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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74)] 언데드 다루는 법

[책을 읽읍시다 (1074)] 언데드 다루는 법

욘 A. 린드크비스트 저 | 최세희 역 | 문학동네 | 444쪽 | 14,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렛미인』의 작가 욘 A. 린드크비스트의 『언데드 다루는 법』. 이번 작품에서 저자는 그만의 관점으로 이제껏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몬스터를 창조해낸다. 작품 속 좀비는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해 감염시키는 절대악이 아니라 기이한 생명을 얻어 다시 깨어난 우리의 가족으로 공포와 혐오, 애정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원인 불명의 전기장과 이상 고온이 장악한 한여름의 스톡홀름. 너나없이 꺼지지 않는 전자기기와 씨름하며 두통을 호소하는 가운데 한순간 정적이 내려앉으며 모든 기현상이 사라지고, 또하나의 불길한 기운이 도시를 덮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다비드는 아내가 자기에게는 과분한 사람이라 늘 생각해왔고 그녀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런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오열하는 그의 눈앞에서, 처참한 몰골의 시체가 벌떡 일어나 눈을 뜬다.

 

충격적인 부활을 마주한 것은 다비드만이 아니다. 영안실의 시체들이 깨어났다는 제보를 받고 반신반의하며 나선 전직 기자 말레르는 아수라장이 된 병원에서 취재를 마치고 록스타 공동묘지로, 손자가 묻혀 있는 그곳으로 향한다. 무덤에서 파낸 작은 몸은 이미 부패가 시작되어 악취가 진동하지만, 어린 손자를 잃은 뒤 하루하루가 지옥이던 말레르는 그의 딸이자 아이의 어머니 안나와 함께 아무도 찾지 못할 섬으로 도망친다. 손자의 몸에도 다시 생명이 깃들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서.

 

『렛미인』에서 뱀파이어의 존재적 초월성과 우월성보다 실존적 고뇌와 피로를 강조했던 린드크비스트는 이번에도 그만의 시각으로 좀비를 재창조한다. 한 인터뷰에 따르면 『언데드 다루는 법』을 쓰게 된 계기는 공포영화 속 좀비가 하나같이 공격적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그들도 성치 않은 몸으로 이제 막 무덤에서 기어나온 약자라는 그의 발상에서 탄생한 좀비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비폭력적인 좀비로, 인간을 물어뜯어 전염시키겠다는 욕구가 전혀 없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깨어나자마자 생전의 기억과 감정을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가고자 조용히 움직일 뿐, 대면한 인간이 적개심을 품지 않는 한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는 무해한 존재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절대적 미지의 영역에 속한 이들은 어쩔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하고, 가족조차 그들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의 인터뷰에서 ‘사랑의 한계’를 가늠해보고 싶었다고 밝힌 작가는 부활 시점 직전에 가족을 잃은 이들을 번갈아 조명하며 그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 보인다. 생전에 사랑했던 사람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앞에 섰을 때 우리는 그들을 어느 선까지 받아들이고 또 어떤 방식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흉측한 언데드가 되어 돌아온 아내, 손자, 아들, 남편을 맞이한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났다는 기쁨과 안도감을 느끼기에 앞서 죽음의 현현을 마주한 절대적 혐오와 공포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함께 도주를 감행하는 등 일말의 희망을 안은 채 그들을 끌어안으려는 절박한 시도는 서글픈 비애를 자아낸다.

 

망자들의 부활이 초래한 혼돈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결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극한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간들의 고뇌는 가족을 잃은 비탄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죽음과 소멸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 타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성에 대해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리고 마침내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그들 각자가 맞이한 결말은 묵직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가장 기이한 존재를 통해 인간 보편의 정신을, 그 나약함과 누구나가 감춰둔 이면을 살피는 이러한 시선이야말로 오직 ‘호러 장르의 철학자’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매력일 것이다.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소개

 

무시무시하게 환상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한 린드크비스트는 십대 시절부터 거리 마술쇼를 선보였고, 마술사로 활동하면서 북유럽 카드트릭 챔피언십에서 2등에 입상하기도 했다. 그후 12년 동안 스탠드업 코미디언, 텔레비전 코미디쇼와 드라마의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1968년 스웨덴 블라케베리에서 태어났다.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린드크비스트는 블라케베리에 사는 뱀파이어를 그린 자전적 소설 『렛미인』을 완성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괴상하다는 이유로 여덟 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두번째 소설인 『언데드 다루는 법』을 쓰던 중 우드프론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꿈을 이루었다. 『렛미인』은 2004년 출간되어 이듬해 노르웨이에서 ‘최고 번역소설상’을 수상했고, 23개국에 소설판권이 계약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작가의 고국인 스웨덴은 물론, 독일, 미국 등지에서 20여 건이 넘는 영화화 제의를 받았다는 것이다. 마침내 그는 스웨덴의 촉망받는 차세대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손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영화 「렛미인」 은 트라이베카 영화제,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등 30여 개 영화제에서 48개 상을 수상하면서 2008년 가장 인상적인 영화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렛미인』은 공포영화의 명가 해머 영화사에서 「클로버필드」의 감독 매트 리브스에 의해 할리우드 버전으로 다시 영화화중이며, 2010년에 개봉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종이 벽』(2006, 단편집), 『인간 항구』(2008)가 있으며, 『인간 항구』는 2008년 스웨덴 최고 문학상인 셀마 라겔뢰프 상과 예테보리 포스텐 문학상을 수상했다. 『언데드 다루는 법』은 2010년 스웨덴에서 영화화될 예정이며, 『인간 항구』 역시 토마스 알프레드손 감독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다. 현재 린드크비스트는 다섯번째 소설 『작은 별』을 집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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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