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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69)] 122. 통일고려(Unified Korea)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69)] 122. 통일고려(Unified Korea)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통일 고려의 물꼬를 튼 김정은 문재인, 평양 능라도, 2018.9.19. (c)시사타임즈
▲통일 고려 전도 (c)시사타임즈

 

 

▲< 국기 > 흰색 바탕은 백의의 한민족, 파랑색은 평화와 번영, 한반도 지도는 통일을 상징. 통이 전에도 올림픽 등 남북단일팀기로 사용. (c)시사타임즈
▲< 통일염원 > 2000.6.15, 한반도 분단 이후 남북정상(김-김)이 만난 첫 번째 회담. 6.15 공동선언 : 1.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2. 통일 방안에 공통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통일을 지향, 3.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 2007.10.4.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노-김 (c)시사타임즈 대동강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한국(韓國) 또는 조선(朝鮮), 코리아(Korea)는 동아시아에 위치하고, 현대사에서는 한반도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근대사에서 한국은 고종이 수립한 대한제국을 일컫는 말이었다. 넓은 의미로 한국은 고조선 이후 한반도에서 설립된 여러 한민족의 국가를 통칭하는 말이다. 한국의 강역은 현재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본래 한민족의 영역은 만주와 연해주의 일부를 포함하였다. 12세기 초 발해 부흥운동이 실패로 끝나면서 만주 일대의 영토를 상실하였다. 그러나 19세기 ~ 20세기 초에 많은 조선인들이 간도 등 만주,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지리적 조건으로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의 영향을 모두 받았다. 세계 2차 대전후 남북이 분단되었으나, 한만족 8천만 명이 한 마음으로 뭉칠 때 2030.10.3.일 평화통일 될 것으로 추측됨.

 

Korea is a region in East Asia; it has been divided between two distinct sovereign states: North Korea and South Korea for 1945-2030, but it will be hopefully unified on Oct 3, 2030. Korea is bordered by China to the northwest, Russia to the northeast, and neighbours Japan to the east by the Korea Strait and the East Sea. Korea emerged as a singular political entity in 676 AD, after centuries of conflict among the Three Kingdoms of Korea, which were unified as Unified Silla to the south and Balhae to the north.

 

1. 국명(Country) : 통일고려(Unified Korea)

2. 수도(Capital) : 춘천(Chuncheon)

3. 면적(Territory) : 223,155㎢

4. 인구(Population) : 8천만명

5. 국민소득(GNI) : US$25,000불

6. 언어(Language) : 한국어(Korean)

7. 건국일(Independence) : 2030.10.3

 

오, 통일고려여~~~ !!!

 

하늘 열려 단군왕검 큰 뜻을 품고

신시 박달나무 아래 눈을 감는다.

호돌아 곰순아 마늘 먹어라

쑥도 먹어라

석 달 열흘 햇빛 보지 마라라

 

그래 땅이 사람이다

사람이 하늘이다

하늘 땅 이로우면 사람이 태평하고

사람이 이로우면 천하가 태평하다.

 

달리고 뛰어라, 저 땅 끝까지

박차고 나아가라, 저 바다 끝까지

솟구쳐 올라라, 저 하늘까지

 

대륙의 동쪽 끝

백두산 정기 뻗어 태백 이루고

금강 설악 지리로 한라에 닿네

경상 울릉 성인봉 편히 쉬어요

외로이 나 홀로 섬 동쪽 지켜요

 

오늘은 하늘 열린 4354주년!

천번 만번, 그래 억 번 하도 한번을 더 가자

435400004354주년이 저기에 있다.

 

홍익인간 님의 뜻

서로 사랑 우리 뜻

너와 나 손잡고 춤 한 번 추자

 

덩실 덩실 더덩-실

더덩실 덩-실…

 

온 누리에 빛난다

오, 통일 코리아, 우리 사랑 코리아~~~!!!

 

Oh, Unified Korea ~~~

 

Sky is opened

King DanGun closes his eyes under a birch with a great ambition,

Hey, tiger and bear, eat garlics

Wormwood, too

Do not see the sun for 100 days

 

Yes, the earth is man

Man is the sky

If sky and earth are peaceful, so is man

If man is happy, all world is peaceful

 

Run and rush up to the end of the earth

Sail forward up to the end of the sea

Soar high up to the end of the sky

 

Situated at the eastern end of the continent

Mt Baekdu stretches to Mts Taebaek

Gumgang, Seolak, Jiri and Halla at last

Have a full rest, GyoungSang, WooLung and Peak SungInBong

I, Lone Islet, guard the east of the nation

 

Today is the 4354th anniversary

May my nation be glorious

Beyond 43540004354th year and forever!

 

Devotion to the welfare of mankind or HongIkInGan is thy will,

Loving all is our will

Let's dance, you and me, hand in hand, to our full satisfaction

 

DeongSil DeongSil DeoDeong-Sil

DeoDeongSil Deong-Sil

 

How splendid, Korea

My love, Korea~~!!!

 

I. 통일고려 약사

 

 

1. 선사시대 (70만년 전 ~ BC3000년

구석기(석장리 유적)와 중석기를 거쳐 신석기 시대(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 국보 제 285호)에도 한반도에 인류가 거주하고 있었다.

 

2. 역사시대

 

ㅇ 고조선 (BC2333-BC108) : 청동기 시대이며 한민족 첫 원시국가

ㅇ 부족국가 (BC4세기~BC1세기) : 철기시대이며 부여, 동예, 옥저, 마한, 진한, 변한, 가야, 탐라 우산국 등 부족국가가 지방별로 태동

ㅇ 삼국시대 (BC57~AD676) :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민족국가 성립

ㅇ 통일신라시대 (AD676~AD6) : 남쪽의 통일신라, 북쪽의 발해 성립

ㅇ 고려 (918-1392) : 불교국가, 474년 34대 존속

ㅇ 조선 (1392-1910) : 유교국가. 518년 27대 존속

1897년부터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변경

ㅇ 일제 식민시대 (1910-1945) : 국권 상실시기

ㅇ 임시정부시대 (1919-1945) :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하여, 임시정부를

상해 중경 등에서 운영

ㅇ 미쏘 군정시대 (1945-1948) : 남북이 분단됨

ㅇ 한국 조선시대 (1948-2030) : 남쪽에 대한민국, 북쪽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남북이 분단

ㅇ 통일 고려 (2030~영구) : 한민족 8천만 명이 힘을 모아 반드시 성취해 야 할 자유 평등 인권 평화 홍익인간을 구현하는 한반도의 평화통 일 국가임. (2030.10.3)

 

II. 통일고려 산하

 

1. 개마고원

 

동은 마천령산맥 운총강계곡

서는 낭림산맥

남은 함경산맥

북은 압록강

평균 높이 1,340m 개마고원아

 

백만년 전 백두산 분출하여

드넓다 용암대지 한반도 지붕

 

백산 연화산 북수백산 대암산

그리고 두운봉 차일봉 고산준령 많다만

이곳에선 그저 그저 구릉산일뿐.......

 

고구려 힘찬 기상 휘날렸건만

잃어버린 칠백년

윤덕 종서 사군육진 개척

되찾아 왔다

 

삼수갑산 품어

한번 가면 못 올 데로 여겨졌지만

 

장진강 부전강 허천강 있어

뗏목 수운 편리하여

압록강 신의주로 통하고

 

아름다운 인공호 사람들 찾고

풍부한 수력발전 산업 이끈다

 

아 개마고원아

 

한반도 허리 이어지는 날

토끼 노루 많아

스라소니 표범 호랑이 노는 땅

 

맨 먼저 너를 찾아 달려가리라!

 

2. 대동강

 

낭림산맥 고지에서 발원하여

평안지방 고루 적시고

천리를 달려

평양을 휘감는다

 

산지 구릉지 기름진 평야

풍부한 지하자원

구석기 전부터

한민족 터를 잡았다

 

열수 패수 왕성강은 옛 이름

여러 물줄기 하나 되어 흐르니

대동강 되었네

 

대대로

길손에겐 정취를

젊은이에겐 낭만을 불어주누나

 

을밀대 모란봉은 연인들 놀이터

부벽루 연광정은 시인묵객 사교터

능라도 양각도 두로섬 벽지도

그리고 봉래도는 평양시민 소풍터

 

시방

천리마운동 샛별보기에 바쁜 형제들

일년에 한두 번 가볼 수 있고

 

그나마

남쪽 오천만은 꿈에나 갔었는데

 

대동강수 서해로 말없이 흘러

드뎌 2030년 10월 초 삿날

한강수 만나서 하나가 되었다

 

이 아니 기쁘냐

밤 새워 춤을추자

노래도 부르자

 

국조 단군 할아버지께

이제 떳떳이 인사 드릴 수 있구나~~~

 

▲대동강 (c)시사타임즈

 

3. 한강 한강, 우리의 한강

 

금강 태백에서 흐르고 흘러

두물머리에서 서로 만나

부둥켜안고

섞어서 섞여서 함께 간다

 

천이백리 아리수길

서해로 간다

 

일찍이 한민족 터를 잡아서

찬란한 문화 꽃피우고

나를 차지한 자 천하를 호령한다

 

때로는 한민족 애환을 싣고

결국은 대한민국 꿈을 이룬다

북녘의 형제들아 함께 이루자

 

독도에 떠오른 해

설악 금강 백두 한라 비칠 때

서울은 바쁘다 내일을 위해

 

남산에 달 오를 때

나오라 이곳으로

부르자 사랑노래 평화의 노래

 

일천만 서울시민 손잡고 걸어보자

팔천만 배달민족 우리는 하나다

칠십억 세계시민 인류공영 외쳐보자

 

한민족 젖줄 한강 만세!

우리나라 만만세!!

지구촌 만만만세!!!

 

오늘도 한강은 서해로 흐른다.

 

▲한강 (c)시사타임즈

 

4. 한라산

 

한반도 서남남녘 넓은 바다에

의연히 떠 있는 너

한 점 흰 구름 외로이 걸쳐 있다

 

태평양 거친 바람

온몸으로 막으며

호영남 곡창을 지킨다

 

오르고 또 올라

산정에 올라

은하수를 만져보라

 

녹담만설 영실기암 탐라계곡

어리목계곡 구구곡의 선녀폭포를

찾아오는 사람들아

 

삼별초의 아픔과 4.3의 그날을 알고 있나

 

백두에서 묘향 지리 거쳐

바다 건너 예까지

 

한민족의 오랜 역사

굽이굽이 서렸다

 

백록 한 마리 마른 목축이고

먼 하늘 노인성을 아득히 바라본다

 

북녘의 제 짝을 기다린다

하나 될 그날을 기다린다

 

아 아 부르자

다 같이 부르자

목 놓아 부르자

 

한백의 노래, 우리의 노래

통일의 노래, 대한의 노래.

 

▲한라산(漢拏山) : 제주도에 있는 해발 1,950m의 휴화산으로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이라 불림. (c)시사타임즈

 

III. 통일고려의 사랑

 

<장효선과 노시철 : 아침인사가 영원한 사랑으로>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

오늘 다시 만나 보아 반가워요

 

노래가 아니다

아침인사다

 

출근길에 등굣길에

신세계 지하계단을 오르내리며

 

공부 잘해라

일 열심히 하세요

 

9년 세월에

2200번의 인사

 

그 인사가 사랑일 줄이야

 

시철은 효선을 가슴에 품고

효선은 시철을 마음에 품고

시효선철로 하나 되어

일생을 함께하니

 

영선과 종수는 하늘의 선물

랄라라 랄라라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

공부 잘해라

일 열심히 하세요

 

그 인사가 사랑일 줄이야!

영원한 사랑일 줄이야!!!

 

 

뉴욕에서 걸려온 전화

 

1993년 4월 내가 코이카 카나다사무소에서 근무할 때이다. 무역협회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 노시철로 부터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인엽아, 너 지금도 토론토에서 근무하고 있지?”

“그래. 너는?”

“나는 연수차 파리에 이어 지금은 뉴욕에 나와 있어. 휴가를 얻어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 갈 터이니 만나서 같이 가자.”

“아, 좋지. 언제?

“빠를수록 좋지.”

“좋아, 그렇게 하자.”

“그래. 그런데 너도 휴가를 얻어 워싱턴의 양해규 무관집에서 먼저 만나 그 일대를 구경하고 같이 나이아가라로 가서 폭포를 구경하는 게 어때.”

“그래, 나도 워싱톤과 게티스버그를 가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 날짜를 정하여 그렇게 하자.”

“그래. 그럼 다음 주말부터 일주일 휴가를 얻자. 그리고 나는 차가 없으니 네 차를 이용하자. 아내는 서울에 있고 나만 뉴욕에 있거든.”

“그래, 그렇게 하자.”

“그래. 그럼 양해규한테 내가 연락을 취하여, 집 주소와 약도를 너에게 보내게 할게. 다음 주 토요일 오후 6시에 워싱턴 해규 집에서 만나자.”

“그래. 그렇게 하자.”

시철은 공부 잘하고 바둑도 잘 두고 특히 노래를 열정적으로 불렀다. 고등학교 2학년 소풍 때 그가 부른 ‘그 여자에게 내 말 전해 주게’는 우리 친구들의 선망의 곡이 되었다. 프랑코 코렐리보다 더 잘 부른 그의 노래 : “디치텐 첼로아스타 꼼파냐 보스타 차기오 페르두토 오 소노 에 아 판타시아 차 펜조 셈페 체 투따 비타 미아----” 우리는 그의 노래를 듣고 우리의 마음이 떨리어 우리가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말하지 못하던 우리의 용기 없음을 위안으로 삼았다.

 

노시철의 전화를 받고 보니 작년 7월에 있었던 그의 결혼과 그의 부인이 생각났다. 노시철은 김제 영광출신으로 나와 동향이다. 그는 S대 졸업 후 무역협회에 들어가 열심히 근무하다 파리에 이어 뉴욕에서 연수받는 중이었다. 그런데, 노시철은 곱슬머리에 얼굴색이 검어 전형적인 시골촌놈의 외모를 지녔다. 세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그의 별명은 노지심이다. 수호지에 나오는 술 잘 먹고 힘세고 괴팍하고 우직한 그 스님이다. 이 외모 이야기는 나중에 그의 결혼과 관련되었기에 밝혀둔다.

 

그는 친구 사이에 세 가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나는 최다 중매기록으로 최소 400회 이상이다. 상세한 기록은 없지만 무역협회에 들어온 후 최소 2주에 한 번은 했고, 많을 때에는 주말에 네 번도 본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아마 500회를 넘는지도 모른다는 게 친구들의 중론이다. 그는 5남 3녀 중 막내로 그의 형님들과 누나들이 다 명문대학을 나와 모두 성공한 사람들이라 부모님의 성화로 막내 동생 중매에 다 앞장섰다는 그의 정황 설명을 들으면 기록의 신빙성이 높다. 시철 본인의 말은 처녀들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아 자기가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외모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보면 그 반대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두 번째 기록은 한 여자와 연애를 13년 동안 지속한 것이다. 세 번째 기록은 친구 중에서 가장 최연소 부인을 맞이한 것이다. 그는 40세 노총각이 되어 대학을 갓 졸업한 23세 묘령의 처녀와 결혼한 것이다.

 

1992년 7월 4일 기독교회관에서의 그의 결혼을 나는 잊지 못한다. 갑작스런 그의 청첩장을 받고 결혼식장에 가서 신부를 보니 15세 정도로 보였다. 줄리엣보다도 올리비아 핫세보다도 어리고 청순한 외모였다. 그러한 신부가 노지심 같은 아니 산도적 같은 신랑 옆에 있으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신랑신부였다. 나는 그의 결혼 성공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나는 그 이튿날 카나다로 전근 명령을 받았기에 그의 집들이를 가지 못했다. 그런 그가 뉴욕에 와서 토론토에 있는 나에게 워싱턴에서 만나지고 하니 나는 열일을 제치고 그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의 결혼 성공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워싱턴에서 들은 이야기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주미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는 양해규 중령도 우리의 절친한 친구였다. 양해규와 그의 부인 김보옥 박사는 양중령이 사관학교시절 열렬한 연애사건으로 사관학교에서도 화제가 된 친구다. 21년 전 전두환 사관생도와 이순자 의대생의 연애보다도 더 선망의 연애로 회자되었다. 다행인 것은 김보옥은 양해규와 불같은 사랑을 하면서도 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결혼 후에는 박사학위도 받고 의대학장도 역임한 것이다. 다음 날 양해규로부터 집의 약도와 주소가 팩스로 전달되어 왔다.

 

나는 휴가를 얻어 아들, 딸과 아내를 데리고 금요일 저녁 워싱턴으로 차를 몰았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지나 미시간 호안에서 1박을 하고 새벽부터 워싱턴으로 향했다. 500km를 달려 게티스버그에 당도했다. 그 유명한 에이브러햄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신념을 천명한 게티스버그 연설의 현장에서 열 살 난 아들 규영이와 일곱 살배기 딸 아영이가 그 연설문을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나보다도 더 좋은 발음으로 읽었다. 역시 영어공부는 어렸을 때 시켜야 하나보다. 하기야 맥도널드 가게에서 내가 주문하면 점원이 잘못 알아듣는데 규영이나 아영이가 시키면 금방 알아듣는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그 덕에 공부 잘했다고 하늘처럼 높았던 아빠의 위신이 말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성장에 나는 가슴 뿌듯했다. 미국의 주소 체제는 잘 되어 있어서 워싱턴이 초행길이었지만 그 주소와 약도를 보고 쉽게 양 중령의 집을 찾아 정확히 약속된 6시에 도착했다. 노시철도 뉴욕에서 이미 한 시간 전에 당도해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저녁식사를 한 뒤 차를 마셨다. 나는 이때 나의 궁금 사항인 노시철의 결혼 성공 이야기를 물어봤다. 다음이 그 이야기다.

 

신세계 백화점 지하계단에서

 

1979년 4월 2일 노시철은 오늘 아침도 출근하기 위해 신세계 백화점 지하도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 지하도를 올라 백 보만 걸으면 무역협회인 것이다. 벌써 3년째 이 계단을 이 시간이면 오르고 있었다. 남산자락에 있는 이 건물에서 무역에 관한 이 일 저 일을 하는 것이 그는 좋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제도 이 자리에서 저 애가 인사를 하고 지나갔는데 나에게는 아니겠지 하며 지나쳤는데---- 오늘도 인사를 하는 것 아닌가? 옆을 쳐다봐도 마땅히 딴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애야, 나한테 인사했니?”

“아, 예, 선생님.”

“너, 나 아니?”

“잘 모르는데요.”

“그런데 왜 인사했니? 어제도?"

“아, 예. 항상 아침에 이 계단에서 만나지 않아요. 벌써 한 달이 되었어요, 그래서---”

“오, 그래? 너 어느 학교 학생이지?”

“예, 바로 이 계단을 지나 저 초등학교 4학년 장효선이에요.”

“오, 그래. 그래 공부 잘해라!”

 

장효선은 신세초등학교 학생으로 아침마다 이 계단을 통해 등교하며 출근하는 노시철을 이 계단에서 항상 마주치기에 낯이 익어 며칠 전부터 노시철에게 인사했고 그는 어제오늘에야 그 인사를 알아챈 것이다. 그 이튿날도 그다음 날도 날마다 그 계단 아침 출근길과 등굣길에서 그들은 어김없이 마주치고 이제는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지나쳤다. 한 달 후 아침 길에도 또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응, 효선아. 어린이날이니 오늘 저녁에 빵 사줄게, 시간 있니?”

“아, 예. 어디서요?”

“저기 고려당이 어떨까?”

“그래요.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그래. 공부 잘하고------”

 

그래서 노시철과 장효선 학생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빵도 먹고 어떤 때는 영화도 보곤 했다. 노시철은 장효선에게 국어도 가르치고 나중에는 영어와 수학도 가르쳤다. 만날 때마다 효선은 시철에게 결혼하라고 졸랐고 시철은 자기 선 본 이야기를 주로 하였다. 이런 관계를 계속하며 6년이 흘러 효선이가 계성여고에 입학하였다. 시철은 그녀의 고교 입학을 축하하는 모임을 가졌다.

 

“효선아, 꿈 많은 고교생이 된 것을 축하해! 그러고 보니 우리 처음 만날 때는 네가 조그마한 초등학생이었는데, 벌써 고등학생이네. 더 예뻐지기도 하고-----”

“예, 벌써 꿈 많은 고교생이 되었네요.”

“내가 지나놓고 생각해 보니까 고교시절에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아. 시험에만 매달리지 말고 시집과 소설책을 많이 읽으면 좋을 거야. 특히 우리나라 단편소설은 세계 최고수준이란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도 이제 33살이 되었는데 올해는 꼭 결혼하세요.”

“글쎄, 부모님도 그렇고. 그래야 되는데 모르겠다.”

“선생님, 제가 이래 봬도 사람 볼 줄을 잘 아니 제가 찾아줄게요.”

“네가? 어떻게?”

“선생님, 선을 볼 때 나와 같이 가요?”

“너랑?”

“예. 그런데 같이 합석하는 것은 아니고----”

“아니고?”

“저는 모르는 사람인양 옆자리에 앉아다가 나중에 그 여자가 선생님과 맞는 사람인지 아니지를 말해줄게요.”

“그래? 그렇게 한 번 해 볼까?”

“꼭 그렇게 해요. 선생님 짝은 제가 꼭 찾아줄게요.”

 

감독이 있는 맞선

 

시철은 ‘그저 하는 말이려니’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그 주말에 선볼 때 효선이가 정말 따라나섰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거절했으나 그녀의 고집으로 그렇게 되고 말았다. 세종호텔 커피숍이었다. 다음 날 효선은 그 아가씨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시철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기를 몇 번 계속했다. 드디어 네 번째 효선의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효선이가 고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아주 잘 어울리는 상이니 그 여자분과 결혼을 꼭 하세요. 절대로 싫다고 하거나 놓쳐서는 안 돼요. 시철도 그 아가씨 인상이 괜찮던 터였다. 그는 ‘효선이가 사람 볼 줄을 알긴 아는군.’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프터를 신청하여 서너 번 만났다. 그러다 헤어졌다. 그러한 일이 두 번 더 반복되었다.

 

이제 장효선이가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녀가 대학생이 되어서도 선보는 장소에 함께 나가는 일은 계속되었다. 코리아나 커피숍에서 선을 본 아가씨를 효선이가 적극 추천하였다. 그래서 대여섯 번 만남을 계속 이어 나갔다. 효선이가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 시철도 효선이가 추천한 그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이제 부모님께 인사를 시킬까’ 하고 생각하다가 갑자기 효선이가 생각났다. 아니, 내가 효선이와 결혼하면 안 될까? 내 나이 38이고 효선이가 21살이지. 아, 안 되지. 내가 도둑이지. 효선이가 하겠어? 또 그 집안에서는? 안 되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효선이가 추천한 그 아가씨를 계속 만나려 했다. 그러나 효선이를 마음에서 쫓아내고 그 아가씨를 생각하려 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자꾸 효선이 얼굴이 떠올랐다.

 

“선생님, 그 아가씨 계속 만나고 있지요?”

“아니”

“아니, 왜요? 사주도 좋고 너무 좋은데요.”

“아니야, 나는 독신으로 지낼 팔자인가 봐.”

“그런 게 어딨어요? 그 아가씨와 결혼하세요.”

“헤어졌어.”

“아유, 그럼 선생님 저하고 결혼해요.”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마라.”

“농담 아니에요. 이제 내년이면 저도 졸업반이에요.”

“농담하지 마라니까?”

“진정이에요. 저도 이제 다 큰 처녀에요. 결혼도 해야 되고요.”

“나 그럼 너도 이제 안 만난다.”

“그렇게 안 만난다는 생각을 쉽게 하니 결혼을 못 하지요.”

“그러니 그런 말 농담으로도 하지 마라.”

“화났어요?”

“오늘이 너와의 마지막이야.”

“------.”

“알겠어요. 그 말 보류할게요.”

“------”

“그러나 선생님, 꼭 그 아가씨와 다시 만나 결혼하세요. 정말 좋은 짝이 될 거에요.”

 

노시철은 효선의 말대로 그 아가씨와 만남을 계속하려 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성사되지 못하였다. 결혼하기가 이렇게 어렵나? 그러다가 효선의 대학졸업식에 축하하러 갔다. 그 자리에서 그녀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 인사도 했다. 졸업식 다음 날 효선은 부모님께 곧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엄마 아빠, 저 대학 졸업했으니, 이제 결혼 하고 싶어요.”

“그래, 너도 대학을 졸업했으니 우리도 좋다. 신랑감을 구해 보자.”

“아니 저 사귀는 남자가 있어요.”

“______???”

“우리도 아는 사람이니?”

“예.”

“누구? 어제 졸업식장에 온 곱슬머리 그 아자씨는 아니겠지?”

“맞아요. 그 사람이에요.”

“뭣이? 오십은 넘어 보이더라.”

“아니에요. 사십이에요.”

“사십이나 오십이나 오십보백보지. 너 이제 갓 스물셋인데.”

“나이가 중요하나요? 사랑이 중요하지.”

“그 남자하고는 안 된다.”

“김흥주 화백 모르시나요? 저는 그 남자하고만 결혼할 거예요.”

“안 된다.”

“잘 살 테니 허락해 주세요.”

“안 되다니까. 절대로”

효선의 폭탄선언에 어머니가 몸져누워 그때부터 식음을 끊었다.

“엄마 죽 드세요.”

“네가 그 늙은이하고 결혼을 포기할 때까지는 아무것도 안 먹겠다.”

“그러면, 엄마, 저의 결혼을 허락할 때까지 나도 단식할 거예요.”

“애야---”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거예요. 제가 먼저 죽으면 그이를 하늘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모녀의 단식 대결

 

효선도 어머니 곁에 누워 음식을 전폐했다. 그렇게 열흘이 계속되자 효선 아빠가 딸의 선택을 허락하였다. 사랑은 이기는 것이고 더욱이 자식 이기는 부모는 고금에 없는 법이잖은가? 그래서 40세의 너시철과 23세의 장효선은 1992년 7월 4일 양가부모의 축복과 친구들의 부러움 속에 결혼하였다. 신혼여행은 신비스런 발리에서 일주일을 보냈단다.

 

양해규 부부와 우리 내외는 도사철의 사랑이야기를 밤늦도록 재미있게 들었다. 지금 사철의 24세 된 신부 효선은 만삭 중이며 자기는 회사의 인사명령으로 5개월째 파리와 뉴욕에서 연수중이라 장모가 자기 집에 와서 신부를 보살피고 있다고 덧붙였다. 초산이라 걱정된다고도 하였다. 의사인 양해규 부인 김보옥박사가 서울은 의료수준이 높으니 걱정 말라고 위로도 하였다. 우리는 내일은 루레이 동굴 등 워싱턴 근교 관광을 하고 모레는 머틀 비취에 가기로 하고 밤이 깊어서야 눈을 붙였다. 그런데 아침 일찍 노시철이 우리를 요란스럽게 깨웠다.

 

“인엽아, 해규야, 나 지금 당장 서울에 가야겠다.”

“아니 웬 소리야?”

“효선이가 산통이 심하다면서 빨리 오라는 전화가 금방 왔어.”

“옆에 장모님이 있다면서? 그 분이 알아서 병원에 데려가겠지.”

“그럼, 가는 데만도 하루가 걸리는데. 또 회사 허락도 받아야지 않나?”

“지금 급한 상황인데 회사 허락은 사후에 하면 되고. 무섭다고 빨리 오라고 했단 말이야. 무섭대. 효선이가 무섭다며 나를 오라고 했어.”

 

해규와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철은 아침도 거른 채 달라스 공항으로 떠났다. 가장 빠른 비행기로 가겠다면서. 우리는 천사 같이 예쁘고 어린 신부를 가진 시철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를 할 것 같았다.

 

그 후 노시철 부부는 그 누구보다도 화목하고 멋지며 서로 존경 사랑하며 이제 몇 달 있으면 벌써 은혼식을 맞이한다. 벌써 도사철의 큰딸 도영선이가 이제 서울대학 졸업반이고 아들 도종수는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우리는 “시철아, 네 딸 영선이가 17세 연상의 남자를 신랑감으로 데려오면 승낙할래?” 하고 놀리면 “말이 씨 되니 농담도 그런 소리 마라.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를 너희들은 모르냐?” 하며 정색을 한다.

 

그런데 노시천의 17세 연하인 부인 장효선 여사는 말한다. 담담히 아주 당당히 :

 

“결혼에는 사랑만이 기준이에요!!!”

 

▲통일 고려의 산, 도봉산 (c)시사타임즈

 

(123번째 국제연합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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