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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6)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6)

국가보안법 위반자 현장법사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나는 바다에서 가장 먼 도시 우루무치를 나와 트루판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며 기대에 찬 흥분과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막막함을 동시에 느낀다. 사막을 지나며 아침을 파는 식당을 만나기란 기적과 같은 것이어서 매일 저녁을 먹고 남은 것을 포장해달라고 하여 아침에 요기하고 나온다. 이곳에서 아침에 따끈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사치였다. 폭염이 몰려오기 전 최대한 많이 달려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더위와도 맞짱 뜨려 이 길 위에 나섰지만 이 더위를 이길 수는 없는 일이다. 피하기 위해서 최대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야 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까마귀 소리소리 사이로, 접시꽃 피어오르는 대지의 숨결 사이 사이로 태양이 금방 몽골군의 진격처럼 쳐들어온다. 사막은 거칠기도 하지만 사막의 일출은 장엄하기 짝이 없다. 아주 가끔이지만 사막을 걷는 나그네는 오아시스를 만나고 그곳에서 저녁이면 선술집에서 마사며 떠들기도 하고 호희(胡姬)의 춤에 넋을 잃기도 한다. 황금빛 구름이 용솟음치며 먼저 일어나 닭을 깨우고 마을의 모든 닭이 홰를 쳐도 아직 이른 아침이라 길가에는 지난 밤 더위를 피해 문밖의 침상에서 자는 사람들이 아직도 게으른 잠을 잔다. 저렇게 밖에서 사막에 쏟아지는 별빛 다 받으며 자면 매일 밤 좋은 꿈을 꿀 것 같다.

 

텅 빈 하늘 저편에서 작은 불씨가 일어나듯 햇살이 일어나 어린 처녀의 게으른 눈꺼풀을 파고든다. 먼지를 피우며 마당을 쓰는 부지런한 서역 여인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먼지를 뒤집어쓴 접시꽃처럼 시골티를 뒤집어썼어도 그대로 아름답게 보인다. 뽕나무 가로수가 끝나자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청포도 익어가는 냄새가 푸릇하다. 투루판으로 들어서는 길은 뽕나무 가로수가 한동안 이어졌다. 붉게 익어 떨어진 오디가 밟혀 거리를 붉게 물들이고, 뽕나무 사이사이에 접시꽃이 사막의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처량하게 피어나고 있다.

 

바람은 사막의 절대적인 통치자이다. 이곳에는 바람이 만들어 낸 사구와 모래와 태양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낙타를 타고도 힘들었을 이 길을 달려서 지나고 있다. 결코 아름답다고 부를 수 없지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신비로움이 이곳에 있다. 미세한 먼지처럼 허무를 폐 속으로 들이마시면서 지내오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오랜 세월 안에 쌓였던 그것을 날숨으로 내 쉬고 있다. 고맙게도 사막은 넓고 길었다. 사막은 보이시한 용모에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갖은 여인의 알 수 없는 매력 같은 것이 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하늘에는 그 흔한 구름 한 조각 없다. 더위에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그토록 사막의 깊은 곳으로 빠져들고 싶었지만 막상 와보니 그 깊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 뜨거운 곳에서는 마음에 꽉 차있었던 화(火)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 같고 그 전에 업장부터 녹여 소멸시킬 것 같다. 이 뜨거운 모래 속에 희망의 알을 낳아서 묻어놓으면 곧 부화해서 날아갈 것 같다.

 

사막 한가운데 펼쳐진 포도밭의 장관은 나그네에게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투루판이라는 지명은 위구르어로 ‘파인 곳’이라는 의미이다. 해수면보다 낮은 이곳은 톈산산맥의 자락들이 에워싼 분지이다. 그야말로 물이 없는 바다이다. 비가 온다면 더 흘러갈 곳이 없이 고이고 넘치고 말 곳이다. 여름에는 기온이 50도에 이를 정도로 덥고 겨울에는 엄청난 추위가 몰아닥치는 도시이다.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이며 중국에서 가장 맛있는 포도와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은 톈산이 가져다준 커다란 축복이기도 하다.

 

포도는 이곳은 강렬한 태양과 바다의 물 주름을 모래에 그려내는 거친 바람을 고스란히 담고, 발을 담그면 가슴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맑고 깨끗한 눈 녹은 물을 마시면서 최고의 맛을 생산한다. 최고의 뜨거움과 차가움, 거친 듯 부드러움을 담아서 익은 포도알이 이곳의 토굴에서 오랜 시간 숙성되었다. 언제나 냉랭하던 연인과 함께 마시면 그 연인의 가슴을 뜨겁게 데워줄 마성의 포도주로 탄생하는 것이다. “와인을 앞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진다”라고 오드리 헵번이 말했다.

 

현장법사가 천축국으로 가서 불경을 공부하러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당나라 조정은 백성들의 출국을 금지하고 있었다. 장안을 출발한 현장은 간쑤성 무위현에 도착했다. 변방을 지키던 관원들은 그를 붙잡아 장안으로 보내려 했으나 그는 옥문관 부근의 과조우로 도망쳤다. 그는 결국 물 한 방울 없는 거친 사막을 지나 고창(투루판)에 도착했다. 그에게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도 얻어야 할 더 큰 가치가 있었다.

 

그건 2천 년 전 예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로마 국가보안법에 맞서서 인류의 가치를 지켜야 했다. 예수가 대제국에 맞선 비밀 결사라면 석가는 왕권을 버리고 기존 질서에 비폭력으로 맞선 반역자이다. 신념을 가지고 하는 일에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람을 확신범이라 한다. 석가모니는 오랜 세월 인도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계급제도와 기존 가치를 근본부터 뜯어고치려 ‘천상천하 유아독전’, 즉 만민평등의 기치를 들고 분연히 일어선 사상가요 혁명가였다. 다 내려놓고 텅 빈 충만으로 새회상을 꿈꾼 이상주의자였다.

 

629년 불심이 깊었던 고창 왕국의 국문태라는 왕은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하미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사람을 보태 정중히 모셔왔다. 고창 왕은 현장을 극진히 모셨고, 자신을 도와 정사를 맡아 달라고 청하였으나 현장은 거절하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인도로 갔다. 그러나 그가 돌아왔을 때는 고창왕국은 당나라에 의해 멸망해 없어졌다.

 

고창 왕은 현장의 식사 대접 등 시중을 직접 들기도 하며, 현장이 설법을 나갈 때는 자신의 등을 발판으로 밟고 올라가도록 하는 등 최고로 극진한 대접을 했다. 하지만 인도로 가기로 결심한 현장은 나흘간의 단식으로 시위를 벌이며 겨우 고창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떠나는 현장을 위해 네 명의 소년을 출가시켜 시중을 들게 했고 20년간의 여비에 해당하는 황금 100냥, 말 30마리, 하인 25명을 달려 보내며 직접 친서를 써 현장이 지나는 나라에서 돕도록 배려를 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투루판을 지나서 하미로 향하는 길목에 화염산이 있다. 위구르인은 이 화염산을 ‘붉은 산’이라고 부른다. 구리의 머리, 쇠의 몸뚱이라도 녹여버린다는 이 화염산을 현장법사 일행이 넘어갔다. 이곳 화염산은 서유기에 나오는 우마왕이 살던 곳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서유기 삼장법사의 실제 인물이 현장법사인 걸 모른다. 산이 주름진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햇빛을 받아 반사하면 마치 불타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고 한다. 화염산의 불을 끄는 일은 파초선을 갖고 있는 우마왕의 부인 철선공주를 이긴 손오공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불 꺼진 그 화염산을 지난 곳에 베제크리크 천불동(千佛洞)이 마음 아프게 훼손된 채 자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덥다는 투루판, 거기에서도 가장 덥다는 곳이 바로 이곳 화염산이다. 사람들이 보는 눈은 비슷해서 달리면서 이글거리며 피어오르는 아스팔트의 아지랑이 속에 이 산은 바로 불꽃의 모습이다. 땀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고 달리는 나의 내장을 고갈시키고 몸의 조직을 불태워버릴 것 같았다. 한여름 밤 무더위 속에 불타는 장작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았다. 파괴적인 햇살 광선이 피부의 조직을 불태우려 쏟아져 내린다. 잘 움직이다 배터리가 다한 장난감처럼 내 발걸음은 형편없이 느려졌다.

 

이곳은 고승(高僧)의 굳건한 믿음마저도 밀랍처럼 녹여 내릴 것 같았다. 무더운 여름 이곳 화염산은 섭씨 55도까지 오른다고 한다. 환각 상태에서 치르는 종교의식 때 최음제가 사용된다고 한다. 이곳의 환경과 무더위만으로도 최고의 악령이 임재하는 환각 상태에 빠지는 듯하다.

 

인도로 불경을 구하러 가던 현장법사가 이곳 화염산의 열기에 악령이 임재한 환각 상태에 빠진 듯한 모습을 서유기에서는 우마왕을 등장시키고 손오공과 철선공주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세계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탄생시켰다. 어린 시절 손오공 만화영화를 보면서 환상에 빠져 가슴이 터질 것 같았는데 지금 그 서유기의 무대가 되는 이 화염산을 지나면서 더위로 가슴이 과부하에 걸려 터질 것 같다.

 

한낮 최고 더위만은 피해 보려고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 달리지만 이런 더위 속에서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이 숨이 차오를 뿐만 아니라 온몸이 부풀어 뻥 터져버릴 것 같다. 가슴이 터지기 전에 먼저 손과 발이 황금빛 전갈에 물린 듯 붓기 시작한다. 결국 나는 오늘은 42km를 다 못 채우고 39km에서 마감했다. 나는 손오공처럼 구름을 타고 나는 재주도 없고 여의봉도 없으니 이 화염산의 철선 공주에게 지고 마는 듯하지만 어쨌거나 화염산은 기필코 지나서 일정을 마쳤으니 무승부로 쳐줬으면 좋겠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현장법사는 중국을 떠날 때는 국가보안법 위반이었지만 645년 2월 우여곡절 끝에 그가 경전 520묶음을 20필의 말에 나눠 싣고 17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올 때 그는 중국의 영웅이 되었다. 처음 현장법사의 구법여행을 막았던 당태종도 “목숨을 바쳐 법을 구하고 중생을 이롭게 했으니 경하드린다.”며 치하를 했고 당시 제2차 고구려 정벌을 준비하던 그는 현장의 귀국 소긱을 듣고 정벌을 연기하고 성대한 환영행사를 준비했다. 황실과 수많은 백성은 그의 귀국을 열렬히 환영했다. 태종은 서역에서 그가 보고 들은 것을 글로 써주길 정중히 요청했고 현장의 구술을 제자가 기술하는 방식으로 1년반 만에 ‘대당서역기’가 세상에 나왔다.

 

대당 서역기는 모두 12권으로 그가 지나온 110개국의 이야기와 전해 들은 28개국의 상황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나라에 따라 편차는 있어지만 국명과 지리적 형세, 면적, 도시의 규모, 언어, 국왕, 가옥, 농업, 주요 산물, 언어, 풍습, 군대와 형벌, 종교, 사원의 수, 승려의 수 등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책이 출판되자마자 장안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 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서유기’가 탄생하게 된다.

 

서유기에서 주연은 단연 손오공이다. 그러나 때로 주연보다 더 각광을 받는 조연이 있으니 바로 사오정이다. 현장은 300여 명의 수행원과 함께 인도로 출발했다고 한다. 그중 단 3명만이 끝까지 현장을 수행하여 천축국으로부터 불경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신라 왕족 출신 승려인 원측스님이다. 그리고 사오정의 실제 모델은 원측스님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원측스님이 현장법사의 제자였던 것은 분명하고 당나라에 유학한 것도 분명하다. 그는 언어에 능해서 당나라어 범어 등 여러 나라 언어를 구사했다고 전해진다. 서안 흥교사에 2기의 사리탑이 남아 있는데 가운데 5층 탑은 현장법사의 사리탑이고 탑 좌우에 그의 제자 원측과 규기의 사리탑도 남아 있다.

 

내가 처음 유라시아 평화 마라톤에 나설 때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이 진짜 유라시아대륙을 완주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북한을 통과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왠지 이유를 모를 자신감이 내게 있다고. 북한에 가고 북한 주민을 접촉하는 것은 보안법 위반이다. 북한에는 내 친인척이 있다. 그곳은 내 할머니와 내 아버지나 나고 자란 나의 고행이기도 하다. 내 고행을 못가고 내 가족을 못 만나는 보안법이라면 ‘국가보안법’을 내 발로 역사의유물을 만들고 싶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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