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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1)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1)

20대 애송이와 60의 벽창호의 동행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낯선 길을 오랜 고독 속에 빠져서 달리다 보면 맑고 잔잔한 물속에 비친 어린아이보다도 불완전한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자신을 바라다보는 것은 삐뚤어진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뚤어진 자신의 모습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이다. 남과 비교해서 다른 점을 고치려고 하고 감추려 할수록 문제는 꼬이게 마련이다. 먼 길을 끝없이 달리면서 자신의 깊은 곳을 탐험하다 보면 찌찔함과 모자람이 자신 안에 편안하게 자리 잡을 넉넉한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지나가는 사람들은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고 차를 대접해주기도 한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 시장은 사람으로 붐비고 오고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도 삶에 지쳐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주어진 제 몫의 삶을 살아가며 제 역할을 할 뿐이다. 팔려가기를 기다리는 발 묶인 닭 두 마리가 날개를 퍼득거린다.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고민하다 찾아낸 길이 이 길이다. 유라시아 길은 내가 걷고 싶었던 길이고 평화의 길은 내가 걸어야 할 길이였다. 그 길을 가다 도저히 맞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유라시아 길에서 동행하게 되었다. 20대 갓 군 제대를 하고 복학을 준비 중인 애송이와 60의 벽창호가 만나서 한달여 거친 길을 가게 되었다. 동행하는 이유는 많다.

 

고용되지 않는 한 어떤 경우에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편리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와의 동행은 일방적이고 불평등하기까지 한 것이다. 내가 앞만 보고 달릴 수 있게 모든 편리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었기 때문이다. 이 애송이가 이 불평등한 조건을 고스란히 떠안고 멀리 이란까지 날아와 “선생님은 다른 걱정 다 내려놓고 달리는 일에만 집중해서 꼭 완주해서 평양 거쳐서 판문점으로 입국하세요!” 한다. 내가 시속 7km 정도로 달리니 7km 속도로 차를 운전하며 복잡한 길을 바짝 뒤따르는 일은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반찬 없는 밥 해 먹으며 설거지하고 미리 지도를 보고 앞길을 인도하기도 하며 끝날 때쯤 되면 호텔 잡는 일까지 만만치 않는 일을 이 애송이가 만만치 않은 벽창호 맘에 들게 해낸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생명을 가지고 있는 피조물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생명에 저촉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라고 한다. 아기가 울고 보챌 때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나는 것은 아기의 생명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는데 아기가 불편을 느끼기 때문에 나오는 본능적인 삶의 아우성 소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사실 매일 좁고 복잡한 자동차 길을 달리기 때문에 늘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달린다. 때로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차가 살갗을 스치듯이 위험천만하게 지나가기도 한다. 이럴 때 삶과 죽음의 간격은 10cm밖에 되지 않는다. 지원 차량은 내게 생명줄 같은 것이다.

 

잠수부가 바닷속을 잠수할 때 산소를 공급해 주는 생명줄, 산악인이 암벽을 등반할 때 의지하는 그 생명줄 같은 것이다. 달리다 보면 목이 언제 마를지 모르고, 언제 체온이 떨어지고 또 올라갈지 모른다. 시시때때로 음료수를 마시고 옷을 벗었다 입었다 하며 잠시 배가 고픈가 싶으면 금방 당이 떨어져서 현기증이 나서 앞이 노래지기도 한다. 땀에 젖은 신발과 양말도 수시로 갈아 신어야 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더 무서운 건 들개들이 언제 나타나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지 모른다. 지원 차량이 바싹 쫓아와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위험하게 달리는 차량 사이를 달리는 내 바로 뒤에서 깜빡 등을 켜고 따라오며 혹시 있을 위험한 사고를 예방해주는 역할은 내가 심리적으로 안정되게 달리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한 열흘째 허리에 쏟아지는 통증은 내게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압박을 가했다. 자칫 통증은 그 굳건하던 마음조차 무너뜨릴 기세로 시시때때로 뼛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아픔은 번개처럼 하늘에서 내리 꽂혔다.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힘들고 무엇보다도 대변을 보고 밑을 닦는 손이 잘 닿지 않아 애를 먹는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아침마다 일어나서 허리를 세우고 조심스레 달리다 보면 통증은 어느덧 사라진다. 나는 오늘도 어제도 42km를 무사히 달렸다. 달리고 나면 또 허리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엄습한다.

 

그런데 이 애송이의 어설픈 손길에 염력이 있는지 며칠 등 마사지를 해주니 통증이 많이 사라지고 허리에 다시 평화가 왔다. 꼭 능수능란할 필요는 없다. 존중받는 느낌만큼 마음을 어루만지고 통증을 어루만지는 것을 없을 테니까. 어설픈 손길에도 정성이 더해지니 효과는 만점이다. 나의 어설픈 발걸음이 한 걸음 한 걸음 모여 벌써 6,000km를 넘었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이 생겨난다. 신뢰가 생긴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이라는 말에는 엘브르즈산맥과 카스피 바다가 만나는 이곳의 기후처럼 겨울이 그리 춥지도 여름이 그리 덥지도 않은 온화함이 느껴진다. 부루카 안에서 유독 빛나는 여인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스며있고, 고된 일상 뒤에 받아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목적지가 적혀있지 않은 항공권을 받아든 기쁨이 있다. 생사를 넘나드는 여정 중에 만나는 오아시스 같은 것이다. 그걸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는 절벽에 서서 결연히 뛰어내려 천만다행으로 발이 부러지지 않고 길을 떠난 자와 그 위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르는 자와 비유된다. 비 냄새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이렇게 오래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냄새로 날씨를 알게 되기도 한다. 오늘도 비를 맞으며 달려야 할 것 같다.

 

페르시아는 세계 최초의 제국이다. 옛날 메소포타미아 북쪽 산악지역에 양을 치는 페르시아 민족이 살았다. 이들은 아시리아의 지배를 받았고 또 바빌론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다 기원전 6세기 키루스 2세가 등장하면서 주변국들을 하나씩 점령하면서 제국의 초석을 마련한다. 그는 주위의 세력을 병합하여 유프라테스강 유역으로 내려와 바빌론을 무너트린다. 이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고레스 황제이다. 그가 바빌론으로 끌려와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려보낸 바로 그 사람이다.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준 것이 페르시아의 키루스 황제인데 오늘날 이스라엘과 이란의 관계가 안타깝기만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강력한 통치자가 이끄는 제국의 위대한 야욕은 끝이 없었다. 페르시아제국을 세운 건 키루스 2세지만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건 다리우스 대제이다. 용맹하고 무자비하며 강력한 제국, 고대 페르시아는 동쪽으로는 인도에서 서쪽으로는 그리스까지 세력을 뻗었다.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 땅이 포함된 제국의 땅을 차지했다. 페르시아는 모든 나라를 정복해서 세계제국을 이루겠다는 꿈을 꾼 첫 번째 나라였다.

 

1000년에 이르는 페르시아인들의 패권 시대는 조로아스터교가 중동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던 시대였다. 훗날 아랍인들이 중동을 정복하자 조로아스터교가 이슬람교로 대체되어 이 지역은 이슬람교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로 변해간다. 페르시아제국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건축적 성과를 이루었고 제국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서 주요 간선도로가 완성되었다. 1935년 팔레비 왕조 때 국호를 이란으로 바꾸기 전까지 페르시아는 이 지역을 일컫는 일반적인 이름이었다.

 

트리키아 지방을 평정하고 거칠 것 없는 다리우스 대제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 사신을 보내 무조건 항복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그리스는 사신을 우물 속에 던지고 매장시킨다. 에게 해상의 섬들을 차례로 제압한 정벌군은 동북부의 넓은 평원 마라톤에 상륙했다. 이렇게 해서 일어난 전쟁이 마라톤 전쟁이다. 마라톤 평원에서 전함 600여 척에 나누어 타고 온 10만의 페르시아 군대는 불과 1만의 그리스 군대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다. 기쁜 승전보를 한시라도 빨리 전하기 위해 한 병사가 마라톤 평원에서 아크로폴리스로 쉬지 않고 달려갔다. 그는 승전보를 전하고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마라톤 경기가 시작됐다.

 

이란은 1974년 테헤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 마라톤 종목을 제외시켰다. 마라톤전쟁은 페르시아제국에 치명타를 안겨주었고 이란은 아직도 그 치욕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이란에 입국하기 전 차량에 붙인 “Peace Marathon”이라는 스티커를 혹시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니 떼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기우였다. 자기들은 싫어하지만 외국 손님의 차량에 붙인 그것을 가지고 시비를 붙일 만큼 이란 사람들이 좀스럽지 않다는 것은 여기에 와서 내가 느낀 것이다.

 

오히려 내가 지나가는 길거리에는 한국산 핸드폰을 들고 나의 동영상을 찍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어제는 그 스티커를 배경으로 경찰이 기념촬영을 하자고 하더니 오늘은 꽃을 들고 거리를 지나던 사람이 박수를 치다가 내가 지나치려니까 꽃다발을 나에게 안긴다. 그 꽃은 필시 여자 친구나 아내에게 주려고 사 들고 가던 꽃이었으리라! 무엇이 이 남자로 하여금 사랑하는 이에게 줄 꽃다발을 내게 건네게 마음을 움직였을까?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저녁은 태영이가 올 때 들고 온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였다. 밥은 아무리 피곤해도 내가 했다. 이제 자취를 시작할 태영이에게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어 좋았다. 이곳에서 돼지고기를 구할 수는 없어서 소고기를 사서 넣고 푹 끓였다. 양념이나 간을 보태지 않아도 깊은 맛이 난다. 김치찌개에는 돼지고기가 제격이지만 김치만 있어도 이렇게 입에 행복감이 넘친다. 밥 한 그릇 수북하게 담아 금방 뚝딱 해치우고 입을 행구기 위해 남은 밥에 물을 붓고 푹 끓였다. 숭늉이나 누른밥 생각까지 나서이다. 숭늉이야말로 우리의 대표적 음료이다. 밥 잘 먹고 나서 그 중독성 있는 음료를 마셔야 입안이 게운하다. 햄버거를 먹고나서 콜라를 마셔야 게운한 것과 같다. 경제제재가 심해도 미국 문명의 상징인 코카콜라는 이곳의 음료 시장도 석권했다.

 

코카콜라야말로 진정 맛으로 세계를 제패한 유일한 상품이다. 그 영원한 제국이 될 것 같은 코카콜라마저도 요즘은 웰빙의 바람을 타고 매출이 급감한다고 한다. 코카콜라가 2차대전에 참전한 것은 1941년 진주만 습격이후 미군의 참전과 함께였다. 100억 병의 코카콜라가 전선에 투입되었다. 그 후 아군과 적군 모두의 사랑을 받는 음료수가 되었다. 아이젠하워는 전장에서 300만 병의의 콜라를 주문했고, 코카콜라 본사는 배송의 어려움으로 현지마다 생산기지를 지었다. 아돌프 히틀러도 코카콜라 마니아였다고 한다. 당시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콜라 소비량이 많은 국가였는데 전쟁 후 기술자들이 다 철수했다. 콜라의 맛을 그리워하던 히틀러의 명령으로 독일산 탄산음료가 생겼는데 그것이 우리가 알고있는 ‘환타’이다.

 

세계 최초의 제국 페르시아, 페르시아제국에 굴욕을 안긴 마라톤 전투. 뭔가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냄새를 풍긴다. 나의 마라톤은 제국주의의 종말을 알리려 세상 끝까지 달려가고 있다. 나는 이 최초의 제국을 20대 애송이와 동행하며 그의 기꺼운 도움을 받으며, 마라톤을 하며 세계 역사상 마지막이 될 제국주의의 종말을 고하는 살풀이춤을 신명나게 춘다. 거대한 제국의 종말은 한반도의 평화를 막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세계의 평화는 한반도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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