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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0)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0)

두 남자의 흑해 사랑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달리기 여행이 오랜 시간에 걸쳐 주변 환경과 새로운 만남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 더 집중하게 되며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미래를 선사하는 놀라운 효과가 있음을 알아냈다. 상상력을 키워주고 마음의 품이 넓어져 세상을 다 포용할 호연지기가 생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육지로부터 산줄기가 바다로 뻗어 나간 곶과 바다가 육지로 파고든 만이 끝없이 반복되며 터키 국기의 초승달 모양 같기도 하고 오스만튀르크의 활모양 같기도 한 아름다운 곡선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 매혹적인 곡선이 만들어 낸 해변 흑해 연안을 원 없이 달려본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긴 한다. 내가 사랑에 마음 졸여 할 줄 안다. 푸른 물결을 사랑하고 그 물결이 파도가 되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을 때면 나도 이빨을 드러내고 환성을 지르고 싶기도 하다. 달리며 큰 호흡을 하며 푸른 하늘과 바다를 보면 무엇인가 꽉 차오르는 충만함을 가진다.

 

달리며 왼쪽을 바라보면 바다 풍경은 유화 그림처럼 색상이 또렷하고 오른쪽을 바라보면 구름이 산허리에 걸친 산맥의 모습이 수묵화의 농담처럼 아련하다. 흑해 연안은 터키의 면적 1/6을 차지하는 산악지대이기도 하다. 태백산맥처럼 거친 산맥이 계속 이어진다. 산꼭대기, 산비탈에도 비탈진 삶들은 이어지고, 꾸밈없는 작은 삶은 세월을 덧입어 전통이 되고 풍경이 되어 파도처럼 고랑 진 얼굴에 웃음처럼 펼쳐진다.

 

보기만 해도 숨 가쁘고 가파르고 아찔한 산꼭대기에도 인간의 삶은 이어진다. 그 옛날 산적들이 많아 산적들을 피하고 출몰을 감시하기 위해 산꼭대기에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는데 그들이 좋아하는 달과 별과 친구하기 좋아서인지 신과 가까워 기도하기 좋아서인지 이렇게 치안이 좋은 오늘날에도 내려올 줄 모르고 대를 이어서 살고 있다. 보는 이에게는 비탈진 삶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평면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사는지 궁금한 건 나그네의 몫이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송 교수님이 함께하면서 내 마라톤은 더 다채로워지고 변화무쌍해졌으며 살졌다. 지금까지는 홀로 외로운 질주였다면 이제는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내 쉴 시간이 줄어들어 불만이었다. ‘기레순’을 지나고 있었다. 송 교수님은 나보다 미리 앞질러가서 사람들에게 나의 무용담을 들려주며 팸플릿도 나눠주며 즉석에서 응원단을 구성하여 내가 지나갈 때면 박수와 갈채를 보내도록 준비를 한다. 어떨 때는 나와 같이 뛰도록 주문하여 1~2km 함께 뛰도록 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국립 병원이 있어 마지막으로 개 물린 상처 때문에 왁신도 맞아야 해서 병원에도 찾았다.

 

‘에스피예’라는 작은 휴양 도시의 여고 앞을 지나다가 식당을 발견했다. 마침 배가 고프던 상황이라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기저기‘꺄르르’여고생 특유의 생기발랄한 웃음소리가 한바탕 쏟아진다.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내 피부로 스며드는 것 같다. 소녀들의 웃음소리는 따라 웃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학교 앞의 분식집 같은 곳이다. 학생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나와서 간단한 샌드위치나 케밥을 사 먹는 집이다. 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기고 어색하게 곁눈질만 하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었다. 내가 먼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며 “Hello!”하고 인사를 하고 나는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자 호기심이 발동하는지 한 소녀가 ‘BTS’를 아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방탄소년단 특유의 춤을 흉내 낸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아! 저렇게 BTS처럼 세계 모든 젊은이의 모든 고민을 아울러내는 세대의 공감대를 자극하는 방법은 당연히 세게 모든 이들의 평화정신을 자극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법은 있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이어지고 내가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부터 이곳까지 달려서 왔다고 소개하자 안 믿는 눈치이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그동안 찍은 사진을 한 소녀에게 보여주자 그 안에 있던 모든 소녀들이 내 주위로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놀라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주름 하나 없이 광택이 나는 소녀들의 표정은 작은 마음의 변화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녀들의 눈동자 속에는 성운처럼 소용돌이를 그리며 지금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부러움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함께 “One World, One Korea”를 외쳤다. 그리고 또 그녀들은 갸르르 웃었다. 소녀들은 어떤 일로도 웃을 수 있다. 그것이 제일 부럽다. 사춘기 소녀의 발랄함과 생명력이 묻어나는 소리가 터키 분식집에 가득 찼다. 분식집 아주머니도 기분이 좋아져서 케밥을 하나 더 서비스로 가져온다. 송 교수님은 내 앞에 가다 나와 헤어졌다가 나중에 오더니 소녀들에게 지난번 TV 인터뷰 내용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내 말에 반신반의하던 소녀들이 다시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소녀들은 한국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점심시간이 끝났는지 시계를 보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식당을 빠져나갔다.

 

 

저녁을 먹으러 간 식당은 해산물 식당이다. 이곳에서 주로 먹는 음식은 함시와 고등어 등이다. 나는 정말이지 돼지고기가 먹고 싶었지만 그건 구할 수 없었다. 지난번에 어느 식당에서 광어 산 것이 수족관에 있는 것을 보아서 혹시 광어 산 것을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싱싱한 회가 먹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은 이곳에서는 광어가 흔한 것이 아니어서 오늘은 없고 내일 오면 혹시 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내일 내가 뛰는 동안에 송 교수님이 차를 몰고 와서 가져가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다음날 광어를 들고 와서 호텔 주방에 양해를 구하고 내가 직접 회를 뜨는데 여인들이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고 모여든다. 칼도 날이 서지 않았고 내 회 뜨는 실력도 시원치 않아서 살은 몇 점 나오지 않았지만 흑해의 피부가 거칠은 광어 맛은 그만이었다. 아삭함과 쫄깃함, 그리고 목줄기를 타고 넘어간 뒤에 찾아오는 치명적인 고요가 찾아왔다. 살점이 많이 남아있는 뼈는 얼마 전 공수받은 고추장 듬북 넣고 김치 좀 넣어 매운탕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교동도 지킴이 김영애선생님이 보내온 교동의 순무 총각김치가 곁들어지니 고향 맛과 함께 연말연시 회식 기분을 냈다. 한입의 익숙한 음식이 혀에 전해질 때 전해지는 진솔한 맛, 기분을 맘껏 들뜨게 한다.

 

흑해 연안을 달려서 가는 남자와 운전을 하고 가는 남자는 하루 이동하는 거리가 같아서 그런지 흑해를 사랑하는 마음도 같다. 달려서 가는 남자는 내성적이라 흑해에 발을 담그기는커녕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마음으로 그리워하며 사랑을 키워가고 있는데, 운전하고 가는 남자는 오는 날부터 차도르 속 이슬람 여인의 속살을 탐하 듯 그 깊고 은근한 물에 손을 씻고 발을 담그더니 며칠 전, 날씨가 25도까지 올라간 어스름한 달밤, 맑디맑은 밤공기 속에 별이 목욕하 듯 교교한 별빛이 밤바다로 스며드는 밤이었다. 그는 밤이슬을 맞고 나가더니 흑해에 아예 몸을 담갔다고 한다,

 

창밖으로 내다본 달빛이 흐르는 바다는 황홀한 듯하면서 가슴을 죄어오는 듯하다가 활짝 펴지게 하기도 하며 소름이 오싹 돋는 전율을 전해준다. 파도 소리가 청아하며 날카롭게 들려온다. 내 사랑은 언제나 이런 것이었다. 늘 멀리서 바라보며 애태우며 가슴앓이만 한다. 가슴에 담아둔 사랑은 오래간다. 난 아직도 첫사랑을 가슴에 안고 산다. 그 이루지 못한 사랑이 변하여 유라시아도 되고, 평화통일도 되고, 마라톤도 되고, 흑해도 되고, 이국의 낯선 여인도 되고 글쓰기도 되어 내게 끝없는 영감과 열정과 도전정신을 선사해주었으니 뭐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

 

덕분에 나는 그리워하는 사랑의 깊이와 꾸준함을 알게 되었고, 어느 순간 깊은 슬픔과 고뇌와 절망을 뚫고 용솟음쳐 오르는 영혼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줄 알게 되었다. 절절한 그리움이 양념이 잘 배어난 묵은지처럼 곰삭아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이런 사랑 법으로 많은 것을 터득하고 얻으니 인제 와서 바꿀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이 여정이 끝날 즈음에는 한 남자의 그리움이 어떻게 변주되어 울려 퍼지는지 알게 될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송 교수님이 나의 마라톤 지원 차량을 운전하러 와서 나의 사랑 흑해를 나보다 더 사랑하여 운전보다는 흑해와 사랑에 빠진 것은 불만이지만 그동안 혼자 달리느라 가슴이 휑했는데 운전도 해주고 워낙 말하는 것을 좋아해서 쉴 새 없이 말을 붙어주어 고맙기도 하고 피곤할 때는 빨리 끝내주기를 기다리다 아무리 기다려도 계속 이어지면 말을 끊기도 한다. 지나가다 흑해의 전경이 바라다보이는 리조트 호텔이 보여 송 교수님이 들어가 방 하나에 2만 4천 원에 깎아서 들어갔다. 그는 어디를 가던 바다가 바라보이는 방을 달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전망이 좋은 호텔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맥주도 한잔시켰다. 흑해의 밤바다를 바라보며 입은 먹느라 마시느라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다. 음식물과 맥주는 밀물처럼 안으로 흘러들었고 생각과 말은 썰물처럼 밖으로 나왔다. 가끔 들어가는 음식물과 나가는 말이 입안에서 충돌을 일으켜 밖으로 튕겨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송 교수님은 전화기를 잡고 트라브존 주지사 면담과 방송국 인터뷰를 성사시키려 여기저기 전화를 거느라 분주하다. 그는 정말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는 아이와 같다.

 

마라톤에서는 사랑처럼 한 걸음도 빼먹거나 건너뛸 수도 없고 누가 대신 뛰어줄 수도 없다. 그러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이 뛰는 발걸음은 훨씬 가볍다. 머나먼 여행길에 도반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은 덜어진다. 가슴의 주파수만 맞추면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사람들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다. 지금 난 공중급유기로부터 급유를 받은 전투기처럼 전투력이 살아난다.

 

남자의 향기는 한 여자에게 바치는 지고지순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할 때 나는 향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남자의 향기는 땀 냄새 푹푹 풍기는 비릿한 물 좋은 생선 같은 역동적인 냄새이다. 그것은 후각적인 냄새와는 다른 것이다. 남자에게서는 마음으로 통하는 향기가 날 때가 있다. 믿음직한 냄새! 신뢰가 가는 냄새가 있다. 금방 식상하지 않고 아련하게 취해가는 아로마 향기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남자의 향기는 살 만큼 살아서 세월이 덧입혀져야 제 향이 나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소프트웨어의 시대이고 가장 소프트웨어적인 것은 사람이다. 사람 중에서도 나, 내가 가장 나다울 때 더 넓고 큰 인연을 만나 조화를 이루며 발전을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일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자신의 맛과 색깔 그리고 향기를 갖는 것은 타인을 발견하는 것과 다름이 아니다. 아주 간혹 이렇게 강한 전류가 흐르는 만남이 있다. 그것은 남과 여에 상관없고, 노와 소에 상관없다. 이런 만남이 삶의 진주 알처럼 박혀서 무미건조한 삶을 빛나게 해준다. 서로에게 끌리며 감정이입이 되며 헤어지면 또 만나고 싶어진다.

 

그렇게 자신과 타자가 서로의 향기에 취해서 소통할 때 사회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해진다. 연말연시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나누는 시간을 할애해서 먼 길 달려와서 힘들고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후배의 짜증까지 잘 받아주는 송 교수님께 이글을 통해서 감사의 인사를 대신한다. 사랑의 고백도 할 줄 몰라 짝사랑으로 세월을 낭비하던 사람은 감사 인사도 직접 전하지 못해 이렇게 글로 적어본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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