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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6)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6)

봄은 발바닥으로부터 온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다시 지난번에 마쳤던 ‘몰라 콜라’에서 출발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봄은 맑은 햇살과 함께 경이롭게 다가오고 있다. 카스피해 연안의 봄은 한국의 봄보다 훨씬 이르다. 아직도 벌거벗은 나무가 봄을 맞으러 기지개 켜는 소리가 들린다. 봄에는 대지에 뿌리를 박고 그 생명의 진한 수액을 끌어올리는 나무들의 분주한 소리가 들린다. 봄 대지를 통 통통 달리며 대지와 내가 합일을 이루면 나도 나무처럼 봄, 그 생명의 수액이 발바닥으로부터 길어 올려져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다. 부지런한 농부들은 밭을 갈아 대지는 이스트를 넣은 빵 반죽처럼 부풀어 올랐고, 그 부드러운 대지를 봄볕이 아득하게 애무를 한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봄 대지 위를 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은 뜨겁게 달구어진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봄은 내 발바닥으로부터 온다.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봄기운이 뛰는 발바닥을 통해서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봄기운에는 신비로운 조화가 있다. 달리며 몸이 달구어져 모공이 열리면 대지 밑에서 꿈틀거리는 미물들의 생명의 소리가 또 그렇게 아름답게 들린다. 달리면서 단전에 힘을 모으고 깊은 호흡을 계속하면 그 소리는 더욱 경쾌하게 들린다. 콧구멍으로 파고드는 노란 오렌지 향의 봄바람, 팝콘처럼 터지는 꽃 속의 생명들, 봄바람은 꽃을 들고 내게 달려온다. 나른한 하품에 깃든 평화, 그 속에 움츠린 열망, 꽃잎은 끓는 찻주전자에서도 마지막 향기를 우려낸다. 불경스런 잡념마저도 봄 햇살 맞으면 희망으로 피어날 것 같다. 봄은 발바닥의 혈관을 타고 시내처럼 흘러온다.

 

달리면 대지와 발바닥이 맞닿아 전해지는 상쾌한 울림이 있다. 내 육신의 깊숙한 곳과 대지의 핵까지 오고 가는 미묘한 진동이 있다. 그 진동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특별한 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것 같다.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봄기운이 뛰는 발바닥을 통해서 전신으로 퍼져나간다. 나무뿌리들의 봄을 향한 그리움처럼 달리는 나의 발바닥은 대지의 봄기운을 펌프처럼 끌어 올려 봄의 생명 에너지와 만날 수 있다.

 

봄은 발바닥에서 먼저 온다. 대지를 달리는 발바닥은 대지의 핵에서부터 전해져오는 아주 작은 평화의 기운에도 큰 떨림으로 반응한다. 깊은 우물에 두레박이 떨어져서 파문을 일으키며 손끝으로 느껴지듯 깊은 대지의 파문이 발끝으로 전해온다. 그것이 발끝을 타고 올라오면 이제 자신의 깊은 곳에서 파문이 이는 것을 알게 된다.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환희 같은 파문이다. 이럴 때면 발바닥은 마치 오선지 위의 음표가 춤을 추듯이 흥겹다.

 

아침 공기는 신선했다. 활처럼 놓인 아치형 다리를 건넌다. 다리에 걸린 수많은 이란 국기가 봄바람에 휘날린다. 다리 밑에는 엘브르즈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흐르는 강이 있다. 그 강에는 어부 두 명이 투망을 던져 고기를 잡는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물에 고기가 걸렸나 본다. 한 번 걷어 올릴 때마다 팔뚝만 한 고기가 두어 마리씩 걸려 파닥거렸다. 팔딱거리는 생명의 힘이 눈으로 전해져온다. 길옆의 오렌지 나뭇잎이 나풀나풀 흔들리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강아지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휘날리는 것, 팔딱거리는 것, 나풀거리는 것, 살랑거리는 것. 나는 그런 것이 좋다. 이국적인 봄 길을 달리는 내 발자국 소리는 이 봄 바쁘게 뛰는 심장박동 소리와 휘날리는 국기와 그물에서 파닥거리는 물고기와 나풀나풀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리고 살랑거리는 개꼬리가 환상적으로 리듬에 잘 맞는다. 봄에는 뭔가 활기차고 빠른 리듬이 좋다. 새봄을 맞는 생명의 움직임이 분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봄을 향하여 달려가는 내 마음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 봄이 오면 새로운 일들이 꽃이 화사하게 터져 나오듯 멋지게 터져 나올 것만 같다.

 

이 계절 뭇 생명은 봄의 복락을 더 누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으며 또 치열한 경쟁을 한다. 적당한 경쟁을 통해 자연과 사람들은 더욱 건강해진다. 긴 겨울을 이겨낸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상큼하다. 새들도 지저귀며 솟구쳐 올라 암수가 서로 희롱을 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간다. 나도 오늘 카스피해 연안의 ‘바볼’이라는 도시에 떠도는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봄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고 싶다. 달리면서 몸속에 묵고 낡은 기운은 다 날려 보내고 우주에 떠도는 봄기운을 폐 속 아주 미세한 기공까지 큰 호흡으로 가득 채우니 신선이 된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끝없이 달리는 것이 좋다. 마라톤을 빙자하여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다. 마라톤이라는 깃발에 평화를 새겨서 들고 세계 구석구석 다니면서 인심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기후와 토양이 다른 자연의 기를 온몸으로 내려받고, 다른 문화와 맛이 다른 음식과 술을 처음 본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 것은 멋진 일일 것이다. 달리며 대지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흙내음을 맡고, 파도 소리 들으며 싱그러운 영원으로 거듭나 뜨거운 가슴으로 서로를 포옹하는 것이다.

 

나는 이란을 달리면서 마치 동화 속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이다. 이곳에서는 정말 이상한 일들과 우리와 유사한 문화적 현상을 교차로 끊임없이 접하게 되면서 흥미와 긴장을 유발시킨다. 이런 파란만장한 역사의 유사성이 이들을 대장금이나 주몽 같은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게 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또 우리는 그 연관성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란 사람들이 찾아낸 동질성 중의 하나는 한국 사극에서 보이는 여인들의 쓰개치마나 장옷이 히잡이나 차도르를 쓰고 몸 전체를 가리는 이란 여성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모르겠다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발바닥으로 전해져오는 봄의 수액을 혼신의 힘을 다해 빨아올리며 달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한 남자가 차를 세우고 내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다. 오늘도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카메라를 꺼내 내 모습을 담아서 그런 사람 중에 하나로 생각하며 손을 흔들어 주며 달려가는데 어느새 다시 앞에 차를 세우고 사진 촬영하기를 몇 번을 반복한다. 어디서부터 따라오는지 모를 그는 계속 따라오며 나를 촬영하지만, 결코 세우지는 않는다. 오늘의 목적지인 바볼까지 달리기를 마친 다음에야 자신이 신문사 기자라고 소개를 하고 인터뷰를 요청한다.

 

시장판 한가운데 섰을 때는 어느새 주위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한쪽에서 인터뷰를 듣고 있던 키가 훤칠한 한 학생이 나하고 같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여 사진을 찍었더니 이 사람 저 사람이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한다. 아마 이 사람들은 지금껏 자기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먼 길을 달려서 온 사람하고 사진을 남기는 일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엄마 손을 잡고 있던 어린 소년이 엄마 손을 끌면서 내게로 다가와 사진을 찍자고 한다. 나는 사실 어린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을 제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혹시 내 달리기가 어린아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건 엄청 즐겁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조금 전에 같이 사진을 찍은 학생이 다시 다가와 오늘 숙소가 정해지지 않았으면 자기 집에 가서 자자고 한다. 이란 사람의 가족들의 살 냄새가 나는 집에 가서 자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고맙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런데 조금 전 어린 소년의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따라와서 아이가 당신을 초대하고 싶어 한다고 오늘 숙소가 정해지지 않았으면 자기 집에서 자고 가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이미 숙소는 정해졌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아이네 집이 더 마음이 땡겼다. 무스타파라는 대학원 학생의 집에는 실망스럽게도 내가 기대했던 가족은 없었다. 자기 가족은 테헤란에 살고 자기는 학교 때문에 어머니의 고향 집에서 지낸다고 한다.

 

그 집에는 사람의 살 냄새 대신 오렌지 향이 가득했다. 마당 가득 오렌지 나무와 레몬트리에 열매가 가득 열려 누가 따먹지 않아 반은 떨어져서 바닥에 뒹굴고 반은 나뭇가지에 걸려 나무가 힘겨워 보인다. 나는 나무에 매달린 오렌지가 얼마나 즙이 많고 맛있는지 미국의 플로리다의 지인 집에서 경험해 보아서 안다. 사 먹는 오렌지는 운송 중에 어느 정도 말라서 즙이 덜 나온다. 나무에서 큼직한 놈으로 하나 따서 껍질을 벗겨 한 조각을 입속에 덥석 넣는다. 입속에서 오렌지 알들이 톡톡 터지며 함성을 지른다. 내 입맛도 기쁨으로 응답한다.

 

바로 이 맛이다. 상큼하고 달콤한 즙이 목젖을 타고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하루 종일 달린 피로와 갈증이 한방에 사라진다. 무스타파는 옆에 사는 자기 아저씨 집을 구경시켜 주고 싶어 했다. 그 집에 가니 아저씨 가족이 나와 반갑게 맞아주고 끝없이 펼쳐진 오렌지 농장 한가운데 운치 있게 자리 잡은 정자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돌아왔다. 학생 혼자 사는 집이라 저녁거리는 없어서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같이 밖에 나가서 식사하고 들어와 9시쯤 잠자리를 펴려고 할 때 바볼 시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마 아까 그 기자가 시장에게 나에 대한 보고를 한 모양이었다.

 

나하고 꼭 통화하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영어가 잘 안되는지 11시쯤 통역을 불러 다시 통화하자는 것을 내가 공손하게 거절하였다. 10시 전에는 자야 하는데 잠잘 시간을 놓치면 생체리듬이 깨져서 밤새 잠을 못 잘 수 있어서이다. 생체리듬을 유지하는 것은 내가 이 여정 중에 가장 신경 쓰는 일이다. 대신 아침에 시장실에 꼭 와달라는 것도 내가 8시 전에는 출발을 해야 한다고 하니 7시에 보자고 한다. 바볼은 카스피 해 연안의 도시 중에 가장 큰 도시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 도시의 상징은 오렌지이며 오렌지 꽃은 평화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름 아침이라 직원들이 출근하기도 전인데 시청사에는 시장과 국과장급 직원이 내가 도착하기 전부터 도열해 있다가 나를 외국의 주요 사절처럼 극진하게 맞는다. 시장은 한국의 평화마라토너가 평화의 도시 바볼에 방문하여주어서 고맙다고 화환과 기념패를 시장이 주었다. 나도 준비해간 우리 장고 모형이 들어간 열쇠고리 몇 개를 나누어주고, 한반도기에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평화’를 새긴 티셔츠를 주며 시장실에 걸어 한국의 평화를 지원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시장은 내게 어제 무스타파 학생 집에서 잠자리는 편했냐고 물어보더니, 내가 아주 편하게 잘 잤고 나는 이란인들의 친절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답하자 무스타파에게도 시장으로서 외국인에게 친절을 베푼 시민을 치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는 저녁에 자기 집에 초대하면 와서 자겠냐고 물어서 내가 하루 42km를 달리니 차타고 오면 가능하니 고맙다고 했다. 시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건 내가 다시 이 도시로 이동해서 돌아와야 해서 너무 번거로우니 다음 도착지인 ‘사리’의 운동선수들 합숙시설에 전화해서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비교적 깨끗하고 시내 한복판에 있는 운동선수들의 합숙소에서의 하룻밤도 달콤했다.

 

발로 공간을 넓히고 간극은 좁히고 시간을 건너뛰며, 발로 목표를 향해 묵묵히 간다. 평화는 달리는 발바닥으로부터 온다. 봄은 맑은 햇살과 함께 경이롭게 다가오고 있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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