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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30)] 95. 브라질(Brazil)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30)] 95. 브라질(Brazil)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Christ the Redeemer(c)시사타임즈
▲브라질 지도와 위치 (c)시사타임즈
▲< 국기 > 녹, 황색은 합스부르크왕조의 색깔. 푸른 하늘의 27개의 별은 리우데 자네이로에서 1889년 11월15일 본 별자리. < 국장 > 왼쪽에는 커피, 오른쪽에는 담배가 그려져 있고, 중앙에는 남십자성, 원 주변에는 27개의 별이 그려짐.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브라질은 남미대륙의 절반을 차지하는 광대한 국가로 칠레와 에콰도르를 제외한 남미 모든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백인(47%), 혼혈인종(43%), 흑인(7.6%) 및 기타 동양계 이민으로 다인종 국가이다. 미주 대륙에서 유일하게 1500년부터 1822년까지 포르투갈 지배를 받아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첫 수도는 사우바도르, 두 번째 리우데자네이루였으나, 해안에 집중된 인구를 내륙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1960년부터 브라질리아가 수도가 되었다. 북부는 아마존 강이 흐르는 세계 최대의 열대우림지대로 아마존 고원, 남부에는 브라질 고원이다. 환경 파괴에 의한 아마존강 유역의 사막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삼바의 본고장으로 축구강국이며 천연자원 부국이다.

 

The Federative Republic of Brazil is the largest in South America and the world's fifth largest country. It borders all South American countries except Ecuador and Chile. Brazil was a colony of Portugal from the landing of Pedro Álvares Cabral in 1500 until 1815, when it was elevated to the rank of kingdom. The colonial bond was broken in 1808, when the capital of the Portuguese empire was transferred from Lisbon to Rio de Janeiro, after Napoleon invaded Portugal.

 

1. 국명(Country) : 브라질 (Federative Republic of Brazil)

2. 수도(Capital) : 브라질리아 (Brasilia)

3. 면적(Territory) : 8,515,767㎢

4. 인구(Population) : 2억1천만

5. 국민소득(GNI) : US$8,000불

6. 언어(Language) : 포르투갈어 (Portuguese)

7. 독립일(Independence) : 1822.9.7

 

▲Rio de Janeiro (c)시사타임즈

삼바의 나라, 브라질

 

진정한 십자가에서 성 십자가로

그리고 빨간 나무 파우 브라질

 

남미 대륙의 반

칠레 에콰도르 빼고 모든 남미 나라와

국경을 접했네.

 

아마존강 넘실넘실 이만리

내륙 적시고

대서양에 흐른다

 

아마존 열대우림 아프면 세계가 헐떡인다

지구의 허파

 

지구는 하나다

인류도 하나다

 

북을 울려라 두둥둥 둥-

삼바춤이 현란하다

세계가 열광한다

 

건각 교각 다 모여라 2014 브라질 월드컵

세계의 젊은이 다 모여라 2016 리오 올림픽

 

질서와 진보로 응원하자!

오르뎀 에 프로그레소!

Ordem e Progresso!

 

 

Land of Samba, Brazil

 

From Vera Cruz to Santa Cruz

Next to Red Pau Tree

Your name is Brazil

 

Almost half of all South America

It neighbors to All South American countries

Except Chile and Ecuador.

 

River Amazon full of water

Watering the inland

Flows 8000km to the South Atlantic

 

If Amazon Forest pains, so do we all on the earth severely

Coz it is Lung of the Earth

 

The earth being one,

So is humankind.

 

Beat drums, dudungdung dung-

How brilliant Samba dances are!

All the global villages are excited.

 

All strong and artful feet in the world, gather at the 2014 Brazil World Cup

All the youths in the world, gather at the 2016 Rio Summer Olympic Games

 

Let's cheer them with order n progress

Shout for Ordem e Progresso!!!

 

1. 브라질 약사

 

‘브라질’이라는 이름은 브라질나무에서 비롯하였다. 브라질나무는 붉은 색 염료로 쓰이는 나무로, ‘불타는 숯처럼 붉은 나무’라는 뜻의 ‘파우 브라질(pau-brasil)’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지역에서 브라질나무를 활발하게 수출하면서 유럽에서는 이 지역을 ‘브라질의 땅(Terra do Brasil, 타오르는 불꽃)’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처음 1500년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상륙했을 때에는 남미 대륙 일부가 아니라 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베라크루즈 (진정한 십자가) 섬"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마누엘 1세 시대에 "산타크루스(성스러운 십자가)의 땅"으로 개명되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브라질’이라는 이름을 선호했고, 16세기에 브라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브라질 최초의 주민은 BC 11,000년에 베링 해를 건너서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그들은 기원전 8000년경 현재 브라질의 영역에 도달하였다. 현재 브라질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잉카의 권위는 여기까지 미치지 않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원시적인 농경을 영위했다. 이후 유럽인들이 인디오라고 부른 투피-과라니계 원주민들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16세기 전반기에는 이러한 원주민들이 해안 지역에만 100만명에서 200만명으로 살고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1500년에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한 이후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다른 남북 아메리카 대륙과 다른 역사를 걷게 되었다.

 

초기 브라질에서는 기독교도로 개종한 이들에 의해 파우 브라질의 수출이 주요 산업이 되었으며, 이 때문에 처음에 베라크루즈 섬으로 불렸던 브라질은 16세기에 들어서 브라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549년에 프랑스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초대 브라질 총독으로 토메 데 수자가 사우바도르에 부임했다.

 

한편, 파우 브라질이 고갈된 이후 새로운 산업으로 북동부에 마데이라 제도에서 사탕수수가 도입되어 엔제뇨(설탕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력으로 먼저 인디오가 노예화된 후 인디오의 수가 부족하자 서부와 앙골라, 모잠비크에서 흑인 노예가 대량으로 유입되어 포르투갈 농장주의 파젠다(농장)에서 혹사를 당했다.

 

브라질 내륙의 탐험은 상파울루의 반데이란테(노예사냥 탐험대)에 의해 17세기에 시작되었다. 반데이란테는 각지에 원정하여 현재 도시의 기반이 되는 마을을 많이 세웠지만, 남부와 파라과이까지 원정하여 예수회가 보호되고 있던 과라니 사람을 노예로 잡아갔다. 이런 가운데 힘든 강제노동에 참다못한 흑인 노예 중에는 브라질 오지로 도망쳐 주거지를 형성한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주거지들을 ‘모캄보’나 ‘킬롬보’라고 불렀고, 이곳에서 아프리카 흑인들뿐만 아니라 인디오 원주민들도 있었다.

 

이후 18세기에는 미나스제라이스에서 금광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골드 러시가 일어나, 브라질의 중심이 북동부에서 남서부로 이동하여 1763년 리우데자네이루가 식민지의 수도가 되었다. 금광은 18세기 동안에 무려 30만 명의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로 이주하였고,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 더 많은 흑인 노예가 유입되었다. 한편 미나스의 중심지가 되었던 오루프레투(Ouro Preto)에서는 독창적인 바로크 문화가 번창했다.

 

이후 아이티 혁명의 영향을 받아 크리올 백인이나 물라토, 크레올 흑인(크레올로)에 의한 독립 운동이 진행되지만, 식민지 시대에 브라질에 대학이 설립되지 않은 등 지적 환경의 부족은 브라질의 독립 운동을 주도한 일부 지식인의 "음모"에 머물렀고, 대중적인 기반을 가진 "혁명"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는 브라질과 이스파노 아메리카 국가 독립의 정체성 차이에 큰 영향을 주었다.

 

반도 전쟁은 1807년 장 주노(Jean-Andoche Junot) 원수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포르투갈을 침공하면서 발발하였다. 이 때문에 포르투갈 왕가는 리스본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천도하였고, 이후 리우의 개발이 진행되었다. 1815년 리우데자네이로는 브라질과 포르투갈 및 알가르베 연합 왕국의 수도로 결정되었다.

 

1820년 포르투갈을 자유주의적인 입헌군주국으로 변혁하려는 혁명이 일어나자, 리우데자네이루의 주앙 6세가 귀국을 요청했다. 1821년 포르투갈 왕궁은 리스본으로 귀환했지만, 섭정으로 잔류한 브라간사 왕가의 황태자 페드루를 죠제 보니파시오를 대표하는 브라질인 세력이 지지하여, 1822년 9월 7일에 페드루는 황제인 페드루 1세(재위 1823-1831)에 즉위하여 브라질 제국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따라서 제정 시대는 처음부터 각 지방의 중앙정부에 대한 반란과 공화제를 요구하는 자유주의자의 반란이 일어났다. 1820년대 북동부 페르남부쿠주에서는 적도 연맹의 반란이 일어났고, 최남단의 시스플라티나 주에서는 오리엔탈 주의 리오데라플라타 연합주 복귀를 요구한 33명의 오리엔탈 주 사람이 잠입하여 시스플라티나 주를 둘러싸고 시스플라티나 전쟁이 발발했다. 시스플라티나 주는 영국의 중재에 의해 1828년에 우루과이 오리엔탈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1864년에 파라과이의 시스코 소라노 로페즈 대통령은 브라질에 선전포고하여 파라과이 전쟁이 일어났지만, 카시아스 공이 이끄는 브라질 제국이 주체가 된 삼국동맹군은 파라과이를 격파했다.

 

1889년에 일어난 공화제 혁명으로 브라질 제국은 공화제로 전환되었다. 이 시기에는 카페 콩 레이치(Café com leite: 밀크커피)라고 불렸던 커피재배가 주된 산업인 상파울루주와 목축업을 기반으로한 미나스제라이스주가 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관행이 생겼다. 1908년에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일본인 이민자들이 유입되었다. 1919년에 열린 파리강화 회의에서 일본이 제출한 인종차별 철폐 방안에 찬성하는 등 인종차별 철폐에 적극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으로 참전한 후, 1920년대에는 카페 콩 레이치 체제에 대한 비판이 높아져,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를 비롯한 테넨테(청년 장교)들이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켜 했다. 이 테넨치즈모가 직접 국정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1930년대의 정치 상황을 마련하게 했다.

 

1942년에 바르가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 연합국의 일원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했지만, 독재 체제에 대한 불만이 국민과 군 내부에서 강해져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5년 10월 13일 군사 쿠데타로 실각했다.

 

1946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된 이후 1950년 브라질 최초의 민주 선거를 통해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두 번째 집권한 바르가스는 파시즘 색상보다 좌파 포퓰리즘 색깔을 내세워 브라질 경제의 국민화가 진행되었지만, 군의 저항으로 바르가스는 1954년에 자살했다. 1956년 취임한 쥬세리노 쿠비세키 대통령은 “50년 발전을 5년에”라는 공약을 내걸고 개발 정책을 추진하여, 내륙의 고이아스 주에 새로운 수도 브라질리아를 건설한 후 1960년 리루데자네이로에서 수도를 옮겨왔다. 그러나 이 개발 정책으로 발생한 부채가 재정을 압박하여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었다.

 

1964년 쿠데타를 일으킨 카스텔루 브랑쿠 장군은 군사 독재 체제를 확립하고, 친미반공 정책과 외국 자본의 도입을 중심으로 한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군정의 시대는 "브라질의 기적"이라고 했을 정도의 고도 경제 성장이 가능했지만, 1973년 오일쇼크 이후 경제 성장은 추락하고, 소득 격차의 증가로 인해 범죄 발생 비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또한 군사 정권에 의한 인권 침해도 큰 문제가 되었다. 그동안 각지에서 카를로스 마리게라의 민족해방행동(ALN)과 10월 8일 혁명운동 등 도시 게릴라가 무장 투쟁을 전개하여 외국대사를 납치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친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1985년에 민정 이양을 하고 문민 정권이 부활했지만, 탄크레두 네베스가 급사했기 때문에 부통령이었던 조제 사르네이가 대통령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확대로 인해 경제는 악화되었고, 사르네이 정권은 국내에서 큰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라울 알폰신 정권 하의 아르헨티나와의 관계가 이 시기에 크게 개선되었고, 오랫동안 계속된 양국의 적대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2018년 선거에서 결선 투표 끝에 노동자당의 페르난두 아다지가 사회자유당의 자이르 보우소나루에게 패배하여 낙선을 하였고 이로써 브라질의 도널드 트럼프라고 불리는 극우 후보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당선이 되어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 브라질에서

 

우리 일행 4명(박민서 부부와 아내)은 브라질 남쪽 끝에 위치한 이과수 폭포를 구경하고 비행기를 1사간 반 타고 대서양 연안도시 리우 데 자네이로에 도착했다. 리우 데 자네이로는 포르투칼어로 ‘1월의 강’이라는 뜻인데 16세기 초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 1454~1512)가 처음 이곳에 상륙한 것이 1월이었고 파도 없이 깊숙이 들어온 만을 강이라 생각하고 붙인 이름이다.

 

우리 일행 4명은 먼저 리우의 랜드 마크인 예수 구세주상을 보러 올라갔다. 그곳은 이미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계단 하나 올라갈 때 마다 다르게 전개되는 리우 데 자네이로의 시가지는 대서양의 파도와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를 넘어 온통 천상의 그림이었다. 역시 리우 데 자네이로는 세계 3대 미항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혀도 손색이 없었다. 이태리의 나폴리나 호주의 시드니 그리고 캐나다의 뱅쿠버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통영항이나 여수항도 그에 버금간다고 생각하였으나 리우 데 자네이로는 이들과 비교를 뛰어 넘었다.

 

세계 신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그리스도 상은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1931년 코파카바나 해변 맞은편에 위치한 해발 710미터의 코르코바도 산 정상에 건설되었다. 하단부의 작은 성당 위에 조각상을 설치했는데 산 정상에 세워지는 것을 감안해 머리의 면류관과 두 팔이 피뢰침 역할을 하도록 했으며 양 손바닥에 예수의 고난을 의미하는 못 자국을 조각했다. 이 거대한 작품은 프랑스에서 제작된 다음 리우로 옮겨 조립한 것이다. 프랑스의 조각가 폴 란도프스키가 디자인한 높이 38미터, 양팔을 벌린 길이 28미터, 손바닥 크기만도 3미터, 무게 1145톤의 거대한 조각상이다. 주름진 성의(聖衣) 자락 위로 활짝 펼쳐 든 팔은 하늘을 향하지도 땅을 향하지도 않았고, 얼굴은 백인 같기도 하고 인디오의 같기도 한 묘하게 융합된 모습이었다. 하여튼 리우를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리우 하면 코파카바나 해변, 이파네마 해변, 예수 구세주상과 더불어 빵지 아스카르(빵산)를 빼놓을 수 없다. 빵산에 오르려면 네 개의 케이블 카를 갈아 탄다, 어디에서든지 내려다보는 리우의 전경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특히 야경은 천국도 이보다 휘황하고 더 아름다울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 4명은 아침부터 빵산에 올라 밤 늦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경치를 즐겼다.

 

원래 카니발은 금욕 기간인 사순절을 앞두고 즐기는 축제를 말하는데 리우 카니발은 매년 2월 말부터 3월 초 토요일 밤에서 수요일 새벽 4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축제가 열린다. 리우 카니발은 포르투갈에서 브라질로 건너온 사람들의 사순절 축제와, 아프리카 노예들의 전통 타악기 연주와 춤이 합쳐져서 생겨났다. 1930년대 초반까지는 보통의 거리축제에 지나지 않았는데 카니발을 위한 삼바학교들이 설립되고 학교별로 퍼레이드를 펼치면서 지금과 같은 세계 최대규모의 축제로 발전했다. 브라질 사람들은 리우 카니발이 끝나자마자 다음해의 카니발을 준비한다. 매년 화려한 의상과 독창적인 장식, 춤과 율동을 선보이는 것을 보면 브라질 사람들의 축제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브라질 사람들이 카니발을 기다리며 1년을 산다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리우에서 심야버스로 4시간을 이동하여 브라질 최대의 도시 상파울로에 새벽에 도착했다. 먼저 십자가형 도시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Se 성당을 찾아갔다. 성당 앞 광장에는 2-3십m 높이의 야자수가 줄지어 바람에 흔들려 여유로웠으나, 거지들이 너무 많았고, 그들은 뜨거운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광장은 소변냄새가 진동했다. 아무튼 이 성당은 1589년에 시작하여 1913년부터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해 1954년에야 완공됐다. 돔 색깔과 색이 바랜 하늘색 지붕이 상파울루의 하늘과 잘 어울렸다.

 

상파울루는 거지와 총과 헬리콥터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교통체증을 피하려 부자들은 헬기택시를 이용할 정도다, 인구 천이백만 명의 거대도시 상파울루는 하늘도 교통체증이 생길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한 도시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다섯 번 째로 크고 남미대륙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광활한 나라이어서 아마존 열대림 등 볼 거리가 매우 많은데, 여행일정이 짧아 우리는 이과수 폭포, 리우 데 자네이로 그리고 사도 바울의 도시 상파울로로 만족해야 했다. 지금 브라질은 코로나19로 특히 고생하고 있는데,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2016 리우 올림픽으로 세계를 열광시키기도 했다.

 

참조 1. (아름다운 세계) : https://youtu.be/76dMor10LL0

2. (브라질) : https://m.youtube.com/watch?v=3235fg3VU1k

3. (KOICA와 평화마라토너) : https://youtu.be/t0BR3hnENfw

 

3. 브라질 풍경

 

▲Chapada Diamantina 국립공원 (c)시사타임즈
▲(위에서부터) 대통령 집무실, 국회 의사당, 연방최고법원, 외교부 청사 (c)시사타임즈
▲Lear’s Macaw 앵무새와 Golden Lion Tamarin 원숭이 (c)시사타임즈
▲(위에서부터) Iguaz 폭포, 아마존 열대 우림지, 생태계 보고 (c)시사타임즈
▲(위에서부터) Devil’s Throat at Iguas Fall with two beauties shot by DJ MS Park,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에서 박민서와 2011.7, 이과수 폭포 보트 관람, 이과수 폭포 전경, 이과수 폭포 (c)시사타임즈
▲상파울로 Se 성당 (c)시사타임즈

 

 

 

 

(96번째 나라 아르헨티나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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