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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임도건 칼럼] 빠른 길과 바른 길의 갈림길에서

[임도건 칼럼] 빠른 길과 바른 길의 갈림길에서



▲임도건 박사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임도건 박사] 스페인에 이런 속담이 있다. 죽기 전까진 모든 게 삶이다.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모든 게 살아있고, 그래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60여 년 동행했던 어머니와 이별한 감회, 천상병의 시가 새롭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노을빛 하늘 함께 단 둘이,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이 손짓하면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귀천>.

 

영원에서 보면 인생은 한 날의 ‘소풍’이다. ‘소’고기가 ‘풍’년이지 않던 70년 대, 김밥 두 줄에 삶은 달걀, 그리고 사이다 한 병이면 충분히 행복했던 까까머리 시절의 소풍,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추억을 되살린다. 후회 없는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복 아닌가?

 

최소의 짐에 최대 자유를 누리러 떠나는 소풍. 부질없는 욕심 버리고 호방하게 자연의 숨결에 젖어본다. 먼 산의 풍경과 텃밭의 살구꽃이 똑같이 아름다운 이유는, 각자에게 주어진 순간들을 소박하게 찬미하기 때문이다.

 

와중에 김정은-트럼프 회담이 끝났다. 정상회담에 실패는 없다지만, 사실은 실패에 가까운 결렬이다. 빅딜(Big-Deal)대신 스몰딜(Small-Deal)로 소정의 성과를 노리던 트럼프는 결국 노딜(No-Deal)이라는 제3의 길을 택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외부사안보다 M. 코언이란 내부폭탄 제거를 통해 시간을 버는 것이 중요했을 수 있다. 내유외환의 트럼프, 심기가 불편하기는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왕복 132시간의 기차여행에도 빈손으로 귀향해 인민들의 체면을 구겼다.

 

김정은은 1분이 ‘아깝다’며 빠른 경로를 원했다. 그렇다면 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트럼프는 과연 바른 길을 택한 것일까? 신의 절대 진리가 아니라 실리적 손익에 따른 자기본위적인 결정이기에 누구도 탓할 수 없지만 어떤 합의도 없이 무산된 것은 씁쓸하다.

 

서로에게 책임 전가하는 공방도 그렇고, 억측의 논평과 해설을 쏟아내는 국내/외 언론도 마뜩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실무진 조율이 미흡했던 까닭인지 특정 결단도 없이 두 정상 간 담판에만 의존한 톱다운(Top-down)방식이 문제였다. 상위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에 따라 순차적 하위 프로그램으로 옮겨가는 구조화 프로그래밍의 일환이라지만, 하노이(Hanoi)에서는 불가역적 비핵화와 총괄적 제재완화라는 극단이 결국 파국(No Deal Chicken Game)으로 치달았다. 이제 김정은의 서울 답방 여부가 우리 정부의 원-포인트 릴리프 사안이 되었다.

 

복합 다층적인 속성이 얽힌 탓에 한마디로 결론내리긴 어렵지만, 필자는 어머니의 소천과 하노이 정상회담, 두 사건을 통해 분명한 교훈을 얻었다.

 

빠른 길은 인간의 바람(wish)이요, 바른 길은 신의 계획(plan)이다. 그것이 인생의 시간이든, 정치·외교적 결정이든. 엄밀한 의미에서 빠른 길은 경로를 뜻하고, 바른 길은 목적지와 관련된다. 인간은 쉽고 편한 빠른 길을 좋아하지만, 역사 속의 신의 섭리는 다소 느리게 보이나 (궁극적인) 바른 길로 인도하신다. 인간의 시각과 해석은 인과응보이자 통시적(diachronic)이지만, 영원하신 신의 섭리는 공시적(synchronic)인 셈이다.

 

빠른 길이 모두 바른 길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바른 길에 들어섰다면 그때는 속도가 중요하다. 그래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강조하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고 임종이 가까울수록 세월의 시간은 농밀해진다. 하루 한 순간이 더 없이 소중하기에 진지해 진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고 술회했던 G. 버나드 쇼(1856-1950). 시대를 초월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100세 시대, 이제 빨리 가다 경로를 이탈하기보다 바른 길에서 빠른 경로로 질주해야 한다. 빠른 길과 바른 길이란 선택의 갈림길에서 축적된 지혜를 발휘할 때다.

 

글 : 임도건(Ph.D) 박사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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