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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4)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4)

소피아의 리듬을 타고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내 마음 갈대와 같아서 가는 나라마다 그 나라에서 다른 사랑에 빠져서 헤어질 때마다 곤욕을 치르곤 한다. 내가 사랑에 약한 사람이다. 세르비아와의 사랑은 지독한 것이었다. 세르비아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두렵고 무섭기까지 했었다. 깊은 사랑일수록 이별도 쉽지 않아서 지난번 헝가리를 빠져나올 때는 나의 한혈마가 진구렁에 빠져 한 시간 반을 사투를 벌였는데 이번에 세르비아를 나오는 날은 한혈마의 바큇살이 네 개나 부러져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침에 통일흥부가족이 이리로 온다고 했는데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못 만난 것이다. 길이 어긋난 모양인데 큰일이 났다. 질주하는 트럭이 우선권을 갖은 곳, 갓길도 없는 길에서 멈췄으니 그 공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거기다 나는 지금 발에 부상이 와서 달리지도 못하고 절름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다리에 온 신경을 써야 하는 차에 수레까지 말썽을 부린 것이다. 우선 그 무거운 수레를 공간이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 급선무였다. 바퀴가 부러진 70kg이 넘는 손수레를 이동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한참을 막막한 상황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에 낯익은 차가 지나간다. 마치 나는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선박 하나를 발견한 심정이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나는 이제 불가리아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눌 준비가 되었다. 국경을 넘어서 조금 가다가 고속도로 옆으로 시작되는 노란 단풍이 예쁘게 물든 박석이 깔린 옛길은 누구와라도 금방 사랑에 빠지게 하고 조금이라도 예술적 감각이 있는 사람에게는 예술적 영감에 사로잡히게 할 만큼 아름다운 길이였다. 한적한 숲속에 이런 길이 있다니 옛날에 영화를 누리던 도시였다가 사라졌나 보다. 지금은 그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랄만한 한적한 숲속이었다. 새들은 동경에 가득 차 노래했고 통증으로 고생하던 나의 발걸음도 희망에 가득차 춤추듯 살랑거렸다. 그 길에 마음이 홀려 무아의 지경에서 달리고 있는데 아이들 둘이 숲 속이 요정처럼 “Welcome to Bulgaria!”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내가 익히 알던 요정들이 왜 이 숲속에 나타났을까?

 

내가 어리둥절하여 사태파악을 하려고 애쓰는 순간 숲속에서 어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나는 달려가 아이들을 와락 껴안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최고의 환영은 놀라움을 선사하는 것! 가진이 가족이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나를 차량 지원하고 다른 팀은 내가 국경을 넘어서 들어오는 멋진 길목에서 최고의 환영파티가 연출하였다. 불가리아는 장미를 닮은 열정과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한 풍광과 동서양 문명이 만나 만들어낸 특유한 문화가 있는 나라이다. 이들은 자연을 숭배하고 그 속에 동화되어 살면서 건강과 장미를 선물 받았다.

 

이곳에 오기 전 불가리아에 대하여 아는 것이라고는 장수 나라라는 것과 불가리아 향수와 요구르트 맛이 특별하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여려서부터 아름다운 불가리아 소녀에 대한 환상을 가졌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장수라는 단어 하나로도 이미 많은 것을 눈치로 알아챘다. 맑은 물과 맑은 공기, 맘씨 좋은 인심, 그리고 건강한 먹거리 거기에 걱정과 근심을 날려버릴 아름다운 전통문화 또 좋은 술. 이 정도면 나의 눈치도 여행길에 굶어 죽진 않을 정도일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작은 나라 불가리아인들의 대단한 자긍심은 어디서 출발하는 것일까? 단지 국경을 하나 넘었을 뿐인데 여기 사람들의 표정은 도도하다. 도도하지만 무뢰하지 않다. 조상이 슬라브 문화의 기초를 쌓았고, 그 언어가 오늘날까지 슬라브 민족의 언어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5백 년간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고유의 문화를 지켜온 민족이다. 어디 오스만 민족뿐이랴! 코트족의 침입 훈족의 태풍같은 말밥굽 아래 폐허가 되었어도 그들은 다시 일어났다.

 

발칸은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어 있지만 불가리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그리고 구 유고연방을 이루었던 국가들이 슬라브어를 쓰는 슬라브 문화권으로 분류한다. 그들이 쓰는 언어가 슬라브어이기 때문이다. 슬라브어는 불가리아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기 863년, 비잔틴제국 시대의 사제인 키릴과 메토디가 불가리아의 방언을 토대로 슬라브어를 창제했기 했다.

 

소피아로 들어섰을 때는 거의 40km쯤 달렸을 때이다. 그때쯤이면 언제나 육신은 파김치가 되어 마지막 온 힘을 쏟아부어 마무리하고는 하였는데 내 몸에 갑자기 신비로운 기운이 들어오는 것 같으면서 어떤 리듬을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피아를 감싸고 있는 비토샤산의 영험한 기운이 내게 들어오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치 신이 든 무당이 작두 위에 올라선 것처럼 몸이 중력을 잃어버린 가벼움을 느꼈다. 지금껏 내 다리를 괴롭히던 통증은 싹 가셨다. 소피아에 특별한 기운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진짜 나의 몸은 그다음 날 불가리아의 전통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었다. 불가리아 식당에서 불가리아 음식을 먹으면서 불가리아 선율에 맞춰 불가리아 여자와 손을 잡고 불가리아 스텝을 밟는 경험은 이 여행 중에 특별했다. 몸치인 나는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4분의 2박자의 리듬에 몸을 맡겼다. 달릴 때 리듬을 타는 것보다는 어색했지만 리듬을 탄 몸은 금방 기분이 충만해지고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녀는 나를 불가리아 전통 음악과 춤이 있는 식당으로 초청하였다. 마침 결혼식 피로연까지 겹쳐 불가리아인들의 결혼 풍속까지 볼 좋은 기회였다. 식당은 발 디딜 틈 없이 만원이었다. 어느 나라이건 결혼식과 장례식은 큰 행사이다. 그래서 거기에 전통과 문화와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소가 많이 녹아있다. 서로 사랑하여 결혼하는 것은 멋진 일. 사랑하라. 노래 부르라! 춤추라! 인생의 최고의 보람은 그뿐! 종업원이 메뉴를 들고 왔지만 알 수가 없어 그녀에게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내게 ‘샤츠’를 추천하였다. 고기와 야채를 섞어 요리하고 위에는 치즈를 듬뿍 얹은 요리였다. 입에 음식이 착착 달라붙었다. 한국인의 입맛에도 훌륭한 맛이었다.

 

나는 김나라씨와 같이 갔고 그녀는 자기 오빠와 함께 나왔다. 김나라씨는 소피아 음대를 나온 소프라노 가수이기도 하다. 둘 다 나이가 쾌 있는데 미혼이라고 한다. 분위기 있게 불가리아가 자랑하는 것 중의 하나인 와인도 한 병 시켰다. 불가리아 전통 음악이 흐르는 동안 와인은 잔에 따라져 채워졌고 서로의 궁금한 이야기는 마음에 따라져 채워졌다. 음악이 끝나는 중간에 김나라씨가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올라가기에 성악가인 그녀가 한국노래 한 곡 뽑을 것을 기대했는데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것이다.

 

나는 졸지에 무대에 올라가서 인사를 하면서 오늘은 어릴적 꿈이 현실이 되는 자리라고 말했다. 어릴 적 불가리아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불가리아 아릿다운 소녀와 춤을 추며 사랑을 나누는 꿈을 꾸었는데 오늘 나는 이 자리에서 불가리아 여자와 손을 잡고 춤을 추고 따뜻한 우정을 나누었다고 말했다. 나의 마라톤 여정을 설명하고 한반도의 통일이 우리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국제평화에 중요한 문제이니 여러분들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또한 오늘 결혼한 신랑·신부에게는 아이 셋을 점지해주도록 기도하겠다고 말하니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오늘 나를 초대한 그녀는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페친 이스크라(Iskra)이다. 내가 불가리아를 거쳐 간다는 소식을 듣고 소피아에 오면 꼭 만나서 밥 한번 같이 먹자고 연락이 왔었다. 몇 년 전 페북에서 우리는 큰 논쟁을 벌였었다.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은 그녀가 설날을 차이니스 뉴이어(Chinese New Year)라고 축하한다는 글을 올렸는데 그것이 내 목구멍에 걸렸다. 그날은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함께 명절로 여기는 날이니 음력 설(Lunar New Yewa)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었는데, 축하한다는데 말꼬리 잡고 사족을 붙이는 것이 그녀의 목구멍에 걸렸나 보다. 그녀가 언짢아했었다. 어쨌든 언쟁 후 우리는 한 번쯤 서로를 보고 싶어 했다. 마침내 우리는 만났고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나는 다람쥐가 도토리를 땅에 묻는 것처럼 불가리아에서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내 기억의 밑바닥에 파묻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그 다음날 나는 “Friday Chopstics”라는 불가리아 라디오의 인터뷰 요청이 있어서 인터뷰를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아시아의 문화를 주로 소개하는 곳이다. 나를 인터뷰한 보자나 기자는 한국말도 곧잘 하고, 작년에도 한국에 다녀갔었고 서울, 부산, 대구를 방문했는데 자기는 부산의 해운대 바닷가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소피아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듯이 그녀도 부산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한국의 방탄소년단 같은 멋진 소년과 리듬을 타면서 사랑을 꿈꾸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한인회에서 마련한 환영행사가 한식당에서 있었다. 나는 이스크라에게 혹시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한국 음식을 무척 좋아한다고 해서 그 자리에 이스크라도 초청하였다. 그런데 차가 밀려 약속 시간에 맞춰 못 가서 그녀를 30분이나 기다리게 만들었다. 20여 명이 모인 환영행사는 극진했으며 나는 그들이 불가리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궁금했고 그들은 내가 어떻게 이 일정을 소화해 내는지 궁금해 했다. 그들은 꼭 북한 통과를 해서 통일의 초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응원해주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불가리아라는 국명도 여성스럽고 소피아는 더욱 그렇다. 대부분은 불가리아 사람들의 옷차림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깨끗하고 맵시 있다. 그들의 표정에는 무시할 수 없는 기품 같은 것이 스며있었다. 서부 소피아 분지에 위치한 수도 소피아는 비토샤산이 저 멀리 벌써 눈을 짊어지고 있다. 산마저도 수려하고 기품이 느껴진다. 기후가 온화하고 푸른 숲이 우거진 공원이 많으며, 공원에는 그런 자연의 축복을 만끽하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중유럽과 서아시아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꽃의 도시’라 불린다. 발칸반도의 옛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소피아도 대부분의 오래된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29년 로마에 점령된 후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에서 군사기지가 되었다.

 

로마의 트라야누스 황제는 이 도시에서 로마제국의 화폐를 주조하라고 명령했고, 많은 온천을 만들었다. 소피아는 경치가 좋으며 온천이 많아서 로마제국의 공주 소피아가 이곳에 와서 질병을 치료한 후 ‘소피아’라 명명되었다고 한다. 꽃의 도시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1989년 공산주의 체제가 물러나고 레닌 동상을 허물고 그 자리에 소피아공주 동상이 세워졌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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