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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5)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5)

개미의 법칙, 꿀벌의 법칙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비가 내린 다음 날 오월의 햇살은 초원의 초록을 더욱 찬란하게 한다. 텅 빈 듯한 대지에 초록의 희망이 가득하다. 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그 길 위에 양귀비 빨간 꽃과 계금국이 군락을 이룬다. 전봇줄 위에는 뻐꾸기 한 마리 청아한 소리로 노래를 한다. 그 소리 희망으로 가득한 내 가슴에서 공명하여 천상의 소리가 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그리도 고운 소리로 노래를 하는 뻐꾸기는 사랑을 하고는 남의 새의 둥지의 알을 몇 개 밀어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몰래 알을 낳아 그 새가 자기 새끼를 품어 부화하고 먹이를 먹여 키우게끔 한다. 뻐꾸기 어미는 둥지 근처에서 뻐꾹 뻐꾹 울어대기만 하지만 새끼는 자라서 키워준 어미를 버리고 진짜 어미를 찾는다. 뻐꾸기의 얄미운 짓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알보다 일찍 부화한 뻐꾸기는 다른 알들을 밀어서 떨어트리고 의붓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독차지한다.

 

뻐꾸기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세상에는 얌체 짓을 하는 사람이 많다.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가기 전 도시인 메르끼에 숙소를 정했다. 허름하고 시끄러운 곳이지만 달리기를 마치고 바로 숙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이제 지세는 톈산산맥의 자락으로 들어서는 길이라 계속 완만하지만 오르막길이다. 바람마저 거센 맞바람을 맞으며 달렸더니 다른 날보다 많이 피곤하였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낡은 트럭의 엔진 소리 울부짖음에 가깝고 꽁무니에서 품어대는 검은 매연은 독가스에 가깝다. 내 호흡도 점점 거칠어진다.

 

언제나처럼 6시에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방문은 잠그지 않았다. 지난번 어느 싸구려 호텔에서 안으로 잠갔다가 열리지 않아서 혼이 난 경험도 있고 설마 사람이 자는 방에 도둑이 들까 하는 안이한 생각도 있었다. 나는 자다가 자주 소변을 보러 일어난다. 10시 반쯤 깨었을 때는 분명 제자리에 있었던 노트북이 2시 반에 깨었을 때는 안 보인다. 갑자기 잠이 확 깨면서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불을 켜고 보니 핸드폰도 없어지고 마라톤용 GPS 시계가 제자리에 없다. 가슴이 벌렁벌렁 뛴다. 다행히 여권과 돈이 들어있는 허리 백은 한쪽 구석에 있다. 가방도 뒤져서 헝클어져서 돈 봉투가 밖으로 나왔는데 집어 가지 않았다.

 

복도에는 이 늦은 시간에 웬 사람들의 소리로 시끄러웠다. 문을 열고 내다보니 속 옷차림으로 열댓 명의 남녀가 돌아다닌다. 참 괴이한 풍경이지만 이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볼 수도 없은 노릇이었다. 돈과 여권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글을 쓰는 내게 컴퓨터에 담긴 자료나 사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나는 이런 일이 있는 경우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이런 일을 경찰이 해결해 주리라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는데 방심한 내가 잘못이다.

 

경찰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한정된 일조차도 그들은 열심히 하지 않고 책임 회피만 하려고 했다. 오히려 오라 가라 서명하라 귀찮은 일만 벌어지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느 나라에서 건 경찰과 도둑의 구분이 모호할 때가 많다. 더군다나 이곳은 구소련의 경찰들에게 끔찍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삼는 일을 그대로 답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워낙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신고를 했다. 두 명의 경찰이 왔지만 쓸데없는 것만 물어보면서 시간을 끌었다. 수사에도 골든타임이 있을 것인데도 말이다. 이럴 경우 CCTV를 확인하고 손님들이나 직원들을 확인하고 동네 요주의 인물을 확인해야 할 텐데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 경찰에 신고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시간만 보내더니 내일 아침 10시에 경찰서로 오라고 한다. 괜히 잠만 밑졌다. 난 아침이 밝자 대충 요기를 하고 경찰서로 갔다. 어제 하는 짓거리로 봐서는 가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일인데 이젠 신고를 하여 경찰에 접수가 된 사건이기 때문에 안 갈 수도 없었다.

 

경찰서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우중충한 오래된 건물에 자동화기를 든 경찰이 정문을 지키고 있었고 회전의 철창을 지나서 들어갔다. 새벽에 출동했던 경찰 둘은 근무교대를 하고 갔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 다른 담당자가 나타나서 어제 다른 경찰이 물어봤던 것을 반복해서 불어보면서 시간을 허비하더니 나가버린다. 한참을 우중충한 철장 안 같은 곳에서 기다리다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항의를 했더니 통역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통역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그렇게 앉혀만 놓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다시 한 사람을 붙들고 점심을 먹고 들어온다고 하니 상관한테 물어보아야 한다고 가더니 한참 후에야 와서 그러라고 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점심은 바로 옆의 시장으로 가서 길거리 음식을 먹고 들어갔다. 그리고도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경찰서로 가서 하루종일 잡혀있다시피하고 울화통이 터지고 말았다. 나는 알아듣거나 말거나 소리를 지르며 이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없던 일로 할 테니 제발 내보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일단 접수된 건이기 때문에 찾을 때까지 이 도시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통역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한참이 지난 뒤 영어 통역이라고 왔는데 그녀가 할 수 있는 영어란 고작 중학교에 들어가서 몇 달 배운 영어 단어 몇 마디 수준이었다. 도무지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나도 그녀가 이런 법적인 일을 통역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경찰들하고 손짓 몸짓으로 대화할 때보다 더 답답했다.

 

나는 정말 깊은 수렁에 빠진 것을 깨달았다.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나가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나가려 했으나 공권력의 힘으로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혀졌다. 수렁에 빠질수록 침착하게 대응해야 했다. 지금은 물건을 찾는 것보다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마 이들은 내가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 돈을 내밀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몸은 피로가 누적되어 극도로 피로한 상태였고 이 귀한 시간에 쉬거나 앞으로 나가야 했다. 이 사람들은 내가 물건을 찾을 때까지 이 도시에서 내보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찾으려고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는 좀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도둑은 아니었기에 감시의 눈이 없을 때 슬그머니 나와버렸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경찰과 도둑의 구분이 모호할 때가 있지만 저들의 눈에는 여행자와 도둑이 모호할 때가 있나 보다. 이곳의 경찰들은 여행자의 안전이나 국민의 치안보다는 자신들의 재산증식에 더 관심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았고 정말 다행히 긴 하루는 여기서 끝났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다음 날 아침 나는 도망치듯이 메르끼를 빠져 나왔다. 조금이라도 빨리 악몽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친절함과 호의를 베풀던 추억을 몽땅 도둑맞을 것이 두려웠다. 그런 것들을 꼭 움켜쥐고 줄행랑을 치듯 빠른 걸음으로 달렸다. 국경을 넘자 환전상들이 파리 떼처럼 달라붙었다. 사람마다 쳐주는 값이 다르니 아무리 신중한 선택도 여기서는 좋은 선택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이들은 끈질겼고 무언가 속는 기분이라 바꾸고 싶지 않았지만 당장 전화기의 심카드를 사고 적어도 오늘 밤 호텔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100달러를 교환했다.

 

개미의 법칙이 있고 꿀벌의 법칙이 있는데 둘은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둘 다 부지런한 곤충의 대표주자이다. 그런데 개미의 탈을 쓰고 벌의 탈을 썼다고 다 부지런하지 않다는 것이다. 80대 20의 법칙이 작용한다. 20%는 게을러서 빈둥거린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빈둥거리는 20%를 싹 잡아 죽였다. 이제 100%다 부지런한 개미 세상이 올까? 대단히 미안하지만 아니올시다다.

 

다시 그중 20%는 게으름을 피운다. 지금 막말만 일삼는 국회의원들, 남북이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재 뿌리는 반통일 세력들 다 보내버리고 그들을 따르는 20% 솎아내면 정의로운 사회가 올까? 대단히 죄송하지만 아니올시다다. 어차피 필요악은 있다. 필요악도 사회구성원으로 수용해야 한다. 개미와 벌처럼 운명으로 생각하고 그들과 공존하는 거다.

 

다만 그들에게 국회의원 배지나 동네 통반장도 주어서는 안 되고 다만 20%가 넘지 않도록 잘 관리하자. 지금 20% 지지율이 가장 정상적인 사회의 비율이다. 그들이 없어지면 지금의 민주세력이 또 다른 독재세력이 된다. 간혹 화가 나고 불편하지만 필요악이라는 게 있다. 자연이 뻐꾸기를 도태(淘汰)시키지 않고 함께 상생하듯이. 내가 지나온 세상 어느 나라도 도둑놈 없는 나라는 없더라. 반통일 세력, 반평화 세력이 20% 넘지 않도록 이번 지방 선거 잘하자!

 

키르기스스탄에는 세계적인 문호 친기즈 아이뜨마또프가 있어서 더 친근감이 간다. 그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전설 ‘만쿠르트의 전설’을 토대로 쓴 장편소설 ‘백년보다 긴 하루’ 오늘날 우리에게 잃었던 기억의 소중함을 상기시켜준다.

 

“옛날 중앙아시아 초원에 키르기스탄에 나이만족이 살았는데 잔인하기로 유명한 츄안츄안족이 쳐들어온다. 그들은 포로들의 머리를 빡빡 밀고 암낙타 젖가슴을 도려낸 후 포로들의 머리에 씌운다. 아직 수분이 남아있는 젖가슴 가죽을 마치 수영모를 쓴 것처럼 달라붙게 씌우고 하루를 중앙아시아 초원에 태양 빛 아래 나무기둥에 세워놓는다. 뜨거운 태양 아래 암낙타 젖가슴 가죽이 마르면서 포로들의 머리를 서서히 조인다. 머리카락이 자라며 낙타 가죽에 막혀 거꾸로 머리를 파고들며 지옥 같은 고통을 가져다주게 되는데 이 고통이 얼마나 큰지 그들은 이 과정을 통해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을 상실한 ‘만꾸르뜨’는 아주 비싼 값에 노예 상인에게 팔려가게 된다. 이 전설의 주인공인 나이만족의 청년 졸라만도 이 혹독한 고문으로 만꾸르뜨가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졸라만의 엄마는 아들의 소식을 우연히 상인들에게 듣고 수소문 끝에 찾아 헤매다 노예 상인에게 팔려 목동으로 살아가는 졸라만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졸라만은 엄마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들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한 엄마의 애틋함에도 불구하고 졸라만은 노예주인에게 이 사실을 고하고 오로지 그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엄마를 활로 쏘아 죽이게 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 전설은 아주 잔인하지만 기억의 소중함 또는 역사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아무리 풍요로운 삶을 산다 할지라도 기억이 없으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전설은 개인을 넘어서 국가의 역사적 사실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민족과 소련의 지배를 받던 이곳에서 ‘만쿠르트’는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르킬 때 사용된다. 성조기를 흔들며 자신의 정체성을 잊은 듯히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의 츄안츄안족 같은 잔인한 사람들에 의해 머리를 깎이고 낙타 젖가슴 가죽이 씌어진 채로 고문을 받았던 사람들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 뿐이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대신 나를 찾는 데 매진해야겠다. 잃었던 나의 정체성과 잃었던 희망과 잃었던 소중한 기억을 찾는 것이 진정한 가치이겠다. 돈과 명예를 좇았지만 그건 신기루 같아서 손에 잡히지 않았고, 사랑을 찾아 나섰지만 그건 불완전하여 나를 불태웠을 뿐이다. 행복을 찾았으만 손에 쥔 모래처럼 다 새어나갈 뿐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신을 찾았지만 허무의 심연은 깊어만 갈 뿐이었다. 내 속에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불성이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은 놀라울 뿐이다. 신이나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나를 닦아 자성청정(自性淸淨)을 회복하는 길이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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