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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3)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3)

이아손의 리더쉽, 노무현의 리더십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어제 마친 지점에서 시작하여 바투미 시내를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이끼 낀 옛 성터가 옆으로 보인다. 300년 동안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로 다른 그루지아지역과 달리 회교도로 개종했던 지역이어서 아직도 시내 곳곳에 모스크가 많이 남아있다. 이곳처럼 이슬람과 동방정교가 조화를 이루며 잘 사는 도시도 없을 듯하다. 사람들도 터키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터키어를 구사했다고 생각하진 마시라! 터키의 하버 TV와 인터뷰한 내용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엄지 척을 해준다는 이야기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장엄하고 험준한 코카서스산맥과 태고의 정적을 간직한 자연, 흑해와 소박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루지아, 천년 설산 아래 초록 마을에는 신성한 와인이 익어가는 술독이 가득하다. 알프스처럼 아름다운 자연과 이태리처럼 맛있는 음식과 깨끗하고 톡 쏘는 광천수 ‘보르조미’ 물맛과 프랑스보다 더 역사적인 와인, 그리고 아름답고 정감 넘치는 사람들까지. 그래서 막심 고리키는 “코카서스산맥의 깊고 웅장함과 그곳의 친절하고 낭만적인 사람들이 방황하던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고백이 내 가슴 저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나의 어릴 적 꿈 위에 햇살처럼 비추어 또렷한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조지아 사람들은 기다렸다네 와인과 함께할 '맛있는 시간'을” 바투미, 그리스어로 ‘깊은 항구’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흑해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깊은 구석에 묻혀있는 듯 자리 잡은 항구도시이다. 이곳은 아자르 자치공화국의 수도이며 아주 오래전부터 문명의 교차로였다. 바투미의 시장이 사람들로 붐비고 흥청망청거릴 때 동서양은 더욱 가까웠다. 이곳은 예로부터 동서양의 문물이 오가던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한 삶의 터전이었다.

 

고국의 입맛에 영양까지 공급받은 나는 힘차게 정들었던 흑해와의 마지막 인연을 멋지게 장식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그때 아자르 자치공화국의 교육, 문화, 체육부 장관이 보낸 비서관이 우리 일행을 찾아와 장관 면담과 방송국 인터뷰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한다. 코불레티를 지나서 38.5km를 달린 지점이었다. 우리 일행은 그 지점에서 일정을 마치고 비서관의 안내에 따라 다시 방향을 바꿔 바투미의 장관실로 가서 면담도 하고 방송 인터뷰도 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지난밤 묵었던 호텔에서 다시 여장을 풀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려고 나서다 보니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어차피 내일쯤 하루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핑곗김에 잘됐다. 다시 짐을 풀고 늦잠을 즐기고 일어났는데 아자라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고 송교수님이 전한다. 아마 어제 지방정부 방송의 인터뷰를 보고 연락이 온 것 같았다. 그는 정말 집요한 외교관답게 평화마라톤 홍보에 열정을 다한다.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은 흔치 않다.

 

내일이 그루지야의 구정 명절인데 아침 생방송에 나와서 우리의 유라시아 달리는 이야기를 방송하자는 제의가 왔다. 그루지야의 제일 큰 명절날 아침 황금시간대에 우리의 평화통일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큰 기회이지만 그러면 하루 더 지체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아쉽지만 거절하고 말았다. 거절하고 돌아서니 일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평화마라톤의 목적이 세계인들에게 한반도 평화통일의 중요성을 알리고 지지를 받는 것인데 이처럼 좋은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아쉬움이 남아 다시 전화하여 생방송 출연을 약속하였다.

 

다음날 시간에 맞춰 방송국에 가서 대기하던 중 우리 바로 앞에 그루지아 전통음악을 노래하는 남성 4중창의 공연이 있었다. 평화가 중요한 건 그루지야도 더하면 더했지 우리에게 뒤지지 않는다. 유사 이래 끊임없이 외세의 침입을 받아왔고,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알렉산드로스에게 또 몽골의 지배를 받기도 하고 오스만튀르크의 일부였다가 소련연방이 되었다가 얼마 전에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국토의 일부를 점령당했으니 말이다. 새해 첫날 동방에서 온 평화마라토너의 ‘평화이야기’를 듣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큰 덕담이 될 것이다. 약 40분가량 영어로 생방송 출연하는 것은 생소하고 멋진 경험이었다. 이곳은 생방송은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생방송이었다. 미리 예상 질문지나 답변을 조율하지도 약간의 분장도 없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바투미 중앙광장의 양털 가죽을 안고 서 있는 마녀 메디아상(像)은 그리스 신화 속 마녀 메데아가 이아손 원정대에게 황금 양털을 건넸다는 신화를 바투미 광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살아서 숨을 쉬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황금 양털을 찾아 나선 이아손과 아르고호의 모험담은 고대신화의 대표적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속 좁고 질투에 눈이 먼 건 신이나 인간이나 비슷하다는 사실이 그리스신화가 오랜 세월 흥행에 성공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그리스 신화의 흥행은 지금도 계속되어 영화로 연극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여자를 보고 정신 못 차리는 남자들, 사랑에 눈멀어 부모와 나라를 배신하는 여자들이 모두 출연해서 막장 드라마의 요소를 갖춘 잘 만들어진 로맨스 영화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그 까마득한 옛날에도 그리스 신화의 무대가 이곳 ‘바투미’라니 생각보다 실크로드의 역사는 더 오래되고 더 자유롭게 사람들이 왕래했나 보다. 메데아는 아직도 이아손을 기다리는 듯 동상으로 이 광장에 우뚝 솟아 초점 없는 눈으로 흑해를 바라보고 서 있다. 아르고호 원정대의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시대 때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많은 장르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아손이 빼앗긴 왕권을 숙부에게서 찾기 위해서 콜키스의 황금 양털을 가져오기 위해 결성된 아르고호에 탄 50명은 이름만 대면 금방 알만한 호화군단이었다.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 카스토스와 폴리테우케스, 헤라클레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안타이오스,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펠레우스, 음악의 신 칼리오스의 아들 오르페우스 등 당대 최고의 호화 멤버들이 총 망라되었다. 이런 내로라하는 호걸들이 목숨을 내걸고 풋내기 20대 빈털터리 청년 이아손을 따라나선 건 그의 바보스럽고 원칙과 상식에 바탕을 둔 리더십 때문이었다. 그는 어는 순간에도 예의를 지켰고 복수를 하러 가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강을 건너는 할머니를 업고 건너다 신발을 잃어버리고 숙부에게 왕권을 되찾으러 가면서도 신발을 한쪽만 신고 가기도 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켜주지 못하고 보낸 바보 리더십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 노무현이 그리워진다.

 

바투미 중앙광장에서 양털 가죽을 안고 서 있는 마녀 메디아상(像)을 보면서 이아손과 아르고호의 모험담을 머리에 되새긴다. 이때 문득 드는 생각이 어찌 보면 바보스럽기까지 한 올바른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꿈과 희망을 망망대해에서 고기를 잡듯이 잡아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는 어부 아저씨 같은, 폭풍의 한가운데서도 중심을 잡고 파도를 헤쳐나가는 선장 같은 지도자. 분쟁이 있는 곳에 화친의 중재자로, 넉넉한 미소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그런 사람. 영혼을 팔지 않고 진흙투성이의 역사의 바닥에서도 연꽃으로 피워낼 줄 알며 사람들을 신명나게 하는 지도자!

 

흐르는 물은 제 물을 나누어 나무와 풀을 키워내고 곡식을 익혀낸다. 목마른 짐승들에게 물을 공급하며 물고기를 키워낸다. 하지만 물은 흐르며 줄어드는 법이 없이 강폭을 넓힌다. 그야말로 바보 리더십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바보 노무현이 그립다! ‘변화와 개혁’이라는 21세기 시대정신을 주도하다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져서 더욱 그립다. 반칙과 특권이 허용되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5년 안에 실현하기는 우리 사회가 너무 완강했다. “한번 더 생각하는 것, 거꾸로 뒤집어 보는 것, 일반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것, 좀더 먼 차원을 떠올리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기분 좋게 만든다고 나는 믿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되면 자율의 문화를 뿌리내리게 할 것이라던 그 위대한 약속을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쓰면서 피곤해하던 그분이 그립다. 평화 개벽의 시대를 앞두고 그런 분을 향한 그리움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처럼 깊어진다.

 

겨울이 긴 그루지야는 터키에서 건너온 채소들이 시장을 채운다. 계속되는 터키의 침략 속에도 자신들만의 그루지아 정교를 지키고 그곳을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고 살아왔다. 바투미 시내를 벗어나서 산을 하나 넘고 터널을 지나자 송어양식장이 눈에 들어와 점심시간이 조금 이르긴 했지만 송어를 한 마리 사서 즉석에서 박호진씨가 매운탕을 제대로 끊여낸다. 조지아의 송어와 한국의 고추장의 만남은 치명적인 입맛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저녁을 맛있게 먹다가 코카서스의 높은 봉우리에 다리가 걸려 넘어져서 음식이 쏟아진 곳이 이곳 그루지아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그중에서도 이 사람들이 제일로 자랑하는 것이 ‘낀깔리’라 부르는 물만두이다. 치즈, 감자, 버섯, 양파 등 소를 넣고 찌는 것인데 우리 만두처럼 재료를 섞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게 만든다. 그 다음이 뿌리라는 빵인데 화덕에 붙여서 익혀낸 것을 바로 먹으면 불 맛과 함께 전해지는 고소함이 그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카차뿌리’라 하는 그루지아 피자를 제일 좋아한다. ‘술구니’ 치즈를 듬뿍 얹여 익힌 것이 화덕의 불맛과 치즈의 고소함이 입에서 사르르 녹으면서 신들의 맛을 인간에게 선사한다.

 

그리오골레티에서 이제 오랜 시간 정들었던 흑해와 작별을 하는 순간이 왔다. 지금까지는 흑해의 지중해성 기후로 비교적 따뜻한 겨울 속에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내륙으로 들어서서 본격적인 동장군의 기세와 맞서야 한다. 드넓게 펼쳐진 때 묻지 않은 야생의 코카서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프로메테우스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며,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땅이기도 하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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