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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2)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2)

‘10월의 대동강 맥주축제’를 꿈꾸며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반사막과 초원이 이어지는 침묵의 공간에 유랑하던 마른 웃음 같은 빛의 입자만이 동행하자고 따라왔으나 그런 것에 정을 붙일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곳이 나를 유혹하여 끌어낸 것은 상반되는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나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의 눈 부심과 심술 궂은 바람이 있다. 이곳에는 영감과 꿈을 주며 단호한 결의를 다지게도 하지만 흙구덩이 속에서 고독과 음울함이 있다. 그리고 나와 같이 나름의 지옥을 부둥켜안고 시간을 지탱하고 있는 처절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모습에 호감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것이 또 닮았다. 이런 곳의 최대의 미덕은 곧고 정직하다는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통일이여! 평화여! 한반도의 번영이여! 일원세상이여!’ 이렇게 쓰고 보니 이 거룩한 단어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정상들에게 예포(禮砲)로 예의를 표하듯 감탄사를 쏘아 올려 예포를 대신해야겠다. ‘아! 통일이여! 평화여! 한반도의 번영이여! 일원세상이여!’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나는 초원을 달리며 소리 높여 허공에 외쳤다. ‘아! 통일이여! 평화여! 한반도의 번영이여! 일원 세상이여!’ 이제 이 거룩한 단어들이 생명이 붙어 온 세상에 퍼져나간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천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라며 판문점 선언을 발표할 때는 울컥했다. 푸른 초원과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하늘, 감격의 파장이 이곳까지 전해오는 듯 오늘따라 초원의 바람은 거셌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동쪽을 향해서 달리는 내게는 시련과 같은 것이지만 발걸음은 신이 났다. 온 우주의 기운이 돌고 돌아 상서로운 기운이 한반도에 드리우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기대와 소망이 있는 곳을 말하며, 화합과 평화 번영의 길을 의미한다. 오늘 정상회담 만찬장에서 부른 노래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었다.

 

유라시아를 달리며 내가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은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라고 물으면 “나는 한국 사람이에요.”하고 답하면 그다음에 필연적으로 되묻는 “남한 사람, 북한 사람?”이다. 이쯤 되면 나는 심통이 나서 시비라도 붙고 싶은 사람처럼 네덜란드에서 시작할 때에는 “내가 당신에게 남쪽 네덜란드 사람인지 북쪽 네덜란드 사람인지 안 물어보는데 당신은 왜 내가 남한 사람인지 북한 사람인지 궁금한데?” 이렇게 되물어서 상대방을 뻘쭘하게 만들곤 한다.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당신에게 동독인지 서독인지 안 묻는데 왜 당신은 내게 남한인지 북한인지 물어봐!” 나는 어디를 가든지 남한 사람도 아닌 북한 사람도 아닌 한국 사람이고 싶다.

 

카자흐스탄을 달리며 듣는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와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사에도 중요한 변곡점(變曲點)이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하여 남과 북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 관계인가를 세계 시민들을 향해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한반도에는 핵무장도 필요 없고 키리졸브 훈련 같은 대규모 전쟁연습도, 사드도 필요 없다는 것을 과시했다.

 

비무장지대가 세계적 평화생태 공원이 되고, 개성은 동아시아의 공장이 되고, 금강산, 백두산은 세계적 관광특구가 되며 황해바다는 지중해처럼 바뀔 것이고, 인천과 강화 교동 일대는 지중해의 번영을 이끌었던 베네치아처럼 번영할 것이고, 황해도 해주가 국제금융 허브로 떠오른다. 부산은 이제 유라시아 특급철도의 출발역이 되고, 그 철도를 통하여 서쪽 끝에 있는 섬나라 영국과 동쪽 끝에 있는 섬나라 일본이 연결된다.

 

그 중심엔 우리나라가 있다. 목포, 서울, 개성, 평양, 신의주로 이어지는 환서해안 축은 물류와 교통, 첨단산업, 금융의 중심이 될 것이다. 부산, 울산, 동해, 금강산, 원산, 나선으로 이어지는 환동해안 축은 러시아로 이어지며 관광과 자원, 에너지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중국과 일본, 미국의 한 중심에 있는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가 물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는 좋은 조건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제 우리의 한식의 매콤한 유혹의 맛이 제3의 맛으로 한 시대를 풍미할 것이란 예견들은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김치와 고추장에는 단순히 매운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숙성되어야 맛이 우러나오는 깊은 맛이 있다. 한국의 종소리처럼 입안에서 퍼져나가서 가슴을 울리는 매운맛의 특별한 매혹이 있다. 발효 음식은 영양이나 건강 면에서 뛰어나다.

 

한식은 섞어서 비비고, 삶고 하는 것이 유난히 많은 음식이다. 한식은 대표적인 슬로우 푸드이다. 채소가 8 고기가 2의 황금률의 적용을 받는 음식이다. 음식은 민족성과 더불어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는 그 민족 문화의 집결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음식은 물질적인 것 이상으로 정성과 사랑의 에너지가 서로 교감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우리 음식에는 서로 다른 음식을 한군데 넣어 재료끼리 소통을 하게 하고, 서로 다른 재료가 만나 새로운 맛을 내는 창조가 이루어지며, 비벼서 서로 융합하고, 각각의 재료는 스스로의 맛을 잃지 않으며 상생하는 등 우리 민족 고유의 유전자가 녹아져 있는 것이다.

 

옥류관은 맥도날드를 뛰어넘는 페스트푸드 브랜드가 되어 냉면은 유라시아의 미래의 맛으로 정착될 것이며 대동강맥주는 제일 늦은 통일을 가장 아름다운 통일로 만들어낸 평화의 상징 맥주로 세계인의 목마름을 적셔줄 대표적 음료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비빔밥은 유라시아 철도가 서는 정거장을 따라 세계인은 건강과 맛을 사로잡는 제 3의 한류의 맛이 될 것이다.

 

오늘은 남북이 대결 상태를 끝내고 평화의 시대로 들어가는 역사적인 날이다. 오늘의 최고의 압권(壓卷)은 두 정상이 손잡고 몇십 년이 걸려도 못 가는 먼 길을 단숨에 폴짝 뛰어넘으며 최고의 축지법(縮地法) 무공을 보여준 것이다. 아이들 땅따먹기 놀이처럼 유치하게 군사분계선을 두 정상이 손을 잡고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잠시 넘나드는 장면이었다. 그 철없는 아이들 같은 모습이 파격처럼 세계인들에게 연출되는 장면은 그동안의 피 말리는 적대감이 얼마나 덧없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한지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김 위원장은 "정작 마주치고 보니 북과 남은 역시 서로 갈라져 살 수 없는 한 혈육이며 그 어느 이웃에도 비길 수 없는 동족이란 것을 가슴 뭉클하게 절감하게 됐다. 하루빨리 온 겨레가 마음 놓고 평화롭게 잘 살아갈 길을 열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나갈 결심을 안고 나는 오늘 판문점 분리선을 넘어 여기에 왔다"고 일갈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했다. 일체의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말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지 않으면 강대국의 예속을 벗어날 수가 없다. 지금 우리는 역사적 전환기에 서 있다. 남북이 ‘단결’하여 자주독립과 평화 프로세스를 밟아나가야겠다. 남북의 ‘단결’을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전격 발표하여야 한다. 단기적으로 많은 고통이 따를 수 있지만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영영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껍데기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만큼 그리 단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껍데기를 스스로 벗기고 밖으로 나올 때다. 우리는 두려워서 껍데기 안에 너무 오래 안주하고 있었다. “세상의 중요한 업적 중 대부분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한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카네기의 말이다.

 

마음을 열고 보니 모두가 사소한 것들인데 왜 우리는 그토록 모질게 핏대를 올리며 상대방에게 삿대질하고 철천지원수처럼 싸웠는지 부끄럽기만 하다. 사실 내가 처음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출발할 때의 남북관계는 빙하의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붙어서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녹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의 달리기는 정치인들이 도저히 풀지 못하는 숙제를 대신해주고픈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두꺼운 얼음장을 뚫고 싹이 트는 가녀린 새싹이고 싶었다.

 

그런데 두 정치인이 이 오랜 숙제를 알아서 풀어주니 내 임무는 여기서 끝인 것 같아서 내심 허탈하기도 했다. 늘 상대가 죽어야만 내가 살 것 같은 적대감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함께 웃으며 손을 잡고 내일을 향해 힘차게 출발하는 날이 이렇게 빨리, 느닷없이 들이닥칠 줄 누군들 알았을까? 고달픈 삶을 살아가다 새희망을 안은 사람들에게는 축제의 한마당이 필요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윗마을의 갑돌이와 아랫마을의 갑순이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마을 사람들은 너도 나도 축복을 해준다. 마을 사람들은 갑돌이와 갑순이의 결혼을 빙자(憑藉)해서 한마당 축제의 장을 연다. 마을 사람들에게 때로는 우리는 하나임을 확인하는 광란의 축제가 필요하다. 2002년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확인했다. 늘 전쟁의 위험 속에서 언제 모든 것이 한순간 날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은 언제나 삶을 좀먹었다. 그 모질고 서러운 삶을 살아온 우리는 월드컵을 빙자하여 슬픔과 한을 속 시원하게 날려 보냈다. 그 질서정연한 광란의 축제를 세계인들은 넋을 잃고 지켜보기만 했다.

 

이제 내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을 빙자하여 한마당 신명 나는 축제가 대동강변의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펼쳐지기를 꿈꾼다. ‘10월의 대동강맥주 축제’에 남한 시민 5만, 북한 시민 5만, 재외동포와 세계 시민 포함 5만 이렇게 15만 정도 모여서 대동강맥주와 남한의 막걸리를 마시며 떠들며 무박 2일 누구의 손이라도 마주 잡고 강강수월래 빙글빙글 돌며 광란의 축제를 벌인다. 2002년 월드컵 때를 능가하는 ‘질서정연한 광한의 축제’ 그건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이다.

 

이렇게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는 만남과 섞임 속에 철조망으로 그어놓은 휴전선 보고 더 강퍅한 마음의 선을 지워버리는 거다. 남과 북을 갈라놓은 휴전선보다도 우리들 마음에 그어진 선을 넘기가 더 어려울 수가 있다. 마음으로 그어진 선은 지나간 옛사랑의 이름을 지우기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런들 15만이 서로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 빙글빙글 돌고 돌다 보면 조금씩 지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마음의 선을 지우고 나면 우리 8천만 동포 모두는 세상에서 가장 먼 길, 분단의 선을 훌쩍 뛰어넘는 축지법의 고수가 될 것이다.

 

아마 통 큰 모습을 보이기를 좋아하는 그분은 “유라시아를 품은 사람이 쫀쫀하게 15만이 뭡네까? 10만씩 30만으로 합시다.”라고 되치는 기분 좋은 상상을 또 해본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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