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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8)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8)

이란 여고생들과 즐거운 한때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달리기는 이 자연과 가장 에로틱한 만남의 순간이다. 자연이 가장 에로틱할 때는 역시 봄이다. 봄에 모든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짝짓기하기 위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치장한다. 나도 이 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되어 남과 북의 짝짓기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대지 위를 달린다. 온몸의 신경이 다 일어나서 사랑하는 자연을 깊고 아련하게 느낀다. 달리며 심장의 박동 소리가 빨라지면 내 삶은 온통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네카’라는 도시를 지나니 이제는 그 거대한 엘부르즈산맥의 기세도 이제는 다하고 낮은 산 가득히 유채꽃 향연이 감동적으로 펼쳐졌다. 생동하는 봄의 대지에 노랑의 물결이 일렁이니 가슴에 파도의 거품 같은 환희가 피어난다. 감동은 스위치가 되어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요동치는 심장은 다시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흐르는 활력의 원천을 찾아 철철 뿜어 올리는 모터가 된다. 활력의 생수는 몸과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시키고 영양을 공급하는 젖줄 역할을 한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끌어올려 진 활력의 생수는 육신과 영혼을 넘나들며 의욕으로 자신감으로, 독특한 창의력으로 열매를 맺는다. 노랑의 물결을 타고 전해져오는 봄의 활력을 즐기며 달리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차를 가까이 대고 뭐 도울 것 없냐고 능숙한 영어로 묻는다. ‘베흐샤흐르’라는 작은 도시의 초입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특별한 도움을 필요하지 않지만 지금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식당이 이 근처에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자기를 따라 5분만 가면 좋은 식당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했다.

 

처음엔 망설였지만 나는 금방 상대가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나그네에게 눈치란 아주 유용한 여행 도구이다. 식당은 일종의 유원지 비슷한 곳에 있는 간이식당이었다. 언덕 위에서 저 아래 감청색의 카스피해 바닷가에 노랑의 유채꽃밭이 끝없이 펼쳐져 노랑과 푸른 바다가 절경을 이룬다. 새들이 하얀 배를 드러내고 낮게 비행을 했다. 유채 향이 아련하게 코끝을 파고든다. 이 언덕 곳곳에는 정자 모양의 쉼터가 마련되어있었다.

 

그곳에 유채꽃처럼 피어나는 여고생들이 봄 소풍을 나왔다. 생동감 넘치는 이 언덕의 모든 것을 지휘하는 카펠 마이스터는 ‘봄’이었다. 신록의 활기와 소녀들의 생기, 꽃향기가 이 언덕에 넘쳐흘렀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의 눈에 봄 햇볕이 가득했다. 여고생들은 우리의 교복 같은 갈색 옷을 입었는데 다른 것은 교복과 같은 색의 히잡을 썼다는 것뿐이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처음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멀리서 이방인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힐끗힐끗 쳐다볼 뿐 막상 다가오지 못했다. 우리도 이슬람 율법이 준엄하다고 알고 있어서 선뜻 다가가지 못했는데 우리가 선생님하고 같이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누자 한 학생이 슬며시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붙이는 척하면서 다가왔다. 언제나 많은 학생 중에는 튀는 학생이 하나쯤은 있다. 일단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는 데 성공한 여학생은 당돌하기까지 하였다. 그 소녀가 내게 질문 공세를 퍼붓는다.

 

우리를 안내한 알리씨는 이 학교의 영어 선생님이라고 한다. 영어는 정규과목에 없어서 방과 후 과목으로 교육을 하는데 학생들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그 소녀는 서투른 발음에 주몽과 대장금을 묻더니 김수현, 이민호까지 물을 즈음에 한 친구의 용기에 자신을 얻은 여학생들이 내 주위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순식간에 내가 염려하던 이슬람의 금기라고 지레 겁먹던 남녀의 벽은 무너지고 내 주위에는 여학생들 특유의 생기발랄한 짹짹거리는 기분 좋은 소음이 가득했고 엑스오와 ‘BTS’에 대해서 물었다. 그들은 내게서 먼 나라 낯선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다른 모습 어색한 말씨에서 나오는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기분이 들뜬 나의 목소리는 날아다녔고 듣는 소녀들의 눈길은 아련했다.

 

학생들이 어딘가 먼 곳으로 날아가는 새떼를 바라보는 것 같아 새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나도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 카스피해 위에 타오르는 태양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소녀들의 꿈을 엿보았다. 함께 나누고 함께 잘 사는 미래를! 그들은 서구의 음악을 듣다가 이제 방탄소년단의 음악에 심취해 그들을 만나고 싶어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은 라마단 때가 되면 금식을 하며 코란을 암송하는 일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중의 한 학생이 내 나이를 물었다. “I’m 16” 금방 박수가 터지고 난리가 났다. “I wish I were a 16, but I’m 60” 정말 내가 오늘처럼 16살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내 열여섯 유채꽃보다 더 노란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 노란 꿈이 세파에 시달리며 피어나지 못하다 60에 다시 평화의 노랑꽃으로 피어나 유라시아대륙을 달린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카스피해 연안의 작은 도시에서 유채꽃보다 더 노란 젊음에 둘러싸여 그들이 살아갈 노랑의 평화 세상을 가슴에 품는다. 아직도 피어나지 않은 석류나무 과수원과 유채꽃이 바라다보이는 야외 식당 카누피 아래 식탁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알리 선생님하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시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다가온다. 내게 자기가 말하는 것을 따라 하라고 한다. 이란 말이었다. 나는 처음 좀 어리둥절하였다. “세상은 아름다워요!”라는 말이라고 알리 선생님이 번역해준다.

 

나는 다시 해보라고 하여 입 모양을 그대로 보며 떠듬떠듬 또박또박 따라 했다. 성공적이었나 보다. 뒤따라오던 여학생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를 한다. 그러더니 다른 여학생이 또 한 문장을 던져준다. “우리 부모님 건강하세요!” 내가 또 잘 해냈나보다. 이번엔 박수와 환호가 더 커졌다. 그러자 재미를 붙였는지 또 한 학생이 문장을 던져준다. 나는 “창건아 이거 그림이 될 거 같으니 비디오로 담아.” 하며 그 여학생이 던져준 문장을 따라 했다.

 

그렇게 한참을 따라 하다가 “그러면 여러분들도 내 말을 따라 해보세요!” “One world, One Korea!” 학생들과 나는 입을 모아 봄 동산이 흔들리도록 여러 번 반복하여 소리를 질렀다. 청춘의 한가운데로 들어와 잠시지만 나이를 잊게 해주는 시간은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며 고통을 감내한 내게 유라시아가 주는 커다란 선물 같은 귀한 시간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봄 동산에서 하나의 세상에서 평화롭게 사는 꿈을 공유하는 것은 귀한 선물이었다. 그런데 선물은 창건이가 받은 선물 보따리가 더 커 보였다.

 

나보다 더 크고 잘생기고 젊은 창건이 곁에는 더 많은 여학생이 따라붙어 공책과 메모지를 펼치며 사인해달라고 몰려들었다. 나도 충분하게 귀한 시간을 즐겼는데 왜 이 순간에 비교하고 질투가 나는지 모르겠다. 창건이도 이 귀한 순간을 즐기느라 정신 줄을 놓았는지 아까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비디오를 찍는 것 같더니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나중에 보니 그 역사에 남을 귀중한 영상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즐겁고 귀한 시간이라도 붙잡아 멜 수는 없다. 그런 시간들은 언제나 봄날 벚꽃 휘날리는 시간보다 짧다. 이제 오늘 나머지 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작별을 해야 했다. 그러나 작별도 쉬운 건 아니다. 다시 그 많은 학생이 모여들어 사인해달라고 하고 사진 촬영을 하자고 하고 김수현, 이민호를 만나려면 어떤 방법이 있냐고 묻고 인스타그램이나 이멜주소 적어달라고 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웃고 소통하며 즐기면서 소녀들의 얼굴에 타오르는 기쁨의 불꽃이 카스피해의 봄바람을 타고 번져나갔다.

 

우리들의 감정은 서로 섞이고 쓰다듬어 활력이 되었다. 어울리지 않는 것의 절묘한 조화처럼 창의적인 것은 없다. 바다에서 봄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유채꽃이 흔들렸고 나뭇잎이 하염없이 나부꼈다. 들뜬 소녀들의 히잡이 팔랑거렸다. 히잡 아래 빼꼼이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카스피해의 봄바람에 날린다. 기분 좋은 감동의 여운을 안고 봄 대지 위를 뛰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One world, One Korea!”의 외침이 새들처럼 멀리 날아갔다가 되돌아오고, 멀리 날아갔다가 되돌아온다. 귓전에서!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다시 일정의 마무리를 위해 한참을 그렇게 뛰고 있는데 알리 선생님 차가 멈추더니 오늘은 어디서 잘 거냐고 물어서 오늘 10km만 더 뛰면 일정이 마무리되는데 아마 이 근처에서 호텔을 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니 자기 집에 방이 많으니 와서 자라고 해서 이란인 가정에서 하룻밤 자는 것도 귀한 경험이 될 것 같아 또 덥석 고맙다고 인사를 해버렸다. 강의가 6시에 끝난다고 해서 차 에어컨도 고치고 시간을 보내다 만나서 그의 집에 갔다. 그의 집에는 동방의 손님이 온다는 소리에 가족들이 다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 가족의 집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형님 가족, 여동생 가족이 같이 살았고, 옆집에 사는 작은 아버지와 조카까지 왔다. 그들은 손님을 극진히 맞이한다. 폐쇄된 나라의 작은 마을에서 외국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그들에게도 소중한 시간이었으리라! 응접실은 넓었고 가구는 검소해서 소파나 테이블은 없었다. 우리처럼 좌식문화이다. 신발은 벗고 양반 자세로 둘러앉아 오렌지와 견과류에 차를 마셔가며 이것저것 질문 공세가 펼쳐진다. 특히 갸름한 얼굴의 여자 조카는 고등학생인데 유창한 영어로 소녀다운 호기심으로 질문을 계속했다. 그녀는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싶어서 물어보는 게 깊이가 있다. 그런데 나는 얼마 가지 않아서 큰 문제에 봉착한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저녁을 준다든가 준비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달리는 일이 워낙 체력소모가 많아 저녁 여섯 시에는 저녁을 먹고 좀 쉬다가 아무리 늦어도 10시 이전에는 자야 하는데 이란인들의 저녁은 10시쯤이라는 걸 나중에서나 생각이 났다. 이제 우리끼리 먹는다고 우리 음식을 준비할 수도 없었고 굶고 내일 일정을 소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례인지 알면서도 먼저 일어나 쉬어야겠다고 방에 들어갔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는 멈추질 않았다.

 

거의 10시쯤 막 잠이 들려는 순간 저녁이 준비됐다고 해서 나가보니 방바닥 카펫 위에 ‘소프레’라 불리는 식탁보를 깔고 그 위에 음식을 늘어놓았다. 중산층 이상의 집이었는데 우리의 밥상 같은 것도 없었다. 음식은 검소했다. 토마토와 오이, 양파를 썰어서 만든 채소 샐러드와 빵과 약간의 다진 ‘미르자가세미’라 불리는 고기에 양념을 한 것이 거의 전부였다. 음식은 검소했지만 이웃에 사는 친척들까지 함께 나누는 이야기꽃은 봄날 눈처럼 날리는 벚꽃처럼 풍성했다. 식사를 마쳤지만 아무도 먼저 일어나지 않는다. TV를 보면서 이어지는 가족 간의 이야기꽃은 여름날 장맛비처럼 이어진다.

 

술 문화가 없는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일이 끝나면 이렇게 일찍 들어가 가족과 함께 TV를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드라마가 하나 인기를 얻으면 시청률이 90% 이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드라마 주몽과 해신, 대장금을 남녀노소 모르는 이가 없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또 먼저 일어나 방으로 들어왔는데 이 대가족은 거의 2시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자리에 드는 것 같았다. 참 귀하고 소중한 시간을 가졌지만 그 대가는 컸다. 내가 유라시아를 달리는 원동력은 남보다 출중한 체력이 아니라 생체리듬을 잘 잡는 조절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때문에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감기까지 들어 일주일 이상을 고생했다. 이 글도 일주일 만에 마무리하는 것 같다. 그동안 밀린 이야기가 천일야화처럼 많은데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지 걱정이다.

 

언젠가는 이곳에 다시 오리라! 구름 위를 나는 양탄자를 타고서라도. 들판에 일렁이는 노랑의 물결을 바라보며 팽목항의 매서운 바닷바람에 날리던 노랑의 물결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고생들과 웃고 떠들며 단원고 학생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가슴에 안고 달리는 노랑 리본이 있다. 3년 전 팽목항을 찾아 노랑 종이배로 띄워 보낸 나의 헌시가 하나 있다.

 

하얀 목련

 

이렇게 많은 꽃이 피지도 못하고

슬픔의 바다에 잦아드는구나!

그 고운 꽃잎 위에 통곡과 애절한

이름을 하나하나 얹는다.

종이배에 노란 리본 매달아 띄워본다.

 

어른 된 자 쥐구멍이라도 찾고 있을 때

구차한 오만 원 권은 햇볕에 말려지는데

꽃망울들은 심연으로 가라앉는구나!

살아난 꽃들은 처연해 소복으로 갈아입는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이렇게 가슴을 쥐어뜯는구나!

때아닌 국화가 놓인 자리에

햇볕 따스한 어느 봄날 목련으로

다시 피어나렴.

냄새나는 세상에 꽃향기로 머무르렴!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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