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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0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0

마침내 중국 땅에 들어서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이제 그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호르고스의 중국 국경검문소를 통과했다. 불가리아에서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왔던 지원 차량은 국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중국으로 차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은 세금이 비현실적으로 너무 비쌌다. 그건 카자흐스탄의 박석화회장 집에 일시 보관하기로 했고 이곳에서 대신 렌트카를 빌리고 현지 운전사를 고용하기로 했다. 마음의 준비를 잔뜩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넘어 온 것 같다.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경 사이 사막과 황무지뿐인 곳에 신기루처럼 비현실적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호르고스이다. 경제자유구역은 두 나라가 공동으로 개발하고 이미 많은 건물이 면세점으로 운영되고 있고 여전히 많은 건물이 건축 중이다. 중국의 이 실험은 벌써 인근 자르켄트 주민들의 소비 행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성공적이다. ‘강과 물이 흐르는 곳에 불과했던 훠얼궈쓰는 이제 사람과 상품이 넘치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호르고스는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처럼 많은 사람이 오고가며 물건을 사고파는 현대적 의미의 오아시스로 거듭나고 있다. 도로는 선진국 수준으로 잘 포장되었고 큰 빌딩은 계속 건축 중이었다. 세계 경제제패를 꿈꾸는 차이나 드림의 일대일로는 과연 지구촌 흐름을 어떻게 뒤흔들까? 어쨌든 중국과 카자흐스탄을 잇는 국경에 위치한 인구 10만의 도시 호르고스는 신실크로드의 중심지 역할을 단단히 할 것 같다.

 

국경에 정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땅에 첫발을 디뎌놓으니 마치 한국의 앞마당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무슨 일일까? 그동안 중국 하면 가졌던 수많은 오해와 진실들이 한꺼번에 물밀 듯이 스쳐 가면서 머리에 현기증마저 든다. 그러다 내가 생각해도 주옥같은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한족 중심’ ‘중화주의의 시각 즉 베이징에서 세계를 보는 것보다는 유라시아에서 중국을 보는 시각이 더 옳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중국 땅에 들어서자 정확히 신장위그루지역에 들어서자 뭔가 꼬집어 얘기할 수 없는 불편함이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식당에 들어간 것이었다. 무거운 짐 보따리를 들고 까다로운 국경을 통과하느라 허기진 배를 달래는 일이었다. 사진으로 잘 찍어 올린 메뉴가 마음에 들었고, 메뉴의 다양함에 고마움마저 느꼈다. 그동안 중앙아시아의 음식에 정을 붙이지 못하던 입맛에 우울증마저 걸릴 지경이었다. 새로운 것을 찾아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을 떠났지만 늘 입맛은 익숙한 것을 찾는다. 익숙한 만두와 볶음밥을 택했다. 위장이 채워지자 잠시의 천국이 펼쳐졌다. 일단 배가 부르자 이제 비로소 바깥 전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입안의 천국은 시선 너머의 전장터와 같은 살벌한 풍경으로 금방 그동안 수없이 나를 괴롭혔던 장염이 다시 도지며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시위가 벌어지면 진압이 아니라 학살이 벌어질 것이 불을 보듯 훤하게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 자유여! 평화여!”하는 말이 신음처럼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100m 간격으로 보이는 공안 파출소에는 SWAP(경찰특공대)라는 마크를 가슴에 단 21조의 공안이 개인화기와 방패, 진압용 쇠창을 들고 위압적으로 서 있었고 분명 민간인인데 군복을 입고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수도 없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80년대 군부 독재 시대 계엄통치 상황과 겹쳐지는 불편한 모습이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쩐지 강요된 침묵이 흐르는 것 같은 어색함이 느껴진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서역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이곳에 오면 테마팍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아찔한 문화적 충격을 만끽할 것 같았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의 제안으로 시작된 신실크로드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의 무지갯빛 구상이 여기서는 검은 그림자에 가려졌다. 이런 것들이 중국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확연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말할 수 없다. 호르고스 인구의 40%가 공안과 군인 가족을 포함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중국 서북부에 위치한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아직도 피가 끊는 곳이다. 매년 위구르족 분리 독립투쟁으로 수십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곳이다. 중국이 이 지역을 중시하는 이유는 신장은 중국의 성들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고 지하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주도인 우루무치를 점령하면서 중국령이 되었다. 그러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이 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를 내놓으면서 위상이 180도 달라졌다.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일대일로의 6대 경제회랑 중 하나인 () 유라시아 대륙교량의 한복판이자, 중국과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를 잇는 교두보이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오늘날 중국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의 중심 배경에는 중국, 즉 한족을 천하의 중심,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중화사상에 있다. 유라시아의 역사가 증언하는 것은 인류문명은 분명 초원에서 태동했고 유목민들은 미개인들이 아니라 선진적 문화를 영유하던 집단이었음을 증거 한다. 중국은 오랜 시간 몽골족의 지배를 받았고 만주족의 지배를 받았다. 그 이전에는 흉노에게 조공을 바쳤던 것을 역사가 이야기하여주고 있다. 입국 첫날부터 중국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야기로 출발하는 이유는 중국과 오래도록 좋은 이웃 관계를 유지하고픈 마음 때문이다.

 

훠얼궈스에서 하루 쉬었고 저녁에는 정사장이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곳의 공안 국장도 자리에 초대했다. 아마 중국 공안을 꽌시로 가지고 있다는 자랑도 하고 싶었고 또 내 앞길에 잘 부탁한다는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지원 차량을 운전해줄 이곳의 위구르족도 합석했는데 그는 공안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처럼 안절부절못했다. 여러 가지 음식을 주문했는데 그중에 가장 눈에 익은 음식이 탕수육이다.

 

 

돼지 튀김 위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얹은 것이다. 몸이 무너져내릴 것 같은 피로가 독사에 물린 것처럼 전신에 퍼져갈 때도 무언가 입에서 씹히면서 육즙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간의 고통조차 비로소 새콤달콤한 맛으로 승화한다. 기름에 튀겨진 고기의 질감이 부드럽고 좋다. 아삭아삭 튀겨진 것이 이빨의 맞물림에 아작아작 썰리며 들리는 입안의 소리는 마치 승전가(勝戰歌)의 북소리 같다. 공복 상태에 있다가 이 특유의 맛과 향이 입안에 가득 찰 때 어떤 잡념도 다 사라져 버리고 무아의 지경에 이른다. 새콤달콤한 맛이 인도하는 몽환의 세계를 여행한다.

 

 

이 맛은 이미 세계를 제패했다. 총과 칼이나 제국주의적 교묘한 힘의 논리가 아닌 맛이나 문화로 세계를 지배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 맛과 문화의 식민지 시민이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맥도날드 나 버거킹 체인점을 합친 것보다 중국음식점이 더 많을 것이다. 세계 구석구석 어디를 가도 중국음식점이 없는 곳은 없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 빼고는. 주방에는 한국의식당에서 보지 못한 엄청난 화력의 화로가 몇 개 보였다. 일본의 요리사가 칼을 잘 다룰수록 대접을 받는 대신 중국의 요리사는 불을 잘 다룰수로 훌륭한 요리사 취급을 받는다. 불을 조절하면서 센 불로 볶아내는 음식 조리는 음식, 삶은 음식, 익히는 음식 등 불로 음식 고유의 맛의 근원을 찾아 새로운 맛을 창조한다.

 

1953년 연천에서 중공군의 대규모 공습이 멈춘 이래 1992년 수교할 때까지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지만 중국은 우리에게 친숙한 나라이다. 친숙할 뿐 잘 모른다. 중국은 지금 전 세계의 화두이다. 중국을 알려면 겉을 읽고 속을 파야 하는 책을 보듯이 해야 한다. 중국은 역사 이래로 음양의 이치와 정반합의 원리를 아는 사람들이다. 음양은 변화의 원리요, 정반합은 발전의 이론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극도의 갈등을 해결하고 인간이 우선인 최고의 해답을 창출하길 기대한다.

 

중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난 5천 년간 쌓아온 문화유산과 인문정신을 불과 100년 만에 다 파괴해버리고 이재야 비로서 그 소중함을 알기 시작했다. 중국 고사에 어느 사람이 가슴에 진귀한 보물을 품고 그 가치를 알지 못하고 길거리를 다니면서 구걸을 했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보물을 가슴에 품고도 비루하게 동냥질을 하고 다닌 꼴이 중국과 우리가 어쩌면 그리 비슷한지 씁쓸하기 짝이 없다. 유라시아를 달려오면서 내가 체험한 것은 다른 문화 사이에는 끊임없이 교류하여왔다는 것이다. 융합도 일어났고 충돌도 일어났다. 그러나 내가 꿈꾸는 유라시아 평화의 시대에도 주체적인 정신이 없다면 그 민족은 역사에서 지워진다는 것이다.

 

중국은 황제의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중국의 정신은 사람 중심의 인문정신이다. 중국인들의 사상에는 유가, 불교, 도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 유가는 인간의 선택과 능력을 중시했다. 인간은 스스로 창조할 수 있다고 본다. 불교는 사람이 지닌 일체의 번뇌나 고통을 사람 자신이 만든다고 말한다. 도가는 천지 만물의 자연사상을 따르며 아무런 작위를 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도올은 근세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은 미국의 탄생과 중국공산당의 집권을 든다. 북아메리카 신대륙의 동해안 변을 따라 정착한 13개 주의 영국 식민지로서 독립선언을 한 지 120년 만에 전 지구를 지배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여 20세기 제국주의의 본보기가 된 미국의 역사와 제국주의적 각축이 극성을 부리던 즈음에 피눈물 나는 투쟁의 역정을 거쳐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의 위상을 갖춘 중국의 역사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칭기즈칸이 유럽을 초토한 후 700년이 못 되어 아시아는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에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말았다. 특히 중국은 근대 이후 서양의 견고한 배와 날카로운 포에 속수무책이었다. 더더욱 서양의 사상과 이념은 더 견고하고 날카로워서 중국의 오래된 문화를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아편전쟁으로 참담한 패배를 맛본 중국은 오랑캐의 장기를 배움으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군사력을 강화하지만 청일전쟁으로 일본에게 철저히 궤멸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신문화운동이 일어난다. 그리고 쑨원이 중심이 되어 민주혁명을 일으켜 청을 무너뜨렸으나 신해혁명의 성과는 위안스카이에게 도둑맞아 다시 군주제로 복귀한다.

 

프랑스혁명도 그렇고, 러시아 혁명도, 신해혁명도 개혁이 자꾸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민주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도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없다. 지금도 제국주의의 끈질기고 집요한 잔재가 남아 있는 한반도에 평화의 싹을 움트게 하기 위한 나의 발걸음은 어둡고 침침한 역사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 된다. 거친 모래바람 맞으며 가파른 톈산산맥을 넘어가는 나의 발걸음이 힘차면서도 장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종아리를 따갑게 때리는 몽환적인 모래바람의 실루엣에 잠시 넋을 잃을 순간 한 줄의 현처럼 팽팽하게 긴장한 발걸음은 바람을 타고 음악적 리듬이 피어나고 있었다.

 

음악은 그 상징적 체계를 이해하면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내가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작곡가처럼 혼신의 예술혼을 쏟아부어 달리는 이유는 감동이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고단한 마라톤을 뛰면서도 계속 글을 쓰는 이유도 내 마라톤의 해설서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도 과연 이 톈산산맥을 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고 나면 유라시아 여행자로 거듭나고 평화운동가로 거듭나게 될까?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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