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엄무환 칼럼]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엄무환 칼럼]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



▲엄무환 국장 ⒞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엄무환 국장] 신약성경 요한복음 8장 12절~13절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바리새인들이 가로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거하니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예수님 당시 유대나라 종교지도자들(바리새인)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을 믿는 것과 믿지 않음이 얼마나 큰 차별성을 나타내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 믿음과 믿지 않음의 삶은 분명히 다릅니다. 저의 경우를 볼 때 제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실은 제 삶에서도 확연하게 증명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제 삶이 어두움에 속하지 않고 빛에 속한 삶이라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즉 제가 어두움인 죄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삶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죄를 범하게 되면 성령님께서 즉시 경고의 사이렌을 울립니다. 그러면 너무너무 마음이 불편합니다. 아니 혹여나 하나님께서 나를 멀리하실까봐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빛 가운데 거하면 마음이 하늘을 날아가는 새처럼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대로 자유함을 만끽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쁨이 충만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제 삶을 통해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이야말로 제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삶이 예수 믿음의 삶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예수님은 자신이 빛이시라고 언급하신 후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란 예수님과의 연합된 삶으로 어떠한 환난에도 굴하지 않고 영원토록 예수님을 뒤따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여기엔 예수님의 성품이 나의 내면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삶을 내포합니다. 그리되면 성령님께서 내 삶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이끌어내시고 온전히 진리의 빛 가운데서 거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이 삶을 가리켜 성경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인도된 삶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어두움이 아니라 빛에 거한 삶을 살게 되면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달처럼 내 삶을 통해 생명의 빛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반사되기 마련입니다. 내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빛이시라는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네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도다”라고 말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 대목을 원어로 살펴보면 “너의 증언은 참되지 않다”입니다. 왜 이렇게 말했느냐하면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어떤 일의 진실성을 밝히려면 반드시 두 사람의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율법이 오실 메시야를 예표하는 것이며 이미 이 땅에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한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즉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진리요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함으로 인해 예수님이 마치 거짓을 일삼는 자로 규정지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는 엄청난 죄를 짓게 되었고 그 죄로 인해 자신들은 물론이요 후대들까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개인의 삶과 한 국가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빛에 거한 삶을 살았는가 어두움에 속한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평가임을 알게 됩니다. 빛에 거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명한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두움에 속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임하는 증거들이 나타납니다.

 

앗수르 군대에 의한 북 이스라엘의 멸망, 바벨론 군대에 의한 남 유다의 멸망, 그리고 AD 70년에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어간 수십만 명의 유대인들과 로마의 군대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된 예루살렘의 역사는 어두움을 선택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어두움을 선택하면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지금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국 교회 안의 교인들 간의 분쟁은 빛과 어두움의 싸움입니다. 즉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어두움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치열한 영적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통해 빛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초래하는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삶을 통해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지 않는다면 이 또한 무서운 심판을 예고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는 곳마다 빛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비쳐지고 있는가. 다시 말해서 나를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영혼들이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나의 존재됨은 오직 빛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어두움에 속한 영혼들이 생명의 빛으로 나오게 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삶의 본질입니다. 이 삶을 살아내야만 합니다. 그래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내 삶을 보고 빛 가운데로 나오고 싶은 열망과 도전을 받게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삶을 다음세대에 물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유산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이는 빛에 거한 삶을 사는 사람은 반드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빛과 어두움이 치열하게 싸우는 삶의 현장에서 내 삶은 지금 어디에 속해 있으며, 내 삶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무엇인지를 점검해야만 할 것입니다.

 

빛에 거한 삶의 특징 중 하나가 어두움의 세력들에게 비난과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삶이 복된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태복음 5장 10절~12절)

 

빛에 거한 삶을 살아가기가 점점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순교적 삶을 요구하는 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으로도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미세먼지가 온 땅을 덮을수록 상쾌하고 맑은 공기가 그렇게 갈망될 수 없듯이 어두움이 이 땅을 덮으면 덮을수록 빛에 거한 사람들은 빛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내 목숨을 내어놓는 일이 있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빛과 어두움이 확연하게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신앙고백이 새삼 가슴에 사무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인류 역사를 통해 언제나 존재해온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은 오늘도 진행형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 전쟁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전쟁의 결론이 다음과 같다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천 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요한계시록 20장)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장)

 

내 삶은 빛에 거한 삶입니까 어두움에 속한 삶입니까.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엄무환 국장 hwan2778@timesi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