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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1)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1)

나의 달리기는 평화통일 기원 제천의식이 되었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숨이 격렬하게 새벽 공기와 만난다. 흑해에서 일어나는 바람 소리와 숨소리만 들리는 그 절대의 침묵 속에서 큰 호흡으로 마음을 어루만진다. 일정한 속도로 반복 운동을 하는 두 다리의 움직임 속에서 어떤 황홀경에 빠지며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절대자를 부르는 경건한 의식을 치른다. 하늘뿐만 아니라 일월성신(日月星辰), 풍운뇌우(風雲雷雨), 산천악해독(山川嶽海瀆), 조상선현(祖上先賢) 등 모든 영령이 있을 대상에 경건한 예식을 치른다. 홀로 끝없이 달리는 시간, 산과 바다가 만나는 이런 공간이나 사막은 접신(接神)의 공간으로 딱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나는 그 옛날 실크로드를 지나간 선배들, 마르코 폴로나 혜초, 이븐 바투타, 칭기즈칸, 알렉산드로스까지 이 자리에 불러내 대화를 하곤 한다. 뿐만 아니라 이름 없이 낙타를 몰고 낙타 발굽이 일으키는 그 먼지 다 뒤집어쓰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목숨 내걸고 이 길을 터벅터벅 지나갔을 대상들과도 대화를 나눈다. 이러다 보면 과거와 현재, 현실과 초현실의 구분은 무화(無化)되고 말아버린다. 이렇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굿의 신명이 내 발걸음에 실린다. 달리기는 내게 끝없이 밀려오는 고통 속에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처절한 의식이었다. 달리기는 내가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제천의식이다. 이제 나는 달리면서 평화통일이라는 간절한 염원을 하나 더 얹었다. 덤으로 더 얹은 것이 이제 나의 모든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흑해 연안을 신명 나게 달리면서 죽어가는 전쟁의 악귀, 제국주의 귀신, 분쟁과 대립의 망령을 위한 나의 평화마라톤 지노귀굿이 흑해 연안에서 펼쳐진다. 자동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좁은 터널을 지나갈 때면 작두에 맨발로 올라탄 듯 땀이 뻘뻘난다. 조금이라도 정성이 부족하면 부정 탈가봐 발바닥에 온 촉각을 곤두세운다. 달리기는 간절한 제천의식이기도 하지만 달리는 동작으로 현란한 마술을 펼쳐 보이고 싶기도 하다. 마술사는 손을 사용하지만 나는 발을 사용한다는 것이 다를 뿐 사람들을 앉혀놓고 모자 속에서 비둘기를 꺼내 보여주고픈 거다. 평화의 비둘기!

 

온전한 마음의 평화를 이루는 종교적 깨달음은 수도승이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달릴 때 큰 호흡을 하면서 자신의 육체에 온 정신이 집중될 때 큰 평화가 찾아온다는 하늘의 비밀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앎에 대한 욕망은 필연적으로 음란할 수밖에 없다. 색욕을 품고 앞뒤 안 보고 상대에게 다가가는 바람둥이의 열정으로 유라시아를 달리고 있다. 파멸에 이르도록까지라도 자연에 뒤섞여 얻어지는 합일의 경계를 넘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 수도승보다 더 가진 것 없이, 욕심 없이 그저 달리는 그 발길에 온 정성을 쏟고 마음을 쏟을 뿐이다. 그러면 찬란한 기쁨은 땀으로 솟아 나온다. 소욕지족(少欲知足), 작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할 수 있다면 행복을 느끼는 감각이 열린다.

 

동부 흑해 최대의 도시 트라브존은 로마 시대, 비잔틴 제국, 오스만제국을 거치면서 훅해 해상 무역의 최대 도시였다. 마르코 폴로도 이 도시를 지나서 동방으로 갔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저 바다 멀리 지난번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소치가 보이는 듯도 하다. 이곳의 현지 뉴스에서도 북의 김정은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하여 이제 곧 있을 평창 동계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겠다는 육성이 전해졌다. 내 고된 발걸음, 내 제천의식에 하늘도 땅도 응답하는 것 같아 감격을 눈물이 난다. 그는 “우리는 민족적 대사들을 성대히 치르고 민족의 존엄과 기상을 내외에 떨치기 위해서라도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의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에, 이곳 흑해의 날씨처럼 훈풍이 불어오고 있으니 내 발걸음은 더욱 신기(神氣)가 내린 듯 탄력을 받는다. 차향 가득 실은 바닷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나의 마라톤에는 리듬이 절로 생겨난다. 뛰는 발걸음에 무속(巫俗)의 리듬이 생기고, 숨쉬기에 일정한 리듬이 만들어진다. 심장박동 소리는 환희와 기쁨의 리듬을 탄다. 달리면서 상쾌해진 마음의 선율을 길 위에 오선지로 삼아 두 다리로 악장을 적어내며 뛰는 것도 멋진 일이다. 이렇게 탄력을 받으면 한동안 나의 달리기는 춤사위에 가까워지고 유라시아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무대에서 열연하는 전위예술이 된다.

 

이쯤 되면 발길은 해변의 대지와 정분을 나누느라 정신이 없어진다. 나는 흑해를 따라 달리면서 마치 파도 위를 뛰는 것 같은 가뿐함을 느낀다. 신령(神靈)이 바람이 되어 내 몸으로 들어와 공명하는 최고의 음악 소리가 들리는 듯할 때는 분명 신내림의 무아의 지경에 빠진다. 대지 위에 펼쳐지는 나의 신명나는 춤에 대지도 즐겁게 반응한다. 아침 햇살을 받은 대지도 밤새 움츠렸던 몸을 기지개를 켜기 시작할 때 내 발길이 통통 통 두드려주면 대지도 움찔움찔하는 느낌이 발바닥에 그대로 전달된다. 태양과 나 그리고 대지가 하나가 되는 합일의 환희를 맛본다. 나무처럼 우리의 삶도 대지에 뿌리를 두고 사람들과의 교분을 수분으로 삼고, 그 사랑을 태양의 온기로 삼아 광합성작용을 하면서 이 땅 위에서 생장하며 번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트라브존의 이란영사관에서 이란 비자를 받았다. 앙카라의 한국영사관에서 협조공문을 미리 띄워서 비자를 받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 출발했는데 택시운전사가 이상한 곳에서 내려주어서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고 은행에 가서 현금을 지불하고 영수증만 가져오면 끝난다고 했다. 문제는 오전 업무시간이 9시부터 12시까지이고 오후 업무시간은 2시 반부터 4시까지인데 은행에서 줄이 길어서 기다리는 동안 12시가 다 되어버렸다.

 

2시 반까지 기다리면 모처럼 갖는 나의 휴일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부지런히 뛰어가서 12시 10분에 갔는데 아직도 기다리다가 비자 도장을 꽝 찍어주었다. 흑해 최대 도시인 트라브존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복잡다단하다. 도심에 메이단 공원 위의 언덕에 자리 잡은 이란영사관 가는 길에 잠깐 마주친 사람들은 본토 흑해 주민과 아랍계 사람들과 함께 러시아인들의 창백한 얼굴과 흔하게 마주친다. 이 도시는 흑해를 사이에 두고 조지아 등 옛 러시아 문화권과 맞닿은 곳이다. 고대 실크로드의 중요한 도시이기도 한 트라브존에서 리제에 이르는 지역은 세계 최고의 차 집산지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시간이 아까워 햄버거를 사가지고 택시에서 먹으면서 숙소로 돌아와서 달콤한 단잠을 자고 있는데 송교수님에게서 전화가 와서 악차아밧 시장이 나를 만나보고 싶어 하니 세수만하고 나오라고 한다. 나는 시장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면담이라도 오랜만의 꿀 낮잠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전화를 끊고 그대로 자는데 다시 6시쯤 송교수님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저녁은 어차피 먹어야 하니 일어나서 시장과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다. 나는 사실 저녁이고 뭐고 다 귀찮을 정도로 피곤함에 절었다.

 

인구 12만의 휴양도시 악차아밧 시장은 늘씬한 키에 말수가 별로 없고 거들먹거리지 않는 겸허한 중년 신사였다. 그는 5년 임기의 시장직을 다섯 번이나 선출된 5선의 시장이다. 시장은 바쁜 시정에도 직접 내가 묵는 호텔로 와서 내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함께 차를 타고 악차아밧 코프테로 유명한 바닷가 식당으로 갔다. 시장의 승용차는 오래된 검소한 것이었다. 해변의 모래사장은 터키 국기의 초승달처럼, 오스만튀르크 병사들의 활모양 굽었다. 철 지난 바닷가에는 손을 마주 잡은 남녀가 다정히 걸어가고 있다. 이 낭만의 해안에서는 그 옛날 수많는 전쟁의 화살이 날아다녔다면 지금은 수많은 사랑의 큐피트의 화살이 날아다니고 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코프테는 우리의 동그랑땡과 비슷하며 중국의 난자완스와 비슷한 것인데 이 음식은 터키뿐만 아니라 이란, 이라크, 그리스, 인도 파키스탄에서도 똑같은 이름으로 불린다고 하니 음식은 국경을 초월하여 이미 지구촌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 음식은 몸과 마음을 이어주는 삶의 일부이며 음식 한 조각에도 온 우주가 담기고 역사를 품었다. 이 음식은 이 지방의 향토음식으로 트라브존을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음식의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조금 후에 시장님 사모님도 동쪽 끝에서 온 조금은 이상했을 손님들과 합석을 했다. 통역하는 보좌관은 그의 아내와 함께 한국드라마를 자주 본다고 한다. 전화 연결을 부탁하여 통화로 인사한 그의 아내는 꽤 많은 한국말 단어를 알고 있었으니 문화의 힘이 그 어떤 무기의 힘보다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장은 나의 평화 여정을 위로하고 응원을 말을 전했다. 나도 터키 형제들이 보여준 우정과 악차아밧 시장님의 배려를 잊지 않겠다고 답했다. 보좌관의 설명에 따르면 이 일대는 홍차와 헤이즐넛의 세계적인 산지이며 여름이면 유럽인들도 많이 찾지만 특히 아랍인들이 많이 찾는 휴양지라고 한다. 아랍인들은 돈은 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산과 해변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산들의 겨울은 영하 20도로 떨어지는 것은 우습지만 이 해안가 도시는 1월 평균 기온도 6,7도로 온화하고 여름에도 23도 정도로 또 온화하여 습도가 많은 기후와 어우러져 차를 재배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기후를 가지고 있어 온통 산비탈이 차밭이다.

 

‘리제’로 가는 길에서는 저 멀리 설산이 아련하게 보인다. 그 아래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기하학적인 초록빛 물결이 넘실거린다. 정월이지만 이곳은 봄으로 이어지는 길목, 따스한 햇살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자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꽃망울을 터뜨린다. 달리는 코끝에 차 향기 가득하다. 이 리제주(州)는 3,000m가 넘는 산들이 즐비하다. 먼바다에서 달려온 푸른 파도는 거칠게 밀려와서 곤두박질을 치고, 산비탈을 거슬러 올라가는 녹색의 파도가 산안개에 덮여 잦아든다. 차향 가득한 이 도시가 좋은 차처럼 가슴을 따뜻하게 덥힌다. 차는 원초적인 기를 북돋아 주는 음료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차’는 원래 ‘차’일 뿐이다. 가공하는 방법에 따라 녹차, 황차, 청차(우롱차), 백차, 홍차, 흑차(보이차) 이렇게 여섯 종류로 나누는 것이다. 영국인을 비롯한 유럽인들은 차를 마시기 시작한 지 거의 200년이 지난 1850년경까지 녹차용 차나무와 홍차용 차나무가 따로 있는 줄 알았다. 한국을 비롯한 대만, 일본 등에서는 주로 녹차를 많이 마시지만 홍차는 주로 서양에서 많이 마신다. 녹차와 홍차는 발효과정에서 차이가 있다. 녹차는 미발효차고 홍차는 산화발효를 시켜 검붉게 변할 때까지 건조시킨다. 그래서 카페인도 홍차가 더 많다. ‘차이쿠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터키의 국영 차 회사이다.

 

접신을 이루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달리면서 나는 아주 작은 미물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바람과 나무와 새들과 대화를 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자연과 합일을 이루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존재감 없는 모든 생령들의 혼을 깨우고 의미를 부여한다. 들판에는 바람이 일고 바다에는 파도가 일렁이고 내 가슴 한복판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이 소용돌이친다.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이 달리면서 평화통일의 열망으로 전이가 되어 내 온몸에 퍼져나가고 있다. 나의 달리기 제천의식은 천지보은(天地報恩)의 감사 의식이며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평화통일을 간구하는 의식이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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