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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3)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3)

‘평화는 발바닥에서 온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아이샤비비’라는 초원의 마을을 지난다. 인적이 드물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푸른 초원 한쪽 뒤에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맥이 버티고 서있다. 톈산의 줄기이다. 매일 아침 길 위에 나서는 순간마다 마음은 설렌다. 살랑 바람이 불어왔고, 양 떼들 사이에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목동 옆에 개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풀밭에는 빨강의 개양귀비꽃과 연분홍의 과꽃, 벌노랑이, 보랏빛 엉컹귀꽃, 하얀 찔레꽃 그리고 또 노란 수선화가 삐죽 올라왔다. 꽃마다 벌나비가 분주하다. 초원의 야생 꿀 파는 아주머니가 길가에 있어 꿀 한 병을 사들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다투며 홀로 달리지만 수많은 추억이 정겹게 길동무해준다. 내 열등감과 한계와 싸우며 힘을 잃을 때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움츠려있던 그리움이 응원해준다. 지친 발을 이끌어 도시와 시골길을 지나고, 고대 왕국의 도시와 전장터도 지나고 철학자와 음악가가 사색하던 한적한 길도 달려왔다. 강과 산과 사막과 초원도 지나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서 걷고픈 공원과 정원도 지나고, 진구렁창도 지나왔다. 그런 길 위에 평화는 아주 천천히 오지만, 평화를 실어 나르는 바람은 봄바람처럼 분주하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을 열고 길을 나서야 한다. 이제 길을 나선 지도 10개월이 지났고 15개국을 지나서 1만km를 넘게 달려왔다. 지금이나 그때나 세상은 불공정했다. 그때는 신분제로 고통받았고 지금은 천민자본주의 탐욕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때는 싯다르타가 계급을 타파하려 맨발로 길을 나섰다. 그의 맨발은 인류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장엄한 출발의 징소리이다.

 

육신은 피로가 누적되고 마음엔 저 멀리 보이는 설산의 눈처럼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은 고독이 쌓여간다. 어떨 때는 육신이 너무 힘들어 처음 문을 열고 길을 나설 때의 의지가 무엇이었는지조차 삼삼할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인류는 무언가 소중한 것을 얻고 싶을 때, 가고 싶은 곳이 있을 때 이렇게 달렸다. 달리기란 두 발과 대지의 만남과 이별이 빚어낸 하나의 궁극(窮極)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봄기운에는 신비스런 생명의 조화가 있다. 그러나 이 자연의 조화에도 어김없이 공짜는 없다. 나무도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야 비로소 마른 나뭇가지에 싹을 틔운다고 한다. 그저 봄이 오면 저절로 피어나는 꽃인 줄 알았는데, 계절의 순환은 이 자연이 처절하게 겪는 해산의 고통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 계절 온갖 생명 있는 것들은 봄의 복락을 더 누리기 위해 처절하게 경쟁을 한다. 자연은 치열한 경쟁 속에도 상생의 지혜를 갖는다. 생명의 본래의 모습은 상생과 평화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꽃들이 모여 공원을 꾸미고, 서로 다른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나도 아침마다 치열하게 달리면서 몸과 마음에 풀무질을 한다. 이렇게 달리면서 큰 호흡으로 명가의 도공처럼 치열하게 풀무질을 해서 뜨겁고 센 파란색 불꽃을 만들어 낸다. 불가마 속의 백자처럼 달리면서 몸과 마음을 달구면 온몸 구석구석 쌓여있던 독소나 노폐물을 태울 뿐 아니라, 여러 가지 걱정과 근심으로 억압된 마음을 정화시킨다.

 

봄기운이 움터나는 대지를 달리는 몸과 마음에는 푸른 불꽃이 일어난다. 봄은 강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 그리고 축축한 습기로 처절한 생명의 씨앗을 틔운다. 봄바람은 신의 풀무질이다. 이렇게 봄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은 풀무질을 세게 해야 우주의 온갖 생명의 불꽃이 강렬하게 타오르기 때문이다. 나의 마라톤은 나의 생명의 불꽃을 푸른 불꽃으로 강하게 타오르기 위한 몸부림이다. 제 몸을 흔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물고기가 없고, 제 몸을 흔들지 않고 하늘 높이 날아가는 새가 없다. 내 몸을 이렇게 치열하게 흔들어 삶의 푸른 불꽃을 피우는 것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춥고 헐벗은 긴 겨울을 지내고 나야 나무들도 대지의 깊숙한 곳에서 미세하게 움터오는 봄의 생명의 기운을 치열하게 길어 올린다. 달리면서 온몸이 기운이 소진될수록 정신이 맑아지는 경험은 아주 특별하다. 온몸의 에너지가 고갈될 때 생기는 고통을 이겨내고 나면 신비로운 생명수가 전신으로 짜르르 흐르는 느낌이 든다. 폐 속의 작은 기공까지도 다 뱉어내야 큰 들숨이 가능하다. 다 비워내고 다시 채우는 큰 호흡을 하면서 달리며 대지의 맑고 깨끗한 기운을 받아들이면 몸과 마음에 큰 변화가 온다.

 

대지는 이렇게 달리면서 발바닥으로 경락마사지를 해주면 기분이 좋아져 상쾌한 기(氣)에너지를 발바닥을 통해 전해준다. 대지의 핵 깊은 곳에 간직해두었던 생명 에너지를 내게 공급해준다. 어릴 때 할머니 등을 두드려드리면 할머니께서는 “아이고 시원하다!” 하시며 내게 용돈을 주셨다. 할머니의 용돈처럼 대지는 무한한 생명 에너지를 내게 발바닥을 통해서 전해준다. 자연에 이치에 어김없이 공짜는 없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달리기는 내게 교통비를 요구하지 않는 무료 여행수단이어서 달리면서 세계를 여행하게 되었다. 달리기는 내게 깊은 산속의 천년 사찰이어서 나는 달리면서 도를 닦고, 조용히 명상하며 마음의 침잠을 얻는다. 달리기는 나의 연구소이기도 하다. 달리면서 나는 세상 이치를 배우고 삶에 내재된 복잡한 구조를 연구한다. 내 삶의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예술이며 종교이다.

 

달리기는 나의 최고의 사교장이기도 하다. 달리면서 세상의 모든 인종과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고 소통한다. 세상을 밝게 바라보는 창문이기도 하다. 그 창문을 내다보면서 꿈을 키워왔다. 달리기는 내게 젊음을 되찾아주는 회춘제이고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보약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게 절대 고독을 안겨준 얄궂은 연인이며 기쁨과 환희를 가져다준 사랑스런 요부이기도 하다.

 

달리면 우뇌가 열리고 감각이 열린다고 한다. 유라시아를 품에 안으려면 우뇌의 도움이 필요하다. 평화통일을 이루는 데 우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대 서양문명의 근간인 논리적인 사고는 좌뇌에 의해서 발달해왔지만 그것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협소화시켰는지 우리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이분법적인 사고가 내가 아니면 남이라는 편 가르기의 폐단을 조장해왔다. 우뇌가 발달하면 감수성이 예민해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며, 통합적이며 창조적인 열린 사고를 하게 한다.

 

초침, 분침이 부러진 시계가 허공에 걸린 초원을 달린다. 마라톤에는 필연적으로 고독이 내재되어 있다. 사람은 고독하다는 정설은 달릴 때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여럿이 함께 어울려 달릴 때도 우리는 남해의 다도해처럼 서로는 독립적이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이나, 다도해의 수많은 섬 중의 하나이다. 나는 뛰면서 홀로서기에 성공했고, 뛰면서 뜨거워진 심장으로 사람들과 통하는 해저터널을 발견했다. 여기서 나는 위대한 고독자(者)이다. 유라시아의 드넓은 대륙을 달리며 이렇게 처절하게 외로워 본 나는 이제야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지고 볶는 사랑이 얼마나 구수한 사랑인지 알게 되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개가 코로 세상을 읽듯 나는 발바닥으로 세상을 읽는다. 발로 온 세상을 달리며 큰 공부를 하였다. 세계역사를 한눈에 꿰뚫게 되었다. 문화의 흐름을 파악했고, 음식의 맛을 섭렵했다. 사람들이 어떤 지리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면서 살아가는지 목격했고, 어떤 기후 환경에서도 적응하면서 자손을 번창하면서 사는지 확인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을 갈구하는지 소통하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의 모든 것과 뜨겁게 포옹하고 격렬하게 입맞춤을 하며 원없이 사랑했다.

 

무엇보다도 달리기는 내게 큰 마이크를 선사하여 그 마이크를 통하여 ‘평화통일’을 노래하게 되었다. 도무지 박자와 음정도 맞지 않는 노래이지만 ‘평화통일’에 갈증을 느끼던 사람들은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에서 부르는 나의 노래에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유라시아’라는 스튜디오는 얼마나 시설이 좋은지 박자 음정 안 맞아도 ‘평화’라는 좋은 소재로 노래를 부르는 나를 감쪽같이 포장을 해주었다. 내 달리기는 아름다움이란 찾아볼 수 없는 전쟁의 광기를 대기권 밖으로 걷어차는 것이다.

 

“발바닥 사랑

             박노해

 

 

사랑은 발바닥이다

 

머리는 너무 빨리 돌아가고

생각은 너무 쉽게 뒤바뀌고

마음은 날씨보다 변덕스럽다

  

 

사람은 자신의 발이 그리로 가면

머리도 가슴도 함께 따라가지 않을 수 없으니

  

 

발바닥이 가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발바닥이 이어주는 대로 만나게 되고

그 인연에 따라 삶 또한 달라지리니

  

 

현장에 딛고 선 나의 발바닥

대지와 입맞춤하는 나의 발바닥

내 두 발에 찍힌 사랑의 입맞춤

그 영혼의 낙인이 바로 나이니

 

 

그리하여 우리 최후의 날

하늘은 단 한 가지만을 요구하리니”

 

‘평화는 발바닥에서 온다.’ 봄은 평화이고 평화는 발바닥이다. 발바닥으로 달리며 이웃을 만나며, 이웃이 무얼 먹고 사는지, 어떤 아픔이 있는지, 가족들은 모두 안녕한지. 추운 겨울은 따뜻하게 나는지 묻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그들이 무얼 생각하는지 귀를 기울이며 한 끼 밥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평화이다. 달리며 봄 나무의 뿌리가 뻗어 나가듯 낮은 마음 생기고 수액을 빨아올리듯 깊은 우정이 위로 솟구쳐 오른다. 이렇게 사람들이 만나고 교류하면 유라시아의 봄도 머지않은 걸 느낀다. 평화는 우리 마음으로부터 온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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