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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9)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39)

지중해의 훈풍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거리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보았을 때, 그녀를 불손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그윽하고 은밀한 시선으로 응시하지 마시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사랑스럽게 미소짓고 눈길을 돌리고 지나가시오!” 내가 형제의 나라 터키를 지나면서 첫 번째 덕목으로 지켜야 할 경구이다.

 

아침 출근길이라 거리는 부산했다. 버스정류장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앞을 지나는데 내가 한국 사람인지 알아보고는 한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세요? 하며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인사를 붙인다. 나는 ”네 맞아요.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하고는 ‘지나치게 그윽하고 은밀한 시선으로 응시하지 마시오!’란 경구에 충실하느라 ‘서로 눈이 마주치면 사랑스럽게 미소짓고 눈길을 돌리고 지나가시오!’란 뒤의 경구를 잊었다. 사랑스런 미소를 짓는 것을 지키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못내 아쉬움에 고개를 자꾸 뒤돌아보지만 버스는 떠난 뒤였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곳에서 아이들이 환영은 대단했다. ‘브라더’라고 소리치며 달려든다. 아이들만큼 터키는 역동적인 국가이다. 터키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것이 눈에 보인다. 터키 경제에 훈풍이 불고 있다는 것을 금방 피부로 느낄 수가 있다. 터키는 국토의 3%만 유럽에 속하고 97%가 아시아에 속해 있지만 많은 부분이 서구화되었다.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 개혁으로 많은 부분 유럽식 제도와 문화를 도입했다. 이스탄불은 결국 서양과 동양 사이에 남았지만 그들은 한때 서양이 되기 위해 머나먼 길을 떠났었다. 그것이 축복인지도 모르고 두 세계 사이에 있는 고유성을 버리려 했었다. 터키가 얼마나 아름답고 신기하고 멋지고 고유한 곳인지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40년간 유럽연합 가입을 원했지만 아직 준회원국이다. 오랜 세월 유럽을 지배했던 역사 때문에 유럽의 반대가 심했다. 터키는 1952년 나토 회원국이 되지만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에는 가입하지 못했다. 속으로는 이슬람의 영향을 깊게 받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서구화를 추구한 터키는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터키가 아시아로 눈을 돌리자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이슬람권의 국가들의 눈으로는 신을 모독한 나라이어서 같이 동화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굳이 유럽연합 가입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유로존의 위기와 브렉시트로 EU 가입의 매력이 떨어졌고, 터키의 경제성장률이 유럽연합의 경제성장률을 앞서가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제 터키는 조금 더 종교적인 국가로 보이기 위하여 모스크를 방문하는 외국인 여성들에게 히잡을 쓰도록 한다. 터키는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 예외적으로 반 건조 지역이며, 지중해, 흑해, 카스피해 연안에는 비가 내리는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그러나 끝없이 펼쳐지는 벌판에는 숲이 없다. 나무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가 없다. 생명력이 강해 보이는 작은 나무들이 벌판에 간혹 보일 뿐이다. 이런 곳을 초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비가 오면 시들었던 풀들이 생기를 얻어 살아나고 동물들은 그 풀을 따라 끝없이 이동한다.

 

쿨레리에서 촐루까지 100번 도로를 타고 가는 길은 공업단지의 연속이다. 특히 섬유공장들이 즐비하다. 터키 인구의 20%가 종사하는 섬유산업은 세계 6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터키의 섬유산업은 오스만 시대인 16, 17세기에 이미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그 길을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큰 섬유공장의 경비가 불러서 갔더니 차이(차)를 한잔하고 가라고 한다. 구엘 차이(차나 한잔하고 가시오!) 이 말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몇 마디 안 되는 터키어이며 터키인들이 실크로드의 집결지에 살면서 지나다니는 대상이나 과객을 대하는 오랜 전통이다.

 

경비실에는 서너 사람이 어슬렁거리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내가 경비실에 들어서자 나를 불렀던 사람이 자기가 앉았던 의자를 내주고 다른 사람은 차를 내준다. 차가 목젖을 타고 넘어가면서 가슴을 데워준다. 그들은 언제라도 손님이 오거나 자신이 마실 수 있게 차의 온도를 데우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차를 마시면서 나는 말은 안 통하겠지만 감정은 느낄 수 있을 터이니 에르도안 대통령을 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언론이 전하는 소식과 현지의 실상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이곳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케말 파샤가 1923년 터키공화국을 세운 이래 터키 현대사는 군인들이 주도해왔다. 지난 쿠데타는 시민들에 의해 좌절되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시민들이 지켜낸 것이다. 서방 언론은 이곳의 터키인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에르도안을 무자비한 독재자로 묘사했었다. 쿠데타가 일어날 무렵 터키의 외교정책이 급선회했다. 나토의 회원국이며 미국에 가까웠던 터키는 러시아와 이란과 합작하여 시리아 내전을 종식하려고 나서려던 참이었다. 터키는 미국의 중동 정책의 베이스 캠프 같은 곳이고 러시아 압박을 최전선에서 마주한 나라이다. 에르도안이 쿠데타의 배후로 미국을 주목한 이유이다.

 

에르도안은 1994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되면서 불법 건조물 철거, 녹지 조성등 현안을 척척 해결하면서 지지도가 높아졌다. 그는 국가 의례였던 아타튀르크에 대한 묵념을 생략하는 대신 쿠란을 낭독하면서 세속화의 상징인 군부와 대척점에 섰다. 그는 ‘이슬람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2003년 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영국은 성공회가 국교이고 미국은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대고 선서를 하는데 왜 무슬림이 90%가 넘는 터키에서 이슬람을 발설할 수 없나?”라고 사자후를 토해내며 민중들은 환호하고 열광했다. 터키는 미국의 동맹국이자 나토 가맹국이지만 독자적인 외교을 펼친다. 더 이상 미국이 선도하고 유럽이 가세하는 불의한 전쟁에 가담하지 않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조금 더 가니 길거리에 야채 좌판 행상들이 쭉 늘어서 있다. 주로 수박과 멜론이다. 멜론은 내가 처음 보는 모양이어서 처음에 늙은 호박인가 참외인가 궁금해하면서 달리고 있는데 이번에도 마음씨 좋게 보이는 아저씨가 나를 부르더니 멜론을 맛보기로 깎아주었다. 맛보기의 상술을 여기서도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어린 시절 엿장수가 동네에 나타나면 맛보기를 마구 주었다. 그 맛을 본 아이들은 집에 들어가서 쓰고 있는 냄비나 양은 대야까지 들고나와 엿과 바꾸어먹고 엄마한테 치도곤을 치르곤 했는데 나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가끔은 상술하고는 상관이 없는 인정이기도 했다. 크고 노란 과일에 관능이 숨어있었다. 멜론을 먹고 나자 과즙이 입에서 귀까지 끈적끈적하게 묻었다. 먹어보니 목도 마른 참에 얼마나 달고 시원한지 하나 샀다. 이곳에는 초콜릿 공장도 많이 보인다. 대형 초콜릿 매장의 사장님이 잠시 나왔다가 내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더니 나를 부르더니 안으로 들어가서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초콜릿을 종류별로 가지고 나와 내게 준다. 나는 하나만 맛을 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실리블리의 언덕을 넘어서자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지중해의 따뜻한 온기가 깍듯하게 나를 맞는다. 며칠 계속 안개가 짙게 낀 이유가 있었다. 북구의 찬 기온과 지중해의 따뜻하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만나면서 안개가 끼는 것이다. 지중해의 푸르름이 나의 시선을 진공청소기가 실오라기를 빨아들이듯이 쭈르르르 빨아들인다. 대서양 끝에서 시작하여 꼬박 3개월 만에 마르마라해의 자락에 다다랐다. 시간이 흐르고 발길이 흘러 또 하나의 바다 어귀에 닿았다. 이곳의 위도가 서울보다 높아서 해는 아주 짧은데도 이렇게 따뜻한 바람이 분다. 12월이 내일모레인데 바닷가에 장미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다. 서울과 평양에는 평화의 훈풍이 일어나길 염원하며 오늘도 힘든 발걸음을 옮긴다.

 

터키 국경을 넘어서부터는 양준호씨가 운전을 해주고 김미영 김은향 두 분이 내 식사를 챙겨주어서 잘 먹고 잘 달리고 있는데 이제 이스탄불이 가까워져 오자 가진이네 가족이 전부 비행기 타고 이곳에 온다고 한다. 통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가족이다. 나의 평화통일 마라톤을 응원하기 위하여 온 가족이 열 일 다 제쳐두고 오는 길이니 눈물겹게 감사하다. 이제 내일이면 오스만튀르크의 심장 이스탄불에 도착이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면서 몸이 천근만근이다. 몸이 힘들면 제일 무거운 게 눈꺼풀이다. 달리는데 눈꺼풀이 자꾸 아래로 깔린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대부분의 세계사 속에서 비중을 두고 다루지 않았지만 튀르크족은 세계사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해왔다. 부민 카간이 동생 이스테미와 함께 유연을 몰아낸 후 돌궐 제국은 급속하게 성장한다. 돌궐 제국은 분열되어있던 북중국을 공격하고, 비잔틴 제국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한다. 570년경에 이르러서는 고구려에서 비잔틴 제국 사이에 존재하는 스텝 지대는 사실상 돌궐이 다 차지하는 형국이 된다. 비잔틴 제국에 큰소리를 치고, 페르시아를 위협하고, 북중국에 있는 북주와 북제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들은 수천 년에 걸쳐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일대에 100여 개의 크고 작은 나라를 세웠다. 그 중 셀주크제국과 오스만제국은 이슬람 시대에 탄생한 초강대국이었다. 특히 오스만제국은 세 대륙에 걸쳐 세계 제국을 400년 가까이 평화롭게 다스렸다. 그들은 로마제국이나 대영 제국에 비견될 만큼 세계사의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도 세계사는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6세기 후반 중국이 수나라로 통일되면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가 요동을 치게 되었다. 돌궐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장안을 향해 진격해 들어가다 페르시아가 돌궐의 동방원정으로 생긴 공백을 이용하여 서쪽으로 공격해 들어오자 갑자기 회군하게 된다. 이 무렵 페르시아는 돌궐을 압박하는 한편 비잔티움과도 전쟁을 치른다. 수나라는 덕분에 안정을 되찾는다. 돌궐은 이제 수나라와 페르시아로부터 협공을 받고 중국에 통일 왕조가 들어서면서 물자를 공급받지 못한 돌궐은 내분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수양제의 100만 대군이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에게 패하여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돌궐은 다시 수양제를 공격하여 치명타를 날려 수나라가 붕괴하게 된다. 수나라는 결국 고구려에게 결정타를 맞고 돌궐에 피미쉬블로를 맞고 넘어졌던 것이다. 튀르크제국은 일찍이 철기 문명을 받아들여 몽골 초원부터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 아랄해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의 광대한 초원과 오아시스 지역을 통합하고서 요동지역에서 고구려와 인접했고, 중국, 인도, 페르시아, 비잔티움에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또한 튀르크는 최초로 초원길을 통합해 국제 교류를 크게 활성화한 나라이기도 하다. 거대한 지역을 통치하는 데에는 잘 훈련된 기마병이 필수적이다. 고대 역사에서 말과 활, 그리고 철제 무기는 오늘날 대륙간탄도 미사일이나 전략 폭격기와 같은 '전략 무기'였는데, 유목민들은 이것을 다루는데 뛰어났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슬람이 튀르크인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아나톨리아로 이동하기 훨씬 전인 8세기 무렵이었다.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흩어져 살던 튀르크족은 아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인두세를 면제해주겠다고 달콤한 약속 때문에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그리고 전쟁에서 이긴 사람이나 진 사람이나 사람은 알라 앞에서 평등하다는 교리도 마음에 들었다. 전쟁에 지면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복음 같은 제안이었다. 그리고 이슬람의 세계 종교화는 튀르크인의 공이 지대하다. 쿠란 어디에도 강제적 개종을 가르치지 않았다.

 

알라신이 낯설기는 했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최고신으로 섬기던 ‘텡그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중앙아시아의 모든 유목민이 모시던 신이 ‘텡그리’이고 우리의 단군과 어원이 같다고 한다. 그들은 탱그리를 믿듯이 알라를 믿게 되었다. 이슬람인들은 매일 다섯 번 신앙고백을 한다. ‘안 라 일라하 일랄라, 안나 무함마드 라술룰라’ 이는‘ 알라 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제다’라는 뜻이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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