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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106)] 축복

[책을 읽읍시다 (1106)] 축복

켄트 하루프 저 | 한기찬 역 | 문학동네 | 472쪽 | 15,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소중한 일상의 대가’ 켄트 하루프가 그려낸 삶의 마지막 순간들『축복』. 켄트 하루프가 2013년 발표한 다섯번째 소설로 그의 다른 모든 소설과 마찬가지로 콜로라도 주에 위치한 가상의 마을 홀트를 배경으로 한다. 홀트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77세의 대드 루이스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결국 생을 마감하기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어느 여름날 대드 루이스는 자신의 온몸에 암이 퍼졌다는 사실을, 이 여름이 끝나기 전에 자신이 생을 마감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열다섯 살에 부모의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 홀트의 철물점에서 일을 시작하고, 아내 메리를 만나고, 철물점 주인이던 노인으로부터 가게를 넘겨받아 새 주인이 되고, 딸 로레인과 아들 프랭크를 키우며 거의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아왔다. 진통제로 고통을 덜어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지금, 메리는 아버지의 곁에 있기 위해 홀트로 돌아온 로레인과 함께 대드를 간호하며 그와 함께하는 마지막 나날을 보낸다.

 

평생 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대드이지만 죽음을 앞두고 나니 회한과 후회가 없을 수 없다. 애착을 갖고 꾸려온 철물점을 앞으로 누가 운영할지도 걱정되고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로레인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여덟 살에 집을 나가 이제는 연락조차 닿지 않는 아들 프랭크. 동성애자인 그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 자기도 모르게 그 아이를 때렸던 것이, 그 아이가 커피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대드의 삶은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지만 홀트에 사는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도 한다. 대드의 옆집에 살기 시작한 아홉 살 앨리스는 엄마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할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홀트로 온다. 로레인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는 앨리스를 살뜰히 챙기고 대드는 옆뜰이 보이는 거실 의자에 앉아 앨리스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 퇴직한 교사 에일린과 엄마 윌라 존슨도 앨리스와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쌓아간다. 이들 이웃들 모두 대드와 그를 간호하는 메리와 로레인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소중한 일상.” 하루프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현실 세계에 사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사연을 품은 채 저마다의 삶에 힘겨워하며 일상을 살아낸다. 하지만 그 지난한 삶 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다정한 태도”나 “여름날 밤에 그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주는 따뜻함과 친절 또한 존재한다. 그런 순간들은 때로 우리가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스쳐지나가버리지만, 그럼에도 그런 “소중한 일상”의 순간들이 존재하기에 우리의 평범한 삶은 커다란 축복이라고, 켄트 하루프는 목사 라일의 목소리를 빌려 이야기한다.

 

『플레인송』의 성공 이후 비로소 다른 직업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살 수 있게 된 켄트 하루프는 매일 아침이면 마당 한쪽에 있는 집필실로 들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4년에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해가 쨍쨍하든 매일매일 소설을 썼고, 폐질환을 앓던 말년에는 산소 탱크의 줄을 집필실까지 길게 연결해 타자기 앞에 앉았다.

 

이렇듯 한결같고 꾸준한 켄트 하루프의 삶은 자연히 『축복』 속 대드 루이스의 삶을 연상시킨다. 주민들 모두가 서로의 사정과 비밀을 아는 작은 마을에서 중심을 지키며 자기 사업을 운영했던 남자. 계절과 날씨에 상관없이 매일매일 메인 스트리트에 위치한 철물점으로 출근해 문을 열고 물건을 팔고 거스름돈을 건네고 장부를 정리했던 남자.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둔 어느 날, 그런 자신의 인생을 떠올리며, 그것이 전혀 쓸모없는 일이 아니었음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남자.

 

켄트 하루프가 탄생시킨 홀트라는 작은 우주와 그 속을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은, 마지막까지 평생 해온 일인 글쓰기를 함으로써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맞이한 작가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런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그의 소설은 고요하고 단단하며 어딘지 슬프지만 동시에 생을 긍정한다. 삶은 때로 “불행에서 불행으로 옮겨다니는 것” 같고, 인생에 내리는 축복은 불공평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삶을 견디다보면 결국 축복 같은 순간들이 찾아온다는 것. 하루프가 신중하게 전하는 그 삶의 진실은, 그의 책을 읽는 독자 한 명 한 명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작가 켄트 하루프 소개

 

1943년에 플로리다 주 푸에블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네브래스카 웨슬리언 대학교를 졸업한 후, 아이오와 대학교의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작가가 되기 전 그는 콜로라도의 양계농장, 와이오밍의 건설 현장, 덴버와 피닉스의 병원, 아이오와의 도서관, 위스콘신의 대안학교에서 일했고, 터키의 평화지원단과 네브래스카와 일리노이의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984년 발표한 데뷔작 『결속의 끈』으로 와이팅 상을 받았고, 『플레인송』(1999)이 미국에서만 백만 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3년 출간된 『축복』은 그의 다른 모든 소설과 마찬가지로 가상의 마을 홀트를 배경으로 쓰였으며, 죽음을 앞둔 대드 루이스와 가족, 주위 사람들이 나눠 갖는 삶의 의미를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아마존 이달의 책, 셀프어웨어니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플레인송』『이븐타이드』와 함께 ‘홀트 3부작’으로 불리며 동시대 미국을 그린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2014년 11월, 평소 앓던 폐질환으로 71세에 생을 마감했다. 사후『밤에 우리 영혼은』이 출간되며 그는 총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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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