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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민족통일을 위한 세계관: 인내천(人乃天) 종교로

[칼럼] 민족통일을 위한 세계관: 인내천(人乃天) 종교로

[시사타임즈 =노태구 경기대 명예교수]

▲노태구 경기대 명예교수 (c)시사타임즈

. 정신의 발생에 대해 

정신의 발생을 두고 존재하는 물질은 두 가지 기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기본 특성이란 먼저 모든 존재하는 물질은 차별성을 다 가지고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사람들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던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존재하는 것은 예외없이 다 운동한다. 발전된 존재이건 저급한 존재이건 관계없이 운동하지 않는 물질은 없다는 것이다.

객관적 존재와 운동, 이것은 존재하는 세계의 공통되는 2대 특징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가 더 추구되어야 한다. 객관적이고 존재한다는 것이 왜 운동하는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운동한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밝히지 못했다. 이 운동의 원인에 관한 문제를 두고 역시 공통성을 가진다.

이 문제를 가장 발전된 존재인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만 해명할 수 있다. 가장 단순한 물질도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운동한다는 것은 비교적 밝힐 수 있는데, 그래도 이것도 가장 저급한 존재가 무엇보다 해명이 안 되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한도에서는 가장 단순한 물질, 가장 저급한 물질도 운동한다는 것(원인)을 밝히는 것은 아주 힘들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을 중심으로 할 때는 해명할 수 있다. 인간의 경우를 놓고 보면 자기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서 운동한다. 왜 먹는가? 자신의 육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먹는다. 왜 공부하는가? 자기 정신을 키우기 위해서 공부한다. 인간에 있어서는 모든 운동이 자기 존재(특징)를 보존하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는 그것이 발전 수준이 낮은 동물을 보아도, 식물을 보아서도 그렇다. 그럼 처음부터 동물이나 식물이나 인간의 구분이 있었는가? 그렇지는 않다. 지구상에도 처음에는 생명체가 나오기까지는 10억년이 걸렸다. 10억년의 진화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생명(생명체)이 나왔다. 이것이 35억년 동안 진화발전을 해서 인간이 나왔다.

 

 

. 운동은 객관적 존재성과 자기보존성이 결부되어 일어나고

발전하지 못한 물질도 운동하는 것만은 공통성을 가진다. 그렇다면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운동한다는 공통성에다 자기를 보존하려는 성질이 결합되어서 운동이 일어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아직 우리가 다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 인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현재 영화를 봐도 다 인식을 못한다. 영화는 연속되지 않은 것을 연결시켜서, 사진을 찍은 것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영화이다. 어느 정도로 간격이 좁아져야지 연속되어 보여 진다는 것을 아직도 우리의 시력으로는 모른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힘들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시계가 도는데, 어떤 시계는 척척 가지만 어떤 것은 쭉 돈다. 그럼 이는 그냥 도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역시 미세하나마 정지상태를 거쳐가는 것인데 우리의 눈으로서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많다. 빛도 번쩍하면 지구를 7바퀴 반을 도는데 그것을 볼 수는 없다. 빠르다 하는 것을 개념적으로 인식하지만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마치 우리가 모두 볼 수 있는 것만이 존재하고 볼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모든 물질에는 3가지 공통성(특징) 있다.  물질은 모든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자기 보존성을 가진다.  위의 둘이 결부되어서 운동을 한다는 것이 3가지 공통성이다.

 

발전을 위해서는 서로 다른 것이 협력하여야하고, 결합을 반대하는 성질은 투쟁으로 억제하여야 한다.

그러면 발전이란 무엇인가? 발전은 어떻게 하여 일어나는가? 각이한 성질의 존재가 결합되어서 협동, 협력할 때 발전이 일어난다. 인간에서도 발전하려면 협력하여야 한다. 협력하지 않고서는 발전이 일어날 수 없다. 모든 발전은 협조, 협력하는데서 일어난다. 이를 철저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아예 여기에 대해서는 발전이란 물질의 3가지 특징과 함께 반드시 같은 것도 좋고 다른 것도 좋고(완전히 같은 것이나 다른 것은 있을 수가 없으므로) 결합되어 협조하고 협력하는 데서만 발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발전이란 상태가 현저하게 더 높은 단계로 변화되었다는 말이다. 협력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결합을 제대로 할 수 있는가? 그러나 결합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친하자고 하면 결함이 있어서 이용하자고 하는 것으로 경계하고, 사람들도 그러한데 다른 물질도 마찬가지다. 독자적으로 자기를 유지하려는 자기보존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합되려면 결합을 반대하는 성질을 억제해야 된다. 투쟁이 필요하다. 결합을 반대하는 특징을 억제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그런데 헤겔은 전혀 이것이 없다. 헤겔은 정()이 반대를 낳고 반대이니까 포섭하고 다시 반대를 낳고 또 포섭하고 이렇게 해서 발전이 일어난다. 이것이 이다. 어떻게 해서 반()을 낳는가, 어떻게 해서 결합이 되었는가? 아무 설명이 없다.

맑스주의는 그래도 투쟁해야 된다. 그런데 이것도 투쟁이 발전을 규정하는 동력인 것처럼 생각한다. 투쟁에서는 아무런 발전이 없다. 투쟁으로 끝나서는 아무 것도 발전이 없다.

그런데 투쟁을 안 하고서는 결합되지 않으려고 하는 성질을 억제할 수 없다. 그래서 결합이 안 된다. 결합(발전)을 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 투쟁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건을 마련한 다음에는 반드시 결합돼서 협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도식화한다면 투쟁을 통해서 통일의 상태가 이루어지고 통일의 상태를 통해서 결합과 협조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 발전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것이 왜 분열되는가? 자기가 발전하려는 욕망과 현재상태가 모순되므로 분열된다. 분열되었다가 또 분열하려는 성질이 투쟁을 겪고서 통일이 된다. 통일이 되어 또 협조해야 발전한다는 것으로 된다. 이런 것은 보통 생활과는 크게 관계가 안 되기 때문에 잘 이해되지 않지만, 그러나 이것은 틀림없는 진리이기 때문에 꼭 알아야 한다.

그래서 결국은 결합되어 협조함으로써 발전이 이루어진다. 결합의 수준이 자꾸 높아 갈수록 발전의 수준이 높아진다. 처음에 지구가 생겼을 때는 결합의 수준이 높지 못했다.

변증법이란 결국은 인간중심으로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맑스주의자들이 투쟁에 관해 제기했기 때문에 '투쟁'이란 표현을 하게 된다. 원자핵과 전자가 싸운다면 맞다. 싸운다는 말을 인간에게서는 투쟁을 말하게 되는데 인간에게도, '결합' 대신에 '창조적 노력'이라는 말을 대신하지만, 이런 결합현상이 대체로 있는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에 결합, 협력, 발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제일 낫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통일(결합)을 위해 자존심(차이성의 보존)을 억제해야하는 것이 발전의 첫째조건이다. 이를 발견하는데 20년이 걸렸다.

세상에 협상(대화)가지고 되는 일이 있는가? 이는 평화주의자들의 말인데 사실은 협상을 거부하는 자들이 이런 말을 자꾸 거론한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볼 때는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동일성과 차이성의 두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일성을 보존하고 차이성을 보존하려고 하는데, 자존심이 강해서 차이성을 보존하자는 성질이 앞설 때는, 이를 억제하기 전에는 결합(통일)이 안 된다. 통일성이 앞서게 되면 결합이 된다. 그러므로 반대하는 성격을 억제하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이것이 안 되면 절대로 발전은 있을 수 없다. 결합되어 협력, 협조가 안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신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간중심철학에서 발견한 첫째가는 조건이다. 그래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일면성을 밝히게 된다.

그래서 자기보존의 수준이 강화되면 그만큼 자기를 보존하기 위한 운동능력이 강화된다. 자기를 보존하기 위한 운동의 주동성, 남을 끌어오는 능동성이 강화된다.

투쟁이 반드시 파괴는 아니다. 제한(억제)하는데 말을 안 들으니 파괴일 수는 있지만 파괴는 수단이다. 그래서 본질을 두고 지금까지는 투쟁이라는 말이 적절하다.

우리가 인생관을 세우는데 있어서도 투쟁력이 있는가 없는가, 결합할 수 있는 점이 있는가 없는가 이 두 가지다. 투쟁력이 없이 대화나 화해(양보, 소통)의 말은 모호한 개념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소통인지 소똥인지 모를 지경이다. 원칙적인 잣대가 없이 돌아다니는 말이다. 이런 말은 바깥으로 말하지 말자. 공연히 미움만 산다.

그러므로 결합이 되어 협동을 하게 되면 자기보존성이 강화되고 자기 보존성이 강화되면 운동에서 주동성과 능동성이 강화된다. 이것을 깨닫는데 20년이 걸렸다. 깨닫고 보면 간단히 보이지만 깨닫는 것이 쉽지 않다. 맑스주의도 얘기 안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물론 얘기 안했다. 왜 운동하는가를 두고 뉴턴같은 위대한 물리학자도 밝히지 못했다. 그저 만유인력이 있다고 한 것이다.

 

. 생명의 발생은 동화작용과 이화작용의 복제능력으로

그러면 운동의 주동성과 능동성이 어느 지점에 이르면 생명이 발생하는가? 주동성과 능동성이 다른 대상을 끌어당겨서 그것을 먹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소화시키게 되어 동화작용을 하여 자기 세포로 만드는 것이다. 자기 세포를 파괴하게 되면 그만큼 에너지가 나온다. 먹지 않고 자꾸 운동만 하게 되면 세포가 파괴된다. 먹지 않는데 어떻게 해서 힘이 나오는가? 자기 몸의 세포의 파괴에서 힘(에너지)이 나온다. 이를 이화작용이라고 한다.

동화작용은 자기만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후대를 키울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이것을 복제능력이라고 한다. 유전이다. 그래서 자기존재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후대를 번식시키기 위한 운동을 한다. 동화작용을 하고 자기 복제능력이 있을 때 생명(생명체)이 나왔다.

이것이 자꾸 결합하면 주동성과 능동성이 자꾸 발전된다. 주동성과 능동성을 전문적으로 관리 지휘하는 것이 신경세포. 신경세포가 불어나서 마지막에는 뇌수가 생긴다. 뇌수가 생기게 되면 자기의 생명활동을 뇌수가 관리한다. 주동적이고 능동적인 운동을 할 수 있다. 이때부터는 뇌수의 발전정도에 따라서 생명유기체의 발전수준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제일 뇌수가 발전했다. 생물학적인 견지에서 봐도 제일 발전했다. 몸무게의 1/47이 뇌수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몸무게도 혈액의 1/4 쓴다. 호흡하는 산소도 1/4 뇌수가 쓴다. 인간과 제일 가까운 존재는 침팬지인데 이는 1/130이다. 사자는 1/700이다. 사자는 힘은 세지만 원숭이보다 발전 수준이 낮은 것이다. 힘으로 말하면 소, 말을 당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인간이 발전하려면 뇌수가 자꾸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힘은 자연계에서 가져오면 쓸 수가 있다. 핵융합으로 에너지 혁명이 일어난다.

 

지금도 육체적인 힘이란 보잘 것이 없다. 육체적인 힘이란 물건을 공장에서 생산하는 데서 4%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전부가 기계를 수단으로 나온다. 동력, 공작기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제일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데서 중요한 것이 에너지혁명이다. 증기기관, 전기가 나오고 그 다음에 원자력이 나왔는데 지금은 원자력의 시초로 제대로 쓸 수 있는 단계는 못된다. 진정한 원자력혁명이 되면 핵융합을 해서 마음대로 쓰게 된다.

그러므로 다양하게 발전된 인간의 활동을 지휘하는 것이 뇌수인데 지휘하기 위해서는 처음에는 단순한 조건반사로 했다. 그 전에는 무조건 반사이다. 무조건반사가 본능이다. 갑과 을이 가까운데, 그럼에도 가깝게 가면 싫어서가 아니라도 눈을 감게 된다. 이것이 무조건 반사인 본능이다.

그런데 한번 혼이 나게 되면(뜨거운 물에 데이듯) 기억이 되어 그 다음에는 데이는 것을 미리 알게 될 때 이것이 조건 반사다. 그러면 조건이 몇 개까지 되는가? 우리한테 제일 가까운 것이 먹는 것인데 종을 치고서 먹을 것을 주면, 그 다음에는 먹는 것을 주지 않아도 침이 나온다. 그 다음에 종을 치고 불을 켜고 눈을 감고 먹이를 주었다 하면 종을 칠 때 벌써 침이 나온다. 이것이 조건반사다.

개와 같이 영리한 동물도 4개밖에 조건반사를 못한다. 동물()이 산수를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5개와 3개를 8개로 맞춘다. 이는 5 3을 더하면 8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5의 표딱지에 3의 표딱지를 결합하면 8개의 표딱지가 된다는 것을 알고 한다. 미리 종합을 한다. 인간은 25개를 조건반사를 하고, 훈련하면 100개 이상을 한다.

그래서 호주의 원주민 청년이 수 만 마리 양떼가 들어오는데 셀 줄을 모르고 가만히 있다가 한 마리가 안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감각이 발전한 것이다. 감각이 발전해서 감각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동물이 매우 발전했다. 이것을 인간이 발전시키게 되면 육감이 된다.

 

. 정신은 객관화된 사회적 의식(존재)으로 사회생활과정에서 쟁취한 것

조건반사의 발전으로 육감이 생기지만 이성을 통해 논리적 사고를 해야 한다.

육감이란 말이나 개가 한번 갔던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다. 이는 기억을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연계를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인간도 이것을 발전시키면 비상하게 발전한다. 장님은 다른 것은 못하니까 만져보고 맥을 짚는 등 감각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앞날을 내다보는 것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이성을 통해서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두뇌에서는 1초 동안에 30 km를 뛰는 것을 감각적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그리고 우주의 생성이 137억년이 된 것을 이성으로 계산해내게 된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특징들을 자꾸 연결시켜서 감각적으로 진단한다.

빛의 속도로 137억년이다. 제일 오래된 천체를 작년에 발견한 것이 지구로부터 1288천만년 전에 생겨나게 된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긴 시간을 통해 이 천체의 빛이 지구에 도달한 것이다. 그전에 생긴 것을 아직도 발견을 못하고 있다. 그것은 왜 그런가 하면 대폭발(가설)이 일어난 다음에 38만년 동안은 공간이 흐리기 때문에 빛이 복사되어 올 수가 없었다. 38억년 때부터 지구에 오니까 우주배경복사로부터 지구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다시 흐리게 되어 8억년까지는(위에서 발견한 천체까지는) 잘 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128억년 전의 빛이다.

 

정신은 언제 나왔는가? 이는 객관화된 사회적 의식으로 120년은 살 수있다.

그래서 두뇌 안에서 기억된 것을 논리적으로 연결시켜서 집도 지어보고 해서 객관화한다. 여기서 그려 본 것을 종이에 쓴다든가 하여 설계도를 만들어 객관화한다. 객관화했을 때 비로소 사회적 의식이 나온다. 혼자만 아는 것은 사회적 의식이 아니다. 두뇌에서 생각한 것을 객관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자기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집단이 다 알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 의식이다.

이때부터 정신이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 의식 사회적 정신이라 해도 괜찮다. 여기 기초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회적 의식으로 객관화해서 만든다는 것은 아주 큰 의의를 가진다. 집을 짓는 방법을 알아내어 객관화해 놓으면 다른 사람도 집짓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자동차를 만든 방법을 객관화하여 설계도를 만들어 놓으면 다른 사람도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발전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동물은 살아가는 동안 많은 경험을 한다. 자꾸 싸우다 보면 싸우는 능력이 발전한다. 유전을 통해서 싸움 잘하는 닭의 새끼가 반드시 싸움을 잘 한다고 할 수 없다. 대체로 싸움 잘 하는 닭은 그런 종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인데, 그러나 자기가 체험한 것의 몇천분의 1로서 유전자를 통해서 내려간다.

어느 생물학자가 쥐의 꼬리를 자꾸 잘랐는데도 변화가 없었는데, 그래서 유전자 조작이 성공하려면 100만년은 더 걸린다고 한다. 호랑이와 사자가 갈라진 것은 100만년 정도이다. 아프리카의 줄말과 일반 말이 갈라진 것은 100만년 전이다. 당나귀와 말이 갈라진 것도 그 정도다.

이렇게 되다 보니 인간은 한 대에서 축적한 지적 물적 재부를 대를 이어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과학적 지식, 기술자들이 만든 기계기술수단은 발견하고 만든 사람이 죽어도 유지된다. 그러므로 현실의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전 세대까지 다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하므로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와는 다른 사회적 생활을 통해서 얻은 경험을 객관화해서 자꾸 발전한다. 우리의 육체는 5천년 전이나 지금 별로 차이가 없다. 오히려 그때는 힘이 더 세었다.

수명으로 보면 피가 2 4개월에 한번씩 완전히 교체된다. 이것을 50번 하면 인간은 꿑나는데 그렇게 되면 그 계산법으로 120년 동안은 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획득한 이러한 생활력을 가졌다고 하는 의미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 창조적 능력 이것은 모두 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과정에서 쟁취한 것이다.

1923년에 인도에 캘카타, 지금의 뉴델리에서 100km정도 떨어진 곳에서 아이우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2세와 8세의 두 딸이 발견되었는데 2세 아이는 곧 죽고, 8세는 9년을 더 살았다. 나중에는 요독증으로 죽었다. 추측컨대는 키워준 대상을 모방한다. 낮에는 쉬고 밤에만 활동한다. 17세면 다 큰 처녀인데, 또 걷다가도 급하게 되면 긴다. 습관이 되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도 뇌에서 사고할 수 있는 사회적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이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통해서 축적한 사회적 의식, 사회적 재부, 이것을 계속 축적해 나간다.

그래서 물질적 힘을 두고 어느 새가 비행기만큼 빠른 것이 있는가? 바다를 나가보면 겁이날 정도로 넓다. 달은 여기서 38km밖에 안되는데, 빛의 속도로 계산하면 1.5초 걸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협력해서 발전시켜 나가게 되면 인간은 끝없이 발전한다. 인간의 발전을 방해하거나 막을 존재는 없다. 인간보다 발전된 존재가 없기 때문에 신비롭게 생각하고 숭배할 존재는 없다.

그런데 우주의 넓은데 비교하게 되면 지구는 너무 좁다. 그런데도 장마, 지진, 태풍이 불고 하는데 이것 하나 해결 못하고 있다. 100~1000년 걸리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백두산 천지도 다시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그전에 핵융합의 문제가 해결되면 억제할 수가 있다.

인간은 너무 교만하게 되지 않으면 영원히 발전할 수 있다. 200만년 정도 가면 은하계도 정복할 수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지구를 관리하고, 태양계를 관리하고, 다음에는 은하계로 나아간다. 우리가 과학적 지식으로 빨리 발전하게 된 것은 몇 백년 밖에 안 된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 인간이 발전의 주체로: 성령이란 없다

인간은 자연에서 진화되어 나왔지만, 이제는 자연까지도 발전의 책임을 지고, 우주의 발전을 책임지고 끌고 나아가는 존재다. 발전의 주체가 인간으로 바뀐다. 지금은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발전현상은 새 것이 하나도 없다. 그것보다 몇 배나 빠른 인간이 발전해 나가니, 결국은 자연이 인간을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야생닭처럼 멸종되어가는 것이 90%. 나머지도 인간이 도와주지 않으면 멸종한다. 인간은 그렇지 않고 계속 발전한다. 인간의 발전을 막을 존재가 없다. 그런데 인간이 위력한 존재라고 해서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누가 기러기 고기를 먹으면서 맛있다며 한울님이 인간을 위해 기러기 고기를 만들어주었다고 하니, 옆에 있던 아이가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데 인간은 모기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여 폭소를 자아냈다.

2백만년 후는 은하계를 지배하고 1억년 되면 대단한 넓이의 관리권을 가지게 된다. 그 때 가서는 이런 철학이 필요없다. 얘기 안해도 상식으로 된다.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쓸 필요가 있는가 하다가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하니 쓰지만 더 이상 간단히 쓸 수도 없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이 자연계에서 나왔지만 인간의 발전방책은 인간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인간이 발전을 주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세계의 발전수준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세계발전을 주도하는 존재이다.

기독교를 반대하지는 않는데 왜 자꾸 시끄럽게 세례를 받으라고 하는가. 예수님은 위대한 성현으로 알지만 성령이란 없다. 식사할 때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영혼은 우리 마음 속에 있으므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천사도 악마도 마음에 있으므로 아니 우리 마음 외에 있다고 해도 관계없다. 인간을 중심으로 종교를 만들면 어떨까?

 

내외에 알리기 위해 종교와 인간중심철학을 결합시키고자 한다. 지금의 인간의 발전수준을 보면 인간중심철학은 이해하기 힘들므로 그렇기 때문에 우선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결합시켜 보려고 한다. 그러나 결합시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불교 믿는 사람을 처음에 결합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서로 욕만 한다. 공명당을 교토대학 사람과 결합시키고자 했는데 공명당을 부화방탕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다음에 미국의 스티놀 대학(카토릭 종합대학: 김수환 추기경도 여기서 학위를 하고)의 총장을 한 모피가 찾아와서 종교에 관한 얘기를 했다. 강원룡 목사에게도 말한 적이 있다. 주체사상신봉자가 된다고 하여 경력을 알아보니 중국에 가서 19년 동안 신부생활을 했다. 그래서 중국식 외교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중국인은 어디 가든지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배우러 왔다고 한다. 종교통일만 해도 큰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종교를 인간중심종교로 만들면 어떤가? 동학천도교가 그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종교개혁이란 처음에 나온 것은 목사들, 신부들, 성직자들이 마음대로 면죄부도 팔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권한을 가져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데서 기인했다.

 

. 인간중심의 종교로 세계의 발전을: 신곡(神曲)과 인곡(人曲)

신곡(神曲)과 인곡(人曲)은 인본주의사상과 결부되어있다.

르네상스시기에 자본주의가 차차 나오면서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정당한 일을 한 사람은 정당한 보수를 받게 된다고 한 것이 단테의 신곡이다. 지옥으로부터 연옥을 거쳐서 천당으로 올라가는데 안내하는 사람이 데리고 가는데, 현실에서 잘 한 사람은 천당에 가서 대우를 잘 받고, 나쁜 짓 한 사람은 지옥에 가서 고통을 받고, 말하자면 이렇게 해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 자신이 행동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처음에 읽게 되면 그저 지옥이오, 연옥이고 천당 말만 나오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데, 실제 실정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뒤에 나온 사람이 보카치오다. 데카메론을 썼다. 이는 승려들의 나쁜 짓을 노골적으로 쓴 것이다. 그래서 단테의 것을 '신곡(神曲)'이라 하고 보카치오는 '인곡(人曲)'이라고 한다.

교단의 폐해에 대해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515년부터 16세기에 일어난 것이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 한울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 모든 신도들이 동등하다. 승려들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1차 종교개혁의 기본사상이다. 인본주의사상을 도입한 것이다. 루터, 칼빈 등이 인본주의 사상을 종교에 결부시킨 것이다. 영국에서는 종교혁명이 곧 자본주의혁명으로 되었다.

미국이 제일 봉건적인 사상의 영향이 적은 것이, 종교개혁을 할 때 몰려온 사람들이다. 그 때문에 신교계통이 많다. 이후에는 신교와 구교가 싸우면서 비슷비슷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한울님도 좋고 성령도 좋고 다 인정하고 반대는 없는데 성서에 있다시피 사람이 땅과 바다를 지배하기 위해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잘 개척해나가는데 도와주는 것이 한울님이면 종교의 내용을 "하나님 아버지시여, 하나님 아버지시여"하며 자꾸 기도를 드릴 것이 아니라 위의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으로 해석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악마와 타협하는 일은 없는가 하고 물으면 답변을 못하는데 악마는 우리 개인의 마음 속에도 있는데 이것은 결국 집단적 존재로서 하는 것은 이다. 자기 개인만 생각하는 것이 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수행을 안 하면 악이 살아나고, 잘 수행하게 되면 선이 살아난다. 선한 사람이란 사실 한울님같이 얼마나 고상한가. 악한 사람이란 짐승보다 더 악하다. 한번 웃는 데서도 교활하게 웃어서 남을 속이자고 하고, 칼을 품고서도 자꾸 친하자고 한다. 동물은 거짓말을 못한다. 그러나 인간은 온갖 나쁜 일을 다 저지른다. 조선민족이 영리하여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 지도자를 잘못 만나 고통을 받고 있다.

 

동물은 그렇게 하는 일이 없다. 인간이 악하려면 동물보다 더 악해지고 선하려면 한울님같이 선한 존재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속에 한울님도 있고 악마도 있다. 그래서 악마와는 싸워야 된다. 선한 사람을 도와서 인간의 운명개척을 하는 방향으로 종교를 개혁하자. 이제 한번만 더 종교를 개혁해 놓으면 그 다음에는 세계가 통일된다. 세계가 통일되면 그런데 대한 의문이 없어진다. 이것은 정말로 종교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감투를 쓰고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 돈벌이나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의미에서 참 힘든 일이다.

결론은 인간이 이렇게 발전한 다음부터는 인간중심으로 해서 세계가 발전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전 우주가 인간화 되어가는 방향으로 발전한다. 이것이 인간이 발생하기 이전과는 다른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세계관이다. 이론물리학자와 물질에 관해 얘기하니까 대가들은 1년 동안은 공부하여야 한다며 관심을 가진다.

 

 

. 동학·천도교: 인내천(人乃天)의 새로운 통일 세계관

인간중심의 새로운 종교를 세계관으로 하여 세계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동학 인내천(人乃天)의 새로운 세계관에서 천(, 한울)은 인간이 지켜야 할 도()이다.

지금 현재상태에서는 종교개혁을 한번 더 해서 종교가 인간을 위한 종교로서 개혁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제일 가까운 것이 천도교이다. 예수교인들은 낙후한 종교라고 야유한다. 일신관(유일신관)적 사고이다. 지금은 범신관을 넘어 범재신관(pan-en-theism)의 시대이다.

또 신관(장생관)에 대해 말해 보면, 죽은 물건은 하나도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모든 것이 장생한다는 것이다. 죽은 것이 없으니까 모든 것이 운동한다는 것이다. 여천합일(與天合一) 생생무궁(生生無窮)토록 인생은 장생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이상 완전한 신관이 어디 있겠는가?

또 인격신과 절대신의 차이는 인격신은 하나님이 내다보면서 저 놈 나쁜 놈이다, 벌을 줘라. 동화에는 다 그렇게 되어 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격신이다.

캐나다, 미국에 있는 퀘이커종교는 인격신을 인정 안 한다. 인격신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신이라고 하는 것은 스피노자도 인정했다. 그런 것은 다 이론적으로 봐서 절대적인 어떤 존재가 있다고 봐서 신이 나온 것이다. 헤겔도 인격신을 인정 안 했다. 헤겔은 신학을 하다가 철학으로 돌아은 사람이다.

그래서 천도교에서 인격신으로 인내천(人乃天)이란 좋은 구호를 내놓고 5가지 종지(宗旨) 표방하고 있다.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현실적인 구호인데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어째서 '한울'이라고 하는 것을 신격화하는지 모르겠다. 공자(유교)는 그것을 안 했다. 이런 면에서 공자는 위대하다.

안회가 죽었을 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했다"고 했을 때의 하늘()은 인간의 도리를 말한다. "조문도(朝聞道)이면 석사가의(夕死可矣)"라고 했을 때 '()'란 것도 인간이 지켜야 할 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상의 인간중심철학에 기초한 인내천(人乃天)의 새로운 세계관(종교관)으로하여 남북의 유심, 유물의 양 세계관을 변증법적으로 통섭하게 되면 비로소 우리가 염원하는 평화통일을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노태구 경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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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구 경기대 명예교수 damah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