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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91)] 62.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91)] 62. 바티칸 시국(Vatican City)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바티칸 시국에서 (c)시사타임즈
▲< 국기 > < 국장 >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바티칸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면적(0.49평방 km : 가로 세로 각 700m 정도)과 가장 적은 국민(1000명)을 갖고 있으며 세계 유일의 절대군주국이다. 그러나 세계 12억의 카톨릭 신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독립국으로 거의 모든 나라와 수교했으나 유엔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카톨릭을 313년에 공인하고 베드로 무덤 터에 326년에 성당을 건축한 후 1626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나라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 되었고 베드로 성당, 시스티나 예배당, 박물관에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 거장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교황은 일요일 오후의 축일이면 시스티나 경당의 창문으로 나와 군중들에게 연설을 하고 축복을 한다.

 

Vatican City State, is a landlocked sovereign city-state whose territory consists of a walled enclave within the city of Rome, Italy. It has an area of approximately 49 hectares and a population of just over 800 being the smallest state in the world by both area and population. Vatican City State was established in 1929 by the Lateran Treaty. Vatican City State is distinct from the Holy See, which dates back to early Christianity.

 

1. 국명(Country) : 바티칸시국(Vatican City State)

2. 수도(Capital) : 바티칸 (Vatican)

3. 면적(Territory) : 0.49㎢

4. 인구(Population) : 825명

5. 국민소득(GNI) : -

6. 언어(Language) : 이탈리아어 (Italian)

7. 독립일(Independence) : 1929.2.11

 

▲베드로 성당에서 바라본 바티칸 광장 (c)시사타임즈

영의 나라, 바티칸 시국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여

동서남북 700m 모두가 세계유산

바티칸 언덕에서 화해의 길

테베레강이 저기네

 

세계에서 하나 남은 절대군주국이여

12억 성도들이

하늘처럼 받드네

 

사도 궁에서

인류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성하여

우리의 갈 길이 어디오이까?

 

베드로 거꾸로 매달려 묻힌 곳

세계의 성당으로 부활하여

신앙 1번지가 되었네

 

천지창조 못 믿는 사람들아

시스티나 성당 와서 보아라

부활을 못 믿는 사람들아

베드로 성당 와서 보아라

최후의 심판 의심하는 사람들아

미켈란젤로 예서 만나보아라

 

오, 피에타상,

죽은 자식 품에 안고

오열하는 성모 마리아여

그의 죽음이 인류를 구원하네

 

자비를 베푸소서…

영혼을 구하소서…

 

경배를 받으소서…

찬양을 받으소서…

 

 

The Land of Spirit, Vatican City

 

The smallest country in the world,

700m only length and width, all being World Heritage

The Way of Reconciliation is running

From Hill Vatican just to River Tebere

 

The only existing absolute monarchy in the world

Is the spiritual home of

More than one billion Christian saints over the world

 

His Holiness at the House of Apostles

Who prays for humankind's soul

Teach us where we should head for?

 

The Cross on which Peter was hung upside down

Being resurrected as the world church

Became Number One of Faith Street in the world

 

You who not believe the genesis

Come and see Cappella Cistina

You who not believe the Resurrection

Come and see St. Peter Cathedral

You who doubt Last Judgment

Come here and meet Michelangelo.

 

La Pieta!

Holy Mother who cries out in sorrow

Hugging her dead son in her arms

His death delivered the death of all humankind!

 

Pieta, Have mercy on us!

Oh, Almighty God, deliver us from evil!

 

May you be highly worshiped...

May you be warmly praised...

 

1. 바티칸 시국 약사

 

바티칸이 자리잡기 전에 이곳 바티칸 언덕(Mons Vaticanus)은 원래 고대 로마인들이 로마 신화의 키벨레와 그 배우자 아티스를 숭배하던 곳이었으며, 점을 치는 언덕(ager vaticanus)이라 부르며 오랫동안 신성하게 여겨왔다. 그 때문에 로마인들은 이곳에 거주민들의 통행과 정착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서기 1세기 초에 대 아그리피나(BC 14년 - AD 33년 10월 18일)는 바티칸 언덕과 그 주변에 물을 대고 그 자리에 자신의 개인 정원을 건립하였다. 또한 로마 황제 칼리굴라(37년 - 41년)는 이곳에 거대한 원형경기장(Circus Gaii et Neronis)을 만들었고, 나중에 황제 네로 시대에 완공되었다. 성 베드로 광장 중앙에 장식된 오벨리스크는 본래 칼리굴라가 원형경기장을 꾸미기 위해 서기 37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로마로 가져와 경기장의 장식에 사용되었다.

 

서기 64년 로마에서 일어난 대화재 이후 바티칸 언덕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성 베드로도 이 순교자 중 한 사람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 베드로는 원형경기장에서 거꾸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원형경기장 맞은 편에는 비아 코르넬리아를 경계로 삼아 고대 로마 시대의 공동묘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4세기 초에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이 언덕은 다신교의 각종 이교 신들을 위한 제단과 무덤, 비문 등이 지어졌었다. 이러한 고대의 잔재들은 수세기에 걸쳐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공사를 할 때 빈번하게 발견하였으며, 교황 비오 12세 치세에는 본격적으로 대규모적인 발굴작업을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313년에 공인한 이후, 326년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최초의 성당인 옛 성 베드로 대성전이 지어졌고, 5세기 초에 대성전 근처에 교황의 궁전이 지어지면서 이 지역은 점차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교황의 권력은 점차적으로 커져갔으며 19세기 중반 신흥국가인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기 전까지 약 천년 동안 로마와 그 주변 지역들을 장악해 교황령이란 이름 아래 다스렸다. 이 시기의 대부분 동안 교황들의 거주지는 바티칸이 아닌 라테라노 궁전이었으며, 아비뇽 유수기(1309년 - 1377년)를 제외한 최근 세기 동안에는 퀴리날레 궁전이었다.

 

19세기 중엽 이탈리아의 민족주의자들이 발흥하면서 교황청은 차츰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잃어갔으며, 1870년에는 마침내 수도인 로마마저 점령당하면서 교황의 소유지들은 불확실한 상태에 놓였다. 1861년부터 1929년까지 60여 년 동안 이러한 로마 문제라고 불리는 상태가 유지되었다. 이로 인해 천년 동안 이어지던 교황령은 종말을 고하고 교황을 비롯한 교황청의 상층부들은 바티칸으로 대거 피신했다. 이후 교황들은 로마 및 기타 지역에 대한 이탈리아 국왕의 권한을 인정하라는 이탈리아 정부의 주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당한 요구라며 항의했고 바티칸 밖으로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교황령이 이탈리아에 병합된 이후에도 이탈리아를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교황청의 이탈리아로부터 독립적인 국가로서의 지위를 계속 인정하였다. 이탈리아는 바티칸 안에 있는 교황청에 대한 무력행사를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퀴리날레 궁전을 포함하여 교회 재산의 상당수를 몰수해갔다. 교황령의 마지막 통치자인 교황 비오 9세는 로마를 잃은 이후 스스로를 ‘바티칸의 포로’라고 표현했다. 이런 상황은 1929년 2월 12일 이탈리아 정부와 교황청 간에 라테라노 조약을 체결되면서 종식되었다.

 

라테라노 조약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교황 비오 11세 양측으로부터 전권을 이양받은 베니토 무솔리니와 피에트로 가스파리 추기경에 의해 각각 조인되었다. 이 조약으로 이탈리아는 바티칸 시국을 독립 국가이며 교황청의 소유와 국제법상 치외법권을 인정하였으며 가톨릭교회를 이탈리아의 국교로 삼았다. 바티칸 또한 로마를 수도로 한 이탈리아 정부를 정식으로 인정했다. 더불어 양측은 라테라노 조약에 반대되는 이전의 모든 법들을 폐기하였다. 라테라노 조약은 파시즘 정권이 물러나고 1947년 이탈리아 공화국이 들어선 후에도 그대로 채택되었다. 다만 1984년 양측 합의로 가톨릭교회를 이탈리아의 국교로 존속시키지 않는다는 내용의 새로운 정교 협약으로 수정되었다.

 

2. 바티칸 풍경

 

▲바티칸 시국 전경, 중앙에 베드로 성당과 오벨리스크 (c)시사타임즈
▲베드로를 십자가에 처형할 때 묶은 쇠사슬 (c)시사타임즈
▲베드로 성당 옥상에서 보이는 정원, 중앙이 바티칸 시국 청사 (c)시사타임즈
▲Michelangelo작 Pietà (c)시사타임즈
▲씨스틴 예배당 천정화 Michelangelo의 천지창조 (c)시사타임즈
▲바티칸 도서관의 Sistine Hall (c)시사타임즈

 

(63번째 나라 모나코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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