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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33)] 98. 우루과이(Uruguay)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133)] 98. 우루과이(Uruguay)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1회 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던 9만명 수용의 Estadio Centenario 경기장우루과이가 아르헨티나를 승리(4:2)하고 초대 챔피언 등극, Montevideo, 1930.7.30.). ⒞시사타임즈
▲(우루과이 지도), (우루과이 위치). ⒞시사타임즈
▲< 국기 >백색 바탕에 파랑과 백색으로 구성된 9개의 가로 줄무늬와 좌상에는 16줄기의 햇살을 가진 5월의 태양이 있다. < 국장 > 천칭은 평등과 정의, 성곽은 역량, 말은 자유, 황소는 풍요를, 월계수 가지와 올리브 가지는 명예와 평화. ⒞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우루과이 동방공화국(Pública Oriental del Uruguay)은 남아메리카 남동부에 있는 공화국이다. 우루과이강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국명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남서쪽에는 라플라타 강의 하류와 맞닿아 있어 강 사이로 아르헨티나와 만나며, 남동쪽 해안에는 대서양이 있다. 원래 시스플라티나 주라는 이름으로 브라질의 속주였던 우루과이는 1825~1828년 사이 3년간 브라질 제국을 상대로 저항했고, 아르헨티나의 도움을 받아 독립 전쟁을 통해 독립을 얻었다. 농업이 GDP의 10%이다. 부패가 적은 나라이며, 정치적/노동 조건도 이 대륙에서 가장 자유롭다. 인구의 94.6%가 유럽계이다.

 

The Oriental Republic of Uruguay is a country in South America. It shares borders with Argentina to its west and southwest and Brazil to its north and northeast; while bordering the Río de la Plata to the south and the Atlantic Ocean to the southeast. 

 

Uruguay was inhabited by the Charrúa people for approximately 4,000 years, before the Portuguese established Colónia do Sacramento in 1680. Montevideo was founded as a military stronghold by the Spanish in the early 18th century, signifying the competing claims over the region. Uruguay won its independence between 1811 and 1828, following a four-way struggle between Portugal and Spain, and later Argentina and Brazil.  

 

1. 국명(Country) : 우루과이      

2. 수도(Capital) : 몬테비데오(Montevideo)

3. 면적(Territory) : 176,215km2 

4. 인구(Population) 355만명 

5. 국민소득(GNI) : 18,000불

6. 언어(Language) : 스페인어 (Uruguayan Spanish) 

7. 독립일(Independence) : 1825.8.25

 

 

남미의 비장, 우루과이여~~~

 

남아메리카 한 가운데에

우루과이강과 라플라타강 사이에

 

예부터

차루아족이 평화롭게 살던 땅이여

 

골목마다 축구공

1930년, 창립 월드컵 개최하고

초대, 4회 챔피언에 우뚝 솟았다

 

1986년 9월, 푼타델에스테

이름하여 우루과이 라운드

세계인의 이목이 쏠린다

 

무역장벽 없애라

GATT는 물러가라

셰계무역기구 씨 뿌렸다

 

Libertad o Muerte

자유냐 죽음이냐

 

선열의 가르침

아침마다 되새긴다

 

친구들아 다 모여라

2030, 월드컵 100년 우리가 준비한다

평화의 축구공 

창공에 쏘아 올리자

 

드날리자, 우리의 우정을 

구가하자, 인류공영을 ~~~

 

The Spleen of South America, Uruguay~~~

 

In the middle of South America

Between the Uruguay River and the La Plata River

 

From a long time

Land where Charrúas lived in peace

 

Soccer balls in every alley

The inaugural World Cup here in 1930

The first and fourth champion we stand high

 

In September 1986, Punta del Este,

The world's attention is drawn

It’s Uruguay Round by name

 

No barriers to trade

GATT, get out of the way, now

The seeds of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WTO

 

Libertad o Muerte!

Liberty or Death!

 

How can we forget the saying

Our patriotic forefathers’ teaching

 

Gather around, all friends over the world

We’ll host 100th World Cup in 2030

KIck up the ball of peace

Upto the high sky

 

Let's hoist our friendship

Let's sing human prosperity~~~

 

 

1. 개황

 

<역사>

 

(콜럼버스 이전 시대와 식민 시대)

 

차루아족이 파라과이의 과라니족에 의해 남쪽으로 밀려나 살고 있 었다. 차망가 등지에 원주민이 남긴 고대 암각화가 있다. 

 

1516년 현 우루과이 땅에 에스파냐인들이 들어왔다. 원주민들이 격렬하게 저항했고, 게다가 이곳에는 금이나 은도 나지 않았기 때 문에 16세기와 17세기에 이곳에 식민 정착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1603년 에스파냐는 우루과이에 가축을 들여왔고 축산업은 이 지역 부의 원천이 되었다. 우루과이 땅에 첫 영구 식민 정착지는 1624년 에스파냐인들이 리오네그로의 소리아노에 세웠다. 1669~71년에 포 르투갈인들은 사크라멘토 식민지 요새를 건설했다. 에스파냐가 포 르투갈의 브라질 경계 밖 진출을 막으려고 하면서 이 지역의 에스 파냐 식민화도 진척됐다. 

 

(독립 투쟁)

 

1821년 리오 데 라 플라타의 동부 주(Provincia Oriental del Río de la Plata, 오늘날의 우루과이)는 브라질에 병합되어 시스플라 티나 주가 되었다.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하가 이끄는 동방의 33인 이 리오 데 라 플라타 합주국(현재의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받아 1825년 8월 25일 독립을 선언했다. 500일간의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이 일어났다. 1828년 영국이 중재 아래 몬테비데오 조약을 맺 고 우루과이를 독립시켜, 우루과이강 동안공화국(República Oriental del Uruguay)이 건국됐다. 

 

(사람과 언어)

 

이웃 나라인 아르헨티나처럼 전 인구 중 백인이 88%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계통의 주민이 가장 많으며, 독일, 폴란드, 프랑스, 러시아 등지에서 온 이민들의 계통도 소수로 있다. 그 외 메스티소가 8%, 흑인이 4%이며 소수의 인디오들도 있다. 언어는 이웃국인 아르헨티나 처럼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며, 브라질에서 건너온 이민자 중에서는 포르투갈어도 소수 사용자가 있다. 영어는 대도시, 호텔을 제외하고는 거의 통용이 되지않는다. 

 

(스포츠)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축구 강팀으로, 1924년 하계 올림픽 및 1928년 하계 올림픽에 연속으로 올림픽 축구에서 우승했으며, 1930년 초대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를 누르고, 1950년 제 4회 월드컵에서 스페인, 스웨덴, 브라질을 누르고 우승했다. 1954년 FIFA 월드컵, 1970년 FIFA 월드컵, 2010년 FIFA 월드컵에서는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또한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15차례나 우승하여 대회 역사상 가장 성공한 팀으로 꼽힌다. 그러나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은 1970년대 이후부터 꾸준한 하향세를 보이며 1974년 FIFA 월드컵 이후 16강 이상 오르지 못하고 있다가 2010년 FIFA 월드컵에서 준결승에 오르고(4위를 기록)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상승세를 타고있다. 

 

우루과이는 1930년 FIFA 월드컵을 개최한 국가로서 FIFA 월드컵의 아버지인 쥘 리메는 몬테비데오의 센테나리오 경기장을 축구의 성지라 칭한 바 있다. 우루과이 정부는 FIFA월드컵 개최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30년 FIFA 월드컵을 아르헨티나와 같이 공동개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치​)

 

이 나라의 정치체제는 대통령제이며 부통령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러닝메이트 자리에 위치해 있으며 모든 정치적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 임기는 5년 단임제이며 연임은 금지되어 있지만 훌리오 마리아 산기네띠가 1번 연임하여 2번의 임기를 가진 적이 있으며 민주화시대 이후 現 대통령인 루이스 알베르토 라카예 포우가 2020년 3월 1일에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前 대통령인 호세 무히카는 2015년 3월 1일에 퇴임하여 정권을 이양받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거하여 2번의 임기를 채운 두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도 민주화시대 이후의 좌파 계열 대통령으론 최초의 연임이다. 또한 現 부통령은 베아트리스 아르히몬이다. 

 

(경제​)

 

우루과이는 스위스와 같이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을 절대 밝히지 않는다. 우루과이는 남미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한다. 

 

(외교)

 

아르헨티나가 자신들을 대신해서 브라질을 상대로 아르헨티나-브라질 전쟁을 벌여 승리로 이끌어서 독립한 국가가 우루과이기 때문에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영원한 우방국이다. 

 

대한민국과는 1964년 10월 7일에 수교했다. 양국은 정치, 경제, 문화 및 국제무대에서 전통적으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여 오고 있다. 2008년 9월, 우루과이의 대통령 타바레 바스케스가 한국을 방문했다. 양국간 문화[5], 어업, 무역, 경제과학기술, 사증면제협정 등이 체결되었다. 한국 어선이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항을 전진기지로 해 남대서양에서 조업하고 있으며, 현재 50여가구 150여명의 한국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

 

참조 영상 1. (아름다운 세계) : https://youtu.be/76dMor10LL0

                2. (KOICA와 평화마라토너) : https://youtu.be/t0BR3hnENfw

 

 

2. 풍경

 

▲(Tacuarembó 호수). ⒞시사타임즈
▲(World Trade Center, Montevideo). ⒞시사타임즈
▲(Cerro Batoví). ⒞시사타임즈
▲(우루과이 원주민 Charrúa인). ⒞시사타임즈
▲(국회의사당). ⒞시사타임즈
▲(수도 Montevideo 항구). ⒞시사타임즈
▲(Ciudad de la Costa). ⒞시사타임즈



(99번째 나라 아프리카 북서부 모로코왕국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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