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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기미가요와 욱일기로 얼룩진 평화의 제전

[칼럼] 기미가요와 욱일기로 얼룩진 평화의 제전

 

▲영토학자 장계황 박사(한국역사영토재단 이사장). ⒞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장계황 박사] 올림픽을 평화의 제전이라 부른다. 이는 전쟁 중에서도 스포츠맨십을 중시하며 평화로 가는 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쿠베르탱이 외친 올림픽 정신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에 있다. 또한,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올림픽 정신이나 의의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올림픽의 꽃은 개막식

 

올림픽은 기간 내내 선수들이 주목을 받는 자리라면, 개폐회식은 개최국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자리이다. 평화의 제전으로 개최국의 문화와 세계를 향한 메시지를 던지는 자리로서 너무나 중요하며 개회식의 수준이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나타내기도 하다. 지난 88서울 올림픽 때도 굴렁쇠 하나로 지구촌에 감동을 주었고, 지난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는 드론을 통해 IT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88서울올림픽 때 주제가였던 ‘손에 손잡고’는 가장 훌륭한 올림픽 주제가로 선정되어 오늘날 까지 회자되고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도 많은 이들이 개회식의 웅대하고 문화강국 일본의 뭔가를 기대한 것은 사실이었다. 다름 아닌 무관중 개막식과 펜데믹으로 1년 연장을 한 올림픽이다 보니 또 다른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하게도 아무 감동도 없고 일부 언론에서는 장례식 같은 분위기였다고 평가 했다. 역대 최악을 개막식이었다고 모두가 평가 하고 있다.

 

제국주의로 향하는 일본의 꼼수

 

기대했던 개막식에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되살아났다. 개막식에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 미샤(MISIA·43)가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일본 제국주의 상징인 ‘기미가요’를 부른 것이다. 일본의 공식 국가(國歌)인 기미가요는 ‘천황의 통치시대는 천년만년 이어지리라. 돌이 큰 바위가 되고, 그 바위에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천황의 시대가 영원하기를 염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지됐지만, 1999년 일본 국가로 법제화됐고, 현재는 학교 입학식·졸업식 등에서 제창이 의무화되어있으며, 일부 일본 극우단체 회원들은 군복을 차려입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때 이 노래를 자주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민족주의자들은 일본의 전통 선율을 국가에 담았다는 것에도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이 기미가요는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이 기미가요는 독일 제국 해군 군악 군무원이던 프란츠 에케르트가 일본에 초빙되어 오쿠와 하야시의 선율에 서양식 화음을 붙여 최종적인 형태로 만들었고, 이것이 국가로 정식 승인되었다. 참고로 에케르트는 이후 대한제국의 국가인 대한제국 애국가의 작곡도 담당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는 바람에 고향인 독일 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서 사망하여 현재 합정역 인근인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다. 기미가요의 작곡가가 얄궂게도 한국에 잠든 것이다.

 

듣기만 하여도 소름 돋는다는 기미가요

 

강제 동원된 징용공들이나 성노예피해자 할머니들은 이 기미가요를 듣기만 하여도 소름이 돋는 다고 한다. 그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는 한국어로 「우리 임금님의 치세」라고도 불렀다. 당시 한반도에서도 기미가요 제창을 강요했기 때문에 그 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노인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기미가요를 들으면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 이며 좋지 않은 기억을 통해 당시를 회상한다.

 

1945년 8월 15일 NHK 라디오에서는 아나운서가 "천황 폐하께서 말씀하십니다."라고 발언한 후 이 곡이 흘러나왔고, 이후 쇼와 덴노가 전 세계를 상대로 녹음방송을 통해 전쟁종식을 선언하고, 이후 9월 2일 요코하마 항에 정박 중이던 미주리 함상에서 항복을 조인한다. 이로서 지루하던 세계 제2차 대전이 끝이 난 것이다.

 

전범국가로서 일본은 제국주의의 길을 걸을 때 1급전범인 천황을 중심으로 불렀던 기미가요를 다시 국민들에게 부르게 한다. 법률상 국가로 규정된 때는 1999년으로,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에서 정식으로 국가로 정하였다. 이 시기에 기미가요는 최초의 뜻에서 변하여 천황예찬가로 자리 잡았다. 군국주의와 결부된다는 이유로 법제화를 둘러싸고 일본 국내에서도 상당한 진통이 있었고, 오키나와 민족단체 등 현재까지도 가창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을 정도로 분란이 되는 국가이다. 일본 대학가에서도 졸업 혹은 입학 시즌이 되면 기미가요를 반대하는 대자보가 꼭 한 장씩은 붙는다. 의식 있는 일본 국민들은 지금도 반대하고 있다.

 

기미가요의 정치적 논란

 

일본의 국가로서 법률적 보호를 받고 있는 기미가요는 일본 사회에서도 양심 있는 학자들이나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의식을 가진 진보주의자들이나 지역적으로 류큐족이 중심이 되어있는 오키나와에서는 지금도 부르기를 거부하고 있다. 제국주의 찬양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동아시아권에서 인기 관리를 하고 싶은 연예인들이나 역사 쪽으로 일본에 부정적인 배경에서 태어난 연예인들(특히 오키나와 출신)은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하고 있다.

 

2005년 가수 하마사키 아유미가 아이치 엑스포 개회식에서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하고, 자신의 평화곡인 'a song is born'을 제창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고, 2008년에는 가수 각트와 아무로 나미에가 이 <기미가요> 제창 문제로 화제가 되었는데 둘 다 오키나와 출신이나 각트는 사랑의 노래라며 불렀고 아무로 나미에는 부르지 않았다. 특히나 각트가 욕먹은 이유는 오키나와가 원래 류큐왕국이라는 독립적인 국가였으나 1609년에 사츠마 번(가고시마 현)이 침략하여 속국이 되었고, 1879년에 류큐가 판적봉환을 통해 일본 영토가 되었으므로 일본 내에서도 민족분열 지역이라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반감이 한국 못지않게 높아서이다.

 

반면 오키나와 출신 외에도 동남아를 중심으로 진출 하려는 연예들은 동남이 지역이 대부분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의 제국주의 노선에 따른 피해 지역이다 보니 기미가요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에 부르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국주의의 부활?

 

일본은 현재 군대를 가질 수 없는 평화헌법을 가진 국가로서 자국의 국토만을 지키는 자위대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오마바 정부 시절 미국의 국방비 문제로 자위대가 제 3국의 진출을 허용하고 있으며, 최근들어 아베와 스가정권은 평화헌법을 무력화 시키고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다시 군사 대국의 꿈을 꾸고 있으며 제국주의의 노선을 가기 위한 행보를 뚜렷이 하도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됨으로서 종결이 되었다. 일본은 제국주의의 꿈을 거두게 되는데 최근 행보를 보면 나가사키에 있는 평화의 공원을 중심으로 전쟁 피해국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일본은 전범국이며 피해국이 아닌 가해국이 분명하다. 기미가요와 욱일기 그리고 나가사키의 평화공원은 제국주의 산물 3종 세트이다. 일본은 더 이상 주변국과 마찰을 일으키고 긴장하게 하는 기미가요를 부르는 행위를 멈추고 전범기인 욱일기 사용을 멈추어야 하며 나가사키의 평화공원을 통한 전쟁피해국의 망상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늘 불편한 이웃인 일본과 함께 하여 피곤하다.

 

覺永堂 學人

北村 장계황 / 行政學 博士 

韓國歷史領土財團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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