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28)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28)

긴 이별, 또 다른 만남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아직 녹지 않는 눈 사이로 싹을 띄우고 나와 꽃을 피우는 봄꽃의 생명력은 경이로웠고, 그 뜨거운 한여름의 뙤약볕에도 땀 뻘뻘 흘리며 피어나는 여름 꽃의 정열은 대단했었다. 바람맞으며 피어나는 가을꽃은 봄꽃의 생명력과 여름 꽃의 정열은 조금 덜어냈지만 마음 속에 멋진 낭만은 그대로 담고도 허황된 꿈은 더 이상 꾸지 않는다. 그런 가을꽃이 이 가을 내 마음에 피어난다. 바람에 흔들리며 잔잔한 달빛처럼 피어난다. 청춘의 그 거친 질곡(桎梏)을 벗어나서 인생의 전환점을 넘고도 60이 되어 내 마음에 가을꽃처럼 청초하게 피어나는 사랑의 꽃이 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처럼 우아하지도, 체코처럼 뇌쇄적(惱殺的)인 매력도, 독일처럼 고상하지도, 네덜란드처럼 사교적이지도 않으면서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이 있다. 헝가리의 일정을 마치고 세르비아로 넘어가는 발걸음이 왠지 무겁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 더 머물고 싶다. 그러나 일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꼬이기 시작했듯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풀릴 것이며 이별 다음엔 언제나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고 한 세계가 닫히면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니 바람같은 나그네에게 미련을 가지고 집착을 가질 일도 그리 많지 않다.

 

헝가리의 마지막 도시 세게드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티저 강둑을 따라 강바람이 들려주는 가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달리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뭔가에 홀린 나는 그러질 않았다. 나는 샛길로 빠졌고 그 길은 금방 밭두렁 길이 되었다. 처음엔 괜찮아서 들어섰는데 들어서고 나니 진구렁이었다. 나의 한혈마 바퀴가 진흙이 달라붙어 탱크 바퀴처럼 커졌다. 신발에도 진흙이 달라붙어 납덩이를 몸에 찬 것처럼 몸이 무거워졌다. 이제 뒤로 돌아서지도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달싹 못 하는 상황이다. 절망감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지금까지 정체를 숨긴 채 쫓아다니며 나를 불안하게 했던 막막함이 실체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는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처럼 파르르 떨 뿐이었다.

 

바퀴도, 신발도, 생각도, 미래도, 한 나라의 역사도 진흙 덩이 같은 잡것이 달라붙어 일을 망쳐버린다. 우리 역사에 일본이란 진흙덩이가 달라붙은 순간부터 불행이 다가왔다. 일본이 떨어지자 미국이 달라붙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생각이나 올바른 결정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뒤로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러나 무어라도 해야 했다. 다행히 해가 중천에 떠있다.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사람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훨씬 더 많은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는 희망뿐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북극곰은 추위에 얼어 죽지 않고, 염소는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고, 물고기는 물에 빠져 죽지 않는다. 새는 하늘에서 떨어져 죽지 않고 수행자는 굶어 죽지 않는다. 여행을 떠나기 전 너무 많은 걱정은 안 해도 좋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는 만큼 번성하여왔다. 이 지구상에서 최고로 번영을 구가하는 인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인간은 필요하면 주위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시작은 바퀴와 신발에 달라붙은 진흙 덩이를 떨어내는 것에서부터였다. 그리고 무게를 줄이려 유모차 안의 가장 큰 짐인 배낭을 꺼내 등에 짊어졌다. 한 1km 정도 되는 길을 빠져나오는데 한 시간 반이나 사투(死鬪)를 벌이다시피 해서 겨우 빠져서 산길로 들어섰다. 밭길로 가다간 하루 종일 해도 도저히 빠져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산길로 들어서며 낙엽이 깔린 길은 진구렁보다 나았지만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그 무거운 손수레를 밀며 헤매고서야 한참 후에 포장길로 나올 수가 있었다. 오늘은 꿈결에서마저 위풍당당 행진곡은 들려올 것 같지 않다.

 

헝가리의 대지도 나와의 이별이 아쉬워 이렇게 나를 잡는다. 나를 잡는 것이 어려우니 나의 ‘한혈마’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겨우 빠져나와서 많이 지체된 시간에 국경 검문소에 다다랐다. 여권을 보자고 하기에 보여줬더니 여기는 외국인은 통과를 할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세르비아 사람과 헝가리 사람만 통과하는 작은 검문소이고 당신은 국제 검문소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럴 때 다리에 힘은 쫙 풀려버리고 만다. 참으로 헝가리는 끈질기게 나를 붙들고 늘어진다. 그래 다음에 꼭 다시 오마!

 

경찰은 나의 의지를 물어보지도 않고 택시를 부른다. 다른 국경 검문소로 왔을 때는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고 거리는 더 늘어났다. 체력소모가 많았고 예약된 숙소가 있는 센타까지 가면 저녁 9시나 될 것 같았다. 가다가 중간에 잠잘만한 곳이 나오면 거기서 자려고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세르비아로 들어섰다. 붉은 노을 아래 우마차가 지나가는 모습은 지친 나그네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우마차의 모습이 옛날 어느 이집트 묘비에서 발견된 벽화의 우마차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5천 년 전부터 인간은 저런 우마차를 이용해왔었던 것이다. 어느새 어둠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 세상이 어둠으로 범람하였다. 나는 어둠 속에 휩쓸려가지 않으려 허우적거렸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갓길이 없는 국도에서 찻길을 잡아먹으며 가는 야간 달리기는 정말 등에서 진땀 나고 목숨을 담보로 한 일이다. 될 수 있으면 야간달리기를 피해보려고 했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었다. 중간에 노숙(露宿)하는 것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예약된 숙소까지 두어 시간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듯싶었다. 뒤에서 오는 차는 미리 준비한 자전거용 깜박등을 달고, 앞에서 오는 차는 손전등으로 신호를 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총알과 포화가 날아다녔을 이곳에서 자동차는 전쟁터의 총알처럼 날아다녔고 나는 어둠 속에서 그 총알 같은 자동차들을 피해 사선을 넘나들었다. 나는 음울한 복면의 추격자를 뒤에 두고 달리는 꼴이 되었다. 등 뒤에 언제라도 내리칠 손도끼가 있을지 몰랐다. 피곤하고 지쳤고 무릎은 휘청거렸다.

 

해가 저물자 곧 서늘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들어 재킷을 입는 사이 순식간에 초승달과 별들이 밤하늘에 꽃망울처럼 돋아나와 가을밤 하늘에서 축제를 벌인다. 몸에서 거의 방전(放電)돼 가던 에너지가 별과 달과 눈맞춤을 하다 보니 새 힘이 난다. 내 생명체의 전원을 참으로 오랜만에 별과 달에 연결하고 천지에 흐르는 장엄한 기를 충전한다. 간혹 굶주린 들개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살아 있는 불길 어린 눈동자가 앞에서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운전자들이 짜증을 내지 않고 안전운전을 해주어서 얼마나 고맙고 또 감사한지 모르겠다.

 

가을에는 어머니 대지가 온갖 과실을 익혀내어 하늘을 나는 새들과 대지를 달리는 동물들에게 먹이고, 그들은 똥을 싸서 대지를 비옥하게 하고 씨앗을 똥과 함께 배설하여 과실나무의 번식을 도우며 서로 상호 공존하는 자연의 섭리(攝理)가 충만하다. 이 가을에 내 마음속에 바람에 흔들리며 달빛처럼 잔잔하게 피어나는 청초한 꽃이 있다.

 

세르비아의 들녘에 어둠이 내려앉으니 쌩쌩 달리는 자동차의 위엄 속에서도 자연과 깊은 교감에 빠져든다. 자연의 주파수에 귀 기울이는 안테나가 심장에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러자 들판의 벌레들 합창 소리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듯 내 삶도 즐겁고 풍요로워진다. 가을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듯이 젊은 날의 욕정은 다 떨어져 나가고 사람들과 자연과 평화롭게 교류하며 공존하고픈 마음이 가을 들판의 바람처럼 밀려온다. 평화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생겼다.

 

한반도가 ‘이념의 충돌’의 희생양이었다면 발칸반도는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이 맞붙은 ‘문명의 충돌’이 빚은 희생양이었다. 세르비아는 외세의 침략과 파괴와 학살, 이데올로기와 냉전, 민족, 종교, 인종 등의 갈등으로 인한 내전을 치른 나라이다. 인류가 겪을 수 있는 모든 부조리(不條理)의 어두운 역사를 지나서 이제야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곳이다.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역사를 갖고있는 동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던 발칸반도가 시작하는 곳이다. 남부 슬라브계 민족이 슬라브어를 쓰며 동방정교를 믿는 나라이다.

 

유고슬라비아는 다른 종교, 다른 언어를 쓰는 여섯 민족이 티토라는 강력한 지도자 밑에서 한 지붕을 이루고 살았으나 그의 사후 1990년대 유럽의 개혁과 개방 물결이 불어오면서 이질적인 민족들이 분열하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로 분열되자 연방 종주국을 자처하는 세르비아계가 보스니아의 독립을 막기 위해 인종 말살을 자행한 내전이 일어난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자치주로 있던 코소보가 또 분리 독립하였다. 당시 보스니아는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을 선언하면서 미국 등 서방세계의 보호와 지원을 믿었다. 발칸반도에서 강력한 유고슬라비아의 해체는 미국과 서방세계의 이해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자원이 없는 이곳에서 경찰국가의 임무를 외면했었다.

 

8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오늘의 목적지 ‘센타’를 알리는 지명 표지판이 희미한 전등 아래 보인다. 이제 사선(死線)은 넘어선 것 같았다. 목적지까지는 하늘과 사람들의 도움으로 왔는데 이 어두운 시골 마을에서 숙소를 찾는 일이 문제였다. 낯선 도시의 어두운 밤길에서 번지수를 가지고 집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구나 큰 호텔도 아니고 민박집이었다. 그런데 뒤에서 차가 서더니 당신 아나 게스트하우스의 손님이 아니냐고 묻는다. ‘이젠 됐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차를 따라서 나의 고된 한혈마를 밀며 달려갔다.

 

예약된 손님이 나밖에 없고 이제 집으로 가야 하는데 누가 아시아인 하나가 밤중에 유모차를 밀며 길을 달려가고 있다고 알려줘서 예약된 손님이 아시아인 이름이라서 혹시나 하고 나왔단다. 기적 같은 고마운 일이다. 오늘처럼 긴 하루가 주인이 서비스로 주는 맥주 한 병과 보드카 같은 세르비아 술이라는 데 3분의 1 정도 남은 병과 함께 무사히 끝이 났다. 부다페스트 교민에게서 받은 김치 통조림과 햄 통조림, 꽁치통조림을 넣고 찌개를 끊여 고픈 배를 채웠다. 남은 것은 내일 아침에 먹으면 되었다. 반주로 지금 같은 몸 상태에 그 독한 세르비아 술, 라키야를 마시면 무사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맥주 한 병으로 점잖게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였다.

 

달리기는 나도 모르게 내게 달라붙은 진흙 덩이 같은 습관과 삿된 생각, 무엇보다도 내 몸의 진흙 덩이 같이 달라붙었던 뱃살을 떨어내게 도와주었다. 달리기는 내 안에 내재해있는 감성, 직관, 신비를 사장(死藏)시키도록 강압된 삶에서 그것들을 자극하여 일으켜 세워 창의적인 에너지로 발현해 보고자 하는 나의 반란이다.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면서 나의 삶의 영역은 확장되어 가고 그동안 내가 괴로워하고 아파하던 잃었던 시간들을 바둑의 사석처럼 활용하여 큰 뜻을 이루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고귀한 시간이 되었다.

 

달리면서 커다란 기쁨과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견문과 지혜를 축적해간다. 달리면서 누리는 상쾌한 즐거움은 일체번뇌를 내려놓은 고승의 성스러움과 같다. 나의 마라톤은 희석식 소주 라키야를 내리듯이 땀방울을 희석(稀釋)시켜 기쁨과 삶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내 달리기는 어쩌면 한반도의 허리에 진흙덩이처럼 달라붙허 있는 휴전선의 철조망을 떨궈내는데 일조를 할 수도 있겠다. 발칸 땅에서 한반도를 생각하는 건 너무도 당영한 것이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