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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4)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44)

커피 칸타타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갓 내린 구수한 커피 향이 진동하는 카페에 앉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휴식이며 해방이고 자유이다. 찻잔을 입에 대는 순간 코로 더운 김이 느껴지고 구수한 향이 전달되면서 쓴맛이 혀끝에 감기는 순간 뇌는 삶의 암호를 해독하려는 듯 기분 좋은 운동을 시작한다. 이 찻집은 여느 터키의 찻집과 분위기나 여러 모에서 달라도 한참 다르다. 보통 찻집은 마을 한가운데 있어 아저씨들이 촘촘히 모여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게임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찻집은 여자들은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고 남녀 간에 내외를 심하게 하는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 당연히 아저씨들이나 소년이 찻잔을 나른다. 터키의 찻집은 단순히 차를 마시고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친목을 다지는 곳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술집이 없는 터키에는 유난히 찻집이 많은데, 찻집 앞을 지나려면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와서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동방의 끝자락에서 온 나그네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터키에서 차를 건네는 것은 손님을 대접하는 의미이다. 사실 터키인들이 홍차를 좋아하게 된 것은 터키 초대 대통령인 아타튀르크의 영향도 있다. 그는 터키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위인이다. 아타튀르크가 홍차를 자주 마시고, 또 사람들에게 홍차를 자주 권한 것이 유래가 되어서 터키 전체에 차를 좋아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그가 하는 일이라면 나쁜 일이라도 따라 했을 터키 국민이 그가 멋지게 지인들과 홍차를 나눠 마시는 일은 멋지게 보였으리라.

 

홍차는 주로 흑해 일대에서 생산되는 홍차 잎을 이용해서 만든다. 흑해 연안의 산간지대에 계단식 차밭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터키 사람들은 ‘차이’라고 부르는 차에 보통 각설탕을 1개에서 2개를 타서 마신다. 그런데 이 찻집은 인적이 드문 한적한 시골 길가에 있다. 40여 살쯤 된 예쁘게 생긴 아주머니가 주인이다. 한적할 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집도, 언덕 위에 있어서 아래로 조망이 좋은 집도 아니다. 이런 곳에 무슨 손님이 있을까 싶은 찻집이다. 실제로 어제 이 앞에서 개에 물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선정적인 젊은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TV 채널에 맞추어 놓고 가끔 따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다 몇 번 본 것 같은 친근한 가수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터키의 국민 디바 ‘세젠 악수’이다. 그녀의 소울풀한 노래를 들으면 터키의 에데트 피아프이고, 이미자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테이블엔 읽다 덮어둔 톨스토이의 소설책 ‘전쟁과 평화’가 놓여있다. 벽에는 사슴 머리가 박제되어 걸려있었다.

 

그녀는 얼굴도 예쁘지만 성격도 좋아서 통하지 않는 말을 나그네와 계속해서 손짓·발짓 사용하며 조잘거린다. 언어를 공부하지 않은 대가는 잔혹해서 그녀의 친근감 있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입가에 맴도는 질문을 그대로 삼켜야 했다. 무언가 주민등록증 같은 증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못 알아보니 엽총 총알을 보여주는 것이 사냥 라이센스인 모양이다. 자기가 사냥도 즐길 줄 아는 여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벽에 걸린 사슴 머리 박제도 그녀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커피와 토스트를 시켰는데 기름 막이 뜨는 신선한 양젖을 데워서 내다 주기도 한다. 위층을 향하여 무어라 소리를 치니 조금 있다 할머니가 두레박의 줄을 내려서 전해주는데 그것은 포도 잎에 말은 밥이였다. 위층의 할머니는 어머니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그녀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딸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나는 내 휴대전화의 유럽을 지나오면서 찍은 사진을 펼쳐서 보여주었다. 사진을 통해서 우린 서로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커피 한잔 마시고 출발하려다가 우린 서로 뭔지 모르지만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제 개한테 물린 바로 그 앞에 있는 찻집이고 내 다리를 치료해주고, 내가 하의를 벗은 모습을 보여준 여자이며 함께 병원에 갔던 여자이다. 개한테 물리고 병원 갔다 오느라고 마치지 못한 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어제 멈춘 그 장소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하여 왔다. 비교적 짧은 거리라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커피 향보다도 오묘하고 자극적인 그녀의 넉넉하고 한적한 미소에 없는 여유도 만들어 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시간은 흘러 자리에서 일어나지지 않는 무거운 엉덩이를 단호한 마음으로 일어나 작별을 하면서 포옹 한번 해주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커피 향처럼 은은한 포옹을 해주었다. 흑해가 더 이상 검게 보이지 않고 따뜻하고 푸르게 보이는 것은 여행 중에 간혹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나타나는 기쁨 때문이리라.

 

사실 이 찻집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커피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였다. 내가 가는 이 비단길은 커피의 길이기도 했다. 에티오피아가 원산인 커피는 15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에 전래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목동이 자신의 염소가 커피의 열매를 따 먹고 잠도 안 자고 밤새 뛰어노는 걸 보고 신기해서 그 열매를 따 먹었더니 각성효과가 있는 걸 알았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처음에는 커피의 열매를 먹었다. 그러다 12세기 예멘에서 본격적으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씨앗으로도 충분히 맛과 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앵두나 체리처럼 생긴 빨간 열매 속의 씨앗만 골라내 물로 씻거나 햇볕에 잘 말린 뒤 볶아서 우려먹거나 달여 먹는 것이다. 커피는 본래 포도주나 술을 의미하는 ‘카와’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그것은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묘한 것이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초창기 커피 애호가들은 커피가 신의 은총으로 신에게 다가가게 하는 매개체라고 했고 반대론자들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쾌락을 즐기는 사탄의 음료라고 논쟁했다. 그러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도 어느 날 몸이 아파 누워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로 커피 열매를 먹고 회복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커피는 예멘을 거쳐 메카로 전파된 커피는 예배를 드릴 떼 졸음을 쫓기 위해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이슬람권에 급속히 확산하였다. 졸지 않고 밤새 기도하게 만드는 커피의 효능은 신앙심이 깊은 무슬림들로서는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었다. 더구나 술이 금지된 이슬람 세계에서 훌륭한 대체 음료로 사랑을 받았다.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원산지로 그들은 기원전부터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처음 이들은 커피를 음료가 아닌 식품으로 대했다. 지금도 에티오피아의 갈라족은 커피를 음식으로 대한다고 한다. 커피가 유럽에서 선풍을 일으키자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아랍인들은 커피의 독점을 위해 씨앗의 반출을 엄격하게 금했고 다만 커피 원두를 볶아서 팔았다. 처음 유럽에 들어갔을 때 커피값은 금값과 맞먹는 가격이었다고 한다.

 

유럽인들에게 식민지가 필요했던 것은 이 커피와도 관계가 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커피는 지금처럼 미시고 싶을 때 언제든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아니었다. 1616년 네덜란드인들은 커피 묘목을 몰래 빼돌리는 데 성공하여 식민지인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심었다. 네덜란드는 커피 무역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고 인도네시아는 지금까지 커피 주요 산지가 되었다. 모카커피는 아라비아반도의 항구도시 모카에서 수출되던 커피를 말한다. 커피의 매력은 순식간에 유럽을 휩쓸었다.

 

무슬림에게 커피가 소개되면서 커피는 급속하게 무슬림 세계로 전파되어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대량생산하는 과정에서 씨앗만으로도 충분한 향과 맛 그리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 커피는 술과 함께 세계인들에게 제일 사랑 받는 음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술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숨겨진 저 깊은 곳의 욕망과 감성을 드러내게 하는 감성의 음료라면 커피는 머리를 각성상태로 만들어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이성의 음료이다. 복잡하게 얽힌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술과 커피는 필수 음료처럼 되어있다. 둘 다 중독성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은 카웨(kahve)에 모여서 커피를 즐기기 시작했다. 카페는 카훼에서 유래한 말이다.

 

유명한 비엔나커피는 오스만 제국의 군인들이 빈에서 급하게 철수하면서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놓아두고 간 자루에 담긴 커피가 서구인들에게 전해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가 오스만과의 전쟁의 최대 전리품은 커피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커피는 유럽에서도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일부 가톨릭 성직자들이 커피를 ‘악마의 음료’라고 교황청에 진정을 냈다. 쏟아져 들어오는 청원에 골치가 아파진 교황 클레멘토 8세는 마지못해 판정을 내리기 위해 커피를 마셔보니 머리가 맑아졌다. 그는 커피의 맛에 흠뻑 빠져들어 “이 사탄의 음료는 이교도들만 마시기엔 너무 맛있다.”라고 하며 커피에게 축복하며 세례를 주었다.

 

커피 맛은 순식간에 유럽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현대인들에게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노트북을 가지고 일을 하던지 스타트폰으로 쇼설미디어를 하던지 음악을 듣는 장소이듯이 중세 유럽인들도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하우스에 가지 않았다. 뛰어난 맛과 향을 지닌 커피를 마시며 문화와 사교가 시작되는 공간이었다. 이스탄불의 카훼는 오늘날 카페라 불리는 커피하우스의 원조이다. 카훼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대상들은 물론 화가나 음악가 문인은 물로 궁전 고위 관료가 몰려들었다. 그곳은 오페라 극장이자 공연장이며 세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멋진 공간이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커피에 칸타타를 작곡하여 헌액하였다. 커피 중독에 빠진 귀여운 딸을 노래한다. “아, 커피가 얼마나 맛있는지, 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맛 좋은 포도주보다 부드러워요. 난 커피를 마셔야 해요. 누가 나에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아, 내게 커피 한 잔 따라주세요.” 커피는 안개 같은 오묘한 김을 내뿜으며 뭐라 설명되지 않는 오묘하고 자극적인 향으로 먼저 사람의 코를 유혹하여 뜨겁게 달구어진 액체로 입술을 적시며 입으로 들어와 치명적인 씁쓰레함과 구수한 악마의 맛으로 정신이 바싹 들게 하며 사람을 중독되게 만든다. 아홉 살에 아버지를, 열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결혼한 지 13년 만에 첫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최고로 인정받지 못하며 많은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바쁘게 사는 와중에서도 천여 곡이 넘는 음악을 작곡한 그에게 커피는 생활에 활력을 주는 유일한 사치였을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도 커피 애호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젊은 날 한 여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청혼을 받는 순간부터 그는 맑은 정신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여주는 커피를 마시며 심오한 고민이 시작했다. 결혼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700여 가지의 장단점을 파악한 결과 장점이 4가지 많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결혼을 결심하고 그 여인을 찾아갔는데 그 여인은 이미 결혼했고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었다. 700여 가지의 장단점을 파악하는데 7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프랑스혁명도 커피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카페가 유럽을 휩쓸자 지식인들과 대학교수들, 서민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평등과 자유를 논했고 자연스레 정치에 관한 토론과 비판이 이루어지면서 혁명의 싹이 커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촛불혁명도 카페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며 지난 정부의 적폐를 들추어내던 시민들이 광장에 촛불을 들고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개에게 물린 자리, 그 앞집 찻집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커피 칸타타를 떠올리며 평등과 자유, 평화를 생각하며 다시 힘을 내서 출발하는 한적한 아침이다. 평화의 원산지는 어디일까?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을 만날까?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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