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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18)] 84. 푸에르토 리코(Puerto Rico)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18)] 84. 푸에르토 리코(Puerto Rico)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스페인이 16세기에 건설한 Castillo San Felipe del Morro 요새 (c)시사타임즈
▲푸에르토 리코 지도 (c)시사타임즈
▲< 국기 > 빨강은 피, 흰색은 승리와 평화, 파랑은 하늘과 바다를 의미함. 별은 나라를, 삼각형은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의미. < 국장 > 중앙에 녹색 바탕에 신의 양이 책 위에 앉아 있으며, 아래 문장은 ‘John is his name’이란 뜻으로 존은 세례요한임.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푸에르토리코 자유연합주는 카리브 해에 있는 미국의 자치령 섬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동쪽, 버진 제도의 서쪽에 위치하며 쿠바, 히스파니올라 섬, 자메이카보다 작다. '부유한 항구'라는 뜻이며 수도는 산후안이다. 주민은 스페인계 백인이 중심이며, 원주민과의 혼혈 및 영국계 백인, 약간의 흑인과 미국인이 있다. 2012년 11월 6일에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미국의 주로 편입하기를 원한다는 것에 61%가 찬성하였으나,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The Commonwealth of Puerto Rico is an unincorporated territory of USA, in the northeastern Caribbean, between Dominican Republic and Virgin Islands, being the smallest of the Greater Antilles. It enjoys a tropical climate. Originally populated by indigenous aboriginal peoples known as Taínos, it was claimed by Christopher Columbus for Spain during his second voyage on November 19, 1493. Under Spanish rule, the indigenous population was forced into slavery and wiped out. On December 11, 2012, Puerto Rico's Legislature passed a resolution to request to President and U.S. Congress action on the Nov 6, 2012 plebiscite results of 'Being one state of US.'

 

1. 국명(Country) : 푸에르토리코 (Commonwealth of Puerto Rico)

2. 수도(Capital) : 산후안 (San Juan)

3. 면적(territory) : 9,104㎢

4. 인구(Population) : 330만명

5. 국민소득(GNI) : US$3만불

6. 언어(Language) : 스페인어(Spanish), 영어(English)

7. 독립일(Independence) : 1899.4.11

 

▲El Morro Castle, San Juan (c)시사타임즈

풍요의 항구, 푸에르토리코

 

카리브제도 한 가운데

북은 물결치는 대서양

남은 남청빛 카리브 해

좌는 도미니카 우는 처녀 섬

 

동서가 오백 리 남북이 백오십리

푼타산 높이 솟아

50개 강 거느렸네

 

1493년 콜럼버스 2차 항해 때

이 섬 처음 찾아와

내가 찾던 지상 낙원

바로 이곳 아닌가?

 

꽃피는 산하 아름답구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노라

세례요한이여 이 섬을 그대에게 바치노니

천국의 길 인도하소서

 

장엄하다 엘모로 6층 요새

풍요로운 항구 굳게 지켜라

중남미 모두 내줘도

스페인 끝가지 여길 지켰네

 

1898년, 미서 한판 붙나

싱겁다 스페인

미국에 넘겨주네.

 

히비스커스 피어나는 풍요로운 땅

지켜라 푸른 바다 파란 하늘을

누려라 이 승리와 이 평화를

 

푸에르토리코 앞길 어디로 가나

푸에르토리코공화국

아니면

USA 51번 째 푸에르토리코 주?

 

Rich Port, Puerto Rico

 

In the just center of the Caribbean Islands

Waving Atlantic to the north

Deep blue Caribbean Sea to the south

Dominica to the left, Virgin Islands to the right

 

180km east to west, 70km south to north

Cerro de Punts so high being 1339m

From there flow 50 rivers and streams

 

On Nov 19, 1493 during his 2nd voyage

Columbus firstly came here

Exclaimed joyfully

This is the very place that we've searched for.

 

How beautiful this land full of flowers

Repent, for heaven kingdom is near.

Baptist John, we'll dedicate this land to you

Please, lead us the way to heaven.

 

How majestic, six leveled Fort El Morro

Defend firmly puerto rico

Giving up the whole Americas

Spain has defended the land to the end

 

In 1898, America and Spain went to war?

How poor, Spain

Spain easily handed this island to America

 

Rich soil full of blooming Hibiscuses

Defend the blue sea and sky

Enjoy the victory and peace

What future will Puert Rico wait for

Republic of Puerto Rico

Or

Puerto Rico State, USA?

 

1. 푸에르토 리코 약사

 

(콜럼버스 도착 이전)

 

최초로 알려진 정착민들은 남아메리카 본토에서 4천년 전에 온 수렵 민족인 오르토이로인들이다. 기원전 430년과 기원전 250년 사이에 살라드인들이 남아메리카에서 푸에르토리코로 이동해 오르토이로인들을 몰아냈다. 120년과 400년 사이에 오리노코강 유역에서 이그네리인들이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했다. 7세기와 11세기 사이에 타이노 문화가 형성됐고, 콜럼버스가 도착할 당시 약 3만 명에서 6만 명의 타이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의 지도자는 아귀에이바나 1세였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지도자가 이끄는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고, 주로 남자들은 수렵을 하고 여자들은 카사바와 과일들을 채집했다. 이는 콜럼버스가 1493년에 도착할 때까지 이루어졌다.

 

(스페인 제국 통치)

 

1493년 11월 19일에 콜럼버스가 제2차 항해에서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했을 때 섬에는 타이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1508년 8월 8일에 후안 폰세 데 레온은 오늘날의 과이나보 부근에 첫 정착촌을 건설했고, 그 뒤 푸에르토리코의 첫 번째 총독이 됐다.

 

16세기 초에 스페인 제국은 푸에르토리코를 식민화하기 시작했다. 타이노 원주민들은 엔코미엔다에 따라 몇 년 동안 강제 노동에 투입됐고, 노동과 유럽 이주민들이 옮겨 온 전염병으로 많은 원주민들이 죽었다. 스페인 제국은 줄어든 원주민 노동력을 채우고자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들여왔지만 상업 이윤이 줄어들면서 노예들의 수도 줄어들었다. 대규모의 설탕 플랜테이션으로 대서양 노예 무역에 투자할 자본을 형성했다.

 

1797년 4월 17일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랄프 애버크롬비가 이끄는 함대가 최대 13,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푸에르토리코를 침공했다. 애버크롬비의 병력과 스페인 제국의 병력 모두 큰 손실을 입었고, 4월 30일에 애버크롬비는 공격을 멈추고 산후안에서 퇴각했다.

 

노예들은 몇 년에 걸쳐 작은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 가운데 1821년에 마르코스 시오로가 주도한 반란은 주목을 받았고 오늘날까지 민간 설화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스페인 제국 총독부의 엄한 박해 아래에 놓여 있던 푸에르토리코에서 19세기 초에 들어서 독립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페르난도 7세는 칙령을 반포하고 주로 스페인인으로 이루어진 45만 명의 이주민들을 푸에르토리코로 보내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미국 통치)

 

1894년에 스페인 제국은 푸에르토리코와 쿠바를 1억 6천만 달러에 매각하라는 미국의 제안을 거절했다. 1894년부터 미국 해군참모대학교는 스페인 제국과의 전쟁에 대비해 비상 계획을 짜고 있었다. 1898년에 미국-스페인 전쟁이 일어나자 미군 병력은 7월 25일에 푸에르토리코에 상륙했다.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난 뒤 스페인 제국은 푸에르토리코와 필리핀, 괌을 미국에게 양도했다.

 

미국과 푸에르토리코는 오랫동안 이어지는 메트로폴리스-식민지 관계를 맺었다. 20세기 초에 미국은 푸에르토리코에서 군정을 펼쳤고 미국의 대통령이 행정관을 포함한 관리들을 임명했다. 1900년에 만들어진 포러커 법에 따라 푸에르토리코에 민간 정부가 들어섰다. 행정관과 상원 의원은 미국의 대통령이 임명했지만 하원 의원은 선거로 뽑았다.

 

1947년에 처음으로 행정관을 선거로 뽑았고, 1948년에 루이스 무뇨스 마린이 처음으로 민선 행정관으로 올랐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빠른 산업화가 일어났다.

 

(푸에르토 리코의 앞날)

 

<푸에르토리코의 지위에 관한 3번의 국민투표 (미국의 주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투표>

 

1차 (1967.7.23.) : 찬성 40% (부결)

2차 (2012.11.6.) : 찬성 61% (가결 그러나 미국 의회 미승인)

3차 (2017. 6.11) : 찬성 97%(가결, 그러나 미국 의회 미승인)

 

(미국은 푸에르토 리코를 자국의 주로 받아들이는데 따른 재정부담 등을 고려한 국내여론 때문에 미국의회가 미승인하고 있으나, 적 당한 시기가 무르익으면 미국의 영토로 받아들일 것으로 국제사회 는 예상하고 있음)

 

2. 푸에르토 리코 풍경

 

나는 아이티에서 처음 1년은 단신 부임하여 근무했으나, 1년 후에 아내가 합류하였다. 그래서 휴가를 얻어 아내와 함께 카리브해 쿠르즈(사랑의 유람선)를 타고 9일 동안 카리브해 9국을 순례하였다. 첫 번째 방문국이 푸에르토 리코였다. 쿠르즈 여행은 밤에는 배를 타고 이동하여, 어느 나라에 이르면 오전 9시부터 배에서 하선(물론 배에 남아 소일하는 것도 자유. 배는 12층 짜리 5성 호텔보다 더 좋은 시설이 있음) 하여 그 나라를 여행하고, 오후 6시까지만 승선하면 된다. 카리브해 섬나라들은 우리나라 강화도만한 크기이기 때문에 하루 여행해도 일주 여행과 중요 포인트를 다 관람할 수 있었다. 어느 나라를 가나 코발트빛 바다와 파란 하늘 그리고 서구 열강들이 구축한 요새들이 있었다.

 

▲동남부 해변 (c)시사타임즈
▲타이노족 전통 집 (c)시사타임즈
▲슈가 프랜테이션 그림 (c)시사타임즈
▲산 후안 (c)시사타임즈
▲Ponce에 있는 1873년 노예해방 기념탑 (c)시사타임즈

 

 

(85번째 나라 버진 아일랜드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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