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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70)] 부스러기들

[책을 읽읍시다 (1070)] 부스러기들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저 | 박진희 역 | 황소자리 | 528쪽 | 15,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북유럽 느와르의 최강자로 불리는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의 소설『부스러기들』. 단 한 번의 작은 일탈, 낯선 누군가의 탐욕과 부주의로도 와장창 깨져버릴 수 있는 행복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삶의 일면을 심리 스릴러라는 형식을 빌려 단단하게 응축해낸 작품이다.

 

북구의 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은 어느 밤.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항구로 호화 요트 한 대가 무섭게 돌진해 요란한 굉음을 내며 방파제에 부딪혔다. 요트의 전 소유주는 파산했고, 아이슬란드 은행의 분쟁조정위원회로 명의가 넘어간 직후였다. 리스본을 출발해 레이캬비크에 도착할 예정이던 배 안에는 세 명의 선원과 부부, 부부의 쌍둥이 딸들이 승선했다. 깜짝 놀란 세관원들이 서둘러 요트로 들어갔지만 배는 텅 비어 있었다. 승객들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요트 사고 며칠 후 변호사 토라의 사무실로 퉁퉁 부은 얼굴의 노부부가 찾아온다. 소매 끝동이 헤진 셔츠 차림에, 반들반들 닳은 인조가죽 가방을 손에 쥐고 나타난 노부부의 눈빛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비범한 상황에 처한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 중년의 여성 변호사 토라는 그동안 이런 표정의 의뢰인들을 무수히 만나왔다.

 

노부부는 토라에게 요트에서 실종된 아들 내외가 해외 보험사에 가입한 거액의 생명보험 문제를 처리해 달라고 의뢰한다. 보험사로부터 생명보험금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의뢰인의 아들인 아이에르 부부가 사망했다는 증거를 찾아내야만 한다. 갑작스레 변경된 아이에르 가족의 귀국 동선과 이번 실종 사건 사이에는 의심할 만한 연결고리가 없는 걸까? 떨칠 수 없는 의구심을 안고 토라는 조사에 착수하지만 진실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조각난 단서들 속에서 파국의 밑그림만 점점 더 짙게 드리워진다. 설상가상 이 배를 둘러싸고 오래 전부터 떠돌던 온갖 소문과 저주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심하게 훼손된 시신 한 구가 해안가로 밀려온다.

 

한편 아내와 쌍둥이 두 딸을 동반해 리스본으로 날아간 조정위원회 직원 아이에르는 요트의 명의 이전 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해 일이 꼬여버린다. 애초 요트에 승선하기로 한 선원 중 한 명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선박의 최소항만운항규정에 따른 대체 인력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화창한 리스본에서 물리도록 여행한 뒤 비행기로 귀국하려던 아이에르 가족은 엉겹결에 호화 요트의 승객이 되었다. 예상보다 멋들어진 요트를 본 아내 라라와 쌍둥이들은 한껏 들뜬 기분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배가 처음부터 자신들의 몫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혹스러운 건 통신 두절과 뱃멀미만이 아니었다. 어린 딸들은 부모가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말을 반복하고 선원들은 아이에르 가족을 없는 사람들인 양 취급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듯한 요트에서 가족이 무사 귀국하기를 희망했지만 폭풍우 치는 망망대해에서 그가 마침내 깨달은 건 이 배가 정말, 그야말로 해로운 공간이라는 사실뿐이었다.

 

착하고 성실한 가장이었던 아이에르는 어쩌다 이토록 위험천만한 물 지옥으로 가족을 내몰게 된 걸까? 작가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불행에 휘둘리는 고리와 그것이 자가 증대하는 원리, 사소한 하나의 욕망이 또 다른 욕망과 얽히면서 점점 더 손쓸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정밀한 펜화처럼 그려낸다.

 

우리는 별 볼일 없는 오늘이 내일도 여전히 계속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그 믿음으로 인해 종종 괴롭다. 하지만 견고하게 붙박였다고 생각하는 현재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단 한 번의 작은 일탈, 낯선 누군가의 탐욕과 부주의로도 와장창 깨져버릴 수 있는 행복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는 또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가.

 

소설 『부스러기들』은 이 같은 우리 삶의 일면을 심리 스릴러라는 형식을 빌려 단단하게 응축해낸 작품이다. 거센 물살처럼 몰아치는 이야기에 빨려들어 소설을 읽고 다 난 뒤 우리에게 오롯이 남는 인식은 그럼에도 아니 그러므로 더 단단히 부둥켜안아야 할 내 앞의 현실이다.

 

 

작가 이르사 시구르다르도티르 소개

 

1963년생으로, 현존하는 세계 최고 미스터리 여성작가로 일컬어진다. ‘토라 구드문즈도티르’라는 이름의 여성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미스터리 시리즈 첫 책 『ÞRIÐJA TAKNIÐ(영문판 제목: Last Rituals)』이 미국과 영국, 독일의 주요 출판사를 통해 번역되고, 평단과 시장의 격찬을 받으며 일약 스타 작가로 발돋움했다. 현재 6권까지 나온 ‘토라 시리즈’는 전 세계 33개국에 판권이 팔렸으며, 유럽과 미국에서 그녀의 책들은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시구르다르도티르의 작품은 여타 추리소설 문법과 궤를 달리하는 정교한 문학성으로 상찬 받는다. 치밀한 플롯 속에서 농도를 더해가는 미스터리와 품격 있는 문장, 여기에 북유럽 고유의 신화적 색채가 얹히면서 ‘어둡고, 깊고, 차가운’ 그녀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낸다. 『부스러기들』은 작가의 유니크한 소설 문법이 유감없이 녹아든 작품으로 미국, 영국, 독일은 물론 아시아와 동유럽에서까지 돌풍을 일으키며 북유럽 소설의 황금시대를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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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