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진용식목사의 글에 대한 반박문(2)

진용식목사의 글에 대한 반박문(2)


[시사타임즈 = 이인규] 필자는 인격적인 비난의 글에 상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몇가지 바로 잡아야할 내용이 있기에 가능한 마지막으로 글을 올리고 싶다.

 

1) 세이연이 올린 공식적인 입장에 대해서 필자에게로 방향을 바꾸지 말라

 

다시 말하지만 진용식목사에게 공식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세이연이다. 하고 싶은 반박글이 있다면 세이연 앞으로 보내주기 바란다. 필자라는 개인에게 보낼 이유가 없다. 필자의 이름으로 글이 올라왔기 때문에 필자의 이름으로 답변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교회와 신앙에도 세이연의 글을 실어주기 바란다. 진용식목사는 혹시 평신도인 필자가 상당히 두려운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세이연의 글은 필자가 쓴 글이 아니다. 필자 외에 여러 사람이 견해를 합쳤는데, 필자에게 온 글에 대해서 몇가지 견해를 추가시켰지만, 그 글은 필자의 글이 아니다. 그리고 글에는 사람의 인격이 드러난다고 하였는데, 인격적인 비난은 하지 않기 바란다. 탁명환소장도 평신도였고, 마틴로이드존스도 평신도였다.

 

필자가 진용식목사의 학력을 조사하자는 안건을 냈는데, 상임위원들이 부결했다는 매우 이상한 주장을 하는데, 이런 상임위원회를 연 적도 없고, 부결된 적도 없다. 이것에 대해서는 필자가 견해를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가 오히려 필자가 스스로 취소하자고 하였을 뿐이다. 혹시 이번 기회에 생각이 있다면 스스로 학력문제를 밝히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본다.

 

2) 삼위일체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본질과 인격을 혼동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진용식목사는 조직신학의 교과서적인 삼위일체에 대해서 답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삼위일체는 Three persons with One essence 혹은 Three persons with One substance가 정확한 영문 표현이다.

 

이미 세이연의 답변에 있듯이, 예수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은 옳다. 이것은 이미 세이연에서 입장을 밝혔고, 예수님도 성부와 동일한 신적본질을 갖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여호와하나님이라는 주장은 틀린다고 하였다. 여호와하나님이 그리스도라고 하여도 틀리고, 그리스도가 여호와하나님이라고 하여도 틀린다. 그 글의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위격(인격)과 본질을 혼동하면 안된다고 분명히 밝혔다.

 

아래 김재성교수가 쓴 캘빈의 삼위일체에서도 캘빈은 “본질과 위격(인격)에 대한 확연한 구분을 강력하게 주문했다”고 말한다.

  

김재성교수의 캘빈의 삼위일체 (8. 위격과 본질의 명확한 구별)

칼빈의 삼위일체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본질 (‘우시아’ 'essence', 라틴어로는 essentia)과 각 위격 (‘휘포스타시스’ hypostasis) 간에 명확한 구분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칼빈은 본질과 위격을 확연히 구분하여 사용하라고 강력히 주문하였다. 칼빈에 의하면, 삼위의 각각의 인격이란 한 하나님의 본질 안에서 (in Dei essentia) 내재적인 위격, 혹은 실재이며 (subsistence, 라틴어로는 subsistentia), 서로 간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 인격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며, 서로 바꿀 수 없는 독특한 요소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때에 ‘실재’ 혹은 ‘실체’ (subsistence)라는 의미는 ‘존재’ (being)라는 용어와는 좀 다른 말로 쓰여졌는데, ‘존재’와는 분리할 수 없는 용어이지만, 존재와 연관을 갖고 있는 한 위격이라는 말로 이해되어진다. ‘수브시스텐티아’라는 말은 존재 내에 있는 관계성을 드러내는 단어이며, ‘에센티아’라는 말은 존재 그 자체 (esse in se ipso, a se ipso)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칼빈의 강조점을 다시 한번 인용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In the absolutely simple unity of God these three hypostases or subsistence coexist in one Being without being confused with one another. Hence although the Father is one God with his Word and Spirit, the Father is not the Word, nor the Word and Spirit.(절대적으로 단순한 하나님의 통일성 속에서, 이들 세 위격들 혹은 실재들이 서로간에 그 어떤 혼동도 없이 하나의 존재 속에 함께 거하고 계신다. 그리하여 성부는 말씀과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성부는 말씀이 아니며, 성령도 아니다) Institutes, I. xiii .4.

 

켈빈의 기독교강요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우리가 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란 이름으로는 오직 하나이신 단일한 본질로 이해된다는 것이며, 그 안에서 세 인격(persons) 혹은 세 본체(hypostasis)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특수화하지 않고 언급될 때에는 언제나 성부를 가리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자와 성령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성자가 성부와 연합될 때, 양자가 관계를 갖게 되며, 그러면 우리는 각 위격(位格)을 구별하게 된다.”(기독교 강요 제1권 제13장 20. 삼위일체 하나님)

루이스 벌콥의 본질과 인격에 대한 진술은 다음과 같다.

 

a. 신적실유에는 구분할 수 없는 오직 하나의 본질이 있다.

b. 이 하나의 신적실유에는 세 인격 또는 개별적 실체들, 즉 성부, 성자, 성령이 있다.

c. 하나님의 구분하지 않은 온전하신 본질은 세 인격들의 각자에 동등하게 속한다.

d. 신적 실유 안에 있는 세 인격들의 실체와 역사는 명확하게 정해진 순서로 표식이 된다

e. 세 인격들(삼위)이 구별되는 명확한 인격적(위적) 속성들이 있다.

(루이스벌콥의 조직신학 상권, 기독교문사, 311-314쪽)

  

벌콥은 인격적 구별을 인격적인 자아구별(self-distinction)이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는 이로 말미암아 신적실유 안에 있는 자아구별들이 하나님의 실유 안에 있는 ‘나’와 ‘너‘ 그리고 ’그‘를 함유하여 그들이 서로 인격적 관계를 맺으신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웨인그루뎀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인격은 독립된 인격체로서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삼위이시라는 말은 성부가 성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은 독립된 인격체이다. 또 성부는 성령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독립된 인격체이다. 그리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상권, 은성, 333쪽)

 

“우리가 보통 말하기를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한 신성(godhead)을 가지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서로 다르다고 한다. 이 서로 다른 셋은 상호관계라는 관계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렇게 이해하여야만 본질의 동일성과 이 셋의 구별이라는 형식이 만들어진다.”(이종성박사의 삼위일체론, 81쪽)

 

“I and the Father are one. - 웨슬레는 사벨리우스나 아리우스의 설을 아래와 같이 반박하였다. 요한10:30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라는 본문을 웨슬레는 are가 복수형이다. (are)는 인격의 복수를 실증함으로서 사벨리우스는 반박하는 반면에, 하나(one)는 하나님 안에 본성의 일치를 실증함으로서 아리우스를 반박한다.”(웨슬레 조직신학, 50쪽. John Wesley's Theology Today 1960. P91)

 

세이연에서는 본질과 위격에 대한 명확한 구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여 왔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예수는 여호와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도 이미 언급하였다. 그러면 인격적인 측면에서 혼동하면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했고, 정확한 삼위일체를 이단이라고 생각한다는 자체가 진용식목사의 삼위일체관을 말하고 있다.

 

여호와라는 명칭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시나무 떨기 불꽃으로 나타나셨을 때에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인격적인 명칭이다 (출 3:14)

 

“그리스도”라는 명칭은 신약에서 “호 크리스토”(the Christ)로서, 구약에서 장차 오신다고 예언되었던 그 메시아에 대한 헬라어 명칭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직분의 의미이다. 여호와하나님이 메시아로 보낸 분이 그리스도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여호와하나님인가?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진용식목사는 아직도 그리스도가 여호와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가? 신약에서 오신 그리스도가 여호와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가? 여호와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것인가? 그와 같이 인격을 구별하지 못하는 주장이 곧 양태론이다. 게다가 인격을 혼동하지 말자고 말하면 이단인가? 인격과 본질에 대해서 정의한 모든 조직신학자들이 다 이단인가?

 

2) 진용식목사의 주장

 

진용식목사의 주장은 계 1:8의 주하나님을 예수로 해석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여호와하나님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진용식목사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본다.

 

계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A.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1) 전능하신 하나님은 여호와하나님을 말하는 것이다

2) 그리스도는 여호와하나님이시다.

B. 알파와 오메가도 여호와하나님을 말한다

1)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은 여호와하나님이시다

2) 그리스도는 여호와하나님이시다

 

아래와 같은 삼단논법을 살펴보자

1)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이다

2) 무궁화는 꽃이다

3) 꽃은 우리나라 국화이다.

 

1)번과 2)번은 옳지만, 3)번은 오류이다

1)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미주세이연은 연구보고서에서 이것에 대해서 옳다고 분명히 명시하였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은 여호와하나님이다

3) 그리스도가 여호와하나님이다라는 주장은 오류이다.

진용식목사의 글은 인격과 본질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오직 잘못된 삼단논법만 있을 뿐이다. 삼위일체를 이렇게 이상한 삼단논법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A = B = C 라고 하여 A = C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논법이 통한다면 원숭이 엉덩이가 사과가 되는 논리가 되어진다.

 

이필찬교수의 “내가 속히 오리라”(이레서원)의 61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칭한 것이고,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권성수교수의 요한계시록(횃불)의 28쪽을 보면 “하나님은 시작부터 끝까지 인류역사 전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되, 영원한 초월자뿐 아니라 전능하신 전권자이시다”라고 해석한다.

 

김광수교수의 요한계시록(침례신학대학교출판부)의 84쪽을 보아도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말씀의 선포와 회중의 화답에 의하여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 추가된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표현은 이곳과 요한계시록 21:5-6에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에 사용되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명백하게 화자로 등장하는 첫부분이다”라고 해석하였다.

 

두란노아카데미의 요한계시록도 계 1:8을 하나님이라고 해석한다(88쪽)

최세창박사의 요한계시록도 계 1:8을 하나님의 자증이라고 해석한다(74-75쪽)

박형택목사의 요한계시록도 계 1:8을 성부하나님으로 해석한다.(46쪽)

원세호목사의 요한계시록성경주석 76쪽에도 성부하나님으로 해석하였다.

  

WBC 주석(393-403쪽)에서도 하나님 자신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호크마주석도 하나님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그랜드주석도 하나님으로 해석하며, IVP 주석도 하나님으로 해석하고(1955쪽), 옥스퍼드 주석도 계 1:8을 하나님이라고 해석한다.

 

이 외에도 너무나 많은 주석과 요한계시록 강해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간혹 드물지만, 계1:8을 예수로 해석하는 경우는 있지만,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여호와하나님”이라는 삼단논법으로 설명하는 주석은 없다.

 

3) 세이연에는 세계각국에 많은 회원들이 있다. 진용식목사는 실명까지 동원하여 상임위원회의 이름을 비난하는 목적으로 올렸는데, 그 외에도 많은 회원들이 보강되었으며, 공문을 만들 때에 초안을 작성하여 이것을 서로 크로스 체크를 하여 견해를 추가하게 된다. 때로는 어떤 견해에 대해서 삭제를 하기도 하고 또는 추가하기도 하며 보완시켜서 공문을 만든다. 이 작업은 최종적으로 미국에서 정리하여 다시 한번 발표하게 된다. 필자도 상임위원으로서 크로스 체크의 과정에서 몇가지 견해를 제시하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가 받은 글에 몇가지 견해를 추가시켰으며, 필자는 진용식목사 조사 소위원회도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진용식목사에 대한 연구보고서는 필자가 쓴 것이 아니다. 세이연 보고서는 견해도 추가하지 않았다.

 

진용식목사는 문제단체들을 보호하게 위하여 이단연구가를 이단으로 조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이연의 공문을 평신도가 썼다는 모함까지 하고 있다. 그렇게 평신도인 이인규가 겁이 나는가? 심지어 세이연에는 평신도 외에는 이단연구서를 쓸 사람이 없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필자가 수정한 글까지 문제를 삼고 있다. 필자가 글을 수정하면 안되는가? 필자는 감리교로서 감리교의 신학대로 따르는 것이 잘못인가? 감리교는 아직 필자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진용식목사는 발표하지 않은 감리교 입장까지 알고 있는가? 나아가서 진용식목사는 감리교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겠는가?

 

미주 세이연은 진용식목사의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을 하였다. 그러나 진용식목사는 오직 “그리스도는 여호와이다”라는 문제만을 갖고 필요 이상으로 논쟁하고 있다. 그것도 “누구도 그리스도를 여호와라고 하였다”는 부분적인 인용만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인격과 본질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전체적인 내용이 아니라 부분적인 내용만을 찾아서 오직 예수가 여호와라고 말한 자료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격과 본질을 정확히 설명한 세이연을 이단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그의 삼위일체관이 전작으로 잘못되었음으로 뜻한다.

 

진용식목사는 그것을 자꾸 과장하고 확대시킴으로서 다른 문제점들을 관심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먼저 비유풀이를 하고 있는 진용식목사의 계시록 강의는 한국교회와 이단연구를 위하여 반드시 중단해야 한다. 이것을 조사하자고 세이연에서 수차례 제안했지만 진용식목사는 침묵만 지키고 있을 뿐이다. 누가 보아도 건전한 강의라고 말할 수 없는 비유풀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느 교수는 “정말 진용식목사가 계시록을 이렇게 기르치는가”라고 묻는다. 세이연에서 이것을 조사하자고 제안하였는데, 진용식목사는 세이연에서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취소하면 조사에 응하겠다는 이상한 약속을 하고 있다. 세이연에서 공적으로 결의한 것을 왜 필자에게 취소하라고 말하는가?

 

4) 계시록과 구원론도 조사하자

 

또한 진용식목사의 구원론에는 다락방과 같은 사탄결박권, 기도응답권, 천사동원권과 유사한 내용이 속죄권, 영생권, 상속권, 통치권, 치리권, 시민권, 화평권, 청구권, 보호권이라는 “권”이라는 용어로 나타난다. 다락방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권”은 피조물의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이며, 다락방, 두날개가 주장했던 용어와 같을 뿐이라고 지적되었던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심지어 장자권의 회복과 같은 이원론적인 왕권회복설과 더불어 다락방의 중요한 이단성 중에 하나였던 사탄배상설까지 나타난다는 것이 세이연의 연구보고서 내용이다.

 

- 인간의 범죄함으로 왕권을 상실

- 지상의 왕권이 사단에게 넘어갔다.

- 인간은 지배하는 왕에게 사망과 질병과 저주의 지배를 받는 인간으로 전락

- 주님은 잃어버린 왕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오셨다.

- 주님은 인류가 사단에게 진 빚을 다 갚으셨다.

 

자신의 허물을 감추기 위하여, 자신을 후원하는 문제단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단연구가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정치적인 조작까지 감행했던 진용식목사는 자신이야말로 계시록과 강의록에 더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진용식목사가 제기한 필자의 문제점은 기이협의 세미나에 참석했던 10여명의 이단연구가들이 모두 증인이 될 수 있다. 기이협의 증인들이 보는 자리에서 진용식목사가 제시한 필자의 문제점에 대해서 공청회를 할 생각이 있는가?

 

더욱이 계시에 대한 진용식목사의 주장은 완전한 직통계시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토론할 생각이 있는가?

 

- 진용식목사는 계시는 주관적인 체험으로 되는 것이며, 예수님을 보는 것이 계시라고 말하며, 주의 날이 주님의 음성을 듣는 날이며 주의 날에 계시를 받는다고 말한다. (1쪽) 진용식목사는 주일에 예수님을 보는가? 꿈에 대해서도 진용식목사는 해석이 필요하고 해몽의 은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진용식목사는 요한이 주님을 만나 구속의 은혜를 체험하고 사명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만나 구속의 체험과 위대한 사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4쪽) 더욱이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용식의 계시관은 분명하개 직통계시를 주장하고 있다.

- 예수님은 하늘성소에서 지금도 속죄의 사역을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13쪽) 예수의 속죄는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어졌으며, 이것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려진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부정하는 이단적 주장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부 이단연구가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어서 이단연구를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필자에게 더 이상 필자의 이름을 언급하며 글을 올리지 않기를 바란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이인규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