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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

빗속에 길을 잃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도르트문트에서 우나까지는 쭉 뻗은 길이다. 이런 길은 길 찾는 걱정 안 하고 주위 경관이나 낯선 사람들을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달리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구름이 하늘을 덮었지만, 곧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며칠 계속 비가 내리더니 기온은 떨어지고 지나는 행인들은 옷깃을 여미고 명 짧은 나뭇잎은 벌써 떨어져 길 위를 구른다. 나뭇잎의 가녀린 떨림으로 전해오는 바람의 소리에 나그네의 귀가 열린다.

 

도르트문트만 해도 대도시라 여러 이민족이 모여 살고 특히 이슬람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거리엔 노숙자도 보였고 빈부격차가 심할 때 느껴지는 긴장감이 나그네의 피부에 그대로 전해온다. 광산 산업이 이 지방에 부를 가져다줄 무렵 우리나라의 광부도 많이 왔지만 터키의 광부들도 많이 왔다고 한다. 케밥으로 오늘 점심을 때운다. 나보다도 더 큰 고등학생들의 장난기 어린 등굣길이 싱그럽게 보인다. 저 앞에 고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아이들이 웃고 손을 흔들고 지나간다. 운동장에서는 축구부 학생들이 축구경기를 하고 크지 않은 스탠드에서는 치어리더들에 맞춰 응원을 열심히 하며 함성을 지른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시내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전차는 그리 바빠 보이지도 않는다. 나도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우나까지 잘 뛰어갔다. 도르트문트에서 다음 숙소 있는 곳이 조스트였으므로 거리가 평소 거리보다 긴 50km이었지만 이제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하는 몸에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우나에서 월스라는 도시까지 가는 곳이 문제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은 GPS도 살짝 맛이 간다. 가던 길을 돌아오고 가던 길을 돌아오고 몇 번 하다 보니 나도 무엇엔가 홀린 듯 정신이 몽롱하다. 비는 음이온을 발생시켜 자율신경계를 조정한다. 그런데 지나친 음이온이 자율신경계를 교란시키는 모양이다.

 

거기서는 그냥 1번 국도를 타고 가면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것이 꼭 아우토반 같아서 겁이 덜컹 났다. 아우토반을 메르세데스나 BMW를 타고 스피드를 즐기고픈 막연한 꿈을 어렸을 때는 꾸어봤지만 이 나이에 유모차를 밀면서 그런 차들과 속도 경쟁을 할 생각은 추호(秋毫)도 없었다. 일단 그 길은 벗어나고 싶어서 무작정 길을 이탈한 것이 탈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꿈속에서 도원경(桃源境)을 헤맸는지 현실 속에서 어떤 유혹에 미혹되어 정신을 잃었는지 알 수가 없다. 빗속에서는 모든 사물이 더 아름답거나 더 추해 보인다. 과장되어 보이는 어둠이 있다. “모든 현상은 꿈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또한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렇게 바라보라!”라는 금강경(金剛經) 말씀이 떠오른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나는 분명 무엇엔가 홀린 기분이었다. 국도에서 다른 길을 찾으려고 비 내리는 뻘줌하게 키 크고 흰 자작나무 숲을 한참 돌다 보면 제자리이고 다시 배나무 가로수 길을 한참 돌다 보면 제자리이다. 갈 길은 멀고 몸의 에너지는 고갈되어 가고 마음은 급해진다. 달리기가 좋아서 길을 나섰지만 길을 잃고 제자리를 뱅뱅 돌고 나면 머리는 하얗게 되어 거친 로렐라이 계곡이 옆에 있다면 그곳에 풍덩 몸을 던지고 말았을 것이다.

 

라인강에서는 로렐라이의 마성의 소리에 미혹되어 정신을 빼앗긴다지만 난 고작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는 소리에 넋이 나갔으니 라이너 마리아 릴케보다도 더 감성적인 사람인가보다. 사실 우리 나이쯤 되면 이성으로부터 유혹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그런 것들이 일상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은근히 어떤 은밀한 유혹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런 유혹이야말로 내가 살아있음을 내가 건강함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이성의 유혹만 그리워하랴! 자연의 유혹도 더 치명적인 것을!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독일의 가을 풍광이 나를 유혹하여 넋을 빼놓고 있는 것 같다.

 

독일의 가을 들판을 달리면서 그의 시 ‘가을날’을 떠올리며 릴케와 함께 가을 벌판을 달린다. 지평선 멀리까지 펼쳐진 황금빛 들판이 그로 하여금 “주여”라는 낱말이 저절로 튀어나오게 했을 것 같다. 릴케는 20살에 고향 보헤미아를 떠난 이후 진정 보헤미안 같은 방랑의 삶을 살다 간 사람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장미꽃을 꺾다가 가시에 찔려 패혈증(敗血症)으로 죽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저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진한 포도주에는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그의 바람대로 하늘은 들녘에 어찌나 센 바람을 풀어놓았는지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가 잘도 돌아간다. 퐁력발전기뿐만 아니라 나도 돌아갈 정도로 바람은 거세다. 그는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고 말한다. 그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사랑할 때 가슴 속에 차오르는 충만함을 연상의 연인 루 살로메와의 애틋한 사랑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야말로 그에게 끝없는 시상을 샘솟게 한 원천(源泉)이었다.

 

자신의 감정에 갇히지 않고 사랑하는 하늘의 비밀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었고 위대한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 지고지순한 사랑도 할 수 있고 위대한 시인도 될 수 있다면 그깟 패혈증쯤은 두려워하지 않고 가시덤불 속의 장미를 꺾을 수 있으련만! 어쩌면 내 발걸음도 지금 가시덤불보다 더 험한 곳에 있는 장미보다 더 아름다운 ‘평화’라는 꽃을 꺾으러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몇 바퀴 똑같은 길을 뱅뱅 돌다 보니 내 머리에서도 전기 스파크가 일어나는 듯 정신이 혼미해진다. 바람에 떨어진 도토리 하나가 정수리를 탁 때린다. 간신히 정신을 추스르고 할 수 없이 고속도로와 같은 국도 1번을 타고 달린다. 자동차들이 질릴 정도의 속도로 쌩쌩 달려간다. 그 길을 따라 비를 맞으며 달리고 있는데 고풍스러운 목조건물 집 앞 마차에 과일과 야채를 가득 내놓고 파는 농장직영 상점이 있다. 목조건물은 중년 신사처럼 낡았지만 당당해서 보기 좋았다. 상점 안에는 감자와 양파, 단호박, 채소와 과일 과일잼, 꿀 등이 가지런히 진열되었다.

 

그 집 뒤로 사료 저장탑과 큰 텃밭이 보였다. 비는 잠깐 그쳤지만 잿빛 하늘은 깊고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안에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는 스카프를 쓴 독일 농부 아주머니가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저 호기심에 그녀와 말 몇 마디 섞어보려고 사과 몇 개와 꿀 한 병을 사러 들어갔지만 그녀는 나그네와 눈빛을 섞고 말을 섞는 일에 흥미가 없어 보였고, 다른 보통의 독일 사람처럼 영어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스카프 사이로 나온 앞머리가 금발로 반짝였고 푸른 눈동자의 무표정한 얼굴이 전형적인 게르만의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평평한 무감정이 수확이 끝난 벌판과 같이 썰렁했다. 차가운 시선만 빼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독일의 가을 하늘은 대부분 잿빛이었고 사람들의 표정은 좋게 말해서 철학적이었다. 그녀는 내가 달나라에서 온 외계인이어도 개의치 않을 표정이었다.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보다는 가벼운 사람이, 아름다운 여인보다 따뜻한 여인에 끌렸다.

 

생경하고 어색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바로 가게에서 나와버렸다. 기대한 정당한 대접을 못 받은 심통에 독일의 햇살 콕콕 담아 익은 사과를 크게 한입 베어 물고 가던 길을 계속 달려갔다. 꿀은 평소에는 잘 먹지 않지만 내가 이런 극한의 마라톤을 할 때 유용하게 활용한다. 꿀은 면역력을 증강해주고 에너지원으로 좋고 피로 회복에 그만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새벽에 어둠이 가시기 전에 도르트문트에서 출발했는데 숙소가 있는 조스트에 도착할 때는 어둠이 짙게 내리기 시작했고, 아직도 비바람은 계속 내리쳤고, 온몸의 기운은 다 소모되었다. 간단히 샤워하고 자리에 누우니 몸의 각 기관을 연결해주고 조이던 나사가 다 풀어져 허벅지와 정강이, 팔뚝과 손목, 머리와 몸통이 제각각 피로에 젖어 쉴 자리를 찾아 따로 나선 것 같다. 나의 모든 기관은 분해된 기계부품처럼 연대감이란 하나도 없이 자기만의 공간을 찾아 나선 것 같았다. 아침에 다시 일어나 조립해서 달리기를 시작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 같다. 나는 허름한 침대에 물처럼 쏟아져 이불 속에 스며들었다.

 

나는 홀로 달리며 자연을 사랑하고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스스로 완성하며 마음의 평화를 간구한다. “사랑은 홀로 승화하는 외로움이다.” 릴케가 이렇게 간파(看破)했고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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