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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08)] 신비로운 그녀, 아버지의 딸

[책을 읽읍시다 (1008)] 신비로운 그녀, 아버지의 딸

E. L. 코닉스버그 저 | 이보미 역 | 문학과지성사 | 222쪽 | 11,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미국 아동청소년문학계의 대표 작가 E. L. 코닉스버그의 『신비로운 그녀, 아버지의 딸』. 이 소설은 어마어마한 재산가인 카마이클 집안의 맏아들 ‘윈스턴’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오래전 납치되어 죽었다고 알려진 아버지의 딸이자 이복 누나 ‘캐럴라인’의 등장으로, 화려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들 가족의 일상에 묘한 균열이 생긴다. 작품 초반에는 캐럴라인이 ‘진짜 딸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춰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들은 두 남매를 둘러싼 비밀에 눈을 돌리게 된다. 결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신비로운 그녀’의 정체에 관한 놀라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며 크나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미스터리 형식을 띤 이 작품은 코닉스버그 특유의 간결한 문체와 위트 있는 대사, 개성 있는 캐릭터,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치밀한 구성에 묵직한 주제의식까지 더해져, 코닉스버그의 여느 작품들보다 압도적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성인이 된 윈스턴과 ‘그녀’의 대화로 이어지는 현재(1975년)와 그 둘이 회상하는 과거(1952년)를 오가며 전개되는 이 소설은 짤막하게 사건 단위로 칸이 나뉜 신문의 ‘연재만화’처럼 그려진다. 이들은 23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과거에는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과거를 복기하는 이들의 대화 속에는 ‘그녀’를 추리하는 단서가 곳곳에 복선처럼 깔려 있다.

 

중학교 1학년인 윈스턴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원사와 요리사, 운전기사와 집사가 딸린 대저택에 살면서, 유명한 가문의 자제들이 모인 사립학교에 다니는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윈스턴은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답답함을 느낀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부모님 대신 괴팍하고 제멋대로인 여동생 ‘하이디’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윈스턴은 친구 하나 없이 학교와 집을 오가며 하이디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단조로운 일상에 지쳐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자신이 17년 전 유괴되어 실종된 아버지(찰스)의 딸 ‘캐럴라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나타난다. 그날은 아버지의 첫째 부인이자 캐럴라인의 친어머니(앤)가 그녀 앞으로 남긴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인 서른다섯번째 생일날을 불과 한 달 남긴 시점이었던 것. 어머니(그레이스)를 비롯해 모두가 그녀의 등장에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윈스턴은 낯설지만 따스한 미소를 지닌 이복 누나와 대화하며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느낀다. 캐럴라인은 마침내 “사방에서 들이대는 집요한 검증의 절차를 매끄럽게 통과”하고 카마이클가의 일원이 된다. 윈스턴은 누나에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으며 점점 더 가까워지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서 누나의 정체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한 하이디는 열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엄지손가락을 빨며 아기처럼 어리광을 부리고, 숟가락만으로 모든 음식을 먹으며, 화가 나면 야생동물처럼 난폭하게 변한다. 얼핏 보기에는 “어느 버릇없는 부잣집 딸의 행동”처럼 보이지만, 소설이 전개될수록 하이디에게 어떤 문제, 즉 장애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집안의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하이디에게 ‘힐러리’라는 정식 이름이 있음에도 “동화 주인공 이름인 ‘하이디’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성장을 유예당한 귀염둥이”로 집 안에서만 지내게 한다. 하지만 캐럴라인으로 인해 어른들이 하이디의 장애를 눈치챘음에도 모르는 척해왔으며, 하이디의 존재를 수치스럽게 생각해왔던 정황이 밝혀진다. 캐럴라인은 거짓으로 유지되었던 카마이클가의 평화를 깨뜨리며 두 아이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낸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장애 아동(하이디)이 “성장의 주체”로 등장하며 “그의 변화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코닉스버그가 이 작품을 집필할 1970년대 당시에는 특수교육 분야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고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역시 많이 달랐다. 그럼에도 코닉스버그는 장애 아동을 대상화하지 않고 성장의 주체로 내세우면서 당사자뿐 아니라 “장애인 가족의 고통과 사랑과 미움을 오가는 양가감정까지 예리하게”(「해설」) 포착해내며 장애와 차별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다.

 

윈스턴과 하이디에게 다가온 캐럴라인처럼 청소년기에 정서적인 차원의 관심과 애정, 공감과 신뢰는 성장을 이끌어내는 소중한 밑거름이다. 그것은 삶의 가혹한 진실과 처음 직면하게 된 아이들에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다. 캐럴라인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편견에 맞서는 용기는 교육자로서의 좋은 본보기를 제시하는 동시에, 이 작품이 청소년뿐 아니라 교사와 학부모에게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작가 E.L. 코닉스버그 소개

 

1930년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펜실베이나의 조그만 마을에서 자랐다. 피츠버그 대학원에서 화학을 전공한 뒤 과학교사로 일했으며, 글은 자신의 세 아이 중 막내가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쓰기 시작했다.

 

1968년에 처음 출판한 『클로디아의 비밀』과 『내 친구가 마녀래요』가 표현의 새로움, 소재의 신선함, 이야기의 재미로 크게 호평을 받으며 그 해 한 작가의 두 작품이 뉴베리 상을 놓고 겨루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 결국 동시에 뉴베리 당선작과 가작을 수상했으며, 1997년 『퀴즈 왕들의 비밀』이 색다른 소재를 신선한 표현으로 재미있게 다루었다는 호평을 받아 또다시 한 번 뉴베리 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그녀는 미국 현대 아동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또한 화학을 연구하면서 얻은 경험을 작품에 적용하여 실험적인 작품들을 선보였으며, 중류층 가정의 보통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감동적인 결말로 마무리 짓는 재능이 가히 천재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밖에 작품으로 『롤빵 팀 작전』, 『자콘다 부인의 초상』, 『800번으로의 여행』, 『거짓말쟁이와 모나리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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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