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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62)] 120. 조선(DPR Korea)-2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62)] 120. 조선(DPR Korea)-2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4. 두만강

 

한반도 최북단에

한국 중국 러시아 사이에

 

백두산 연기봉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동으로 천오백리 흘러

동해로 간다

 

토문강은 송화강 상류

두만강과는 이름만 비슷

일제가 알고도 간도 청에 넘겼다

 

상류엔 원시림이 나무바다

뗏목이 강을 채우고

 

중류는 감입곡류

감자 귀리 아마가 크고

 

상류엔 수량 많아

충적평야 하중도 많다

 

님 실은 저 배 무정한 사공

가고 없어도

소쩍새는 여전히 밤새워 울고

 

두만강

푸른 물은 동해로 간다.

 

두만강(豆滿江) : 백두산의 동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610㎞의 강으로 한반도에서 두 번째임.

 

참조 영상 1. (아름다운 세계) : https://youtu.be/76dMor10LL0

                2. (KOICA와 평화마라토너) : https://youtu.be/t0BR3hnENfw

                3. (스리랑카) : https://m.youtube.com/watch?v=QZJmBQ2VzOA&t=4s 

 

 

▲(두만강). ⒞시사타임즈


* 백두산정계비는 1712년 조선과 청이 국경선을 정하고 백두산에 세운 비석이다.  간도 지방에 조선인과 청국인 사이의 대립이 잦자 양국은 그 경계를 확실히 하고자 1712년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웠다. 그 내용은 “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으로 하여 이 분수령에 비를 세운다)라고 새겼다. 비문 중 ‘토문’을 청은 두만강으로, 조선은 송화강의 상류인 토문강으로 해석해 1885년 고종 때 간도 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났다. 이때 우리 측 대표 이중하는 '내 머리를 자를 수 있으나 강역은 축소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두만강과 토문강 사이의 영토는 동간도 지역이므로 이를 간도 문제라고 한다. 1909년 청과 일본의 간도 협약으로 일본은 만주의 안봉선 철도 부설권을 차지하는 대가로 간도를 청에게 넘겨주었다. 이후부터 중국이 간도지방을 실효지배하고 있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이 일본에 빼앗겼기 때문에 조선은 이 협약에 개입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는 제3자인 일본이 불법적으로 행사한 외교권으로 한·중 간의 국경문제를 정한 1909년 간도협약은 승인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국제법적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백두산 정계비는 1931년 만주 사변 후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탁본만 남았다. 

 

5. 묘향산

 

낭림산맥에서 남서로 내달린

묘향산맥 한 중간에

평안도를 남서로 가르며

 

산세는 기기묘묘

계곡마다 꽃 향나무 사철나무

향기롭다 1909 아름다운 산

 

비로봉 높이 솟아

진귀봉 원만봉 향로봉 칠성봉

그리고 법왕봉과 관음봉 거느렸다

 

동으로 대동강 내고

서로는 청천강 내어

황해에서 서로 만나 하나가 된다

 

인호대 설령대 보련대 강선대 기암이 즐비하고

상원동 만폭동 주암골 계곡마다

폭포와 울창한 숲 어우러져

이곳이 선경

 

빼어나게 아름답고 웅장하다 역수역장

심미안 빼어나다 자랑마오 서산대사여

삼척동잔들 달리 말할까

 

단군굴 단군대 천주대 단군조선 시작되고

고려문화 찬란하다, 보현사 9층 석탑

안심사 석종비, 나옹선사 청산같이 살라 한다

 

동명성왕 행인국 정벌

강감찬 김취려의 거란 응징

조위총의 농민반란

휴정 유정 호국불교

그대로 지켜봤다

 

세계평화 인류공영 지구촌에 가득한데

헤어진 형제들 

언제나 볼 것인가

 

묘향산은 말없이 생각이 깊다.

 

▲(묘향산(妙香山) : 평북 향산군과 구장군, 평남 녕원군, 자강도 희천시에 걸쳐 있는 산. 서산대사가 최고의 산으로 뽑았다.). ⒞시사타임즈


6.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 아, 자명고

 

세상은 넓구나

아름답구나  

할 일도 많구나 

은은한 달빛 아래

너의 신비한 모습

 

흔들리는 낙랑의 손

번뜩이는 단도여

 

충성이냐 사랑이냐 

머리는 조국인데

아, 가슴은 님이더라

 

세상은 배신자라 손가락질---

달님만은 

애처로운 소녀 마음 아시리

 

호동은 어찌하여 죽음을 택했뇨

세계를 통일하고 

인류공영 영원히 터를 닦을 터

 

이 봄도 

진달래 지천으로 피어나

 

호동과 낙랑의 애달픈 사랑

두견이는 밤 세워 저리 우는가?

 

유람하는 호동왕자

 

고구려 세 번째 왕 대무신왕은 차비로부터 아들을 먼저 두어 이름을 호동이라 지었다. 아이는 이름대로 예쁘게 잘 자라면서 총명하고 용감하였다. 칠 년 후에 원비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해우라 하였다. 대무신왕은 큰아들 호동을 더욱 사랑하였다. 서기 32년 4월에 호동왕자가 18세가 되어 왕의 허락을 받아 일 년 동안 각국을 유람하였다. 

 

신라, 백제, 갈사국을 유람하고 옥저국을 방문하고 있을 때 마침 사냥대회가 있었다. 사냥대회에서 손님자격으로 참가한 호동왕자는 창으로 멧돼지 한 마리와 독수리 두 마리를 잡아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때 마침 옥저국을 방문하여 사냥대회를 참관하고 있던 낙랑국왕 최리가 호동을 유심히 살펴봤다. 그리고 그날 밤 자기 객관으로 호동을 초대했다. 호동의 무술은 물론 학식에도 감탄한 낙랑왕은 호동을 낙랑으로 초대했다. 낙랑 왕에게는 예쁜 공주가 있었으며 호동을 본 낙랑 왕은 딸의 배필로 호동이 잘 어울릴 것으로 생각했다. 70년 전 고구려가 건국된 이후 부여 맥저 행인국 개마국 등 이웃 부족국가들을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하여 이미 고구려는 요동을 호령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소국인 낙랑을 세 차례나 공략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낙랑은 고구려의 공격을 어떻게 미리 탐지하였는지 철저히 대비하여 연전연승의 고구려군을 물리쳤다. 낙랑왕 최리는 고구려왕자와 낙랑공주가 결혼한다면 양국 간의 평화공존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외국문물에 관심이 많은 호동은 낙랑 왕의 방문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이튿날 함께 낙랑국 수도 왕검성으로 갔다. 왕검성에 도착 후 삼 일 만에 왕은 큰 연회를 베풀고 연회자리에서 호동은 낙랑공주를 처음 만났다. 서로 눈을 마주쳤을 때 둘은 모두 얼굴이 상기되었다. 이를 눈치 챈 왕비의 배려로 둘은 왕궁 정원을 산책하였다. 마침 보름달이어서 달빛은 교교하고 두견새는 울고 있었다.

 

호동과 낙랑의 만남

 

“공주님”

“왕자님”

“처음 본 순간부터 공주님을 사모하게 되었어요.”

“소녀도요.”

“우리 둘이 결혼하여 고구려와 낙랑국이 평화롭게 지내면 좋겠어요.”

“소녀도요.”

“사랑해요.”

“소녀도요.”

“내가 내일 바로 귀국하여 부왕의 승낙을 받아 오겠어요.” 

“한 달만 더 머무르시고---”

“아니요, 내일 당장 고구려로 가서 부왕의 승낙을 받고 오겠소.”

“알겠어요. 꼭 그렇게 되도록 빌겠어요, 왕자님” 

“고마워요, 공주님.”

“왕자님으로부터 좋은 소식만 기다리겠어요.”

“공주님, 우리 고구려는 동명성왕이 개국한 이래 세계통일을 이룩하여 우리 모든 사람이 삼족오의 깃발 아래 평화롭게 살기 위해 모든 백성이 힘을 합쳐 일을 하고 있어요.”

“------?”

“부왕의 허락을 얻어 공주와 결혼하여도, 이곳과 같이 화려한 생활은 할 수 없어요. 세계통합을 위해서 항상 전쟁터를 누벼야 되어요. 모든 백성 앞에 솔선수범하여 사치를 멀리하고 동고동락해야 해요.”

“낙랑과 고구려가 싸우지 않고 의좋게 지내며, 왕자님과 같이하면 저에게는 무슨 고생도 낙이 될 거예요.”

“공주님, 고마워요. 그런데 우리 고구려는 세계통일의 꿈이 있어요.”

“왕자님, 우리 두 나라가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어요. 우리 낙랑은 조그마한 나라이지만 보물이 있어 어떠한 침략도 물리칠 수 있어요.”

“호, 그게 뭐예요?”

“외국인에게는 비밀이지만, 왕자님에게만 말씀드리겠어요. 적국이 우리나라를 침범할 기미가 있으면 스스로 울리는 북이에요. 자명고가 있지요.”

“<(독백) 아 그래서, 우리의 공격을 미리 대비하여 우리를 물리쳤구나.> 공주님,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공주를 사랑하오. 그리고 부왕의 승낙을 꼭 받아오겠소.”

“왕자님, 왕자님만 사랑하고 믿겠어요.”  

 

대무신왕과 호동왕자

 

호동왕자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졸본성으로 돌아왔다. 대무신왕은 일 년 만에 돌아온 호동이 더 건강해지고 의젓해진 것을 보고 더욱 호동을 사랑했다. 동생 해우도 일 년 동안에 많이 자라 이제 어린아이를 벗어나 소년이 되었다. 호동은 해우에게 이곳저곳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낙랑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해우는 “형이 빨리 결혼하여 형수님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였다. 호동은 이튿날 부왕에게 낙랑공주와의 결혼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부왕은 승낙하지 않았다. 고구려와 낙랑은 수차례 싸운 적대국이니 왕자가 적국의 공주와 결혼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호동은 부왕에게 계속 허락해 줄 것을 간청했다. 

 

“아바마마, 낙랑공주와 저는 백년가약을 약속하였사오니, 저의 결혼을 허락하여 주소서.”

“호동아, 너는 나를 이어 이 나라를 책임져 세계통일을 이룩할 천명을 타고 태어난 자이다. 적국의 공주를 사랑하여, 대의를 그르치면 아니 된다. 학문탐구와 무술연마에 전념토록 하여라.” 

“아바마마, 우리 고구려와 낙랑이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호동아, 너는 동명성왕 주몽 증조할아버지의 큰 뜻을 잊었느냐? 세계통일하여 평화로운 세상건설이 우리의 국시임을 잊었단 말이냐?”

“아바마마, 그렇지만---”

“호동아, 너는 여염집 아이가 아니다. 사사로움을 벗어나 제일 왕자로서의 체통과 책임을 망각하지 말라. 너는 내 뒤를 이을 자니라.”

“아바마마---”

“아니 되겠다. 왕으로서 호동에게 명한다. 삼만 대군의 대장군이 되어 일 개월 안에 낙랑국을 정복하라. 이는 군령이니라.”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번민

 

낙랑공주와의 결혼 승낙 대신 낙랑국 정벌이라는 지엄한 명령을 부왕으로부터 받은 호동왕자는 크게 번민하였다. 고구려의 백성으로서 더욱이 왕자로서 왕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이다. 특히 대장군의 책무는 국가의 존망을 책임지는 것이다. 호동왕자는 즉각 군대를 편성하고 낙랑국 정벌에 나설 비밀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낙랑국에게는 자명고가 있어 우리의 계획을 미리 탐지하고 대비할 텐데---- 자명고도 문제지만 사랑하는 공주가 있는 낙랑과 전쟁이라니--- 호동왕자는 번민하였다. 결국 그는 낙랑공주에게 비밀 편지를 보냈다. 비밀 편지를 받은 낙랑공주는 고개를 떨구고 슬피 울었다. 편지를 다시 한번 읽었다. <낙랑공주,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소. 부왕에게 우리의 결혼승낙을 요청했소. 그러나 세계통일이라는 우리 고구려의 으뜸 정책 때문에 거절당했다오. 대신 낙랑국 정복이라는 명령을 받았다오. 고구려의 왕자로서 왕명을 따를 수밖에 없소. 낙랑공주는 부왕에게 말하여 우리 고구려에 항복을 권하여 주오. 그러면 우리는 싸우지 않고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 수 있소. 낙랑왕을 고구려왕이 예를 차려 잘 대접할 것이오. 그러나 부왕이 항복을 거부하면, 그 자명고를 5월 보름날 인시까지 공주가 없애 주시오. 그러면 우리가 다시 만나 결혼하여 잘 살 수 있소. 우리 자자손손들은 세계통일 고구려국의 황제가 될 것이오. 크게 생각하여 주오. 부디 우리의 사랑이 열매 맺게 하여 주오. 낙랑왕은 나의 장인으로서 내가 예를 차려 잘 모시겠소. 하루라도 빨리 공주를 보고 싶소. 낙랑왕이 항복을 거부하거나 자명고가 울린다면 우리 고구려 대군이 낙랑국 백성들을 도륙할 것이오. 부디 피해가 없게 공주가 잘 처리해 주오. 공주를 사모하는 호동으로부터> 

 

낙랑공주는 번민, 번민, 또 번민했다. 자명고의 위력을 믿고 있는 부왕이 고구려에 항복할 리 없었다. 이미 세 차례나 물리쳤지 않은가? 또한 낙랑국이 비록 작은 국가지만 문화와 역사에 대하여 얼마나 자랑스러운 자부심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 호동왕자는 어떠한가? 지금까지 어떤 구혼자에게도 사랑이나 호감을 느끼지 않았는데 호동왕자만은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내 가슴이 이리 두근거리지 않는가? 부왕도 어마마마도 하늘이 낸 나의 배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고구려는 또 어떠한가? 이미 부여, 맥을 정복하고 세계를 통일할 강국이 아닌가? 아, 아버지를 따를 것인가? 아, 호동왕자를 따를 것인가? 오월 보름이면 이제 하루밖에 시간이 없었다. 

 

낙랑공주는 계속 번민, 번민했다. 그래, 아빠를 조국을 배신할 순 없지---. 아니, 호동왕자님을 잊을 수는 없지---. 시시각각 생각이 바뀌었다. 드디어 오월 보름날이 되었다. 아, 세계를 통일할 호동왕자님을 따라야지. 이번에 우리가 물리친다 해도 세계통일을 꿈꾸는 고구려는 다시 침범할 것이고---. 그래, 우리 두 나라가 언제까지 싸움을 계속할 수는 없지. 호동왕자님과 내가 있는데 우리 두 나라가 어떻든 합쳐 평화롭게 살아야지. 자명고만 없애면 호동왕자님이 아빠와 우리 문화를 지켜준 대잖아. 그녀는 자명고가 있는 누각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발걸음을 떼었다. 인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누각을 지키는 수비대장이 길을 막았다.

 

아, 자명고!

 

“누구냐?”

“으- 응, 저에요.”

“아니, 공주님이 웬일로---?”

“달빛이 좋아 산책 나왔어요.” 

“아, 그렇습니까?”

“누각에 한번 오르고 싶어요.”

“안 됩니다. 국가 기밀 구역입니다.”

“저 달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요. 잠깐만---”

“공주님, 그럼 바로 내려오십시오.” 

“고마워요.” 

 

낙랑공주는 누각에 올라 자명고를 쳐다봤다. 은은한 달빛에 자명고는 신비롭게 보였다. 공주는 눈을 들어 보름달을 올려다봤다. 호동왕자의 늠름한 모습이 보였다. 세계를 통일한 영웅이었다. ‘호동왕자님---’

공주는 품속의 단도를 꺼내 자명고 정 중앙을 푹하고 찔렀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때 졸본성에서 인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종소리에 맞춰 호동왕자는 전군에 진격 명령을 내렸다. 고구려군은 국경을 넘어 왕검성 성문가지 단숨에 나아갔다. 고구려군의 진격에 낙랑군의 저항은 없었다. 고구려군이 왕검성에 진입하고 왕궁을 포위했을 때에야 낙랑 왕은 고구려군의 침입 소식을 보고 받았다. 

 

“아니, 고구려군이 왕궁 밑까지 쳐들어 왔다고?”

“그렇습니다. 어서 피신하시어 뒷일을 도모하심이------”

“자명고는? 자명고가 울리지 않았는데, 적군이 침입했다고---?”

낙랑왕은 자명고 누각으로 급히 갔다. 자명고는 찢겨져있고 옆에는 공주가 쓰러져 있었다. 낙랑왕은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낙랑왕 최리

 

“공주야, 네가 어찌---?

“아바마마, 고구려와 싸우지 마시고 두 나라가 평화롭게---”

“뭐라고?”

“호동왕자님이 약속했어요. 낙랑 백성의 목숨과 문화를 지켜줄 거예요. 아바마마. 두 나라는 평화롭게 잘 살 수 있어요.”

“공주야, 나는 낙랑의 국왕으로서 너를 용서할 수 없다. 여봐라, 저 배신자를 당장 목을 베어 국법의 지엄함을 보여라.”

“대왕마마, 공주님을 용서하소서.”

“내 말 안 들리느냐? 수비대장은 어서 낙랑국의 지엄함을 보여라.”

 

머뭇거리던 수비대장이 왕명을 받들어 즉각 낙랑공주를 처형했다. 바로 그때 호동왕자와 고구려군이 낙랑왕궁마저 점령하고 누각에 올라왔다. 결사항전 하려는 낙랑수비대를 제지하고 낙랑왕이 호동왕자를 맞이했다.  

 

“낙랑왕은 칼을 거두고 천명을 따르시오.”

“먼저 우리 백성의 목숨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오.”

“고구려군 총사령관의 명예를 걸고 약속합니다. 낙랑백성의 목숨은 물론 문화와 전통을 다 지켜드리겠습니다.”

“알겠소.”

“아, 그런데, 낙랑공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금방 내가 처형했소.”

“아니, 왜? 나와 공주가 사랑하고 결혼을 약속한 걸 모르셨습니까? 더욱이 귀 왕과 왕비께서 그리하도록 주선하셨는데요?”

“왜, 모르겠소? 내가 여염집 애비면 딸을 용서하고 둘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도록 했을 것이요. 나도 그대가 하늘이 내린 공주의 배필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느낀 사람이오.”

“------???”

“그러나, 나는 이 나라의 국왕이요. 나라를 배신한 공주를 내가 용서할 수는 없었소. 그러나 공주의 배신으로 나라를 잃은 우리 백성의 목숨을 지켜주는 것이 나의 마지막 백성에 대한 도리라 생각되어 결사항전을 포기하는 것이요. 부디 약속을 지켜 낙랑 백성이 고구려 백성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갖고 살도록 하시오.”

“낙랑국왕님이시여,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 가지 요청이 있습니다.”

“------???”

“제가 낙랑공주의 시신을 거두어 고구려 태자빈의 규례에 맞게 장사지내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배신자에 대한 처리는 마땅히 귀국 법도에 따라 하시오.”

“낙랑국왕님, 저는 귀왕께 또 한 가지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는 앞으로 절대 결혼하지 않고, 낙랑공주를 그리며 평생을 살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닌 듯하오. 그대는 세계를 통일하고 대대로 고구려를 이끌 자인데 신중히 생각하여 행동하도록 바라오.” 

호동왕자는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찌른 단도를 가슴 속에 넣었다.  

 

대무신왕 32년 5월, 개국 이래 고구려의 최대 숙원인 낙랑국을 드디어 정복하였다. 낙랑을 정복한 호동왕자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고구려 모든 백성들과 옛 낙랑의 백성들조차도 호동왕자를 높이 받들었다. 드디어 모든 대신들이 호동왕자를 태자로 봉할 것을 대무신왕께 주청드렸다. 왕도 이제 18세가 된 호동왕자를 태자로 봉하여 고구려의 국본을 튼튼히 하고 싶었다. 그런데, 원비가 문제였다. 원비는 자기 소생인 원자 해우를 태자로 봉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해우는 이제 11살이며 여러 가지로 호동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다행히 원비 태생 원자 해우와 이복형인 차비 태생 호동은 형제우의가 남달리 두터웠다.  

 

위기의 호동왕자

 

태자책봉 문제를 놓고 대무신왕은 고민에 빠졌다. 원비는 어젯밤에도 재차 호동의 처신을 처단하라고 졸랐다. 며칠 전에도 그런 소리 말라고 묵살했는데도--- 전혀 그럴 리 없다고. 원비는 호동이 왕이 없을 때에는 자기에게 추파를 던진다는 것이다. 또다시 그런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했는데---. 원비는 자기 말을 안 믿고 호동만을 싸고도는 왕이 야속하다며 밥도 먹지 아니하고 누워 있다는 전갈이 왔다. 낙랑공주를 잃고 실의에 빠진 호동을 위해 대무신왕은 결혼하도록 몇 번 종용하였으나, 호동은 번번이 거절하였다. 원비는 그것이 낙랑공주를 못 잊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호동이 자신을 좋아해서 그러며, 왕이 없을 때에는 자신에게 조금만 기다리라며 불충의 말을 한다는 것이다. 왕은 믿지 않았다. 필시 해우를 태자로 봉하기 위해서 호동을 모함하는 것이리라 여겼다. 그러나 왕은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혼자 고민하다 동생 해색주를 찾아 상의했다. 해색주는 대무신왕께 원비의 말을 묵살할 수도 없으니 호동을 불러 조사를 하라고 조언을 했다. 왕은 그렇게 하는 것이 싫었지만, 원비의 말을 계속 묵살할 수 없어 동생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호동왕자에게 연락하여 해명하도록 왕명을 내렸다. 

 

호동왕자의 선택

 

왕명을 받은 호동은 번민에 빠졌다. 사실대로 말하면 원비의 잘못이 드러나 왕께 누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원비는 폐비로 귀결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동생 해우의 문제도 심각하게 논의될 것이 뻔했다. 귀양은 물론 비화되면 생명마저도--- 그렇다고 원비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면 자신이 귀양은 물론 생명마저도----  아, 왕자의 운명은 이런 것인가? 이제야 자기 딸을 처단한 낙랑왕 최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이왕 망하는 나라이니 딸의 목숨을 살려 딸이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해야지’ 하며 원망하고 있었는데------ 

 

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사실, 자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목숨까지 처형당한 낙랑공주 생각에 이 세상에 살 재미가 없었었다. 낙랑공주를 보고 싶은 마음, 미안한 마음에 백성들의 찬양소리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낙랑공주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때문에 자살을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고구려의 제일 왕자로서 또한 고구려 대장군으로서 앞으로도 세계통일국가 성취에 할 일이 많기에 시도를 할 수 없었었다. 아, 그래. 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낙랑공주를 빨리 만나라는 하늘의 명령이다. 나 한목숨 던져 원비와 해우의 목숨을 살리며 진퇴양난에 빠진 부왕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나는 낙랑공주를 빨리 만나야지. 그래, 저 세상에 빨리 가야겠다. 그는 붓을 들어 부왕께 서신을 썼다. 그리고 칼을 들어 자기 가슴을 찔렀다.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은 그 단도였다. 호동왕자의 심장에서 흘러나온 붉은 피가 그가 금방 쓴 편지를 적시고 있었다. <아바마마, 부덕한 소자를 용서하소서. 저는 저승에서 세계를 통일할 고구려를 낙랑공주와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부왕과 해우의 만수무강을 기원합니다. 부왕 만세!!! 고구려 만만세!!! 불초 호동 드림>      

 

(120번째 나라 조선 3번째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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