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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76)] 48. 인도 (India)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76)] 48. 인도 (India)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Taj Mahal (c)시사타임즈
▲< 국기 > 주황색은 용기와 희생, 백색은 평화와 진리, 녹색은 신념과 기사도를 의미, 중앙은 영속적인 법륜을 의미. < 국장 > 아쇼카기둥에 새겨진 사자상 조각으로부터 높은 문화와 용맹을 상징.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인도 공화국은 남아시아의 인도아대륙에 있고 국토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 인구는 약 13.7억명으로 두 번째로 많다. 고대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이자 역사적인 무역로였고 4개의 종교-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의 발상지이다. 18세기 초부터 영국동인도 회사의 관리 하에 들어갔고, 19세기 중반 영국의 직접 통치를 받았고 간디의 비폭력주의 운동 이후인 1947년 독립하였다. 국내 총생산이 구매력 기준 세계에서 3번째로 높고 신흥공업국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빈곤, 문맹, 뇌물, 공중보건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핵보유국이다. 인도는 28개의 주와 7개의 지역의 연방제 입헌 공화국이다.

 

The Republic of India in South Asia is the second-most populous country. Home to the Indus Civilization and a region of historic trade routes, the Indian subcontinent was identified with its commercial and cultural wealth. Four world religions—Hindus, Buddhism, Jainism, and Sikhism—originated here. Administered by UK from the 18th century, India became independent in 1947 after a struggle of nonviolent resistance by Mahatma Gandhi. Indian economy is world's third-largest by PPP. A nuclear weapons state.

 

1. 국명(Country) : 인도 (Republic of India)

2. 수도(Capital) : 뉴델리 (New Delhi)

3. 면적(Territory) : 3,287,263㎢

4. 인구(Population) : 13억6천만명

5. 국민소득 : US$1,950불(GNI), US$6,300(PPP)

6. 언어(Language) : 힌두어(hindi), 영어(English)

7. 독립일(Independence) : 1947.8.15

 

소의 나라, 인도

 

위용의 히말리야 칸첸중가봉에서

중원의 힌두스탄 평야

데칸고원 넘어 카모린곶까지

드넓어라, 대한민국 32배!

 

일찍이 인더스 청동 문화 이루고

불교 힌두교 탄생하네

 

바라나시 갠지스강가

황금사원 위로 붉은 해 떠오르고

성수로 몸 담그는 노인이여

몇 해를 더 닦아야 정토에 가오리까?

 

무굴제국 5대 황제 샤자한이여

뭄타즈 마할, 죽어도 못 잊는 그대 사랑

세계가 흠모하여

오늘도 아그라에 오는 것을 보고 있소이까?

 

아우랑가바드지나 데칸고원 가는 길

아잔타 석굴, 인도 풍속 다 모였구나

엘로라 석굴, 바위언덕 물결쳐

카일라사나타 사원 이뤘네

 

위대한 영혼, 비폭력 노옹이여,

세계도처 폭력난무 보고 있소이까?

아세아의 자랑 시성 타고르여

동방의 등불이 밝혀질 그 날이 언제이리까?

 

진리만이 승리하는 세상

신뢰와 번영이 가득 찬 누리를

나그네는 꿈꾸어 봅니다…

Cattle's Land, India

 

From grand Peak Kanchenjunga, Himalayas

Through Plain Hidustan in the center

To Cape Camorin over Deccan Plateau

How large, 32 times of Korea

 

Indus Bronze Civilization being achieved long long ago

Buddhism and Hinduism originated here

 

River Ganges slowly flows through Varanasi

The red sun rises over the Golden Temple

Look at the old man who dips himself in the Ganges

How many years more, doing so before getting to the paradise

 

H.E Sha Jahan, Mugul Emperor,

Your unchanging love for Mum Taj Mahal

Everybody over the world is admiring you still

Do you see people coming to Agra to feel it today too?

 

On the way to Deccan Plateau from Aurangabadjina

Ajanta Caves, so many pictures and relics showing its life

Elora Caves, look at Kailasanata Temple

Made by the waves of rock hills

 

The Great Spirit of No violence, Mr Elder,

Do you see so many violences over the world?

Sir Tagore, Holy poet, our pride,

Please tell us when the Asian torch will be lighted again?

 

The world where only truth wins

The world full of faith and prosperity

It's the world that a traveler is dreaming of, here......

1. 인도의 약사

 

(전근대​)

 

인도의 문명은 기원전 2500년경 인더스 강 유역에서 발생한 인더스 문명에서 기원한다. 그러나 기원전 1500년~1200년경 인도아리아인들이 이란 고원을 넘어 인도에 정착하여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베다 문명을 건설하였다. 이 시기 아리아인들의 베다 신앙에서 브라만교가 탄생했고, 산스크리트어가 발전해 이후 2,000여 년 동안 인도의 공용어로 사용했다. 불교와 자이나교는 이보다 늦은 기원전 6세기에 등장했다.

 

인도는 마우리아 제국의 붕괴 이후 수많은 소왕국이 난립하였으며 굽타 제국(320년 ~ 550년) 시대에 브라만교가 힌두교로 발전하였다. 이슬람 교도들의 침입은 1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14세기 초, 모하마드 이븐 투글루크가 델리 술탄국의 세력을 확장하는 등 세력을 확장하고 무슬림 왕국들을 세워 통치하였다. 한편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여행(1498년)을 기점으로 포르투갈인들이 상륙하여 인도와 유럽 사이의 무역을 독점하기 시작했다.

 

(근대)

 

무굴 제국은 명군 악바르 대제의 재위기에 이슬람교를 전국에 퍼뜨리고 부족간의 갈등을 완화하였으며, 황제를 신성화시키고 페르시아의 풍요로운 문화와 인도의 고유 문화를 결합하여 17세기 증엽까지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 귀족들은 회화, 문학, 직물, 건축들을 후원하였으며, 무굴 제국의 통치하에 마라타인, 라지푸트인들, 시크인들과 같은 새로운 민족 공동체들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무굴 제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대신 지역에서 군사적, 경제적인 특권을 누렸으며, 점차 고유적인 정체성을 형성해나갔다.

 

18세기 초에는 인도의 경제와 정치가 점차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하였고, 영국 동인도회사와 같은 유럽의 무역 회사들이 해안가로 진출하여 인도의 경제를 차츰차츰 잠식하였다. 동인도 회사는 1765년에 벵갈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하였으며, 다른 유럽 열강들의 인도 진출을 막아 독점적인 지배권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과 동인도 회사는 부유한 벵골 지역을 이용하여 점차 힘을 키워나갔고, 무력으로 1820년대에는 인도 대부분의 지역들을 거의 다 통치하게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이때부터를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기로 본다.

 

(현대)

 

1857년에는 세포이 항쟁이 일어났다. 혹독한 지세, 사회적인 차별, 사회적인 개혁 조치 등에 반발하여 여러 지역에서 동시적, 산발적인 반란들이 일어난 것이다. 1858년 즈음이 되자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동인도회사의 직접 지배는 해산되었고 영국 정부가 직접 인도를 지배하게 되었다. 또한 시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하여 제한적이나마 영국적인 의회 제도를 도입하였고, 경호원들을 동원하여 봉건 지주들과 귀족들을 보호하였다. 1885년에는 인도 독립의 초석을 놓은 인도 국민회의가 창설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대략 1백만 명의 인도인들이 영국의 편에 참전하였다. 이후인도인들이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였다. 이때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가 이끄는 비폭력 운동, 영국의 식민통치에 대한 비협력 운동이 전역적으로 퍼져나갔으며, 협력과 평화의 상징으로 떠올라 인도의 독립을 주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독립 요구는 일단 잠잠해지고, 인도는 2차 세계대전에도 영국의 편으로 참전하였다. 전후 인도 국민회의는 끊임없이 독립을 요구하였고, 북부 지방에서는 무슬림들이 들고 일어나 영국의 지배를 거부하였다. 결국 영국은 인도를 독립시켰으나, 이 과정에서 힌두교도 중심의 인도 지방과 이슬람교 중심의 파키스탄 지방 간에 불화가 일어나 결국 인도와 파키스탄, 이 2개의 국가로 나뉘어 독립하게 되었다. 펀자브와 벵골은 주민들의 종교성향에 따라 각각 2개로 분리되어 양국에 포함되었으며 카슈미르는 아직까지도 분쟁이 계속되는 상태에 있다.

 

인도에서는 자와할랄 네루를 총리로 한 국회가 1952년 선거를 통해 구성되었다. 확정되지 않은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1962년 중화인민공화국과, 1965년에는 파키스탄과 국경분쟁을 겪었다. 1967년에는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1984 암살)가 의회의 지지를 받아 총리로 취임했고 인디라 간디가 암살된 이듬해 아들인 라지브 간디(1991년 암살)가 총리에 취임했다. 1971년 파키스탄과 국경 2곳에서 전쟁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 동(東)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되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시크교도들이 펀자브 지방의 독립을 요구하는 등 인종과 종교로 인한 갈등이 잔존해 있다. 1990년대부터는 경제적 자유화도 진행되었고, 대규모의 중산층이 형성되었고, 인도는 세계에서 빠르게 성장하였다. 인도의 영화, 음악, 사상들은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인도는 아직까지도 도심과 농촌간의 심각한 빈부격차, 엄청난 빈민들의 수, 카스트 제도의 폐해, 잠무와 카슈미르 지방의 분리주의 운동 등에 신음하고 있고, 중화인민공화국과 파키스탄과도 여전히 국경 갈등을 겪고 있다.

 

2. 인도의 관광지

 

(타지마할)

 

타지마할은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무굴 제국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총애하였던 부인 뭄타즈 마할로 알려진 아르주망 바누 베굼을 기리기 위하여 1653년에 건설하였다. 건축의 책임자는 우스타드 아마드 로하리로 알려져 있고, 뭄타즈 마할이 죽은지 6개월 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완공에 22년이 걸렸다.

 

타지마할은 총 17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무덤군의 중심 부분이며, 실제로 무덤군은 응접실, 모스크 등이 따로 딸려있다.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터키, 인도 및 이슬람의 건축 양식이 잘 조합된 무굴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이다. 1983년 타지마할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2007년 7월 7일 신(新) 세계 7대 기적에 선정되었다.

 

▲(좌)Shah Jahan (우)Mumtaj Mahal (c)시사타임즈

막대한 세금과 과도한 수탈로 전국에서 민심이 악화하였다. 또한 샤 자한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정무에 무관심해졌고, 결국 샤 자한의 아들인 아우랑제브가 반란을 일으켜 샤 자한을 폐위시킨 후 아그라 성에 감금해 버렸다. 이후 샤 자한은 아그라 성의 창문으로만 멀리서 타지마할을 감상할 수 있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죽을때까지 아그라 성에 갇혀 살았다. 나중에 샤 자한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유해는 타지마할 안에 있는 뭄타즈 마할의 무덤 옆에 묻혔다.

 

타지마할의 정원은 한 변의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는 페르시아 양식과 힌두 양식이 뒤섞인 전통적 무굴 양식의 정원이다. 정원에는 축을 따라 석조 보도가 깔려 있는데, 이 석조 보도들이 격자형으로 뻗어나가 정원을 모두 16개의 화단으로 나눈다. 타지마할의 정문과 영묘 본 건물 사이에는 남북축을 따라 건설한, 대리석으로 만든 수로가 존재하는데, 이 수로는 영묘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사하여 정문으로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시각적 효과를 선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수로의 이름은 '알 하우드 알 카후타'이며, '풍요의 수로'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봉헌된 것이다.

 

또한 정원 주위에는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줄지어 심겨있고, 그 외에 물을 뿜어내는 분수들이 존재한다. 무굴 양식의 정원은 무굴 제국의 초대 황제인 바부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전통적 인도 양식의 정원과 페르시아 양식의 정원이 합쳐진 모습을 띠고 있다. 무굴 정원은 이슬람교의 천국을 묘사하였기 때문에 총 4개의 강, 혹은 수로들이 그 안에 흐르고 있고, 그 밖에 높은 벽들이 둘러치고 있는 형태이다. 무굴 제국 시대에 쓰여진 기록에 의하면, 대부분 천당은 높은 산 위에서 흘러내린 4개의 강들이 흐르고 있고, 그 주변 동서남북을 높은 벽들로 감싼 형태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무굴 정원들은 그 중앙에 중요한 건물, 혹은 영묘가 있지만, 타지마할의 경우에는 정원 맨 끝에 영묘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나름 독창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야무나 강 반대쪽에 '달빛 정원'(Moonlight Garden)이 발견됨에 따라, 야무나 강 자체가 타지마할 정원의 일부였다는 점이 밝혀짐에 따라, 타지마할 또한 여타 정원들과 같이 정원의 한가운데에 영묘가 위치하는 구조로 지어졌다는 것이 입증되게 되었다. 인도의 고고학계는 타지마할의 설계자들이 야무나 강을 천국의 4개 강들 중 하나를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와 같은 구조를 취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타지 마할 정원 (c)시사타임즈

(바라나시)

 

▲바라나시 전경 (c)시사타임즈

바라나시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위치한 도시로 옛날 카시 왕국의 수도이자 동시에 힌두교의 최대 성지이다. 바라나시를 흐르는 갠지스 강은 힌두교도에게 성스러운 젖줄로, 가트에는 강에 몸을 담그고 그 물을 마시기 위해 모여든 신도들로 북적거린다. 강가에서 화장을 하는 모습은 바라나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인구는 약 140만 명이다. 고타마 붓다가 그의 첫 강론을 불교의 성지 사르나트가 인근에 있다.

 

바라나시에서 개발된 인도 고전음악의 버나러스 가라나와 수많은 유명한 인도 철학자, 시인, 작가, 음악가가 바라나시에 거주하였거나 거주하고 있다. 중국의 순례자 수안장은 이곳이 인도의 종교, 교육, 예술 활동의 중심이라고 말하였다.

 

▲바라니시 풍경 (c)시사타임즈
▲바라나시의 황금사원이라고 불리는 Kashi Vishwanath Temple (c)시사타임즈

 

(아잔타 석굴)

 

아잔타(Ajanta)는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 북서부에 위치한 불교 동굴 사원이다. 29개의 석굴로 기원전 1세기경부터 약 1세기 동안 지어진 전기 동굴과 5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지어진 후기동굴이 있다. 인도의 풍속이나, 불교에 관한 것들이 풍부하고 다채로운 필치로 벽면만이 아니라 기둥, 대들보, 천장 등 광대한 공간의 구석구석에까지 묘사되어 있다. 무불상 시대의 것부터 대승불교가 발전하던 시기의 벽화까지 다양하다. 특히 연화수보살도가 유명하다. 8세기 들어 불교가 쇠퇴함에 따라 약 1000년 이상 방치되었다. 1819년 영국군 병사 존 스미스 (John Smith)에 의해 발견되었고 1893년 퍼어슨 (Person) 이 조사 발굴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아잔타 석굴 (c)시사타임즈

(엘로라 석굴)

 

엘로라 석굴은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에 위치한 석굴이다. 아우랑가바드를 지나 서쪽으로 가다 데칸 고원으로 들어서면 동굴처럼 늘어서 있는 엘로라 유적지를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바위언덕이 물결치고 있는 듯 보이는 인상적인 카일라사나타 사원은 거대하고 정교하며 약 1세기에 걸쳐 완성되었다.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를 합쳐 34개의 석굴암이 있고 석굴암 내부에는 많은 석조(石彫)들이 있다. 엘로라 유적지 근교에는 18세기에 세워진 시바신의 사원이 있는데 신발을 벗고, 남자의 경우는 상반신을 벗어야 들어갈 수 있다.

 

▲엘로라 석굴의 카일라사나타 사원 (c)시사타임즈

(49번째 나라 네팔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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