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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72)]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책을 읽읍시다 (1072)]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저 | 신해경·이수현·황희선 공역 | 아작(디자인콤마) | 520쪽 | 14,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16년 봄 국내 처음 출간되어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체체파리의 비법』에 이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두 번째 작품집인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이 나왔다. 로커스상과 일본 성운상을 수상한 작가의 후기 대표작인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포함해 국내서 처음 소개되는 11편의 빛나는 작품들을 가려 모았다.

 

전작 『체체파리의 비법』에 수록되었던 7편의 작품이 페미사이드(여성학살) 등과 같은 극단적 스토리로 충격과 공포를 주는 이야기들이 많았다면 이번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에서는 비극적 결말은 그대로지만, 상대적으로 희망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함께 실렸다. 소설집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는데 「제1부 사랑은 운명」 편에서는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탈출’을 감행하는 여성들의 위대한 서사시를 다룬 다섯 편의 중단편을 엮었고 「제2부 운명은 죽음」 편에서는 반대로 자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좌절하는 남성들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일곱 작품이 준비되어 있다.

 

소설집의 표제작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에서 열여섯 살 소녀는 부모로부터 생일선물로 우주선을 받고 과감히 광활한 우주로 우주선을 몰고 안락한 삶에서 탈출한다. 그 와중에 외계 생명체에 감염되지만 그 생명체와 아름다운 우정을 키우고 끝내 온 세계의 운명을 위해 장렬하게 자신의 ‘할 만한 멋진 일’을 선택한다. 두 번째 작품 ‘서쪽으로 가는 배달 여행’ 역시 중산층 주부라는 안락한 삶을 거부한 여성이 모든 사람을 ‘자매’라 부르며, 서쪽으로 우편을 배달하는 배달부를 자처하고 맨발의 인디언 걸음으로 여행을 선택한다.

 

주어진 온실 혹은 감옥을 ‘탈출’한 여성이 맞이하게 될 결말은 어쩌면 예정되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그 비극적 결말을 결코 패배적으로 다루지 않고, 세 번째 작품 ‘돼지제국’에서 오히려 보란 듯이 더 선명하고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우주로 탈출을 감행하는 여성의 위대한 서사시를 펼쳐 보인다. 그들에게 운명은 사랑이 아니었고, 스스로 선택한 사랑이야말로 자신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제2부 운명은 죽음」을 알리는 첫 작품 ‘집으로 걷는 사나이’는 이후 여섯 작품에서 펼쳐질 악몽의 시작과도 같다. 어쩌다 사고로 존재할 수 없는 시공간에 처박힌 사내. 그는 수세기를 걸쳐 집으로 걷는다. 넘어지고 쓰러지면서도 걸어야 하는, 끝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수백 년을 계속해서 걸어야 하는 악몽과도 같은 운명.

 

욕망에의 굴복과 좌절로 죽음을 맞이하는 되풀이되는 남성들의 이야기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처럼 닮은꼴이다. 두 개의 파트 제목을 따온 마지막 작품이자, 네뷸러상을 수상한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사랑은 운명, 운명은 죽음’에서 주인공 수컷 거미가 암컷 거미에게 먹히면서도 끝없이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은 이 작품집의 백미. 매혹적이고, 달콤하다.

 

 

작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소개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본명은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으로 1915년에 변호사 아버지와 작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화가, 예술 비평가, 공군 조종사와 군 정보원, CIA 정보원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고 제대 이후엔 대학에서 실험 심리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심리학 박사 과정을 마치던 1967년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SF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라는 필명을 만들었다. 군대나 CIA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목받은 경험을 많이 했던 그녀는 ‘여성 SF작가’라는 이름으로 주목받고 싶지 않았기에 필명을 남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팁트리는 이후 10년 동안 다른 작가들에게 얼굴을 보이는 일 없이 작품과 편지로만 교류했다. 1970년대 초에는 라쿠나 셸던이란 다른 필명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녀의 작품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유사성이 지적됐지만 팁트리의 영향을 받은 여성작가라 여겨졌다. 1977년에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와 라쿠나 셸던이 동일인물이며 팁트리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큰 충격을 일으켰다. 그 사실이 불러일으킨 후폭풍은 대단하여 SF소설계에선 ‘팁트리 쇼크’라는 말까지 생겼다. 팁트리는 이 사건 전후로 모친의 죽음, 남편의 알츠하이머병 발병, 의붓딸의 자살 등 연이은 사건을 겪으며 글쓰기를 포기하고 남아있던 원고를 태워버리려 하기도 했다. 몇 년 후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란 이름으로 다시 작품활동을 재개했지만 예전처럼 활발하게 활동하지는 못했다.

 

말년에 이르러, 남편의 알츠하이머 병 간병을 계속하던 팁트리는 남편의 죽음이 가까워진 1987년 5월 19일에 눈 먼 남편을 산탄총으로 쏘아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 1991년엔 페미니즘 문학에 기여한 그의 공로를 기리는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기념상’이 제정되어, 해마다 젠더문제에 대한 문학적 시야를 넓힌 SF소설과 판타지를 대상으로 수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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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