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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28)] 93. 칠레(Chile)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28)] 93. 칠레(Chile)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칠레 Conguillío National Park의 Araucaria araucana 나무 (c)시사타임즈
▲칠레 지도와 위치 (c)시사타임즈
▲< 국기 > 별은 발전과 영광, 청색은 하늘과 태평양, 백색은 눈 덮인 안데스산맥, 적색은 독립을 위해 흘린 피를 상징. < 국장 > 방패는 청색과 적색, 별이 그려져 있고, 안데스 사슴과 안데스 콘도르가 방패를 지지하고 있음.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칠레 공화국은 태평양과 안데스 산맥 사이에 길게 뻗어 남북으로는 가장 긴 국가이다. 길이 약 4300km, 폭 약 175km의 형태로 다양한 기후를 보인다. 북쪽에 아타카마 사막이 있고, 중앙부에 지중해성 기후, 남쪽에는 눈이 많고 피오르, 빙하, 호수가 있는 서안 해양성 기후이다. 북부의 사막에는 광물 자원 특히 구리가 풍부하다. 중앙부 지역은 인구와 농업자원이 많아 경제를 주도한다. 남부는 숲이 울창하고 화산과 호수가 많다. 남쪽 해안은 피오르드와 운하, 복잡한 반도와 섬이 있다. 네루다 등 노벨문학상 시인 2명을 낳았다.

 

The Republic of Chile is in South America of a long strip of land between the Andes and the Pacific. The northern desert contains many minerals, principally copper. The central area, dominating in population and farming, is cultural and political center. Southern Chile is rich in forest and grazing land, and features a string of volcanoes and lakes. Southern coast is a labyrinth of fjords, canals, peninsulas and islands. Before the Spanish in 16th century, northern and central Chile was under Inca. It declared its independence from Spain on 12 Feb 1818. Chile won Pacific War (1879–83) against Peru and Bolivia.

 

▲Parinacota Volcano (c)시사타임즈

1. 국명(Country) : 칠레 (Republic of Chile)

2. 수도(Capital) : 산티아고 (Santiago)

3. 면적(Territory) : 756,096㎢

4. 인구(Population) : 1,850만명

5. 국민소득(GNI) : US$13,800불

6. 언어(Language) : 스페인어 (Spanish)

7. 독립일(Independence) : 1810.9.18

 

날씨 와인 미인의 나라, 칠레

 

동에는 안데스 서에는 태평양

남북으로 만이천리 동서로 사백리

날씬한 자태 세계 제일이로다

 

북에는 아타카마 사막, 보석들이 숨어 있고

비옥한 중앙평야, 사람들이 모여 사네

남에는 호수 빙하 피오르드 아름답다.

 

슬프다 잉카제국 마푸체인

스페인에 무너졌네

 

통쾌하다 마이푸 전투

오이긴스 장군 만만세

마르띤 장군도 고맙소

 

푸른 하늘 아래 미소 짓는 여인아

하얀 안데스 마냥 바라보는 시인아

한잔 와인에 별천지를 노래하자

 

바라보자 저 은별, 명예와 진보

부르자 힘차게

조국의 찬가

 

우리는 그 무엇도 극복하리라

이성으로 안 되면 힘으로라도…

 

세계의 친구들아

나가자 내일을 향해

칠레와 함께~~~

 

Land of Weather, Wine and Woman, Chile

 

Andes to the east, the Pacific to the west

4600km between south-north, 175km between east-west

How slender, best figure in the world

 

Atcama in the north, how many jewels you hide

Central rich land, how many people you accomodate

Lakes, glaciers and Fjords in the south, how beautiful you are

 

Alas, Inca Empire and Mapuceians

They were conquered by Spain

 

How thrilling and delightful, the Maipu Battle

Hurrah, General O'Higgins

Thank you, General San Martin from Argentine

 

Hey, Lass smiling against the blue sky

Hey, Lad poet watching white Andes intently

Let's dream and sing utopia over a glass of wine

 

Let's watch that silver star, honor and progress

Let's sing, energetically, our national hymn

 

We will overcome whatever it is.

By reason at first, by force next!

 

Hey, Friends of the world

Let's head for tomorrow

Together with Chile~~~

 

1. 칠레 약사

 

10,000여 년 전, 토착 아메리카인 이주자들이 오늘날 칠레의 해안 지역과 비옥한 계곡에 정착했다. 한때 잉카인들은 현재 칠레 북부까지 진출한 바 있으나, 그곳의 마푸체인들은 국가 조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잉카 제국의 침략을 수차례 잘 막아냈고, 잉카의 칠레 정복은 마울레 강에서 끝났다.

 

1520년, 세계 일주를 한 페르디난드 마젤란은 남아메리카 대륙 최남단에 그의 이름을 딴 마젤란 해협을 발견했다. 다음으로 칠레에 도착한 유럽인은 디에고 데 알마그로와 그의 스페인 정복자 무리로,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영토 분쟁을 일으킨 뒤 그는 1535년 금을 찾기 위해 페루에서 왔다. 그는 "칠레의 발견자"로 여겨지나 이 땅은 마푸체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본격적인 칠레 정복은 1540년에 시작돼,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부관 페드로 데 발다비아가 이끌었다. 이들은 찾던 많은 금과 은을 찾진 못했으나 칠레 중부 계곡이 농사 짓기 좋은 곳임을 알게 되었으며 칠레는 페루 부왕령의 일부가 됐다. 칠레는 페루와 더불어 아메리카 대륙 중에서도 매우 많은 상비군이 주둔해 스페인의 재산을 지키는 지역이었다.

 

간헐적인 전쟁이 계속되다가, 1817년 칠레의 애국자 베르나르도 오이긴스와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의 영웅 호세 데 산 마르틴이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를 해방시켰다. 1818년 2월 12일 칠레는 오이긴스의 지도 아래 독립 공화국을 선포했다.

 

19세기 말엽 산티아고 정부는 아라우카니아 병합 당시 마푸체인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하면서 남쪽 지역도 장악했다.1881년 칠레는 아르헨티나와 조약을 맺어 마젤란 해협에 대한 칠레의 영유권을 확정했다. 태평양 전쟁으로 페루와 볼리비아와 싸워 칠레는 볼리비아를 내륙으로 밀어내고 거의 국토의 1/3 넓이의 새 북쪽 땅을 얻었다. 또한 칠레가 볼리비아로 부터 점령한 영토(아타카마 사막)에는 초석이 풍부하여 칠레의 번영에 기여했다. 1891년 대통령과 의회의 권력 분배를 놓고 일어난 칠레 내전이 일어났고, 칠레는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이루게 되었다.

 

1964년 기독교 민주당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가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선출돼 주요 개혁 정책을 폈다. "자유하의 혁명"을 슬로건으로 프레이 정부는 사회 경제 정책, 그 중 특히 교육, 주택, 그리고 농업 노동자의 조합화 등 농업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1967년 프레이는 좌우파 양측의 반대에 부딪혔다. 좌파에서는 그의 정책이 불충분하다고 보았고, 우파가 보기에는 너무 과도하다고 본 것이다. 프레이 정부 임기 말에 그는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으나 기독교 민주당이 당초 바라본 목표를 완수하지는 못했다.

 

1970년, 칠레 공산당 후보인 파블로 네루다와 단일화를 이룬 인민연합 후보 살바도르 아옌데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 곧바로 사회 제도 개혁에 착수하였다. 아옌데 대통령은 자본가들이 독점한 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함으로써 극심한 빈부의 격차문제를 해소하고자 했다. 또한 미국 광산 회사 아나콘다가 소유한 추키카마타 구리 광산을 국유화하여 외국계 기업들에 의한 국부 유출을 막고자 하였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미 정부는 국제 구리 값을 폭락 시키고 칠레 경제는 공황을 겪게 된다. 또한 미국 CIA에서는 세계최초로 사회주의 정권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들어선 것에 대해 위기감을 느껴 아옌데를 제거하기 위한 공작을 폈다. 하지만 칠레 국민들은 사회개혁을 실천한 아옌데에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칠레군은 공군 장성 출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필두로 쿠데타를 일으키자 피노체트 군에 저항했으나 결국 자결했다. 정권을 탈취한 피노체트 및 장성들은 훈타라고 불리는 삼인 체제를 설립하고 곧 피노체트의 독재가 시작된다. 피노체트는 16년간의 군부독재기간동안 정치적 반대자들을 학살, 고문등의 국가범죄로 탄압했다. 현재 칠레정부에 의해 밝혀진 피노체트 군부독재정권당시 인권침해피해자는 피살자 3,197명(실종자 1,197명포함), 고문피해자 만여 명이며, 군부독재정권 치하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사람은 10만여 명이나 된다. 의회가 폐쇄되고, 그의 말 한마디가 없으면 나뭇잎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고 피노체트 자신이 말할 정도로 심각한 독재로 인해 칠레 국민들은 고통받았다. 그러나 집권 첫 해의 경제 혼란에도 불구하고 피노체트 집권기에는 평균적으로 경제가 성장하여 라틴아메리카의 평균 경제 성장율을 웃돌았다.

 

1989년 민주화 운동의 압력을 받아 치루어진 선거에서 패배한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은 물러났다. 이는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아가면서 진행된 민주화 운동의 성과였다. 1989년부터 2009년까지 민주주의를 위한 정당 협력체 소속 기독교민주당과 사회당이 연립정권 형식으로 집권했다. 2010년 대선에서 야권 보수 후보 세바스티안 피녜라가 당선되어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으나, 2014년 3월 11일 미첼 바첼레트가 재선되었고, 현재는 집권 여당인 칠레 사회당이 정권을 재창출 하였다.

 

미겔 후안 세바스티안 피녜라 에체니케(Miguel Juan Sebastián Piñera Echenique)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대통령을 지냈고, 2017년 대선에서 알레한드로 기이에르를 누르고 당선되어, 4년 만에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2019년 세계시민상(Global Citizen Award)을 수상했다.

 

2. 칠레 풍경

 

▲수도 Santiago (c)시사타임즈
▲Concepción (c)시사타임즈
▲Valparaíso (c)시사타임즈
▲La Serena (c)시사타임즈
▲Plomo Lake의 Nef Glacier 빙하 (c)시사타임즈

 

 

(94번 째 나라 볼리비아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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