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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71)] 스파링

[책을 읽읍시다 (1071)] 스파링

도선우 저 | 문학동네 | 376쪽 | 13,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스파링』. 단지 문학작품을 다독하는 것만으로 묵묵히 필력을 쌓아온 재야의 고수, 도선우의 등단작으로 공중화장실에서 태어난 소년 ‘장태주’가 권투 선수로 성장해가는 과정 속에서 부딪치는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맨몸으로 맞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태주는 열일곱 살의 미혼모에게서 태어났다. 출생 장소가 공중화장실이라니 이보다 비참한 인생이 있을까. 그런데 그를 구조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엄마에게선 그런 불행과는 어울리지 않게 귀티가 났다고 한다. 훗날 장태주는 엄마의 삶을 추적해보려 하지만, 엄마가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던 사람인지는 전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면 남들처럼 엄마의 삶이 불행하다고 간주해도 되는 것인가, 소설은 이러한 의문으로 첫 장을 연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회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삶에 대한 뭔가 다른 관점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사회의 기준으로는 따질 수 없는 또다른 행복이 있는 게 아닐까.

 

이어지는 이야기는 바로 그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남으려 고군분투하는 장태주의 일대기이다. 보육원에서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먹이사슬의 최하층에 위치하게 되고, 보육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멸시받고 심하게 괴롭힘 당한다. 그런 장태주에게 학교 교사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학교 사육장의 새와 토끼를 돌보라는 것이었다. 명백한 가해자를 제재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로 하여금 문제 상황에서 시선을 돌리도록 하는 무책임한 제안이었다. 그럼에도 장태주는 동물들을 돌보며 행복의 가능성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오래가지 않는다. 각별히 애정을 쏟아 기르던 새 ‘알리’를 동급생 오재호에 의해 잃게 된 것이다. 그때 오재호가 늘어놓는 장광설―무능력해서 남들이 노력하여 얻은 것을 받아먹고 사는 주제에 자립하려는 의지도 없는 ‘약한 것들’에 대한 비난은 장태주를 분노에 눈뜨게 한다. 그 사건을 계기로 자기 안의 힘을 자각한 장태주는 애초부터 자신에게 불리하게 기울어 있는 세상에 고한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면 그래, 그렇다면 제대로 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는 온갖 위선을 부리며 이 세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는 자들에게 위악으로써 대응해나가기로 한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굳이 이해해보려 하지도 않는 폭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시작부터 불공평했던 인생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장태주. 하지만 그가 몸부림칠수록 이 사회는 질서유지라는 명목하에 장태주를 괴물로 몰아가려 한다. 결국 장태주가 스스로를 괴물로 여기게 될 때까지. 장태주를 소년원에 보냈던 일진 조직의 우두머리는 말한다. 질서라는 건 한번 만들어지면 여간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질서를 바꾸려면 질서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지 무턱대고 덤볐다간 자기 인생만 망치게 된다고. 이 단언을 깨부수기 위한 장태주의 스파링이 이어진다. 실전보다 더 실전 같은 스파링을 끝내고, 그는 이 세계를 지배해온 악습에 주먹을 꽂아넣을 수 있을까.

 

『스파링』은 한 소년이 권투 선수로서 성공하기까지의 노력과, 성공 이후의 고뇌를 좇아가는 성장소설로도 읽히지만 한편으론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이 사회의 질서를 매섭게 비판하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기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권투의 규칙이 곧 삶의 규칙이며, 작품 자체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알레고리로 채워져 있다고 할 만하다.

 

초등학생 오재호의 말에서 읽어낼 수 있는 성장과 분배의 문제, 자율성이라는 명목하에 이루어지는 교사들의 방관, 문제는 그대로 둔 채 문제를 보는 시각을 비틀어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어른들의 방식, 학원 사회의 강자인 일진들이 만든 제도를 시혜로 받아들이는 학생들, 소년원 방장이 말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실태 등은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뼈아픈 우화다.

 

장태주가 성장하며 만나는 인물들의 거침없고 강렬한 목소리에 담긴 날카로운 통찰과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도선우는 지금까지 개인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문제들이 사실 사회 구조의 문제이며, 이제는 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 그 원인을 따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관점의 전환을 요구한다. 누군가의 편의에 의해 설계된 이 사회를 벗어나, 자신만의 규칙으로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작가 도선우 소개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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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