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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341)] 1913년 세기의 여름

[책을 읽읍시다 (341)] 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저 | 한경희 역 | 문학동네 | 396쪽 | 18,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제국주의는 정점으로 치닫고, 민족주의는 점점 확산되고, 발칸전쟁을 비롯한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고, 기술 발전은 속도를 더해가고, 도시는 자기소외와 신경과민에 시달리는 사람들로 득시글거리고, 모더니즘이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의 전통 개념을 뒤엎어버린 바로 그해, 1913년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3년 유럽 사회의 풍경을 1월부터 12월까지 월별로 나누어 그려나간다. 날씨로 보면 1913년 여름은 끔찍했다. 빈의 8월 평균 기온은 16도였다. 1913년 당시 사람들은 당연히 몰랐으나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추운 8월이었다. 이상기후 속에서도 유럽의 문화는 독특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문학, 미술, 음악, 건축, 사진, 연극, 영화, 패션 등 모든 문화 영역에서 예술가들은 사회적, 정신적 위기를 견디고 극복하며 모더니즘을 찬란하게 꽃피웠다.

 

저자 플로리안 일리스는 1913년 당시 이 인물들의 행적을 역사적 배경까지 고려해 치밀하고 정교하게 복원한다. 그는 3년에 걸쳐 전기, 자서전, 편지, 일기, 사진, 신문 등 수많은 인물들의 방대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재구성하여 1913년 유럽의 한 해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되살려냈다.

 

등장하는 인물만 해도 300명이 넘는다.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마르셀 프루스트, 제임스 조이스, 토마스 만,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그문트 프로이트, 카를 구스타프 융, 파블로 피카소,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프란츠 마르크, 마르셀 뒤샹, 카지미르 말레비치, 아르놀트 쇤베르크, 아돌프 로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코코 샤넬 등 모두 현대 유럽의 지성사와 문화사에 잊을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이들이다.

 

이 책의 백미는 인물의 내면 묘사와 동시대 인물들을 1913년이라는 한무대 위에 올려놓는 우연성의 포착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 가장 우유부단한 연애편지를 쓰는 카프카, 알마 말러에 대한 광기와도 같은 사랑에 집착하며 현대미술의 걸작 〈바람의 신부〉를 완성해가는 오스카 코코슈카, 섹스와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된 채 자기혐오에 시달리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시를 남기는 게오르크 트라클, 각기 다른 이유로 여성의 육체를 집요하게 파고든 클림트와 에곤 실레 등, 말 그대로 사랑에 살고 예술에 살며 투쟁하듯 삶을 산 예술가들의 찬란한 성취 뒤에 가려진 내밀한 인간적 면모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1913년은 미술 아카데미 입학을 거부당하고 싸구려 수채화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가던 히틀러와 한 집의 손님방에 틀어박혀 민족 문제를 연구하던 스탈린이 빈의 쇤브룬 궁전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여러 번 마주쳤을지도 모르고, 프란츠 카프카와 제임스 조이스와 로베르트 무질이 트리에스테의 한 카페에 잠시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셨을지도 모르는 해이다. 또한 스탈린이 처음으로 트로츠키와 만난 1913년 2월에 바르셀로나에서는 훗날 스탈린의 명령으로 트로츠키를 살해하게 되는 라몬 메르카데르가 태어난다. 1913년 빈에서는 유고슬라비아를 정복하는 요시프 브로즈 티토 역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했으니, 20세기의 가장 지독한 폭군이자 독재자인 세 사람이 잠시 동안 함께 있었던 셈이다. 그들이 정말 우연히 만났더라면, 혹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현대사는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 이 책의 소설적 재미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러한 가정들에서 비롯된다.

 

저자 플로리안 일리스는 1913년 당시 이 인물들의 행적을 역사적 배경까지 고려해 치밀하고 정교하게 복원한다. 그는 3년에 걸쳐 전기, 자서전, 편지, 일기, 사진, 신문 등 수많은 인물들의 방대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고 재구성하여 1913년 유럽의 한 해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되살려냈다.

 

 

작가 플로리안 일리스 소개

 

1971년 독일 헤센 주 슐리츠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본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미술사와 근대사를 공부했다. 독일의 대표 신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의 문예부 편집자로 일했고, 예술잡지 『모노폴』을 창간, 발행했으며, 유력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의 문예부장을 지냈다. 현재 베를린의 경매회사 빌라 그리제바흐Villa Grisebach의 공동 대표이사로서 19세기 예술을 담당하고 있다. 19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의 자화상을 그린 『골프 세대』(2000) 등 이전까지 펴낸 네 권의 책이 모두 합해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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