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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조정원 칼럼 2> 고려인! 그들의 이야기

<조정원 칼럼 2> 고려인! 그들의 이야기

▲조정원 비전케이 대표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조정원 비전케이 대표] 1937년 화물객차를 2층칸으로 개조한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식수 부족과 열악한 의료 환경, 불결한 위생상태를 안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객차 마다에는 블라디보스톡을 비롯하여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재러동포 30명 내외가 영문도 모른 채 실려져 가고 있다. 한 달을 넘는 이동 과정에서 사망한 인원만도 554명에 이른다.

 

수많은 사연 안고 견디며 지금껏 살아왔고, 한편으로는 살아져 온 고려인! 오늘의 화두이다.

 

우리가 조금 더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할 재외동포가 있다. 재미동포, 재일동포, 재독동포처럼 부르지 못하는 “고려인”이 그들이다.

 

그들을 부르는 호칭이 다른 재외동포와 상이한 데에는, 아픈 역사에 바탕을 둔 스토리가 있다. 이곳 키르기스스탄에도 어림잡아 2만여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다. 이웃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에 약 19만 명, 카자흐스탄에 약 10만여 명의 고려인들이 살고 있기도 하다.

 

같은 고려인이지만 이웃한 국가에 자리를 잡은 고려인과 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성격이 조금은 다르다.

 

오늘은 고려인들의 아픈 역사를 함께 되돌아보고, 그들에게 있어 대한민국의 의미, 대한민국에 있어 그들의 의미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 강제 이주

 

지금으로부터 84년 전인 1937년 8월 21일(소련 인민위원회 및 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 (NO.1428-326cc에 의거) 극동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모든 고려인(그 당시에는 고려인으로 호칭되어지지 않았으나 편의를 위하여 사용)들이 현재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 되었다. 이때 강제 이주한 고려인 숫자는 약 172,000여 명에 이른다.

 

이를 기점으로 고려인들의 생활기반은 극동지역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변화를 맞게 된다.

 

◆ 강제이주를 하게 된 이유

 

스탈린 정부가 고려인들을 강제 이주시킨 이유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 번째는 극동지역에서 있을지 모르는 일본 첩자의 활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으로, 이는 일본인과 고려인의 외모가 유사하다는 논리였다.

 

두 번째는 극동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들의 규모가 컸고, 이전에 고려인들의 자치구 요구가 비등하였던 점을 감안하여, 소련 중앙 당국에서는 장차 있을지도 모르는 영토적 자치요구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세 번 째는 농업생산을 위한 자체 인구가 부족한 현재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 인구를 공급하여, 농업생산력을 증대시키기 위하여는 인위적인 인구 유입정책이 필요하였다는 것이 그것이다.

 

◆ 강제 이주 그 이후

 

이때 강제 이주한 주된 지역은 현재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그 규모가 카자흐스탄에 20,141가구 95,427명, 우즈베키스탄에 16,079가구 73,990명, 타지키스탄에 13가구 89명, 키르기스스탄에 215가구 421명 등, 총 36,448가구 169,927명에 이르렀다.(1937년 12월 5일 문서자료)

 

강제 이주 이후 스탈린은, 고려인들이 극동지역으로 재이주 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였으나,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1955년 흐루시초프는 고려인의 정치적, 법적인 면에서 명예회복을 선언하였고, 이에 따라 고려인들은 러시아인들과 동일한 대우를 받게 되었으며, 거주이전의 자유도 주어지게 되었다.

 

이를 통하여 고려인의 활동무대가 극동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이동하게 되었으며, 고려인들은 뛰어난 역량을 바탕으로 극한의 환경을 극복하고 일어나, 체류하는 각 나라마다 인정받는 민족이 되었다.

 

◆ 강제이주가 가져다 준 역사적 결과

 

이러한 결과는 민족적 차원의 비극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유라시아 정책과 관련하여 강력한 네트워크 구축의 중심역할을 할 수 있는 인적 기반을 마련 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 고려인 호칭과 몇몇 부가 데이터

 

고려인이라고 하는 말 중 “고려”는 역사에 나오는 고려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 그들은 조선인으로 불리어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자신들을 고려인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고려인들에 의하면, 자신들은 조선인이나 한국인이 아닌 소련 사람이고, 언어와 문화 또한 한세기를 지나는 동안 소련의 특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이는 남한이나 북한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특수성을 갖게 되었으니, 그 어느 쪽도 아닌 “고려인”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러한 호칭은 나라 잃은 약소국의 슬픔과 한반도의 분열이 낳은 비극적인 역사의 산물이라 봐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중국, 이스라엘,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 째로 재외동포를 많이 가진 나라로, 현재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에 약 19만 명, 카자흐스탄에 10만 명, 사할린 4만 명, 연해주 4만 명, 모스크바 4만 명, 남부 우크라이나 2만 명, 키르기스스탄에 2만 명, 타지키스탄에 5천 명, 시베리아 남부도시 지역(이르쿠츠크, 하바로브스크, 옴스크)에 3만명 등 전체 55만명에 이른다.

 

한편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은 인접 국가인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거주 고려인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인접한 국가 거주 고려인이, 선택이 아닌 강제적인 방법으로 정착하였던데 비하여, 소련 체제 당시 교육과 식량 공급을 담당하였던 키르기스스탄은, 먼저 거주해 본 고려인들의 초청에 의하여(최우선적으로 가족부터) 자발적으로 모여 정착한 고려인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 고려인 인터뷰

 

필자는 고려인들의 삶을 조금 더 공감하기 위하여, 키르기스스탄에 거주하고 있는 고려인을 만나, 그들과 함께 잠시나마 고려인이라는 마음으로 시간을 공유하였다.

 

+ 현지 한인식당 SILLA

 

키르키스탄의 수도 비쉬켁에서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한인식당 “SILLA” 2층에서 사장 부부와 자매를 함께 만났다. 물론 세 명 모두 고려인이다.

 

남편인 “김 콘스탄틴(1955년생)”, 부인 “김 스레틀라나(1955년생)”, 자매인 “이니나(1958년생)”이 그들이다. 자매가 성이 다른 이유는,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김스레틀라나(우측)와 이니나 자매 (c)시사타임즈

이들에게 있어 대한민국은 한동안 잊고 지낸 국가였다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억 속의 한국이 전부였으며, 그마져도 조부모의 고향인 북한에 관한 기억일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선교사들을 통하여 한국의 발전상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결정적 계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이들은 그때 고려인으로 좋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인들은 너나없이 한 바가지 눈물을 흘릴 만큼의 사연을 안고 있다. 이들 역시 지금은 자리를 잡아 안정적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가슴 한편엔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공존한다.

 

이제는 조국이 된 키르기스스탄에서 살아가는데 고려인이라는 게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호칭은 여전히 고려인이며, 조국인 대한민국에게도 그들은 고려인으로 불리워지고 있음이 현실이다.

 

그들은 한국에 대하여 알고 싶어한다. 특히 한국문화에 대한 갈증이 심하고, 한국 방문을 위해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한국 정부에서는 고려인들에게 비자 발급을 포함하여, 여러 부분에서 문턱을 낮추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이 느끼는 바는 조금 다른 듯 보였다.

 

◎ 마치며

 

필자는 고려인에 대한 칼럼을 준비하는 과정 내내, 웬지 모를 미안함과 한스러움이 함께 했다. 그것은 특정한 한 두개의 스토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이 가진 경쟁력의 원천이, 대한민국 영토 안에 거주하는 국민들 만의 합일까? 고려인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의미인가? 대한민국에게 있어 고려인은 어떤 의미이어야 하는가!

 

글 : 조정원 비전케이 대표​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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