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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5)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5)

와인과 스탈린, ‘백만 송이 장미’ 노래의 고향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불과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나온 도시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것은 참 믿을 것이 못 된다고들 하지만 나의 기억은 정말 믿을 것이 못 된다. ‘고리’라는 도시에 들어가기 전 마을이었다. 열심히 땀을 흘리며 코카서스의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달리는 나를 본 식당 아저씨가 손짓으로 나를 불러 차 한잔하고 가라고 한다. 조금 전에 휴식 시간을 가져서 쉴 시간은 아니지만 부르는 손짓이 사뭇 진지해서 발걸음을 멈추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들어가니 사방이 한기가 감쌌지만 난로 위의 찻잔이 뽀글뽀글 끓고 있었다. 그들은 따끈한 차도 내왔지만 와인도 한 잔 가득히 따라준다. 그루지야에는 “당신이 나의 적이면 칼을 받고 나의 친구면 와인을 받으라!”라는 속담이 있다. 그는 우리를 친구로 생각했으므로 와인을 따랐고 타마다!(선창자)가 뽑혀 간마르조스(건배!)를 외치며 나도 그를 친구로 받아들였으므로 한 잔을 단숨에 비웠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5번 외치는데 첫 번째 신에게, 두 번째 평화를 위하여 등으로 건배를 한다. 조지아 와인 중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가 ‘피로스마니’라고 한다. 화가 피로스마니는 ‘미르자아니’에서 작은 포도원을 가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사람들은 와인 석 잔은 곰이 되게 만들고 그다음 석 잔은 황소가 되게 만들고 그다음 석 잔은 새가 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새가 되기 전에 멈춰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이곳 사람들은 기쁜 날 26잔, 슬픈 날 18잔을 마신다는 데 새가 된 다음 죽는 사람들도 많은가 보다. “물보다 술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속담이 있다. 친구가 된 우리는 통하지 않는 말로 열심히 떠들고 웃고 사진 촬영하면서 우리들의 가슴도 주전자 속의 차처럼 뽀글뽀글 끓었다.

 

사진은 여러 장면을 찍었는데 마지막에 한 남자가 큰 사진을 가지고 와서 내게 건네주며 들고 찍으라고 해서 나는 무심결에 자기의 가족사진인 줄 알고 사진을 찍었는데 찍고 나니 스탈린 사진이란다. 나는 순간적으로 벌레 씹은 표정이 되었고, 얼굴에 묻은 벌레 떨쳐내듯이 사진을 떨어트려 버렸다. 고리는 스탈린의 고향이다. 거기에 스탈린 박물관도 있다. 레닌이 만든 소비에트를 세계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린 이가 바로 그루지야 고리 출신의 스탈린이다. 작은 시골 마을인 고리의 구두 수선쟁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발가락은 기형에다 얼굴에는 천연두의 후유증인 곰보 자국에다 키마저 자그마해서 아이들에게 늘 놀림을 당했다.

 

술에 취해서 심하게 매질을 해대던 아버지는 그가 11세가 되던 해에 다른 사람과 싸우다 칼에 찔려 죽고 만다. 이렇게 성장한 스탈린은 러시아혁명 당시 그의 역할은 미미했으나 레닌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한다. 스탈린이라는 이름은 레닌은 그에게 강철의 인간이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스탈린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46년 동안 그는 수없이 많은 인민의 피 위에 강철의 제국을 건설하며 자기가 태어난 조국 그루지야도 마저도 핍박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숙청이란 미명하에 2천만 명에 달하는 인민들을 죽인 희대의 학살자 스탈린과 같은 무자비한 제국주의자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나의 평화마라톤의 임무 중의 하나인데 그의 사진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게 되는 우발적인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연해주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것도 스탈린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한반도를 두 동강으로 갈라친 계기가 되는 얄타회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스탈린이 소련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완성했다면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함께 페레스트로이카를 주도하며 부패와의 전쟁을 펼쳤고 소련 붕괴를 맞이했던 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가 또한 그루지야 출신이며 그는 그루지야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여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측근들의 부패를 막지 못해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장미 혁명의 결과였다. 우리에게 촛불혁명이 있다면 그루지야인들에게 장미 혁명이 있다. 이 두 인물이 모두 그루지야 출신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러시아의 역사에서도 그렇지만 그루지야의 현대사에서 스탈린과 셰바르드나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루지아 출신으로 설명만 조금 붙이면 우리가 금방 알 만한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으니 그 이름하여 ‘니코 피로스마니’이다. 앞에 언급한 그루지아 와인 브랜드이기도 한 그 피로스마니이다. 그루지아인들이 겪었던 슬픈 과거의 운명처럼 그도 사랑ㅇ을 이루지 못해서 비운의 삶을 살았다. 그의 슬픈 사랑이 그의 사후 이곳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슬프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그루지야의 화가이다. 피로스마니는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고 무명으로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결국 가난과 질병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화가였다. 부잣집 하인으로 철도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그림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하고 간판을 그리고 남은 페인트로 그림을 그렸던 사람이다.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해 평생 가난한 화가였던 그는 죽고 나서야 인정받아서 그림은 비싸게 팔리고 헌정시가 바쳐지고 노래가 만들어지고 영화가 만들어졌다. 마가리타라는 프랑스 출신의 여배우를 남몰래 사랑한 그는 그 여배우가 장미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그녀에게 백만 송이 장미로 여배우의 집 앞을 장식한다. 하지만 여배우가 자신의 정원에 꽃 바다를 이룬 백만 송이 장미를 누가 선물했는지도 모른 채 밤 기차를 타고 순회공연을 떠나버리고 만다.

 

그의 그림 속의 마가리타는 그리스신화에 비너스처럼 통통한 체형의 미인이다. 이 비운의 화가의 사랑은 거기까지였다. 내 사랑하고 길이가 거의 비슷한데 샘나게 더 낭만적이다. 트빌리시에는 유난히 꽃가게가 많다. 어머니가 그루지야인이었던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가사를 쓰고 국민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노래 불렀던 ‘백만 송이 장미’는 이렇듯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세계인의 잔잔한 눈물샘을 자극했다. 러시아 작가 콘스탄틴 파우스톱스키(1892~1968)의 단편 ‘꼴히다’에서 소재를 가져와 보즈네센스키가 시를 썼고, 파우스톱스키는 그루지야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1862~1918)의 실제 사연을 소재로 글을 썼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코카서스의 산세처럼 굴곡진 그루지야인들이 지나온 역사와 삶도 이렇듯 순결하고 가슴 아픈 것이어서 백만 송이 장미와 그들이 품은 백만 가지 사연을 다 비슷한 울림을 준다. 그 깊고 슬픈 사연이 그루지야의 포도주에 담겨서 포도주 맛도 순결하고 서정적이며 치명적인 맛을 담았나 보다. 그 맛을 한번 본 자 시인의 가슴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으니 푸시킨이 이 땅을 사랑하며 작품을 써 내려갔으며 톨스토이가 이곳 주둔군을 자원하여 작품을 남겼으며 막심 고리키는 이곳에서 처녀작을 발표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성경에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주를 마셨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기원전 6,000년 전 수메르의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에 따르면 와인의 역사는 기원전 6,000년경부터 시작됐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은 지역이 아라랏산 근처이며, 아라랏산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소아시아 지역에 있다. 그루지야의 현재 위치와 일치한다. 그루지야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포도나무의 원산지라고 주장하는데,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셈이다.

 

달빛이 교교하게 흐르는 창가에 사랑하는 님과 마주 앉아 촉촉이 젖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심장처럼 붉은 와인을 한잔 마신다. 잔에 따르고 시간을 두고 잔을 돌려 입으로 당기는 순간 코끝에 와 닿는 코르크 마개 속에서 오랜 세월 잠자던 향기는 첫사랑처럼 여운을 끌며 감돈다. 꽃향기인 양 과일 향이 피어난다. 한 모금 와인에 젖은 혀끝은 장미 가시에 찔린 듯 화끈하다. 금방 시큼한 맛 뒤에 찾아오는 깊고 복잡하며 은은한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입안에서 몇 바퀴 천천히 맴돌던 와인은 목젖을 타고 폭포처럼 떨어져 내려서 봄비가 대지를 적시며 만물이 소생하게 하듯이 온몸을 적시며 몸을 따스하게 데운다. 온 누리에 풍요와 평화가 넘치듯이 몸에 사랑과 평화가 깃든다. 몸이 뜨거워지며 님을 바라보는 눈빛도 타오른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그루지아는 와인의 고향이다.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달리기가 그렇다. 달리면 신진대사가 빨라지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진다. 몸이 따스해지면서 마음에 희열이 온다. 온전한 평화를 이루는 종교적 깨달음은 수도승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달릴 때 큰 호흡을 하면서 최고의 움직임을 하고 있는 자신의 육체에 온 정신이 집중될 때 큰 평화와 기쁨이 찾아온다는 하늘의 비밀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와인은 신이 준 물방울이고 달리기는 인간의 가장 완벽한 움직임이다.

 

트빌리시에는 유명한 유황 온천이 많다. 트빌리시는 그구지아 말로 ‘따뜻한 땅’이라는 의미이다. 푸시킨도 이곳에서 쉬면서 병을 고치고 작품활동을 했다. 그는 “이곡의 온천이 세상 최고의 온천”이라고 극찬을 했다. 자유광장 옆에는 푸시킨 공원이 있다. 이곳의 사람들도 그를 최고의 시인으로 대접한다. 톨스토이도 코카서스 주둔군으로 자원하며 4년간 복무를 하며 니곳에서 몇 편의 소설을 남겼다. ‘코카서스’의 죄수라는 제목의 소설은 푸시킨의 시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이 도시가 수도가 된 데는 온천과 관련이 있다는 재미나는 이야기도 바크탕 고르서리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 사냥을 하던 새를 화살로 맞혀 떨어뜨렸는데 온천에 떨어진 새는 금방 상처가 아물어 날아가버렸다고 한다.

 

트빌리시에서 밤차로 작별의 인사도 못 하고 떠난 사람은 또 있다. 한 달여 같이 지내며 내게 백만 송이 장미와 백만 개의 가시를 함께 주고 송교수님이 갑자기 무엇이 급해졌는지 기차표를 끊으러 가시더니 거기서 시간이 많이 지체해서 갈 때 작별의 인사도 못 하고 떠났다. 내가 지나게 될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들러서 사전 정지작업을 하신다고는 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런 이별이 될 줄은 몰랐다.

 

여덟 시에 기차는 떠났다. 오늘은 선한길 교수님이 왔는데 이별과 작별은 언제나 동시에 이루어지나 보다. “바쿠행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 그해 1월은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내 기억 속에 남으리.” 트빌리시의 올드타운과 뉴타운을 가로지르는 무츠바리강을 연결하는 다리는 이태리 건축가 미켈 데 루치가 설계한 자유의 다리이다. 자유의 다리를 지나며 ‘백만 송이 장미’를 흥얼거리며 평화의 길을 설계하는 나그네의 어께 위에 설산을 비추고 뚱겨 나온 맑고 순결한 정오의 햇살이 정답게 내려앉는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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