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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68)] 121. 대한민국(Korea)-5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68)] 121. 대한민국(Korea)-5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1. 2011년 5월 외교부 인사팀의 요지부동이 옳은 일이었나?

 

나는 국제협력단 B총재의 임기가 2011년 5월 말에 끝남에 따라 한 달 이전인 4월 중순 경에 전례에 따라 공모 공고가 나올 줄 예상하고 외교부와 협력단의 홈페이지를 설레는 마음으로 검색했다. 그러나 4월말이 다 되도록 공고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4월 말에 외교부에 국제전화를 걸어 이에 관한 문의를 하였다. 외교부는 현 B총재의 연임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공모 공고를 마루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나는 의아했다. B총재의 연임여부는 공모절차를 거쳐 다른 희망자보다 우위에 있을 때 연임 추천을 해야지 다른 희망자들의 기회를 박탈한 채 일방적으로  장관의 추천과 대통령의 임명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될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유선 질문에 대한 외교부 담당 서기관, 팀장, 인사담당 L국장의 답변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더욱이 현재의 B총재는 소위 대표적 ‘영포라인’으로 임명권자와 그의 형인 L의원과의 친분관계는 세상이 다 아는 일 아닌가? 통상적인 공모절차를 생략하고 B총재를 전례 없이 일방적으로 연임시켜 야당이나 언론에 노출되면 특혜시비에 휘말려 외교부나 협력단의 조직이 흔들림은 물론, 전임 Y장관의 딸을 사무관으로 특채하여 Y장관은 불명예 퇴진하고, 외교부 전체가 이미 혹독한 홍역을 치렀는데 인사의 투명성을 강조한 새 G장관은 경륜을 펼 새도 없이 다시 외교부가 인사문제 때문에 더 가혹한 대가를 치룰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이를 우려하여 외교부에 서면으로 협력단 총재 공모 절차를 밟도록 청원(아래 참조)하였고, 협력단 B총재에게도 공모절차를 밟도록 외교부에 스스로 청원토록 나의 개인 서한을 보냈다. 

 

<협력단 총재 공모 절차 필요성에 대한 2011. 5. 1일자 청원서>

 

외교부에 드립니다. 저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아이티 주재원 송인엽입니다. 임기만료가 5월 20일쯤 되는 국제협력단 총재 선임과 관련하여, 현재 외교부가 취하고 있는 조처에 우려되는 바가 있어, 지금이라도 외교부가 취할 수 있는 개선된 방안을 건의 드리고자 본 메일을 보내게 되었음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당연히 총재 공모 공지가 외교부 홈페이지에 실릴 것으로 생각하고 지난 3주일 전부터 홈페이지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제까지 공지되지 않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서울시간으로 4월 30일 토요일 오후 5시쯤 외교부 인사운영팀에 전화로 문의한 바, 팀장으로부터 “현 이사장의 연임여부가 인사권자로부터 결정되지 않아, 공모 공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또한, “연임으로 결정되면 공모절차가 필요 없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관하여 상식선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 사항을 말씀 드리오니, 국민 한 사람의 민원으로 받아들이시고 바쁘신 가운데서도 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1. <연임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공모공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에 대하여

 

연임여부와 관계없이(더욱이 연임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으니), 2배수 추천권을 가지고 있는 외교부는 관례에 따라 공모공지를 내는 것이 정당한 조처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코이카 총재직에 뜻을 두고, 비전을 갖고 준비를 하는 지망자들이 다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공모공지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은 외교부가 인사권자의 눈치를 살펴 추천권을 방기하고 있다는 지적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2. <연임으로 결정되면 공모절차가 필요 없이 일방적인 임명이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법제처로부터 갖고 있다>에 대하여

 

너무나 안일하고 행정 편의적이며 편협한 해석이라는 생각입니다. 첫째, 법제처의 유권 해석이 법리적으로 맞는지도 의문입니다. 인사운영팀장은 협력단법에 “총재는 1차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다.”라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공모가 필요 없다고 했는데 이것도 일방적 해석이라고 생각됩니다. 

 

공모절차를 밟아 가장 적합하다고 인사권자가 판단할 때 연임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연임시킨다는 해석은 다수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구 헌법에 “대통령은 1차에 한하여 중임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었지만, 자동적으로 중임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타 후보보다 지지를 더 받을 때 가능하지 않았습니까? 마찬가지로, ‘코이카 총재 자리도 임기가 끝나면 다른 국민에게도 기회를 주어 타 후보보다 적합하다고 판단 될 때 현 총재를 연임시킬 수 있다.’라는 해석이 더 보편적 해석이라는 것은 법학자가 아니더라도 상식인이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백번을 양보하여 공모절차가 필요 없다는 해석이 틀리지 않더라도, 공모절차(현 총재 포함)를 밟아 최 적격자를 선정, 임명하는 것이 현 시대의 공공기관 운영방식에 부합되는 것이고 국민 정서에도 맞다고 생각입니다. 그것이 코이카를 위해서도 조직 발전에 가장 적격자를 찾는 일이고, 현 총재를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현 총재가 인사권자와 동향이라서 특혜를 받았다는 지적이 크게 일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공정사회구현을 시정의 주요 방향으로 설정한 현 정부의 국정 방침에도 부합되지 않습니다.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가 인사권자와 지연이 있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고, 타인보다 능력을 더 갖춘 자가 인사권자와 동향이라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배제되는 것도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준비한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를 주고 능력을 더 갖춘 자를 적법하고 국민이 동의하는 방법으로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 조직의 발전, 그렇게 임명된 자의 정당성에 근거한 업무 추진력, 임명권자의 적법한 권한행사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길이며 높아진 국민 정서에 부합되는 길임은 자명합니다.

 

외교부가 인사권자의 눈치를 살펴 아직까지 코이카 총재 공모공지를 못 내며 추천권을 유기하는 것은 작년 전임 Y장관 자녀특채 파동 이후 현 G장관의 취임 이래 환골탈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외교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에 찬 물을 끼얹는 일입니다. 이 일이 알려지면 수장이 바뀌고 혁신하겠다는 외교부가 아직도 구태의연하다는 국민의 비난이 작년처럼 또 생길까 우려됩니다. 그 비난은 작년보다도 더 거세게 일어 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작년의 불행했던 일은 장관이 아버지로서의 순간적인 욕심과 사무관 한 자리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번 일은 국가 최고 인사권자와 그 관계자, 그리고 외교부 다수의 관련자가 관련되었고, 국가예산 연 1조원을 책임지는 막중한 코이카 총재 자리를 두고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코이카는 이제 20주년을 맞이하여 청년으로 성장했으며, 사업규모 1조원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으로, 어느 때보다 능력과 비전을 갖추고 국가관과 세계관이 투철한 총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가 2009년 11년 25일, DAC에 가입한 이래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코이카의 사업 규모와 방법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입이다.

 

현 총재가 꼭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그 자리를 준비하고 있는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고, 관례와 법, 그리고 국민 정서에 맞는 방법으로 가장 적합한 자를 코이카 총재로 선임하는 것이, 공교롭게도 인사권자와 동향으로 오해 받을 수 있는 현 총재에게도, 코이카 발전에도 그리고 인사의 공정성이 어느 때보다도 국민으로부터 요구를 받고 있는 외교부에도 옳고 득이 되는 길입니다. 또한 최고 인사권자에게도 결과적으로 누가 되지 않는 길이며, 또한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는 현 정부의 국정철학에도 부합하는 길임을 다시 한 번 유념하시어, 지금이라도 외교부에서 현명한 판단을 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복망합니다. 끝.

 

<2011년 5월 외교부의 답변>

 

상기 나의 청원서에 대한 외교부의 답변은 “관심을 갖어주어 고맙다. 외교부는 적법하게 절차를 진행할 터이니 지켜봐 달라”라는 취지의 간단한 답변이었다. 

 

결국 외교부와 B총재는 끄덕도 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연임시켰다. 나는 이를 외부에 알려 이의 부당성을 바로 잡을 생각도 했으나 내 조직인 협력단과 외교부를 고발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이 책에서 B총재의 업무 능력을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당시 세간에 떠돌던 청와대의 소위 ‘영포라인’의 인사가 헛된 루머가 아니라는 사실을 통감했고 청와대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외교부의 인사 행태에 아이티 밤하늘을 보며 한숨짓고,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2015-2016년 외교부의 인사행태>

 

그러나 외교부의 2010년도 9월에 있었던 장관 자녀의 사무관 특별채용은 비유를 하자면 바늘도둑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때는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그러나, 2011년도에 막대한 예산을 책임지고 있는 협력단 총재 적임자를 찾으려는 노력을 외교부가 전혀 하지 않고 청와대의 눈치만 보고 대통령의 직계 고향 후배를 일방적으로 추천한 것은 소도둑으로 비유하여도 모자란다. 

 

나는 그때 외교부에 그 부당성을 1차 청원서로 알렸으나, 외교부가 이를 묵과했다, 그러나 나는 이를 국회나 언론에 알리지 않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용기 부족함만이 아니고, 소신이 부족했던 것이다. 내가 2011년 5월에 목도한 외교부의 낡은 인사행태를 더 확대하지 않고 물러나, 외교부 스스로 정화되기를 바랐으나, 최순실의 국정 농단시기인 2015~2016년도에 더 악랄해지고 범위가 커진  외교부 인사행태에서 그 고질적 폐해를 뼈저리게 느끼고, 나는 마음 아팠고, 내가 2011년도에 외교부를 더 고발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내가 만약 2011년도 5월에 부당한 코이카 총재 연임문제를 더 용기와 소신을 갖고, 외교부를 넘어, 감사원, 국회, 언론 등에 제기하였다면, 2015-2016년도에 벌어진 베트남 대사, 캄보디아 대사, 그리고 코이카 총재에 대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막았을 텐데......    

 

2015년도 하반기와 2016년도 상반기에 캄보디아와 베트남 대사 및 코이카 총재에 누가 보아도 이상한 인사들이 임명되었다. 외교업무나 ODA업무에 무관한, 아니 배반적인 분야에 있던 자들이 느닷없이 임명된 것이다. 그 때 대부분의 외교부 직원들은 그들이 국정 농단의 핵심인 최순실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자세히 모르고 그저 소위 문고리 3인방이 추천하는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일 것으로만 추측하고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당시 Y외교장관만은 그들이 대통령의 측근이 아니고 최순실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최순실이 협력단 예산을 좌지우지 하려고, 자격미달인 자기 사람들을 대사와 협력단 총재로 추천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때 외교부에서 Y장관만은 최가 국정농단을 전 방위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제 그 촉수가 문광부와 교육부 그리고 이화여대를 넘어 외교부와 협력단에 뻗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최순실과 맞서면, 장관직이 날아갈 것만을 두려워하고, 협력단 예산은 어떻게 쓰일 것인지는 방기하고, 그녀의 요청대로 2명의 대사와 협력단 총재를 최의 사람으로 대통령에게 추천했고, 이때 웬일인지 국정을 방기하고 최순실에 의존했던 대통령은 그대로 임명했다. 

 

2016년 8월 이후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고, 국회에 불려나온 그들에게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막중한 자리에 임명되었냐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임명경위는 자기들도 모르나 임명되었기에 열심히 일했다는 해괴한 별명만 했다. 당시 국회가 최순실의 문광부 교육부 이화여대에 끼친 농단 조사에 시간이 쫓겨, 최순실의 외교부 인사개입을 더 이상 추궁하지 못한 것은 국회의 한계이고 과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011년도에 협력단 총재의 일방적인 선임에 대한 부당성을 내가 외교부에만 1차 청원서를 내고,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은 것을 나는 후회한다. 그리고 반성한다. 그때 그 부당성을 감사원과 국회 그리고도 안 되면 언론에라도 고발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2015-2016년도 그 어마어마한 최순실의 인사농단을 최소 외교부에서만은 저지했었으리라...... 

 

다행히 타오른 민중의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고, 최순실과 문광부, 이대 관련인사들은 어느 정도 사법처리 되었지만, 그들 보다 잘 못이 더 지대한 Y외교장관은 고발되지도 않았다. 나는 이것이 앞으로 더 큰 외교부의 잘 못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그 Y장관은 지금이라도 그 당시 베트남과 캄보디아 대사 그리고 협력단 총재를 추천하게 된 경유를 고백하고, 그것을 알고도 저지 못한 점에 대하여 국민하게 사죄를 고하는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길이 최고관직을 누린 자의 국가에 대한 마지막 속죄의 길이고, 외교부 후배들에게 자기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준엄한 본보기의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참고 언론보도>

 

‘최순실 인사개입설’ 김인식 코이카 이사장, 외교부에 사의 표명

 

임명 과정에 최순실 씨(61·구속기소)가 개입한 것으로 조사된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68)이 사의를 표명했다. 외교부는 김 이사장이 19일 의원면직서를 제출했으며 면직 관련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6일 수사 결과 발표에서 최 씨가 지난해 5월 미얀마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김 이사장을 코이카 이사장에 임명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최 씨와는 일면식도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으나 특검 조사에서 최 씨 측근과의 문자메시지 등을 토대로 추궁받자 최 씨와의 관계를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산하 기관인 KOICA 이사장엔 보통 외교부 출신 공무원들이 임명돼왔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출신인 김 이사장이 임명되자 뒷말이 무성했다. (동아, 신나리기자, 2017.4.19) 

               

2. 창립 27주년, ‘코이카’, 이제 다시 출발이다

 

 역설적이게도 요즈음은 코로나 탓인지 미세먼지가 봄인데도 기승을 부리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을 소생시키는 5월인데도 꽃이 삼천리 강토에 자랑을 뽐내는데도, 바깥출입을 못하고 있다. 전 세계인의 삶이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때문에 벌벌 떨고 있다. 학교도 심지어 교회도 문을 닫았다. 환갑 진갑 다 넘은 나이에 이런 일은 처음이다. 경제도 대공황을 방불케 하는 어려움이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선제적 대응과 투명한 공개로 국가가 잘 대응하여 세계인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고 있으나 자랑스럽기보다 어색하고 걱정이 앞선다. 우리나라만 잘 대응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범지구적 문제이다.

▲송인엽 전 한국교원대학교 초빙교수 . ⒞시사타임즈

 

코로나 때문에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찬사를 보내는 것을 보니, 코이카(KOICA)가 새삼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니 지난 4월 1일은 세계의 친구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29주년 창립일이다. 돌이켜보면 국제협력단의 창립은 대한민국 발전의 상징이며, 현대 세계사가 특기하고 자랑할 만한 쾌거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 한국전쟁, 그리고 미소가 대치하는 냉전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였고 부존자원도 빈약하였지만 우리 부모님들의 남다른 교육열로 인적자원개발에 성공하여 최빈국에서 1세대 만에 가난과 독재를 극복하고 수원국에서 개도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지원하는 원조공여국으로 탈바꿈하여 모든 개도국발전의 본보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1991넌 4월 1일 코이카 창립할 때에는 예산이 170억 원, 봉사단 파견규모 연 44명, 개도국 연수생초청도 300명에 불과하여 원조공여국이라고 내세우기가 부끄러웠지만 이제는 예산이 9,500억 원, 봉사단 파견이 2500명, 연수생 초청이 5000명을 상회하며 중견 원조공여국으로 성장하였다. 1996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였고 2010년에는 가입조건이 가장 까다로운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정식 회원국이 되어 국제사회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2011년에는 부산에서 세계개발협력총회를 개최하는 등 원조 공여국 중에서도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코이카의 성장은 우리 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국가경제가 성장하였고 우리가 그동안 국제사회로부터 받았던 원조를 갚을 때가 되었다는 우리 국민의 높은 도덕적 수준과 협력단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코이카의 성장에 순풍과 아름다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코이카는 2015년부터 소위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의 중심에 서는 불운을 겪었다. 당시 외교부 장관은 ODA업무를 가장 잘 수행할 적임자를 적법하게 선정하여 대통령에게 추천할 법적 책임과 권한이 있는데도 ODA업무와 전혀 무관한 최순실의 사람을 대통령에게 추천하였다. 그래서 소중한 국가예산이 낭비되도록 함은 물론, 협력단 임원추천위원장을 통해 동 위원회에 부당한 지시를 하여 부적격한 인사가 추천되도록 직권 남용함으로써 협력단 이사장직에 희망을 갖고 준비한 응시자의 정당한 기회를 송두리째 박탈한 폭거와 협력단 직원의 자존심을 짓밟은 만행을 저질렀다. 사필귀정이라 2016.11월부터 민심은 촛불을 밝혀 대통령을 탄핵하고 최의 사람들을 쫒아냈다.

 

그 후 이 강산에 봄이 왔고 전 정부의 적폐청산이 진행되어 협력단도 최의 사람이 2017년에 물러나, 새로운 수장을 맞고 직원들도 재창립의 자세로 업무도약에 나섰다. 그러나 이것은 임직원의 새로운 다짐만으로 끝나서는 아니 된다. 선진 공여기관으로 거듭나야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적 질적으로 발전적인 변화가 있도록 정부 관련부처의 이기주의를 떠나 범정부적인 노력도 있어야 한다. 우선 공적개발원조(ODA) 규모가 확대되어야 하고, 유무상 원조기관도 단일화 되어야 한다.

 

1961년 UN총회 결의가 GNP대비 0.7%이고, 선진국 평균 비율이 0.35%임을 감안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2015년도까지는 0.25%까지 확대하겠다고 국제사회에 2009년도에 여러 차례 약속하고 DAC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2015년 이후 우리 규모는 0.15%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우리의 경제 규모에 걸맞고 국제사회에 책임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약속한 0.25%까지는 단기에 이루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OECD 평균으로는 확대해야 된다. 또한 원조의 내용도 개도국의 어려운 형편과 세계적 추세를 반영하여 유상원조를 철폐하고 전액 무상원조로 전환해야 된다. 유무상 원조기관이 분리된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유난히 유상원조에 방점을 두어 경제동물이라는 비난을 받던 일본도 유무상원조를 일본국제협력단(JICA)으로 통합하여 새 출발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우리가 이를 우리 시정치 않으면 원조를 하면서도 과거 일본이 받던 비난을 우리가 받을 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민주체제 확립은 우리의 자랑을 넘어서 모든 개도국의 교훈과 꿈이 되고 세계의 자산이 되었다. 이를 이웃나라와 공유하여 지구촌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때 우리는 세계의 친구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모든 나라들은 우리의 평화통일 정책을 지지하게 되고 우리의 평화통일도 가까워질 것이다. 코로나 정국에서도 국제협력단 창립 29주년을 맞아 인류공영에 매진하는 코이카에 격려와 애정을 보낸다. (충남일보, 2018.4.1.)

 

 

5. 소곤소곤 전북일상

 

세계를 누비며 인류공영을 위해 살아온 송인엽교수

그의 인생과 고향에 대한 이야기

 

 

우리나라의 국제개발원조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창립멤버이자, 8개국의 소장을 역임한 송인엽(63) 교수는 빈곤을 겪고 있는 나라에서 아픔을 함께하며 봉사의 현장에 늘 앞장서온 인물입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것을 강조하는 그가 고향 전라북도의 추억을 담담히 풀어냈습니다. 

 

청춘, 그 뜨거운 울림

 

학기가 끝나가는 6월 한국교원대의 어느 한 강의실. 수염 희끗한 교수님의 털털한 입담에 강의실은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마지막 과제를 내겠어요. 과제 기간은 ‘평생’입니다. 이 시를 듣고 앞으로 ‘세계’라는 무대에서 여러분이 인류공영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거예요.” 이어 교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작시 ‘코리아, 손잡고 하나가 되어’ 와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를 낭송했습니다. 유쾌한 에너지와 함께, 젊은이들에게 울림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는,바로 송인엽 전 KOICA 소장이었습니다. 

 

KOICA는 내 운명 

 

 

▲아이티 지진재난 현장에서 콜레라 약품지원에 관한 담화문 발표. ⒞시사타임즈

“우리나라는 식민지배와 전쟁의 참상을 딛고 한 세대 만에 눈부신 성장을 해왔습니다. 국제무대에서 선진국 대열에 서서 어엿한 원조공여국이 되었지요. 우리가 받았던 원조를 베풀 때가 된 것이죠. KOICA는 그런 취지 아래 국제개발원조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외교부늬 무상원조 기관입니다.”

 

송 교수는 KOICA 창립 이후 30여 년 동안 분쟁지역과 개도국을 돌아다니며 병원, 학교 등을 짓고 피폐해진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분쟁지역, 재난지역, 지구촌 오지에서 생활하며 일하기란 쉽지만은 않았는데요. 

 

 

▲2008년 에티오피아 산골 식수개발사업 현장. ⒞시사타임즈

 

“마음 자세 문제이죠. 이게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나라와 지구촌을 위한 보람찬 일이었기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2010년 대규모 지진으로 전 국토가 황폐해진 아이티에 자원해 근무했던 그는 모기에 귀를 물려 귀 한쪽이 부어올랐습니다. 풍토병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복구활동에 매진했던 그는 치료시기를 놓쳐 지금도 귀 한쪽이 퉁퉁 부어 있는데요. 그는 귀를 만지작거리며 “이 짝귀는 오지 근무에 대한 훈장처럼 남아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송 교수는 현재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과 함께 전국의 대학과 기관에 강사로 초빙되어 청년들의 해외 봉사정신, 글로벌 마인드 함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또,  “요즘 각 대학에서 국제협력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대학에 ‘국제협력(ODA) 최고위 과정’을 개설해 분야 전문가들과 국제협력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연구하고 전파하고 싶은 소망을 피력했습니다.

 

눈에 선한 고향의 정경

송 교수는 김제 금구의 모악산이 보이는 불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모악산을 동네 뒷산처럼 오르내렸다는 그는 지금도 봄이면 진달래 만발한 모악산이 눈에 선하다며 어린 시절 추억을 하나둘 꺼냈는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와 모악산에 오른 후 금산사에 들러 내려오던 중 막아놓았던 개울둑을 발로 쳐 금을 내놓았지요. 한참 내려오다 정지된 물레방아가 있어 무심히 올랐지요. 그때 개울둑에서 새어나온 물이 흘러와 움직이기 시작한 거예요. 놀라 재빨리 뛰어 내려 큰 부상은 입지 않았어요. 그때의 시간이 멈춘 듯했던 아름다운 정경을 잊을 수가 없네요. 하하.” 그는 애독서인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읽을 때마다, 구천이와 용이 그리고 길상이의 지리산 이야기에서 주인공인 양 빠져 들고 고향의 아련한 풍경이 떠오른다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습니다. 얼마 전 모교인 전주고와 전북 고교에 그의 저서를 기증하고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던 그는 마지막으로 고향에 대한 애정 어린 메시지를 남겼는데요.“전라북도는 예부터 묵향이 은은히 피어오르고 판소리가 울려 ‘얼쑤, 얼쑤’ 신명이 절로 나는 고장입니다. 타지와 외국을 떠돌아도 기린의 높은 봉란, 한벽당의 아침안개, 선운산의 동백, 무주구천동의 33계곡, 내장산의 단풍, 변산 쌍선봉의 낙조, 군산하구둑의 가창오리 군무를 한시도 잊은 적 없습니다. 저를 낳고 성장시킨 전라북도와 전북도민 모두를 사랑합니다.” 세계를 무대로 한국인의 얼을 전파하는 영원한 ‘청년’ 송인엽. 그의 세상을 향한 가슴 뛰는 인생 제2막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이라크 초증등학교 건립 부지에서, 신장범 코이카 총재, KRG 교육부 장관, 아르빌 어린이들) . ⒞시사타임즈

 

송인엽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김제 출생. 전주고와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창립맴버로 이라크, 에티오피아, 아이티 등 8개국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정자치부 새마을 자문위원, (사)한국국제봉사기구 자문위원 겸 친선대사를 맡고 있다.저서로는 <우리의 일터는 5대양 6대주다>, <시(詩)로 노래하는 세계여행>, <시(詩)로 노래하는 우리산하>, <역사발전과 인류공영>, <페쉬메르가의 연인>, <강뉴-에티오피아 전사들의 한국전쟁 참전기> 등이 있다. 

 

(작성자 : 전북 얼쑤, 2016.07, 참조 : http://blog.naver.com/jbgokr/220754935963)

 

▲(KOICA의 영원한 후배 우채석 부장과 2011.12.30). ⒞시사타임즈

 

참조 영상 1. (아름다운 세계) : https://youtu.be/76dMor10LL0

                2. (KOICA와 평화마라토너) : https://youtu.be/t0BR3hnENfw

                3. (스리랑카) : https://m.youtube.com/watch?v=QZJmBQ2VzOA&t=4s 

 

<122번째 나라 통일고려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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