신사(神社) 앞의 금줄을 매단 시설물(도리이, 鳥居)이 바다 속에 서있어 이채로 왔고 땅위로 나온 해송의 거대한 뿌리는 꿈틀거리는 구렁이처럼 느껴졌다. 한국 전망대에는 한국식 팔각정도 세워져 있었는데 날씨가 아주 좋아서 부산이 보였다. 정말 한반도와 가까운거리이다. 대마도가 너무 척박하여 이종무 장군이 세종 원년에 정벌하고도 항복만 받고 그냥 돌아온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그 팔각정 앞에  朝鮮國譯官使 殉難碑가 서있고 그 아래의 오석 기단에는 순직한 역관 112명과 이들을 환영
하러 나왔던 일본관리 등 네 명의 이름이 음각돼있었다. 이들은 1703년 음력2월5일 배가 풍랑에 말려 침몰하는 바람에 순직했다. 현재의 비석은 순직자의 명단이 발견됨에 따라 1991년에 처음 세운 것을 헐고 순직300년만인 2003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대마도 최북단 한국전망대에서 부산 쪽을 배경으로, 2015.9). ⒞시사타임즈
▲(대마도 최북단 한국전망대 표시판), (대마도 최북단 한국전망대 팔각정). ⒞시사타임즈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은 대마도 최고의 식당 시마모토를 일부러 찾아가서 최고의 음식을 주문했다. 4대째 사장 호꼬씨가 마담으로 나와서 우리를 정성스럽게 써빙하였다. 증조 할머니 때부터 한국의 내노라 하는 정객을 다 맞이했다며 특히 김종필 총리는 모친에 이어 2번이나 맞이했단다. 그러면서 김종필 총리를 풍류를 아는 멋있는 남아라고 말했다.

 

▲(대마도에서 마지막 밤의 호사, 2015.9). ⒞시사타임즈


3. 일본 풍경

▲(도쿄 전경). ⒞시사타임즈
▲(후지산, 해발 3,778m). ⒞시사타임즈
▲(요코하마 전경). ⒞시사타임즈
▲(일본 대표적 정원인 Ritsurin Garden). ⒞시사타임즈
▲(쓰모 선수들). ⒞시사타임즈
▲(바닷가에 있는 신사, 2015.9)). ⒞시사타임즈

 


<114번째 나라 중화민국(대만)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 iysong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