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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3)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3)

청년들이여 이리로 오라!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이란은 역사적으로 고려 때까지 한국과 가까웠던 나라였는데 조선 초기 이후에는 교류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두 나라의 교류는 오랫동안 끊겼다. 이란에 오기 전까지 이란이라는 나라는 내게 차도르 속에 감춰진 신비로운 아름다움이었다. 한때 가까웠다 멀어진 연인처럼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이런 이란을 거만하고 속 좁은 서구 문명의 시선으로가 아니라 온정적인 한국인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싶었다. 우리도 아직 약소국이면서 언제부터인가 약한 자가 아니라 강한 자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보려고 해도 편견의 벽은 높은 것이어서 서구식 교육과 환경에서 자라온 나그네의 의식은 쉽사리 적응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들의 지나친 친절과 히잡을 쓴 여인들의 의식적인 무관심이 재미있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어두운 극장 안에 처음 들어섰을 때 열린 동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자리를 찾듯 카스피 연안을 달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차도르가 그 속에 감춰진 여인의 아름다움과 세상과 단절하고 구분 짓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차츰 알게 되었다. 차도르나 히잡이 감추려는 것은 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라서 나그네의 심기는 불편하지만 감추어진 것은 더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차도르 안에 감추어진 이슬람 여성들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욕망, 인권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진다. 감추어진 관능은 드러난 관능보다 더 아찔하고 호기심을 유발했다. 검은 차도르가 가린, 혹은 가리지 못한 굴곡에 넋을 잃고 앞에 걸어가는 여인의 속도에 맞춰 누구도 의심 못 할 거리를 유지하며 한참을 뒤쫓아갔다.

 

매력이란 감추어진 곳에서 나온다. 유명한 걸그룹의 다 드러난 모습보다도 차도르 속에 감추어진 평범한 여인의 은근한 모습이 더 매력적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무리 애써서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있다. 한 번도 외간 남자에게 허튼 미소를 흘린 적이 없었을 그녀들에게 내가 “살람”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면 고개를 돌려 짓는 표정을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는가? 돌아서 웃는 모습이 내 가슴을 덥게 만들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미 그 눈빛이 다 말을 해버렸는데. 남자나 여자나 감정의 교류는 비슷하거늘 남자들이 이렇게 살갑게 다가와 정을 나누는데 여자인들 그 무표정 안의 감정마저도 무표정하겠는가? 아무리 완고한 사회에도 예외적인 5%의 사람은 있는 법이다. 아침에 호텔을 나오려고 열쇠를 반납하고 여권을 돌려받는데 호텔 접수 여직원이 나를 불러 세운다. 군청색 히잡과 군청색 바바리로 온몸을 감싼 여인의 가려진 사이로 드러난 넓은 이마와 부드러운 눈매가 사람을 마비시킬 것 같다. 그녀가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의 모습이 그려진 벽걸이 타일을 하나 선물로 준다.

 

아마 어제 내가 우리의 장구 모양의 열쇠고리를 선물한 것에 대한 답례인 것 같다. 나의 순발력은 여기서 제대로 발휘를 한다. 그동안 이란 남자들하고 찍은 사진은 많은데 여자들하고 사진을 찍는 데는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던 터이다. 지난번 하굣길의 여중생들하고 찍은 사진이 유일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성공의 비결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이다. 나는 아무것도 이 나라의 문화나 예절은 모르는 외국인인 채 손을 내밀어 고맙다고 했고 그녀도 엉겁결에 하얗게 빛나는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생각할 틈도 주지 않을 듯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고 히잡을 쓴 페르시아 미녀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올린 사진을 갖게 되었다. 그녀도 자신의 한국산 핸드폰으로 똑같은 장면을 담아 간직하였다. 좋은 기분은 여운이 오래 간다. ‘토네카본’은 생각보다 큰 도시이다.

 

도시를 벗어나자 예상치 못하게 황금빛 논이 펼쳐졌다. 카스피해의 연안에서만 볼 수 있는 비옥한 땅이다. 이란의 식당에 가면 얇은 빵인 난과 함께 밥을 주기도 한다. 푸석푸석한 쌀이지만 이 사람들은 밥을 먹는다. 복잡한 길을 뚫고 달리는 나의 모습과 한반도기와 이란 기를 달고 뒤쫓는 차량의 행렬은 시민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고 시민들은 우정 어린 반응을 보여주었다. 오늘 한 여자가 내 앞에 차를 세워 말을 걸다가 헤어졌는데 조금 더 가서 자기 집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더니 집에 들어와서 차를 한잔하고 가자고 한다. 마주 앉아서 차를 같이 마신다는 것은 언제나 차를 마시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집안에 초청하는 것은 차도르 속 여인의 모습처럼 베일에 싸인 이란인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실마리가 될 것 같아 약간의 흥분과 함께 그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마리’가 집안을 향해 소리를 지르자 열두어 살 소년이 문을 열어주었는데 그의 표정은 경직돼 있었고 문을 열어주고는 출입구가 다른 별채로 들어가 버렸다. 내게 보여주었던 예의 바르고 살가운 언사와는 사뭇 차이가 있는 언사였다. 나는 그녀와 소년과의 관계가 궁금했지만 끝내 묻지는 않았다. 그녀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둘러본 집안은 깨끗이 정돈되어있었다. 창문의 커튼 사이로는 카스피의 햇살이 살며시 들어오고 그 옆 벽 정면에는 세밀화처럼 정교한 무늬가 그려진 오래된 비단 카펫이 액자에 담아져 걸려있다. 바닥에도 물론 카펫이 깔려있었다. 액자 아래 재작년에 작고한 그의 남편과 가족사진 그리고 그녀의 젊은 날의 사진이 세워져 있었다.

 

느닷없이 초청받아 집에 들어온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립서비스뿐이었다. “당신은 그레이스 켈리처럼 예쁘게 생기셨어요.” 그녀는 정말 큰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얼굴에 홍조를 띠며 좋아했다. 벽에 걸린 카펫은 그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져오는 가보(家寶)라고 했다. 아주 어린 시절 나는 손오공이 타고 다니던 구름과 함께 알라딘이 타고 다니던 양탄자는 제일 갖고 싶은 것이었다. 양탄자만 타면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줄 알았다. 지금은 나의 두 다리가 양탄자가 되어주어서 이렇게 세상을 훨훨 날아다니니 더 이상 양탄자는 필요 없어졌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페르시아의 공예품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카펫이다. 유목 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카펫은 생활필수품이다. 천막 바닥에 깔기도 하고 벽에 걸어 햇빛을 가리고 바람을 막기도 한다. 양털을 이용해서 만들어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던 카펫은 장인들의 정성과 땀을 더하면서 예술적 작품으로까지 승화하였다.

 

카펫은 유목민들에게는 생활필수품이지만 정착민들에게는 집안을 꾸미는 장식일 뿐 아니라 자산이요 투자이기도 하다. 그 집의 카펫의 수와 품질이 그 가정의 부의 상징일 수도 수 있다고 한다. 카펫은 필요할 경우 금과 같이 팔거나 거래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자산이다. 이란에서는 신부의 결혼 예물로 카펫 한두 장을 지참하는 것이 관례이다. 이란에서 만드는 카펫은 예로부터 품질이 좋고 다양한 무늬의 정교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페르시안 카펫에는 아라베스크라고 불리는 기하학적 무늬와 현란한 꽃무늬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정밀화 풍경화 등을 그린 벽걸이용 카펫도 많다.

 

기계로 짠 것보다는 한 올 한 올 정성을 다해 손으로 짠 카펫이 높은 가격으로 팔리며 진정한 카펫은 사람들이 많이 밟을수록 오히려 선명한 색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여 가격도 비싸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곱게 늙어가는 여자를 “당신은 카샨의 카펫과 같군요!” 하면 최고의 찬사라고 한다. 카샨은 정교한 비단 카펫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카샨의 여인들은 대부분 카펫을 짜는 명인들인데 그들은 카펫처럼 세상 풍파와 역경 속에도 카샨의 카펫처럼 변함없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페르시안 카펫은 이란인들의 기쁨과 슬픔에 예술혼이 더해져 씨줄과 날줄로 엮여진 문화상품이다. 카펫의 역사는 기원전 5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제 ‘페르시아 카펫’은 생활을 넘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란 사람들은 이 카펫에 꿈과 자부심을 담아 최고의 문화 자산으로 만들었다. 직공들은 다양한 색상의 실을 자연의 염료에서 얻는다. 그들은 화공이 그림을 그리듯 마에스트로가 지휘하는 듯한 손길로 무늬를 놓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사산조 페르시아의 국제적 수출품이었던 카펫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 한나라까지 팔려갔다. 우리와 교류한 정황으로 봐서는 자료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그것은 이미 신라와 고려에 들어왔을 것이다. 처음에 양털로만 짜던 페르시아 카펫은 중국의 실크를 만나 또 한 번 화려한 변신을 한다. 그녀의 거실에 걸린 카펫은 실크 카펫이었다.

 

청년들이여 이리로 오라! 와서 카스피해에 발을 담그고 꿈을 꾸어라! 그리고 루트 사막에 머리를 박고 사색하라! 청춘을 새장 속에 가두지 말고 날아오르라. 꼭 텃새가 될 필요는 없다. 철새처럼 날아다니다 보면 자기 적성에 맞는 곳을 찾으리라. 세상은 넓고 기회는 많다. 주저하면 청춘이 아니다. 얽매이면 청춘이 아니다. 스스로 비관하거나 남을 탓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아무 음표나 그릴 수 있는 오선지를 손에 쥐고 있다. 오선지는 무한하게 많으니 실패를 두려워 말고 무언가 음표를 그리라. 그리고 그 음에 맞춰 춤을 추어보아라. 떠나서 만나고 느끼고 교통해보라.

 

경멸받고 조롱받고 몰이해한 시선 속에 던져졌더라도, 혹 그것이 실패할 확률이 더 높더라도 자기 확신을 가진다면 지금 응시하고 있는 그것에 자신을 던져버리는 순간 자신을 되찾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양털과 실크가 만나 최고급 카펫을 만들어내듯 문화와 문화가 만나면 상충하는 것이 서로 충돌하기보다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주는 것이 더 많다. 그러니 다른 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이는 따뜻한 가슴을 안고 우리를 반기는 이곳으로 오라!

 

방금 또 트럭 한 대가 살갗을 스칠 듯, 한 뼘 차이로 쌩하고 지나간다. 일촉즉발의 위험한 순간이었다. 한 뼘 차이로 위기를 넘겼지만 지난 청춘 대부분의 경우 한 뼘 차이로 불운이 이어졌다. 한 뼘만 앞으로 나가면 내가 일등이었는데 그 차이로 언제나 뼈 아픈 고배를 마시며 좌절했다. 늘 우물쭈물하고 머뭇거렸다. 그러는 사이 큰 실패 없이 뒤처지고 말았다. 사회는 한번 뒤처지면 영영 역전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토너먼트 경기처럼 매몰찼다.

 

서구세력들이 내버려 둔 그러나 우리에겐 보고(寶庫)가 될 이슬람권 중근동 아시아가 있다. 서구인들이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빨을 드러내고 이곳의 자원을 흡혈귀처럼 빨아 먹고는 ‘한 손에는 코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날조된 이미지를 심으면서 이들을 혐오했으니 이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따뜻하다. 그만큼 청년들에게 꿈을 키워나갈 기회의 땅이 될 것이다. 중국인들에게 중국몽이 있다면 이란인들에게 이란몽(夢)이 있다. 유라시아의 허브로서 이란은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이곳에 유라시아의 새길이 나고 있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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