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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2)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2)

‘마이더스 손’의 전설의 고향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마라톤과 역사기행,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까지의 결합에 처음에는 어색했던 분들도 이제 3개월여 나와 함께 마음으로 동행하면서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한다. 구석구석 다 돌아보지 못하는 아쉬움과 달리면서 만난 이 놀라운 세상을 피곤한 몸으로 다 적어내지 못하는 아쉬움은 늘 클 수밖에 없다. 문명의 배꼽이라 불리는 아나톨리아 반도, 오감 만족, 신비로움과 놀라움으로 가득한 터키, 땅속에 묻혀있는 것이 대지 위에 서 있는 것보다 많은 전설의 나라를 지금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지도를 보니 사판차에 호텔이 있어 찾아갔는데 이상하게 산으로 자꾸 올라가도 내가 찾는 호텔은 없었다. 입구에 스키 대여점이 있는 스키리조트 지역이었다. 무거운 유모차를 밀며 산의 중턱까지 올랐으나 지도상에 표시된 곳에 호텔은 없었다. 이럴 때는 온 몸에 힘이 다 빠지고 좌절감이 몰려온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택시를 타야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친절해서 우물쭈물하는 사이 이미 택시를 불렀고 택시 운전사는 내 유모차를 실을 수 없다고 판단하자 친구의 더 큰 차를 불렀다. 자그마한 펜션이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나와서 살갑게 맞아준다. 말은 안 통하는데 자꾸 말을 붙이더니 고등학생인 아들을 불러 통역을 시켰다. 자기 아들이 축구선수라고 자랑을 하면서 나의 여행에 대해 듣고 싶어 한다. 나는 산등성이를 오르느라 배가 고팠으므로 저녁을 먹으러 나가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맛있게 만들어 줄 테니 염려 말라고 하면서 내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했다.

 

내가 우선 샤워를 해야겠다고 하니 이 층의 방을 안내하며 조금 기다리면 차를 가져오겠다고 한다. 샤워하고 나오는 시간에 맞춰 오난은 차를 들고 내 방에 올라왔다. 올라왔을 뿐 아니라 내 동의도 얻지 않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내 여행담을 듣고 싶어했다. 그뿐이었을까? 터키의 갸름하고 꿈꾸는 듯한 터키색 눈빛의 낯선 여인과 호젓한 방에 마주 앉아 있자니 야릇한 마음이 자꾸 일어 불편하였다. 젊어서도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무모한 짓을 한다면 쇼셜미디오를 타고 순식간에 전세계에 생중계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알아듣든지 말든지 영어로 말하며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알아듣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도 사진을 보며 즐거워했다.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배가 고프다고 좀 과장된 표현을 하니 그때야 아쉬운 듯 저녁을 준비하러 내려갔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옆다리에 바싹 다가와 내 이야기를 조른다. 그녀는 아침 일찍 떠나는 나를 위해 이른 아침도 준비해주었고 골목길을 찾기가 힘들다며 한동안 길을 안내하며 따라오더니 큰 길이 나오자 따뜻하게 포옹을 해 주며 행운을 빈다고 이별의 아쉬움을 표했다. 이렇게 살가운 대접을 받을 때는 정에 굶주린 나는 더 이별이 아쉽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나는 사카리아에서 원래 계획했던 헨덱과 뒤즈베를 거쳐 에르주름을 지나서 이란으로 넘어가는 고전적인 실크로드를 가는 대신 흑해 쪽으로 올라가서 흑해 연안을 따라서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을 통과해서 이란으로 들어가 카스피해 연안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에르주름은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고산지역으로 9월부터 눈이 내려서 겨울에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너무 춥고 폭설을 만날 수 있다는 현지인들의 조언은 냉엄해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카리아강 유역은 훗날 아타튀르크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이 그리스와의 독립전쟁에서 격렬한 전투 끝에 승리를 얻은 곳이다. 아나톨리아 반도 이즈미를 점령하고 있던 그리스가 내륙으로 쳐들어오자 이곳에서 격퇴하고 그 결과 영국은 마르마라해와 에게해를 연결해주는 전략적 요충지인 차나칼레와 이스탄불을 무스타파 케말에게 내주게 되었다. 이곳은 시안에서 출발한 대상들이 그 모든 역경과 고난을 헤치고 무사히 이스탄불까지 가는 마지막 관문이기도 했다. 이제 이곳에 도착한 대상들은 살아서 돌아온 기쁨과 부자가 되리라는 꿈에 맘껏 들떠 긴장이 어느 정도 풀렸으리라! 사카리아를 지나자 이제 흑해로 가는 산을 넘어야 했다.

 

수많은 산골 마을을 지났다. 길은 차만 지나는 길이 아니라 소나 양이 지나는 길이기도 했다. 여기서 운전자들은 사람에게는 양보하지 않았지만 소나 양 떼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우선권을 내주고 다 지나갈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리곤 했다. 사실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것이 동장군의 기습이다. 옛날 카라반들이 제일 두려워했던 것이 마적 떼라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동장군의 기습이다. 예정에 없던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 두 나라를 더 지나고 거리가 좀 더 늘어나겠지만 안전하게 완주를 하는 방법을 택했다.

 

언덕 아래 흑해가 멀리 바라보이더니 소나기와 함께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금방 유모차 안에서 우비를 찾아 입었지만 비가 오면서 기온이 갑자기 많이 떨어져 체온이 갑자기 떨어졌다. 어느덧 비는 눈비로 변해서 거리에 쌓였다. 버스정류장 처마 밑을 찾아 들어가 우비를 벗고 안에 옷을 하나 덧입는다. 사카리아에서 폰투스산맥을 넘어 흑해 연안에 처음 도착한 도시는 카라수라는 도시이다. 거기까지 눈비를 맞고 54km를 달렸다. 눈비가 오는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유모차를 밀며 가는 길은 악전고투였다. 런링화는 젖어서 발이 시려온다. 게다가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트럭이 지나가면서 얼음샤베트를 듬뿍 씌어주며 사라진다. 카라수에 도착하자 가로수가 야자수인 것을 보고 이곳의 기후가 아열대 기후라 생각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그러고 그다음 날 악차코차까지 가는 동안에 온종일 눈비를 맞고 달렸으니 그야말로 동장군의 기습을 받았지만 이 정도는 충심 어린 현지인들의 충고를 잘 받아들여서 얻은 최상의 결과였다. 여행이 만들어준 유연한 사고(思考)에 따르지 않았다면 상상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어느 한적한 곳을 지나다 동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흑해의 해안 휴양도시라 호텔은 깔끔했고 매니저는 내게 흑해가 내려다보이는 특별히 좋은 방을 주었다. 단단하다고 믿던 나의 몸도 동장군 앞에서는 속일 수 없는 환갑의 몸에 불과하다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들통나버렸다. 결국 굴루찌에 와서 이틀을 감기몸살로 꼼짝 못 하는 창피한 일을 당하고 말았다. 누런 코가 샌드위치에 뿌려지는 마요네즈처럼 쏟아져 나왔고 몸에서 열이 펄펄 끓었다.

 

온종일 꼼짝도 않고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있었지만 하루 세끼는 챙겨 먹어야 했다. 아침은 호텔 조식을 먹었고 점심때는 매니저가 내 상태를 보고는 위로를 하면서 ‘함씨’가 감기에 좋으니 그걸 먹으라 했다. 함씨는 흑해와 지중해에서 잡히는 멸치와 같은 어종인데 가격이 저렴하여 터키인들이 즐겨 먹는 어종이다. 함씨 튀김과 방을 시켰다. 흑해를 담은 고소하고 비릿하고 달쪼름한 맛이 입안에 퍼져나간다.

 

더 쉬어야 했지만 나는 분연히 일어났다. 지금 일어나 달리지 않으면 물밀 듯 몰려오는 오스만튀르크 군대에 참혹하게 당해버리기라도 할 듯 달려나갔다. 원래 인간은 삶의 목표가 뚜렷하면 어떤 것이든 견딜 수 있다. 나는 무엇이 이렇게 등 떠밀어 달리게 하는지 알지 못했다. 저 밑 깊은 곳에서 솟구쳐오르는 어쩔 수 없는 원초적인 본능이 나를 달리게 한다. 어떻게 이런 욕망이 내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60이 넘어서 분출되는지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나는 지금 누구를 이기기 위해 기를 쓰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완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마라톤이 아름다운 것은 꼴찌도 없고 일등도 없고 오로지 완주자만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를 넘고 싶을 뿐이다. 찌질한 나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싶을 뿐이다. 물론 그것으로 지금의 나를 자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 본격적인 동장군의 기습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몸이 축나니 이젠 정말 앞으로 수도 없이 만날 동장군의 기습이 두렵기만 하다. 흑해는 다른 바다에 비해 염도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외해와의 교류가 적으니 산소의 양이 절대 부족하여 서식하는 생물체가 제한적이다. 바닥에는 죽은 박테리아가 쌓여 황하수소를 발생시키는데 이것이 바닷물을 검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는 흑해가 검게 보이질 않으니 터키어로 카라데니스(karadeniz)라는 말이 검은 바다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카라(kara)는 북쪽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튀르크인의 오방색은 신기하게도 한국과 일치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도 동쪽은 푸른색, 서쪽은 흰색, 남쪽은 붉은색, 북쪽은 검은색, 중앙은 노란색으로 상징했다.

 

어제는 사복경찰이 나를 세우고 이것저것을 물어보더니 오늘은 정복 경찰이 또 불신검문을 한다. “신분증” 나는 허리에 찬 허리백에서 신분증을 내밀었다. 그는 공부 잘 하는 학생 책을 보듯 꼼꼼하게 여권을 살핀다. 암기라도 하려는 듯 시간이 오래 걸린다. 머리가 나쁜 사람도 여권에 적힌 정도를 암기하는데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답답하고 불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고압적으로 대하진 않는다. 터키가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이지만 정정이 불안한 것이 이런 사소한 일에서 엿보여져서 씁쓸하다.

 

“터키는 인류문명의 야외 박물관이다.”고 토인비 박사는 말했다. 터키는 지난 5000여 년간 메소포타미아, 히타이트, 아시리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의 문명을 아우르는 문명의 집결지이면서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중에서 히타이트 문명은 터키에서 발흥한 문명이다. 기원전 2000년 경 인류가 아직 청동기 문명에 머무를 때 터키의 수도 앙카라 부근에는 인류 최초로 철을 만들어 사용했던 히타이트 문명이 일어났다.

 

철기 문명은 고대국가 설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철기는 전쟁과 인간의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철제무기는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서 기병 위주의 기사들이 벌판에서 벌이던 전쟁을 보병 위주의 일반 병사들이 성벽을 쌓고 하는 전쟁으로 바꾸어놓았다. 전쟁은 더 규모가 커졌고 잔인해졌다. 철제 무기 앞에서 동검은 장난감에 불과했다. 철기 문명은 이제 농기구에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부자와 가난한 자가 생기게 되었다.

 

기원전 18세기 터키의 ‘하투샤’라는 지역에 철제 무기와 전차로 무장한 히타이트는 금방 주위의 부족을 제압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하였다. 히타이트는 바빌론을 제압하고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했고 풍요로운 문화, 고유의 법전까지 갖추고 500년 가까이 발전하던 나라가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 역사의 의문이 20세기 고고학적 발굴로 세상을 다시 한번 놀라게 하였다.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적에는 성문을 지키는 사자상, 이륜 전차를 타고 반달형 칼과 철퇴를 메고 행진하는 군신상, 도끼를 들고 있는 전사상(象) 등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발견된 점토판에는 인류 최초의 평화협정이 맺어진 전투 ‘카데시 전투’ 내용이 수록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목말라하는 ‘평화협정’의 역사는 이미 기원전 2천 년 전부터 인류가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쉬운 문제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높은 온도의 불이 필요했다. 불에 바람을 넣으면 산소를 많이 공급받은 불은 더 거세계 타오른다. 이것을 풀무질이라고 한다. 불을 다루는 기술이 철기시대를 열었다. 히타이트는 당시 최첨단 기술인 제철 기술을 독점하고 완제품만 수출하였다. 철의 가격은 금의 5배, 은의 40배나 되는 귀중한 물건이었다. 그들은 기원전 1,200년 도리아인의 공격으로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 후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절대 강자가 없이 여러 개의 작은 나라들이 나타나는데 그중의 하나가 고르디온에 있었던 프리키아 왕국이다. 마이다스의 손으로 유명한 마이다스 왕의 나라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이다스 왕은 아나톨리아에 실존하던 인물이었다.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손과 당나귀 같이 큰 귀를 가졌다는 바로 그 왕이다.

 

그는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스승을 극진히 대접하여 황금의 손을 얻었지만 오히려 그런 능력이 그에게 고통이 되었다.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되어버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었다는 교훈이다. 그리고 그는 태양의 신 아폴론의 비파 소리를 저평가하여 당나귀 귀같이 커다란 귀를 갖게 되었으니 우리나라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설화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터키에서 신라 경문왕의 이야기와 같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를 만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1950년, 고고학자들은 고르디온 부근에서 80여 개의 커다란 무덤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 중 마이다스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가장 큰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의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2,300년이나 견디어 온 나무로 만들어진 침대는 외부의 공기가 닿는 순간 그대로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발굴 당시 왕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입은 채였으나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먼지가 되어 날아가고 앙상한 뼈들만 남아있었다.

 

마이다스 왕의 시신은 발굴 순간 먼지가 되어 바람에 날아갔어도 마이다스 왕의 왕금 손이 주는 교훈은 현대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의 허상을 그대로 우리에게 고발한다. 먹는 음식도 손을 대는 순간 황금이 되어버리고,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만지는 순간 황금이 되어버리는 마이더스 왕의 저주받은 모습은 가끔 보는 드라마 속의 사랑도 돈으로 하고 결혼도 정략결혼을 하는 재벌들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수갑을 차고 포토라인에 서는 재벌 2세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물질을 숭배하고 경쟁적으로 소유하는 데 집착하느라 우리는 정작 사람답게 사는 법을 잊어버렸다. 마이다스의 황금 손을 갖기위해서 앞뒤 가리지 않았다. 지중해 바다의 펄떡거리는 고기처럼, 첫 애인을 만나듯 가슴 뛰는 삶의 기쁨을 되찾으려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물질이 개벽 되니, 정신을 개벽하자!”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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