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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예/문화·일반연애

‘풀무질’, 생각하는 삶에 인문학의 열정을 불어넣다

‘풀무질’, 생각하는 삶에 인문학의 열정을 불어넣다

 

[시사타임즈 = 독서르네상스운동 청년기자단 2기_강북(强BOOK) 김종현·조민지]  

이번 인터뷰는 성균관대학교 앞 전통 인문사회과학 책방 ‘풀무질’의 은종복 대표님을 모시고 진행하였습니다. 대표님께서 1993년 4월1일 만우절부터 책방을 시작하여, 올해로 벌써 23년이 되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서 ‘풀무질’이 기억하는 예전 대학생들의 모습들과 대표님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서점 ‘풀무질’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책방을 맡게 된 건 1993년이지만, 책방이 처음에 생긴 건 1985년이에요. 그 당시 80년대 초에 대학교 앞에 책방이 하나, 둘씩 생겼어요. 1980년에 광주에서 항쟁이 있었죠.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전두환하고 그 주변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었어요. 그러면서 당시에 진보의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보통 세 가지 일을 했어요.

 

하나는 출판사를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인문사회과학 출판사. 그리고 또 하나는 이런 인문사회과학 서점을 만든 거예요. 마지막 하나는 그때부터 깨어있는 사람들이 생태평화 운동을 시작했어요. 나중에 1989년 지나면서 동구권 공산주의, 소련의 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그 뒤로는 귀농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평화활동가들이 많아졌어요.

 

그 당시에 서울이나 지방의 주요 대학들마다 근처에 인문학 서점들이 자리를 잡았고 성균관대학교에는 여기 말고도 인문학 책방이 두 개나 더 있었어요. ‘논장’이라는 곳과 ‘변증법’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변증법’은 90년대 초에 학생들이 화염병을 던져서 전소되어 버렸고 ‘논장’도 10년 넘게 있다가 없어지고 ‘풀무질’만 남았죠. 그리고 서울대학교 앞에도 몇 개의 서점이 있다가 ‘그날이 오면’만 남았고. 그래서 전통적인 인문사회과학 책방은 남은 게 둘 밖에 없다고 봐야 될 거예요. 다른 서점들도 생겼었는데 그건 그 뒤에 생긴 인문학 책방들이에요.

 

그리고 우리 서점 이름이 왜 ‘풀무질’이냐. 좀 독특하잖아요. 서울대 앞 ‘그날이 오면’도 그렇긴 하지만. 목공소에서 담금질 할 때 화로에 바람을 불어 넣는 거. 그 이름이 순 우리말로 풀무거든요. 또 당시에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회지 이름이 풀무질이었어요. 지금은 없어졌는데 그 처음의 뜻은 뭐냐 하면 ‘군화 발에 맞서서 불 바람을 일으킨다’는 저항의 뜻을 담고 있었죠.

풀무질 이름이 그런 속뜻이 있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에 맞게 책방을 꾸리지 못하고 있어요. 동구권이 몰락하고 나서 이데올로기가 휘청거리고, 농촌으로 내려가고 평화 운동을 하고 목숨 걸고 싸우자는 게 줄어들었죠. 개량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큰 타격으로 학생들이 사용하는 전자책방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학생들이 문자매체 보다는 영상매체에 점점 더 가까워졌죠. 그러면서 뒤집어진 거예요. 그 전에는 팔지 않았던 대학교 교재나 자격시험 관련 서적을 팔기 시작하게 되었죠. 예전에는 우리 책방에서 인문사회과학 책들이 팔리는 비율이 전체 매출에서 70~80%가 넘었는데, 이제는 15~20% 정도 밖에 안되는 게 현재 상황이에요.

 

▶ 80~90년대가 대학가 서점의 전성기였다고 들었습니다. 그 당시의 재미난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97년도에 감옥에 간 적이 있었어요.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판매죄. 어떤 책을 팔았냐면 『전태일 평전』 뭐 이런 책들. 그런데 이게 일반 시중 매장에 다 있는 책들이에요. 그때가 김영삼 정권 말기였는데 그것도 하필 잡혀간 날이 4월 15일이었어요. 김일성 태어난 날. 그 날 열두시에 여기 ‘풀무질’하고 서울대 ‘그 날’하고 고대 ‘장백’ 대표들 세 사람이 동시에 잡혀갔어요. 그래서 서울구치소에서 한 달 동안 감옥살이하고 남영동에 경찰청 대공분실에도 끌려갔다가 나오고…. 대학 다닐 때에도 데모를 그렇게 했지만 유치장에는 몇 번 갔었어도 감옥은 안 갔었거든요.

 

한 달 정도는 가볼 만했어요. 거기 잡범들하고 같이 있었는데 그 때가 조정래의 『아리랑』이라는 책이 처음 나올 때였어요. 감옥에서 12권을 다 받았는데, 잡범들이 저한테 그런 책을 본다고 빨갱이라고 욕을 하더라고요. 이승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하냐니까 이승만을 국부라고 칭찬을 하고 그랬었는데, 제가 없는 사이에 ‘아리랑’을 그 사람들이 서로 돌려가면서 읽은 거예요. ‘아리랑’에 보면 일제 강점기에 이승만이 우리나라 막 수탈하는 부분이 나오거든요. 그렇게 읽고는 그 사람들이 이제는 이승만 욕을 하기 시작하는거에요. 그 때 문학의 힘이 되게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았어요.

 

그리고 91년도에 성균관대학교 김귀정이라는 사람이 대한극장에서 데모를 하다가 군화발에 질식사를 당했어요. 그래서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은 해마다 5월에 대한극장하고 시신이 있었던 백병원, 명동성당까지 추모 행진을 해요. 지금은 추모 집회가 그렇게 크지 않은데 그 당시 초창기에는 몇 만 명씩 모이고 그랬어요. 얼마나 많이 모이냐면 추모 두 번째 해에는 12열 종대로 사람들이 가는데 첫 열이 광화문 입구 지나가는데 뒤에가 아직 남아있을 정도로 한 5만 명 이상이 그렇게 모였었어요.

 

성대 학생들이 그 집회를 참석하려고 하니까 멀잖아요. 그래서 가방을 책방에 던져놓고 바로 추모행렬에 참석하는 거예요. 그런데 가방이 한 두 개가 아니야. 길 건너에 예전 서점 위치에 있었을 때 이었는데, 책장 사이 공간에 가방이 수백 개가 있었어요. 저녁 6시쯤 끝나고 돌아와서 학생들이 가방을 찾아가는데 가방이 서로 비슷하니까 대여섯 명씩 바꿔간 거예요. 그리고는 술 마시다가 그 다음날에 가져오고 그랬지만, 결국은 서로 다 찾아가고. 그런 재미난 일이 있었죠.

 

 

▶ 그때에는 학생들도 많이 보고 서점하시는 게 의미있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지금은 이런 얘기 하는 게 참 웃기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학생들이 공부를 좀 했어요. 제가 책방을 열었던 93년도부터 한 4년 정도 말이에요. 그때는 손전화기도 없고, 삐삐가 막 나올 때였거든요. 그래서 언제 어디서 모임을 한다거나 책 선물은 예를 들면 『태백산맥』을 주겠다는 걸 여기 책방 창문에 종이로 붙여주고 그랬어요. 그리고 학생들이 자기 후배들 우르르 데리고 와서 책방을 알려주는 거예요. 여기는 책만 사는 곳이 아니라 선배들하고 좋은 얘기도 하고 책도 좋은 책 받아가는 곳이라고 소개를 해주고. 그러면서 책을 사는데 책장 한 줄 이 만큼을 다 달라고 해서 다 계산했죠. 그렇게 책을 사갔어요. 여기 있는 책은 고를 필요 없다는 거예요. ‘풀무질’에 있는 책은 다 좋은 책이니까.

 

 

▶ 좋은 책을 고르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계셨던 건가요?

 

 

우리가 인문사회과학 책방이다 보니까. 인문사회과학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와의 직거래가 많아요. 100군데가 넘어요. 그러니까 좋은 책들이 계속 들어오는 거예요. 제가 책을 고르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이렇게 출판사에서 책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는 한겨레 신문에 책 소식이 나오면 거기서 서점에 없는 것들을 주문을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학생들이 주문을 하는 책이 제가 처음 들어보는 책이라고 하면 그걸 꼭 두 권씩 주문을 해서 맞춰놨죠. 그러니까 항상 시중에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학생들이 읽었으면 좋은 책들을 서가에 맞춰 놓게 되는 거죠.

 

영화도 보고 책도 볼 수 있는 문화상품권이나 도서상품권이 그때도 있었는데,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은 ‘풀무질’에서만 쓸 수 있는 도서 교환권을 사갔어요. 지금도 있어요. 근데 지금은 잘 안 사려고 하지. 아무튼 5천원이든 만원이든 원하는 데로 만들어 줬었고, 대동제 할 때나 책 선물을 할 때 주로 사갔어요. ‘풀무질’ 도장을 찍어주고 유통기한 같은 건 없었죠. 그래서 학생들이 그걸로 책을 사게끔 했었고 학생들이 행사를 하면 우리가 스폰서도 해줬었는데 꼭 적어놨어요. ‘교재 이외의 책을 살 수 있음.’ 그렇게 항상 교양서적을 많이 읽게 해줬죠. 그래서 선배들이 ‘풀무질’에 와서 책을 사라는 그런 전통이 있었어요. 그리고 책 선물도 많이 했었고.

 

 

▶ 요즘에는 책 선물이 되게 어려운 것으로 인식이 되고 있는데

 

그렇죠. 그게 책을 안 읽어서 그런 거예요. 그때는 책을 많이 읽으니까 늘 책 선물을 했어요. 채광석이라든가 아니면 이규배 같은 성대 출신 시인들의 시집이 있었어요. 그런 책들은 하루에 열권씩 스무 권씩도 나갔었죠. 그래서 생일이나 기뻐할 날 있으면 한 아름씩 가져가고 어떤 애들은 그걸 못 가져가서 책방에다가 다시 맡겨 놓고 그랬어요. 그날 저녁에 술 마셔야 되니까.

 

책 선물 이야기하다 보니 생각난 이야기가, 어느 날 군대 간 아들이 휴가를 나온다고 연락이 온 거에요. 그래서 어머니가 오랜만에 아들 방 청소를 했어요. 근데 서가를 치우는데 풀무질이라는 같은 이름의 책이 한 사오십 권이 넘게 있는 거야. 그래서 애가 집에 돌아오니까 어머니가 “얘야 풀무질 시리즈는 언제 끝나니” 이랬다는 거예요. 그 아들이 와가지고 이야기를 해줘서 많이 웃었는데, 왜냐하면 그때는 대부분의 책에 풀무질 껍데기를 싸줬었거든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는 책이 진보와 세상을 바꾸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기관 사람들이 못 보게 하려는 게 있었고, 그리고 또 하나는 깨끗이 보고 다른 사람 선물해 주기 위해서였죠.

 

대학가 서점마다 그게 껍데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책 포장할 때 완전히 뒤집어서 포장하지만, 그때 포장할 때는 책을 펼쳐볼 수 있게끔 했어요. 지금도 가끔 싸달라는 사람이 있는데, 포장해가려고 싸달라는 거예요. 선물하려고.

 

 

▶ 대학생들이 인문과학서적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을 때 쯤 일본에 카미카제 특공대가 있었잖아요. 비행기를 타고 미국 함대를 들이 받는 자살특공대. 그런데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동경제국대 출신의 공부 잘하는 똑똑한 사람들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그 당시 경성제국대 출신 사람들 몇 명 있었고. 근데 그게 제대로 된 게 아니잖아요. 완전히 잘못된 거잖아. 그리고 독일 나치의 SS 친위대 알죠? SS 친위대는 히틀러의 바로 밑에 있는 군대인데 아주 똑똑한 사람만 뽑아요. 게르만 중에서도 게르만의 게르만들. 공부 잘하고 잘생기고 그런 사람들만 뽑았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무슨 짓을 했어요? 아주 끔찍한 학살을 했잖아요.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것과 슬기로운 것 하고는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 변호사 시험, 공인회계사 등등 이런 거 똑똑한 친구들이 하는 거는 맞아요. 영어 수학 잘 해야 돼. 그런데 슬기로운 것 하고는 다른 것이더라고요. 달라요. 왜 인문학 책을 읽어야 하냐면 예전에 플라톤이 『국가』에서 그런 말을 했어요. 좋은 물건을 만들고 세상을 고치고 개발하는 것은 공학도들이 해야 하지만, 그걸 왜 해야 하는가는 시인이나 철인이 해야 한다고. 그래서 철인정치가 나온 거예요. 저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슬기로움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서점을 운영하시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시게 되었나요?

 

 

큰 책방이나 인터넷 책방은 우리 책방하고는 달라요. 기본적인 것은 책을 사는 게 맞죠. 큰 책방에선 돈을 주면 원하는 책을 받고, 인터넷 책방으로는 책을 싸게 편리하게 받을 수 있고. 하지만 우리 책방은 학생이 어떤 책을 사면 이 책을 왜 사니 저번에는 책을 읽었니 대화하고, 그리고 같이 밥도 먹고 게다가 주말에는 한 잔 하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책방에서 책이라는 것을 통해서 어떤 다른 활동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모여보자. 그리고 그 모인 사람들이 또 다른 것들도 해보자. 이렇게 된 거예요.

 

인터뷰 끝나고 서점 안쪽 공간을 청소할 건데, 여기 지금 청소하는 것도 전부 자원활동 해주시는 거예요. 여기다가 이제 ‘풀무질 나눔 가게’라는 걸 만들 건데 그게 뭐냐 하면 각자 본인들한테는 필요 없지만 다른 이에게는 필요한 그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가져다 놓고 서로 물물 교환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동네 아이들이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을 팔수도 있고, 그리고 집에 안보는 책들을 꽃아 놓고 서로 바꿔볼 수도 있는 그런 나눔 가게를 할 거거든요. 두세 달 뒤에는 완성되어 있을 거예요.

 

모임을 연 지는 이제 3년째가 되어 가는데, 제가 책을 내면서 책에다가 여기 책방 자주 오시는 사람들의 글들을 실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왜 다른 데에서는 책모임을 하자는데 여기서는 하지 않느냐는 소리를 듣고 모임을 하게 되었고. 저희 형이 소설 모임을 먼저 하자고 했어요. 그리고 소설을 하다 보니까 왜 시는 안하냐, 철학도 하자, 고전도 하자, 녹색 평론하자 이런 식으로 막 늘어난 거예요. 가장 최근에 생긴 거는 와인 모임. 술 한 잔 하자는 건데 제일 잘 돼.

 

그리고 이따가 협동조합을 구경할 텐데 거기에 가서는 제가 항상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요. 제가 가진 꿈 중에 하나가 온 세상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펴는 세상을 만들자는 거거든요.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바로 어른들이 행복한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이 동네 아이들이 여기 와서 책도 읽고 옛 이야기도 듣고 뭐 그림도 그리고 집에서 힘들었던 것을 풀기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대부분 손전화기 많이 하는데, 그래도 이런 모임을 하게 되면 책도 읽고 하더라고요.

 

▶ 대표님의 꿈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누가 제게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보면 저는 항상 세 가지를 이야기해요. 하나는 제 얼굴이 맑고 밝아지는 것이고,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것, 그리고 온 세상 아이들에게 환한 웃음꽃이 펴는 것.

 

제가 요즘 들어 얼굴이 무지 삭았는데 이유가 몇 가지 있어요. 첫째로 책방 매출이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전자책방도 생기고 책도 덜 보고 그리고 책을 사더라도 큰 책방에서 사잖아요. 두 번째는 그래도 이 책방을 지키면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팔았으면 제가 떳떳할 텐데 그보다는 수험서나 대학 교재를 팔고 있으니까 마음이 아픈 거예요. 하지만 제 얼굴이 맑고 밝아져야지 제 느낌이 이렇게 퍼지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 하고 있죠.

 

온 세상 아이들에게 환한 웃음꽃이 피려면 돈에 눈먼 세상을 없애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책방에 생각하는 책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잘 지켜야겠다는 꿈을 꾸고 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단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평화로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무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무기를 없애야 하고 그런 것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그런 단체에 후원을 하고 있어요.

 

 

▶ 독서르네상스운동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3가지만 얘기할게요. 첫째는 내가 책방을 하면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그런 삶을 살도록 하는 것에 독서르네상스운동이 무언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가 요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생각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드물어요. 제가 읽은 책 중에서 좋은 책 하나가 고병권 선생님의 『생각한다는 것』이에요. 이 책에서 생각하는 삶이란 모두가 옳다고 얘기를 했을 때에도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어야 생각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런 말이 있어요. '이웃을 사랑하려거든 너의 먼 이웃을 사랑하라.’ 이건 예수가 했던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을 다르게 한 것이거든요. 니체가 딴지를 건 거예요. 네 이웃만을 사랑하게 되면 멀리 있는 이웃은 나 몰라라 하게 된다는 거죠. 지금 세상이 그래요. 저번에 프랑스 기자들 12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같은 날 예멘에서 사람이 2000명이 죽었다는 것은 모르죠.

 

두 번째는 책방을 살리는 운동보다 먼저 작은 도서관을 세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이 동네만 하더라도 사람들이 손쉽게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없어요.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아니면 정독도서관 정도가 있고 마을 도서관에는 책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성대 도서관은 재학생 밖에 들어갈 수가 없고 정독도서관은 멀어요. 도서관이라는 건 걸어서 5분 10분 거리에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작은 도서관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도서관 만들기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세 번째는 제가 <한겨레>에 쓴 내용인데, 저는 지역 주민들이 꼭 그 지역 책방을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들은 다 그렇게 하고 있어요. 일본도 그렇고 독일도 그렇고. 지역 주민들이 지역 서점을 이용하도록 하면 서점이 늘어날 거 아니에요.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좋으면 책방에서 책을 사게 될 것이고요.

 

지지난해에 외대 독일어과 학생이 해준 얘기가 있었어요. 자기가 독일 뮌헨대학교에 한 학기 연수를 가서 놀랐던 것이, 책을 사려고 학교 앞 서점을 갔는데 책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는데 창이 하나 뜨더니 “당신이 사는 곳에는 동네책방이 있으니 인터넷 주문이 안 됩니다 동네책방에서 주문하시면 다음 날 받을 수 있습니다.” 라고 써있다는 거예요. 독일에서는 동네 책방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 거죠. 인터넷 주문은 책방이 없는 시골에서나 가능하고 책값은 정가에 택배비도 부담하도록 되어있어요.

 

뮌헨대학교 앞에는 서점과 헌책방이 대여섯 개씩 있어요. 다 정가로 판매하는데 대신 책값이 싸요. 도서관에 들어가는 책은 하드보드로 해서 5만원씩 하는데, 일반 책들은 우리나라 돈으로 만원 안팎에 나와요. 그리고 서점들이 각 분야별로 나뉘어져 있어요. 여기는 문화기술 전문서점 다른 곳은 정치경제서점 이런 식으로 되어 있고 서점 주인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들인 거예요. 그게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는 것이죠.

 

 

▶ 마지막으로 인생의 책 세 권을 뽑아주신다면 어떤 책인가요.

 

 

첫 번째는 먼저 얘기했었던 고병권 선생님의 『생각한다는 것』 이에요.

 

두 번째로 『우리들의 하느님』은 나온 지 10년 정도가 되었고 권정생 선생님께서는 돌아가신지 7년쯤 되었어요. 이분께서 생각하는 교회는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따로 목사가 있지 않더라도 아픔을 나누는 작은 공동체였어요. 지금은 목사가 강연을 잘 하고 돈을 많이 벌게 해주면 거길 가잖아요. 여기서는 그런 게 아니고 60~70년대 교회는 어려운 사람들끼리도 서로 남은 쌀이나 장작배기를 가져오고 아픔을 나누고 그랬었거든요. 저는 이런 분들이 시인이라고 생각을 해요.

 

선생님, 당신께서는 신장결핵을 앓으셔서 평생 오줌보를 차고 다니셨어요. 선생님은 자기가 몸이 튼튼하면 사랑하는 사람이랑 혼례를 치러서 작은 텃밭을 일구면서 살고 싶다고 하셨어요.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 어린이 문학계에서 좋은 책을 많이 쓰셨는데, 이름난 운동 같은 것은 하지 않으셨죠. 저는 이분의 뜻처럼 사는 것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마지막은 님 웨일즈의 『아리랑』입니다. 이 책은 님 웨일즈라는 미국 사람이 김산이라는 한국 사람을 만나서 취재하면서 쓴 책이에요. 이분이 그 당시 1930년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해방을 위해 혁명운동을 하였었는데 이름이 16개였어요. 한국 공산당이 힘이 없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을 했었고, 해방을 목적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자기 신분을 속여야 했기 때문이에요. 결국은 동료들의 모함에 의해서 처형당하는데 1983년에 중국에서 복권이 됐어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는 게 그 당시에 목숨 바쳐서 싸웠던 혁명가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지금의 잘못된, 거꾸로 된 애국심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바쳐서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마음을 배울 수가 있죠. 꼭 한 번 읽어봐요.

 

풀무질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2가 142-1

 

독서르네상스운동 청년기자단 2기_강북(强BOOK)

취 재 : 조민지 (서울여대 경영학과)

기 사 : 김종현 (연세대전 기전자공학)

사진촬영 : 김종현, 조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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