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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3)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3)

베를린에서 들려오는 환희의 송가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포츠담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숲속 길에는 찬란한 가을 햇살이 ‘환희의 송가(頌歌)’를 부른다. 붉은 여우 한 마리가 그 숲속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가로질러 쏜살같이 달려간다. 동화의 숲속으로 들어온 듯 느닷없는 조우(遭遇)였지만 나는 그 여우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여우는 전혀 나를 반가워하지 않았겠지만 그런 느닷없는 만남들이 나의 여행의 기쁨과 위로가 되어준다. 길 위에서 만났던 무수히 많은 집 없는 달팽이와 집 있는 달팽이들도 그렇고 내게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들의 맑은 미소가 그렇다.

 

베를린에 들어서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생각나는 것이 저들은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 역사적인 날 일찍 잠자리에 들은 사람들. 그래서 떼를 지어 브란덴부르크 담벽 위로 기어 올라가 동서베를린 시민들이 한데 엉켜 환호성을 지르고, 동독 경찰들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다음 날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순간들을 티브이나 신문의 호외를 통해서 본 사람들. 그리고 현장에서 함께 환호의 함성을 지르던 사람들이다. 마치 촛불혁명 때 광장에서 함께 어깨동무하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듯이 말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출발한 이래 딱 20일 만에 통일을 이루어낸 도시 베를린으로 향하는 나그네의 발걸음은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환희에 차 있다. 전쟁으로 모든 도시가 파괴되었겠지만 운 좋게 남아있는 건물들은 잘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대대손손 삶을 영위해가는 모습도 보기 좋다. 예정보다 하루 일찍 베를린에 도착하여 원불교 교당으로 향했다. 베를린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교당은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원불교는 평화의 종교이다. 우리 고유의 평화의 종교가 베를린에 있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교무님은 은사님의 와병(臥病) 소식으로 한국으로 나가서 못 만났지만 뉴욕에서 함께 마라톤을 하던 권혜순씨가 응원차 이곳에 미리 와 있었다. 열댓 시간 비행에 피곤할 텐데 내가 도착하기 전 미리 시장까지 보아서 푸짐한 저녁을 준비하였다. 오랜만에 이곳에 기거하는 유학생 두 명과 함께 작은 만찬이 벌어졌다. 그리고 또 LA에서 여성 통일운동가 정연진씨까지 이곳으로 와 합류하였다. 오랜만에 포식을 하고 편한하게 늦잠을 잤다.

 

이미 2500년 전 정신을 개벽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늘의 별처럼 동서양에서 동시에 나타났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석가, 공자, 노자, 소트라테스, 그리고 이어서 예수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정한 자유에 대해서 설파했다. 그러나 물질의 절대적 궁핍과 억압, 착취 속에서 그들의 이상은 꽃피울 수가 없었다. 이제 어는 정도 물질과 사회적 자유를 달성하고 나서 비로소 관념의 자유가 인간의 목표가 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인간다운 인간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가치이다. ‘물질이 개벽하니 정신을 개벽하자! 이것이 100여 년 전에 개교한 원불교 정신이다. 그 정신이 산업혁명 이후 오염된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킬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제일 급한 것은 ‘유모차’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이곳까지 손잡이가 부러진 것을 억지로 조임쇠로 묶어서 왔는데 그마저도 뚝 소리가 나더니 끊어져 버렸다. 길을 나섰지만 참 막연한 노릇이었다. 일단 인터넷에서 자전거 가게를 검색하고 권혜순씨와 함께 걸어서 가까운 곳부터 가보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이렇게 해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이제 베를린을 지나면 어디서 다시 구할지 장담도 못 한다.

 

첫 번째 가게는 주문을 하면 최소 3일을 걸린단다. 며칠씩 이곳에서 기다릴 형편도 아니었지만 망가진 유모차를 밀며 계속 갈 수도 없었다. 다시 인터넷에 표기된 자전거 가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는데 이상하게 공단지역이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자전거 간판이 보인다. 대형 창고를 갖춘 자전거 가게였다. 제대로 찾은 것 같은 기분이다. 가게 안의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다 저 뒤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유모차가 부실하면 그 고생은 말할 필요도 없다. 중간에 중요한 곳이 부러지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건 내게 죽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마음에 든다고 결정을 하는 순간 삼발이 부분이 약해 보인다는 것을 또 발견하였다. 내가 1만6천km를 달리는 데 아주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그걸 주인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부분 특별히 덧쇠를 하나 더 붙여 제작하여주겠다고 내일 오라고 한다. 돈 안 되고 어려운 작업을 선뜻 해준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가게 주인 이안은 ‘부디 우리 유모차를 가지고 끝까지 완주해주면 자기도 기쁘겠다.’라며 나와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 끝까지 응원하겠단다.

 

권혜순씨와 가게를 나와서 늦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을 찾으러 다니다 백화점의 풋코트로 갔다. 안에는 여러 개의 음식점이 있는데 저쪽에 유난히 긴 줄이 보인다. 독일에도 족발과 같은 요리가 있는데 바로 슈바인학센이다. 독일에는 맛있는 음식이 없다고 수도 없이 들어왔으며 이곳에 와서 절감하고 있던 차에 그것을 발견하자 바로 긴 줄에 서고 말았다. 족발은 잘하는 집에 가야 냄새가 안 나고 살이 부드럽다. 이곳도 그런 집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구운 족발이 있고 삶은 족발이 있는데 이곳에는 삶은 족발이다. 감자와 함께 큼지막한 족발 하나를 주문했는데 입안에서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감은 바로 치솟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그리고 바로 전차를 타고 브란덴부르크 문에 나갔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의 중심가 플라츠 광장에 서 있는 건축물로 베를린의 상징이요, 통일의 상징 같은 건축물이다. 건축물 맨 위에 사두마차를 몰고 질주하는 황금빛 여신의 모습이 살아있는 듯 웅장하다. 이 문은 시내로 들어가는 성문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우리의 남대문, 동대문 같은 곳이다. 귀족들은 중앙의 문을 사용하고 일반인들은 양쪽 옆의 문을 사용했다고 한다.

 

12개의 기둥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정문인 프로필라에를 본떠서 설계했다고 한다. 이 건축물은 1771년 26m의 높이에 65.5m 길이로 지어졌다. 나그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 건축물 위에 승리의 여신이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동독 쪽으로 달려가는 형상의 조형물로 이동한다. 처음에는 여신이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관을 들고 있었는데 나폴레옹이 침공하여 탈취했다가 1914년 반납받은 뒤에는 철십자가로 바꾸어 승리의 여신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 플라츠광장에서는 2차 대전 이전에 히틀러가 세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펼쳤던 곳이다. 분단 때에는 이 문을 기점으로 동, 서독이 분리되었으며 통일 당시에는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였던 장소였기 때문에 이 앞에 선 나그네의 가슴에 뭉클하게 무언가 소용돌이쳐 올라온다. 통일 후에는 서독의 헬무트 콜 수상이 이 문으로 들어갔고 동독의 모드로프 총리가 그를 맞았다. 이들이 빗속에서 악수하고 포옹하는 순간 시민들은 샴페인을 터트리고 서로 끌어안으며 환호했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곳은 이번 주말에 베를린 마라톤이 개최되는 곳이라 각국에서 온 마라토너들로 더욱 붐볐다. 마음 같아서는 이곳에 온 김에 베를린 마라톤에 참가하고 싶지만 마음 가는 모든 것을 다하고 이 여정을 완성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인류가 삶을 영위하고 역사를 써나가는 일은 위대한 인간 정신이 밑바탕이 되어왔다. 마라톤만큼 위대한 인간 정신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기는 없다. 고통을 이겨내고 끝없이 달린다고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달리면 우리가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헛된 것인지를 알게 된다. 마라톤은 모든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간다.

 

인류가 함께 꿈꾸고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지금보다 훨씬 더 평화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은 자명하다. 승자 독식의 논리가 사라지고 모든 완주자가 메달을 목에 걸고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그 영광에 취할 수 있다면 범죄는 줄어들고 원망과 분노가 사라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평화라는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것이 최고의 인류 정신이다.

 

사람들은 한 번 마라톤을 시작하면 그것을 배교(背敎)하지 못하고 열렬한 신자가 되고 만다. 마라톤 신자들에게 5개의 성지가 있다. 보스턴, 뉴욕, 시카고, 베를린, 런던이다. 신자들은 이 다섯 곳의 성지를 다 순례하고픈 꿈을 꾸며, 그것을 의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도 그렇다. 미국의 3대 성지는 다 순례했는데 베를린과 런던은 순례를 못 했다. 이번이 베를린 마라톤을 뛰기에 절호의 기회였지만 난 더 큰 나의 신앙, 조국의 통일 순례에 지장이 되는 것은 다 절제하고 있다.

 

베토벤은 인류의 화합을 꿈꾼 위대한 작곡가이다. 나는 이번 모험의 주제곡을 이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로 정했었다. 그는 교향곡 ‘합창’을 통하여 그의 마음을 그려냈다. 그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통해 모든 갈등이 종결되고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소망했다. ‘합창 교향곡’이라 불리는 교향곡 제 9번 D 단조는 베토벤이 남긴 아홉 편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획기적인 걸작으로 손꼽힌다. ‘환희의 송가’는 단순한 음악에 머물지 않고 평화와 화합을 이루는 철학과 인류 정신을 담은 용광로가 되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환희의 송가’ 가사 1절을 함께 음미하자.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찬란함이여, 낙원의 딸들이여 우리 모두 황홀감에 도취해 빛이 가득한 성지로 돌아가자. 엄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그대의 신비한 힘으로 다시 연결시키며 만인은 형제가 되리니 그대의 고요한 나래가 멈추는 곳에!”

 

‘만인은 형제가 되리니’라는 말을 통해서 실러는 소통과 화합을 통한 인류의 예언적 희망을 담았다.

 

음악은 소리의 미적 영역을 통해서 순결함과 안식과 치유와 평화를 형상화한 것이다. 음악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삶의 폭을 확장시키며 깊이를 더하며 생명력을 왕성하게 한다. 인간은 음악을 만들었고 음악을 신에게 바쳐 신의 자비를 빌었다. 소리는 각각 개성을 가지면서 서로 공명(共鳴)하고 어떤 이미지로 다시 탄생한다. 나는 다양한 생각과 다른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교향곡처럼 서로 공명하며 용서와 화해, 화합과 소통을 통한 평화의 교향악이 이 세상에 펼쳐지기를 꿈꾸면서 유라시아에 발자국 소리를 연주자처럼 세심하게 한 발자국씩 더하고 있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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